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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문화센터에서 도시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다
통권 : 54 / 년월 : 2015년 11,12월 / 조회수 : 1692

생활문화센터에서 도시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다

 

이현식

 

1.

 

한 도시의 문화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흔히들 어떤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방법으로 재정 문제를 들곤 한다. 돈이 투여되어야 정책이 쉽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잘못된 말은 아니다. 재원이 마련되어야 관련된 사업이 추진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도시의 문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데에도 역시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풍족한 재정은 도시의 문화가 발전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이다. 그러나 돈만 있다고 한 도시의 문화가 풍요로워지는 것일까? 문제가 오로지 돈이라면 오히려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풍족한 재정은 도시의 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필요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조건은 되기 어렵다. 재정을 어떻게 투여하고, 어떤 곳에, 어떤 방식으로, 누가 집행하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 것이다. , 단순히 돈만으로 한 도시의 문화를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은 신기루이다. 돈이 핵심적 관건은 아닌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문화를 가꾸기 위한 방법으로 제도와 관련 법규의 문제가 거론되기도 한다. 제도와 법규의 문제는 재정과 더불어 정책을 실현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당연히 관련 법규와 제도가 마련되어야 도시의 지역 문화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마침 지역문화진흥법이 20142월에 제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나 법조문이 마련되어 있다 하더라도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의 문제는 남는다. 좋은 제도가 있더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사례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결국 제도가 제대로 그 취지에 맞게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중요하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제도와 법규 역시 한 도시의 문화를 가꿔가기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이지 충분조건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지역의 현장에서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많은 분들은 정책 결정자 혹은 집행자들의 문화적 마인드를 매우 중요하게 거론하곤 한다. 일종의 문화 리더십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재정 문제와 관련 법규의 문제가 관건이 되지 않는 경우라면, 리더십의 문제가 정책 실현을 좌우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정책 결정자나 집행자들이 문화적 관점을 갖고 도시를 바라보느냐 아니냐가 한 도시의 문화적 성숙을 좌우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리더십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리더십을 받쳐주는 조직의 문제도 있고 재정이나 제도적 여건도 여전히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와 관련된 종사자들의 역량을 지적하는 경우도 많다. 전문가, 기획자들이나 관련 공무원들,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이 과연 어떤 자세를 갖고 있는가에 따라 도시의 문화가 살아나기도 하고 침체되기도 한다. 요컨대 재정이 충분히 투여된다 하더라도, 관련 제도적 여건이 잘 마련되어 있다 하더라도, 또 정책 결정자가 열정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런 정책에 관여된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만 집착하거나 문화적 역량이 충분히 축적되어 있지 못하다면 바람직한 지역문화를 가꿔가는 일은 요원할 수 있다.

 

상식적인 말을 이렇게 늘어놓는 이유는 한 도시의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구체적 수단, 즉 어떻게 하면 문화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할 때에 특정한 요인이 일방적으로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현실 자체가 그렇게 단순하고 간결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현실은 훨씬 구체적이고 구조적이고 복잡하다. 어떤 하나의 요인이 일방적으로 작용하여 현실을 일거에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소박한 낙관론이다. 그렇게 본다면 위에서 거론한 재정이나 제도, 리더십이나 인적 역량 등이 구체적 현실을 토대로 다양하게 작동하여 상호 연관 속에서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해결해가기도 한다는 것이 훨씬 더 현실의 실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거버넌스(governance), 협치(協治)에 주목하는 것은 이것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요인과 그것들의 관계를 통해 합리적 해결 방식을 찾아가는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거버넌스는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패러다임이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것이다. 재정이나 법규, 리더십 등의 단일한 요인으로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려는 방법과는 궤가 다르다. 그것이 우리가 거버넌스라는 방법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침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으로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생활문화센터는 바로 그런 거버넌스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주된 대상이다.

 

 

2.

 

생활문화센터는 2014년부터 지정되기 시작해서 국비와 지방비를 합해 여러 지역에서 현재 개소되었거나 개소를 준비 중이다. 앞으로 문화체육관광부는 생활문화센터를 지속적으로 전국적 범위로 늘려나갈 방침인 것으로 보인다. 인천도 2016년 상반기 개관을 목표로 인천아트플랫폼 일부를 리모델링하여 거점형 생활문화센터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인천에서는 생활문화센터 운영을 위한 세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였고 이와는 별도로 설문조사, 관계자 심층 면접 등을 통해 여러 형태의 운영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모임과 조사를 하는 이유는 생활문화센터가 어떤 정형화된 문화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개소를 앞두고 있는 인천아트플랫폼 내의 생활문화센터 예정 공간

 

전국적으로 지정되고 있는 생활문화센터는 현재 이렇게 운영되어야 한다는 정형화된 틀이 따로 정해지지는 않았다. 각 지역마다 특성에 따라 여러 운영 유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생활문화센터는 새로운 문화정책의 실험적 성격이 강하다. 자칫 잘못하다 보면 기존의 문화의 집이나 문화원, 혹은 주민자치센터에서 시행하는 문화교실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것에 그칠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 성공한다면 기존의 문화정책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새로운 모델로 각광받을 수 있다.

 

생활문화센터를 중앙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배경에는 문화의 주체가 예술가와 더불어 시민에 있음을 확고히 하려는 뜻이 자리 잡고 있다. 문화 창조와 향유의 주체로서 시민의 역할을 더욱 분명히 하고 또 확대해 나감으로써 문화 전반의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건데, 시민들이 문화의 주체가 되는 거점이 바로 생활문화센터인 것이다.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취지 가운데에는 그런 정책적 배경도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문화정책의 주된 측면은 예술가 및 예술장르 중심의 지원 및 육성에 핵심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시설의 조성과 운영도 따지고 보면 예술 정책이었다. 여기에는 예술가는 창작자이고 시민은 수혜자, 관람객이라는 이분법이 작용한 측면이 있다. 시민은 문화예술의 향유자라는 생각이 고정관념처럼 자리 잡아온 결과이다. 그렇지만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이나 생활문화센터의 설립 배경에는 시민이 문화의 향유는 물론이고 창조의 주체이기도 하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으며 예술가 역시 시민 가운데 존재해야 한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결국 생활문화센터는 문화정책의 변화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생활문화센터는 시민 중심의 새로운 문화정책의 성패를 가르는 시금석이 되는 것이다.

 

 

3.

 

생활문화센터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 중 하나가 바로 문화의 거버넌스이다. 인천의 경우 생활문화센터를 기반으로 이런 거버넌스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중점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시설의 조성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의 공간과 운영이 될 수 있도록 고심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이다. 물론 거버넌스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러 시행착오를 가정하고 준비기간을 상정하면서 운영의 묘를 찾아나가야 하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거버넌스가 형성되고 성숙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생활문화센터의 성공 여부는 결국 인천이 문화도시, 아니 시민중심의 문화도시로 나아가는 데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생활문화센터에서 거버넌스는 기본적으로 주민이 얼마나 문화적인 주체성과 자발성을 가졌는지가 기본 조건이 된다. 하지만 주민이 문화적 주체성이나 자발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 계몽적인 방식으로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주입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문가 중심의 문화 개념이나 관념에서 벗어나 주민들의 생활 속에서 필요한 수요나 일상적 요구들을 찾아내 문화와 연계시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매개자나 기획자가 할 일, 혹은 생활문화센터 초기 기획자가 할 일은 이런 것이다. 그렇게 해야 생활문화센터 운영의 주체로 주민이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생활문화센터는 기존의 문화의 집이나 백화점 문화센터 비슷하게 정형화된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그것을 주민들이 수동적으로 이용하는 기존 문화시설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더구나 그렇게 되다보면 지자체에서 운영비가 지원되면 그럭저럭 운영되지만 지원이 끊기면 흉물이 되는 방식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인천이 지향하는 생활문화센터는 문화를 매개로 주민이 직접 운영의 결정권을 갖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어야 진정한 거버넌스의 첫 출발이 될 수 있고 지속가능한 생활문화센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재정적인 측면에서 생활문화센터가 어느 정도 자립화 모델을 찾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이다. 회원제의 형태이건 후원 구조를 만들건 이곳이 진정 주민들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자생적인 토대를 필요로 한다. 재정 전체를 지자체에 의존하는 방식으로서는 주체성과 자발성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것이다. 결국 재정과 운영, 프로그램 면에서 시민들의 주체성과 자발성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 생활문화센터의 과제이다. 그렇게 해서 적정한 수준에서 자립화를 향한 운영 방향이 뿌리를 내릴 때에 거버넌스가 싹을 틔울 수 있다. 인천형 생활문화센터가 지향하는 바는 바로 이런 것이다.

 

한편, 인천광역시 또한 민간이 이런 자립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적극 지원하는 데에 자기 역할을 다 해야 한다. 거버넌스는 민간만이 아니라 관의 태도 변화도 요구한다. 운영의 최종 결정권을 함께 나누어야 하며 자립화의 기반을 갖출 때까지 믿고 기다려야 한다. 물론 자립화의 기반을 끝도 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3년이건 5년이건 시간을 정해서 민과 관이 자립화를 할 수 있도록 서로 도울 때에 신뢰도 형성되고 진정한 거버넌스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인천시는 행정적 유연성을 가지면서 생활문화센터가 본연의 기능을 찾아 나아가도록 지원하여야 하고 또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문화 영역의 인큐베이팅 작업을 인천시와 인천문화재단이 여러 차례 시도하였고 또 성과를 거둔 전례가 있으므로 이번에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생활문화센터는 인천이라는 도시의 문화적 성숙을 실현하는 실험장이다. 한편으로는 문화의 개념과 영역을 넓히면서 주민들의 참여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고 운영 면에서도 새로운 시민 중심의 모델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 기반이 바로 거버넌스이다. 민도 주체가 되고 관도 주체가 되는, 그래서 도시의 문화를 시민의 시각에서 활성화시킨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에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낸다면 인천의 생활문화센터는 전국적으로도 주목받는 새로운 모범으로 등장할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인천이라는 도시가 시민이 중심이 되는 문화도시로 도약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저자 약력
1966년 인천생. 문학평론가,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인천아트플랫폼 관장. 저서로
『일제 파시즘체제하의 한국근대문학비평』,『문화도시로 가는 길』등. agiko3@hanmail.net
글쓴이 : 이현식
작성일 : 201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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