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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문화로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과와 한계
통권 : 54 / 년월 : 2015년 11,12월 / 조회수 : 1572

지역문화로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과와 한계

 

김시무

 

세계영화사의 거대한 물결은 상업영화의 메카인 할리우드와 작가영화 또는 예술영화의 산실인 유럽을 중심으로 흐르고 있지만, 새로운 물결이 필요할 때마다 그 원천(源泉)은 언제나 아시아 영화였다. 1932년 처음 베니스 국제영화제가 생긴 이후로 1946년 칸영화제, 1951년 베를린 영화제가 출범했고, 이들 영화제를 통하여 50년대 일본영화와 인도영화, 60-70년대 홍콩영화, 80년대 대만 및 중국영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 이란영화, 그리고 2000년대 들어 태국 및 한국영화가 새로운 물결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점은 시사를 하는 바가 크다. 아시아 영화에 대한 재조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목하 세계 영화 산업계는 3-D를 영화산업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아 재편성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흐름이 대세인 한 자본과 기술력에서 열세인 아시아 영화가 설자리는 점점 좁아질 것이다. 아시아 영화의 존재의미를 되새기고 아시아 영화의 정체성과 미학(美學)’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시점이 온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의 위상과 역할은 무척이나 크다고 할 것이다.

 

국제영화제는 영화인들이 애써 만든 영화들을 전시함으로써 해당 작품들의 독창성과 작품성을 평가하는 한편, 일반관객들에게 국내외의 새로운 영화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축제의 한마당이다. 영화가 전 세계인들이 애호하는 대중 매체로서의 발전을 거듭함에 따라서 전 세계 곳곳에서 영화제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렇게 출범한 영화제들은 해당 지역과 국가를 넘어 국제화(internalization), 나아가 세계화(globalization)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화문화의 세계화 과정이 긍정적인 결과만을 초래한 것은 아니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각종 국제영화제들은 자기들만의 고유한 특성을 찾지 못하고, 벤치마킹하기에 급급해 변별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수많은 국제영화제들이 국제적인 명성에 걸 맞는 영화제로 성장하기도 전에 도태(淘汰)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20년 동안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난관을 극복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영화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오늘날 명실상부한 국제영화제로 자리매김이 되고 있는 것이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졌다. 왜 서울을 놔두고 하필이면 부산이냐고?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는 영화의 바다 속으로: 부산국제영화제 20년 비하인드 스토리(본북스, 2015)라는 최근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부산은 예부터 독자적인 영화문화의 전통이 살아있는 고장이다. 그 유구한 영화문화의 전통이 바로 부산국제영화제의 뿌리다. 한국 최초의 영화 제작사인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설립된 곳이 부산이란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국 최초의 영화평론모임이 결성된 곳도 역시 부산이라는 사실은 대부분 잘 모른다. ‘부산영화평론가협회가 그것으로, 1958320일 허창 등 7명의 영화평론가들이 모여 출범을 했다. 부산영화평론가협회는 출범과 함께 부일영화상제정에 참여해 같은 해 327일 첫 시상식을 열었다.” 한편 대학의 영화관련 학과도 부산의 영화문화를 일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1982년 출범한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는 그 대표적인 예다. 이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이용관 교수, 전양준 평론가 등이 후에 부산국제영화제 출범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출범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힘주어 강조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자리 잡고 있던 부산 고유의 영화문화, 부산시민의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영화인들의 폭넓은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덧붙인다.1)

 

영화제 관련 전문가들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오늘날 세계적인 영화제로 부상할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영화제의 자기정체성 확립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중론이다. 왜냐하면 자기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한 영화제들만이 꾸준하게 발전을 해왔고, 또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산국제영화제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자기만의 정체성을 확립해왔는가 하는 점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상세하게 살펴볼 것이지만, 부산국제화제는 1996년 출범을 할 때부터 아시아 지역의 영화를 세계무대에 소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모토를 세우고, 그 같은 기조(基調)를 지난 20년간 견지해왔다. 말하자면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영화의 허브(the Hub of Asian Cinema)’임을 자임해왔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했던 것이다. 이처럼 부산국제영화제가 구축해온 아시아적 정체성은 여타의 국제영화제들과 변별되는 고도의 차별화 전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는 한편으로는 부산만의 지역성, 곧 로컬리티(locality)의 추구를 통해서 세계 유수(劉秀)의 국제영화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영화제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 연구자에 따르면, “부산국제영화제가 추구한 세방화, 즉 현지화(Glocalization) 전략은 영화제 차별화 전략의 수준을 넘어서 부산국제영화제를 명실상부한 국제영화제답게 만든 자기정체성이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이 같은 아시아적 정체성이라는 세방화 전략이야말로 부산국제영화제가 지속적으로 발전을 해온 근본적인 이유라고 평가한다.2)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를 넘어 이제 그야말로 세계적 수준의 국제영화제로 발 돋음을 한 것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지역의 영화를 세계무대에 소개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세계시장에서 그나마 소개되고 있는 아시아권 영화로는 일본을 필두로 하여 중국, 대만, 홍콩(차이나)에 이어 최근 새롭게 부상한 이란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영화의 창(A Window On Asian Cinema)’이라는 섹션을 통해,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 지역과 같은 영화 변방(邊方)의 소수파 영화들을 소개해주는 창구 역할을 함으로써 그야말로 아시아 영화의 창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지 오래다. 그런 오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서구(西歐)에서 아시아 영화를 찾으려면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하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됐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평자도 역시 바로 여기에 부산국제영화제의 존재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태국의 아피찻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이나 인도네시아의 가린 누그로호(Garin Nugroho) 감독 등은 부산영화제를 통해 국내 평론가 및 관객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명감독들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단골 메뉴로 아시아 영화의 다양한 경향을 보여주는 아시아 영화의 창(A Window on Asian Cinema)’, 최우수 신인상을 발굴하여 아시아 영화의 미래를 가늠해 볼 단초를 제공해주는 새로운 물결(New Currents)’과 플래시포워드(Flash forward), 지난 일 년 간 개봉된 주목할 만한 한국영화들을 한자리에 모은 한국영화 파노라마(Korean Panorama)’, 20세기에 대한 반성과 21세기에 대한 전망을 담고 있는 세계적 수준의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월드 시네마(World Cinema)’, 그리고 국내외에서 엄선된 단편 및 다큐멘터리 영화들의 제전(祭典)와이드 앵글(Wide Angle)’등이 마련되어 매해 영화 팬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 영화의 창구 역할을 자임하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조차도 엄밀히 말하자면 프로그램의 편성 측면에서 보았을 때, 아시아권 영화들보다는 할리우드 및 유럽권 영화들에 대한 비중이 훨씬 높았다는 점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지난 몇 년간 아시아 영화의 창섹션에 소개되고 있는 아시아 영화는 50여 편 안팎이었으며, 월드 시네마(World Cinema) 섹션에 소개된 영화는 60여 편을 상위했다. 그래서 일부 평자들 사이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정체성을 살려나가기 위해서는 전 세계 모든 영화를 포괄하려는 듯 세계영화 편수 확보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아시아권 영화의 비중을 더 늘려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 등 세계 3대 영화제를 능가하는 국제 경쟁(competition) 영화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면 귀담아 들을 만한 조언이라 사료된다. 참고로 이번 제20회의 경우 아시아 영화의 창섹션에 소개되고 있는 아시아 영화는 52편이며, 월드 시네마(World Cinema) 섹션에 소개된 영화는 50편이었다. 차츰 정상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올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2014년 역대 최다 관객동원 기록인 226,473명을 뛰어넘는 227,377명으로 역대 최다 관객을 동원했고, 역대 최다 GV와 무대인사 그리고 다양한 주제의 컨퍼런스와 포럼 등을 통해 관객과 호흡하고 담론의 장을 확장하는 영화제로 거듭났다는 자체 평가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는 행사에 참석한 게스트 규모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영화제 측의 제20회 결산보도 자료에 따르면, 뱃지(일명 ID 카드)를 발급받은 참석자 수가 총 9,685명인데, 이중 국내 게스트가 3,226명이고, 해외 게스트가 755명이었다고 한다. 주로 대학생들로 이루어지는 시네필(Cinephile) 참가자가 1,405, 마켓(Market) 참석자가 1,571, 그리고 부산 컨퍼런스 및 포럼(BC&F) 참석자가 403명이었다. 국내외 프레스도 2,325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는 국내에서 펼쳐지는 다른 국제영화제들의 모든 게스트들의 수를 합친 것보다도 훨씬 많은 수치이다. 그만큼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관련 인사들이 선호하는 영화제로 발 돋음을 했다는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큰 장점 중 하나는 휴양도시 해운대가 인접해있는 센텀시티에서 개최되고 있어서 개최지로서는 손색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 같은 천혜의 지리적 조건은 부산영화제가 현지화(Glocalization)를 추구하는 데 매우 유리한 토양으로 작용을 했다. 한편으로는 해변을 낀 휴양도시에 위치한 칸영화제의 향수를 자극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다만 애초 부산국제영화제의 개최지였던 남포동 일대의 영화의 거리의 활용도가 점차 떨어져 아쉽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대체적인 지역 여론은 좋은 편인 듯싶다. 하지만 영화제 집행부의 핵심 인사들이 여전히 부산 외 지역 사람들이어서 이에 대한 일부 반감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부산국제영화제는 국제적 행사이지만 동시에 부산지역의 문화축제 가운데 하나임을 명심해야 한다. 부산영화제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성격의 영화제다. 칸이나 베를린처럼 경쟁영화제 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국내외 프리미어(최초 소개 작품)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영화제가 된다. 하지만 매해 평균 300여 편 안팎의 프로그램은 다소 많은 듯 여겨지기도 한다. 한 사람의 영화 팬이 영화제 전 기간을 내내 참석해도 30여 편을 소화하기 힘든 일정을 감안하면 편수를 조금 줄이고 대신 상영 횟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영화제 부대행사 가운데 포럼(Forum) 등 학술행사는 영화제가 독점적으로 주최할 것이 아니라 부산지역 내 영화관련 대학 및 연구소들과의 공동 주최 및 주관자 이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101일부터 10일까지 치러진 제20회 행사를 성공리에 마무리함으로써 이제 어엿한 성년기(成年期)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외형상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영화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몇 가지 숙제를 남겼다. 그 가운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국제영화제의 위상에 걸맞게 프로그램 선정에 있어서의 독립성의 확보다. 우리는 지난 2014년에 치러진 제19회 영화제 때 세월호 참사(慘事)’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The Truth Shall Not Sink with Sewol, 2014)의 상영을 둘러싸고 벌어진 해프닝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은 해당 영화의 상영을 취소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영화제 측은 예정대로 상영을 강행했다. 영화제가 끝나고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대한 사퇴압박이 이어졌고, 결국 부산영화제는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전년도 145천만 원에서 무려 65천만 원이 삭감된 8억 원을 지원받아 제20회 행사를 치러야 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다. 역시 세월호 참사이후를 다룬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Cruel State, 2015)는 영화제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다. <다이빙벨>의 학습효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임기는 3년이고, 20162월이면 모종의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는 이용관과 강수연의 공동 집행위원장 체제로 봉합(縫合)을 하고 있는 모양세지만, 차기 집행위원장이 누가 될지 예측하기는 힘들다. 부산지역의 한 언론사에서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딴죽을 걸고 나왔기 때문이다. 혹여 집행위원장의 교체가 불가피하다면, 외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영화제 내부에서 발탁을 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그렇게 해야 지난 20년 동안 어렵게 구축해온 영화제의 정체성 및 정통성을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독립성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1) 김지석, 영화의 바다 속으로: 부산국제영화제 20, 비하인드 스토리, 본북스, 2015, 30-34.

2) 박강미, 부산국제영화제의 글로컬 문화정체성에 관한 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




#저자 약력
한국영화학회 회장, 영화평론가
글쓴이 : 김시무
작성일 : 201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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