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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는 사람이다
통권 : 54 / 년월 : 2015년 11,12월 / 조회수 : 1550

도시는 사람이다

 

고영직

 

 

서울시청 앞 도로를 차량들이 질주하고 있다. 이현석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

 

최근 서울시는 시민 모두의 행복을 위한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 계획()을 수립하고 최종발표를 앞두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서울시는 개인/공동체/지역/도시 차원에서 목표를 분명히 함으로써 한 도시가 핵심적으로 공유하고 추구하려는 가치를 제시하고자 한다. 각 단위별 목표 설정은 다음과 같다. 개인 차원에서는 삶을 기획하는 시민문화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문화주권을 표방하고 있으며, 공동체 차원에서는 다양성이 공존하는 공동체 문화를 위해 문화공생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 차원에서는 재생(再生)을 통한 문화적 지역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문화재생을 강조하고 있으며, 도시 차원에서는 지속가능한 문화를 위한 문화창조에 역점을 두고자 한다. 서울시는 이와 같은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 계획()수립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의하고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기본 계획안의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였다. 이번에 제출되는 서울시 비전 2030’ 계획안이 기존의 2015 문화도시 기본계획에 비해 새로운 점이 있다면, “도시의 문화적 발전을 강조한 예전 계획안에서 벗어나 시민 개개인의 행복을 강조하고자 한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 명동 거리. 이현석

서울시의 이와 같은 방향전환은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고, 창조적 장소(Creative Placemaking)를 구축하려는 도시정책 측면에서 이해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갈수록 무연(無緣)사회화하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병통은 관계의 빈곤이라는 점에서 시민 개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서울시의 비전 2030’ 계획은 오히려 주목에 값한다고 말할 수 있다. 개인의 건강, 자아실현, 가족을 매개로 한 새로운 가치관 형성, 고령() 사회로의 진화, 사회적 양극화와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다양한 치유활동 증가와 대안적 삶을 살고자 하는 노력 등 우리 사회는 점차 개인의 행복과 문화적 권리를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늘날 문화의 기능 또한 이미 존재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욕구를 창조하는 동시에 기존의 욕구들이 영원히 충족되지 않은 채로 남도록 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양상이다. 세계화와 대규모 이주와 인구의 혼합이라는 새롭고 강력한 힘의 등장에 따라 문화 개념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메갈로폴리스서울의 경우 요동치는 문화변동은 우리나라 어떤 도시보다 더 실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광주의 명물이 된 대인시장 야시장 풍경. 전고필

한편 서울시는 시민 개개인의 행복에 역점을 두면서도 지역과 도시 차원에서 공동체의 재생과 복원을 강조하는 도시 비전을 수립하고자 한다. 이것은 정책적 모순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 개인은 도시와 직접 관계하는 대신에, 공동체와 지역을 매개로 하여 도시와 관계 맺는 법을 구상하고자 하는 정책적 의도가 읽혀지기 때문이다. 재생 중심의 도시 발전, 지역을 매개로 한 공동체적 관계 복원, 다양한 온-오프라인 공동체 형성은 이제 탈성장 시대’(저성장 시대가 아니라!)의 핵심적 문화적 문법이다. 이른바 자유시장에 대한 믿음이 2008년 금융 위기 이래 무너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수년 전부터 서울시가 공유도시를 표방하며 사람과 그들이 사용하는 자원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도시정책을 펴고 있는 것 또한 그런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환상은 금물이다. 계획은 계획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추진해온 비전 2030’ 수립은 우리나라 도시 비전 수립 차원에서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한 것은 분명하지만, 개인-공동체-지역-도시를 서로 연결해 새로운 도시 정체성을 만들고, 시민들이 함께 부르는 합창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결국, 도시는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이 자명한 사실을 잊고 지내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 점에서 도시는 사람이다라는 명제를 여전히 신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우리나라 도시정책의 기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페인어 푸에블로(pueblo)라는 말은 두 가지의 뜻이 있다. 하나는 마을이나 도시를 뜻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뜻한다. 이 의미를 종합하면 마을은 마을 사람이다라는 뜻을 함축한다. 우리나라 도시 비전과 정책 수립 그리고 도시 정체성 측면에서 스페인어 푸에블로라는 말이 갖는 이중적 의미를 충분히 헤아려야 할 필요가 있다.

남양주 진접문화의집이 주관한 생활문화 축제 나와유에 참여한 어느 부자가 작품 제작에 열중하고 있다. 한국문화의집협회

 

 

공위기(空位期) 시대의 문화와 도시

 

그러나 우리나라 도시정책의 핵심 토픽은 여전히 개발이다. 선거철이면 지난 재보궐 선거 당시 어느 후보가 내세운 길이 뚫린다 / 물길이 열린다 / 땅값이 오른다같은 슬로건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만일 그런 개발을 약속하는 구호성 공약을 내세우지 않고서 선거에서 를 얻고 당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지역의 선출된정치인들이 어떤 한 도시의 문화 정체성을 좌지우지하는가.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공유지가 갈수록 훼손되며 사유화되는 21세기 인클로저(enclosure) 현상은 오히려 선출된지방정부 및 정치인들에 의해 더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1968년 프랑스 도시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도시 생활자들이 스스로 도시를 통제하고 만들어가며 자기들의 공간으로 재전유할 권리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도시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the city)라는 개념을 제시한 데에는 그런 위정자들에 의해 인클로저 현상이 심해지는 것에 저항하려는 사회운동의 차원이었다. 도시 설계와 운영이 소수의 부유층을 비롯해 일부 개발업자들에 의해 장악된 도시를 다시 시민의 손으로 되돌려 주기 위한 시도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도시들의 경우 임기 4년짜리 시장군수구청장에 의해 짧은 기간에 얼마나 쉽게 망가질 수 있는지 우리는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지 아니한가. 도시에 대한 권리는 시민들이 스스로 주도하고 기획하는 문화 정체성 차원에서 중요한 개념적이고 실천적 운동성을 지닌다. 시민들의 공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매우 중요하고, 그런 창조적 장소들이야말로 한 도시의 문화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시는 여전히 공사중이다. 행정이 주도하고, 재정이 투입되는 방식의 갖은 공공 프로젝트는 주민의 자발적 참여는 요식행위에 불과하고, 행정과 재정의 지원에 의존하는 관공(官公) 프로젝트성격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행정의 과도한 개입으로 오랫동안 시민들에 의해 보존되어온 한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이 훼손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부산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도시가 된 데에는 부산국제영화제가 큰 역할을 했으나, 광역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외압 시비가 그치지 않는다. 최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부분 개관을 단행했지만, 광주 지역의 문화예술 발전과 어떤 관계가 있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어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물을 짓기 전부터 누구와 함께지역문화를 가꾸어가야 할지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것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이 점에서 안토니오 그람시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공위기(空位期, interregnum)’라는 개념은 문화지체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적절한 인식의 틀이 되는 것 같다. 이 말은 한 국왕이 사망하고 나서 후계자가 즉위하게 되기까지의 시간적인 간격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옥중수고에서 위기란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공위기에는 매우 다양한 병적인 징후들이 출현한다라고 적어놓은 데에서 비롯한다. 여기서 말하는 병적인 징후들이란 파시즘까지 포함한다. 파리11대학 명예교수인 탈성장 경제학자세르주 라튜슈는 그람시의 공위기개념을 차용해 지금 같은 탈성장사회에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오래된 것과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새로운 것사이에 필요한 것은 대화라고 주장한다.

 

남양주 진접문화의집이 주관한 생활문화 축제 나와유에서 아이들이 우드버닝 아트에 열중하고 있다. 한국문화의집협회

세르주 라트슈의 주장은 문화와 도시 정체성 측면에서도 유효하다.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적절히 언급하듯이, 오늘날 세계 정치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권력이 분리된 공위기현상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Z.바우만은 선출된 국가(그리고 지방정부) 기능들이 정치에서 자유로운영역으로 인정되는 시장으로 이전(아웃소싱그리고/혹은 외주 하청’)되거나 개인들의 어깨 위로 떨어져야만 했고 그렇게 될 예정인 상황으로 급변한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이 시대의 정언명령은 신자유주의적 탈규제’ ‘민영화’ ‘보조화가 유일한 덕목으로 권장된다. 다시 말해 누구의소유도 아닌 공유재(commons)누군가의소유로 탈바꿈하는 사유화되는 현상이 정책적으로 재촉되는 것이다.

 

최근 문예진흥기금이 고갈될 상황에 처하자 (비록 유보되었지만) 지역협력형 사업의 경우 지역발전특별회계로 전환 편성하려고 한 정부의 처사는 무엇을 말하는가. 문화창조 후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보충성 원리’(subsidiarity)라는 원칙이 깨졌음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는가. 보충성의 원리는 지역적인 풀뿌리예술과 공연 계획 등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지원정책의 철학이다. 그러나 최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방정부와 지역 시민(문화예술단체) 간에는 그런 보충성의 원리 같은 원칙이 존중되지 않고 있으며, 협치(協治)의 거버넌스는 행정의 부름을 받은 일부 전문가들이 추인하는 형식으로 변질되었다. 다시 말해 한 도시가 추구하려는 문화 비전과 정체성이 잘 보이지 않고, (지방)정부 주도로 정책을 추진하려는 건축의지만 보이는 형국이다. 그런 마음의 관료주의가 가난마저 전시하려는 욕망을 낳는 법이다. 독일 시인 겸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연기자에게 잘못된 콘셉트를 빨리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은, 긴 설득이 아니라 박수 하나 없는 관객의 침묵이다라고 한 말은 그런 단체장들을 위해 예비된 채찍질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시흥시 맹꽁이책방 아이들이 제작한 마을 앨범.

 

모순은 희망이다

 

한 도시의 문화는 예술가(단체)대중이 만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서비스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정책에서 비롯한다. 예술단체(예술가)의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기 위한 단계적이고 연속적인 지원을 강화해야 하며, 장르 중심의 지원 시스템에서 탈피하여 지역 내 다양한 분야의 장르 간, 단체 간 협력사업을 강화하고 우선지원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브레히트는 모순은 희망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은 긴급 상황이 닥쳐야만 새로운 것에 몸을 던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법하다.

 

인천의 경우 아트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생활문화지원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이 공급자 위주의 시선으로 새로운 정책사업을 사업화하고자 하는 고민일 뿐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의 생활문화지원사업은 여가사회 담론의 맥락 안에서만 논의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여가사회 담론이란 기존의 견고한 노동사회 담론을 전제하고 인정하려는 담론이 아니던가. 그런 관점에서는 생활문화예술정책은 물량 위주의 사업으로 공급될 우려가 매우 높다. 그럴 경우 외부의 힘에 덜 의존하려는 시민들의 일상의 문화와는 더 멀어지게 되는 것이고, 생활문화예술 현장 또한 지원제도의 덫에 갇히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최소한의행정으로도 잘 돌아가는 조직구조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요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생활문화 사업의 자폐성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일상의 문화를 가꾸고 바꾼다는 것은 결국 무엇에 대한 자율성이고, 무엇을 위한 자율성인가를 묻는 질문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런 질문의 과정이 없는 도시 문화 정체성은 쉽게 외풍(外風)에 의해 무너진다. 어쩌면 그런 질문을 품은 사람들이 나 자신의 일상을 바꾸고, 동네(지역)를 바꾸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활문화센터 같은 공간이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점에 대해 더 숙고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협력 자체가 예술이 되는 삶-예술의 경지를 일상적으로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비빌 언덕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런 공간을 창조적 공유지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결국, ‘사람을 키워야 하는 것이고, 시민과 지방정부 간에 거버넌스의 회복과 부활이 필요하다.

 

미국 교육자 파커 J. 파머가 민주주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있는 무엇이다라고 한 말은 거버넌스 회복과 부활 측면에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슬로건이다. 그런 거버넌스의 복원과 회복 과정에서 우리 사는 도시가 누구의공간이 아니라 누구나의 공간으로 변할 수 있는 변신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공유인(commoner) 내지는 문화시민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약력
1968년 전북 군산생. 문학평론가. gohyj@hanmail.net
글쓴이 : 고영직
작성일 : 201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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