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 Menu Body
플랫폼
웹진 검색하기          상세검색

 <b>커버스토리</b>
HOME > 커버스토리
  예술과 표현의 자유
통권 : 52 / 년월 : 2015년 7,8월 / 조회수 : 2719

예술과 표현의 자유

 

정장진

 

1년 전인 2014년 가을,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광주정신전'에 출품된 홍성담의 그림이 물의를 일으키다가 결국 전시회 자체가 취소된 적이 있었다. 문제가 된 작품은 세월호 참사를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연계해 묘사한 작품, <세월오월>이다. 민중화가였기에 풍자를 넘어선 그림의 도발적인 주제와 묘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세월호 사건과의 연계도 정서적으로나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는 판단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된 그림만이 아니라 화가의 다른 작품들까지 함께 보면서 저게 예술인가?”라는 의문을 갖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예술은 보는 사람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게 마련인데, 다음과 같은 두 극단 사이에서 예술작품의 평가가 이루어지곤 한다. 첫 번째 관점은 예술을 삶의 향기운운하며 가벼운 장식으로 받아들이면서 정치적 표현이 등장하면 예술가가 웬 정치냐고 언성을 높이는 사람들이 기대고 있는 관점이다. 그 반대편에는 예술을 삶의 중심에 위치시키며 미학적 관점과 정치적 관점이 하나라고 믿으면서 예술을 반항과 투쟁의 도구로 대하는 이들의 관점이 자리 잡고 있다.

 

어느 경우든, 전시회 자체가 무산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시회는 계속되어야 했고 작품도 걸렸어야 했다. 왜냐하면 판단은 전적으로 관람객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계란을 던지든, 꽃바구니를 선물하든, 일단 걸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의 전시회에 걸리지 못한 그림에 등장했던 김기춘이라는 인물이 1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다시 등장했다. 다름 아니라 다른 조연들과 함께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한 것인데, 김기춘이라는 이름 석 자 옆에는 “10만불, 2006. 9, 26독일 벨기에, 조선일보라는 글씨까지 보태져 있다. 어쩌면 이 성완종 리스트 자체가 미술일 수도 있다. 초서체로 흘려 쓴 것도 그렇지만 죽음과 비리라는 어두운 아우라가 어른거리는 것도 예술로 볼 수 있는 한 작은 근거가 되어줄 수 있다. 작품을 걸지 못한 민중화가는 어쩌면, 지금, 이 리스트를 만지작거리며 새로운 풍자미술을 제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문자를 갖고 알 듯 모를 듯 작업을 하는 것을 예술계에서는 문자추상이라고 부르는데, 당연히 이번에는 화가가 성완종 리스트를 세월호가 아니라 메르스와 연계시킬 것이다.

 

 

낙선전에 걸린 그림들

 

판단은 관람객의 몫이다. 전적으로. 예술과 표현의 문제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이래 동서고금의 모든 정권에서 한 번도 비켜간 적이 없는 문제였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폭압적인 사례는 흔히 인덱스Index(라틴어, Index librorum prohibitorum)라고 약칭되는 바티칸 금서목록이다. 마틴 루터는 당연히 들어가 있지만, 이외에도 문학전집에 선정되어 권장도서로 뽑힌 대다수의 책들이 금서 목록에 들어가 있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예술도 예외가 아니어서 남자 성기만 보이면 무조건 금지되곤 했다. 이런 이유로 원근법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마사치오의 그림,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을 보면 불쌍한 아담이 그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나뭇잎으로 중요 부위를 가려야만 했다. 그림은 지금은 복원되었지만, 애첩들을 거느리고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던 교황과 추기경들의 위선적인 검열로 인해 작품이 완전히 훼손되었던 것이다.

   마사치오(Masaccio, 1401-1428),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 프레스코, 208X88cm, 피렌체, 산타마리아 델 카르미네, 1426-1428.

 

오늘날 서구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판단은 관람객의 몫이라는 명제가 인정되고 있다. 판단은 관람객의 몫이라는 명제가 미술사를 넘어서서 예술과 표현의 자유 전체를 한 단계 진전시킨 것은 19세기 후반인 1863년 나폴레옹 3세 치하의 프랑스에서였다. 당시 국가가 개최하던 관전에 출품된 수많은 작품들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고 유명한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1863, 파리, 오르세 박물관)도 그 중 하나였다. 스파이들을 사회 곳곳에 침투시켜가며 사회를 염탐, 억압하고 있던 나폴레옹 3세는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는 보고를 받자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것이 바로 떨어진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어서 시민들 스스로 판단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낙선전은 뒤숭숭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유난히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파리 사람들에게 가십거리도 제공하는 일석이조의 성과를 거두었다

마네(Édouard Manet,1832-1883), <풀밭 위의 식사>, 캔버스에 유채, 208X264cm, 오르세 박물관, 1863.

 

역설적이게도 이후 서서히 판단은 관람객의 몫이라는 명제가 자리를 잡았으며, 이후 프랑스는 과격하기 이를 데 없는 작품들이 쏟아져도 관용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프랑스가 계속해서 미술의 나라라는 명성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역사가 작용을 한 것이다. “발가락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인상주의, 호랑이와 사자 같은 야수들이 울부짖는 것 같다고 욕설을 들었던 야수파(野獸派, fauvisme) 등등이 모두 파리에서 태어난 것이다. 덕분에 전 세계 화가들은 파리로 몰려들었고 몽마르트르의 전설과 재불화가라는 타이틀이 태어난 것이다.

 

현재 프랑스의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률 속에는 풍자의 권리 droit à la satire”를 보장하는 조항까지 들어있다. 이 법 역시 모든 판단은 시민들에게 맡기자는 낙선전 이후 추세의 연장선상에서 제정된 것이다.

 

 

SNS를 타고 퍼지기 시작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런데 왜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는 낙선했고 또 낙선전에 걸려서도 가장 욕을 많이 먹었던 것일까? 이 그림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 문제가 없는 그림이다. 다른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잠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한국에서는 대 숲을 흔드는 바람결을 타고 이 소리가 멀리 멀리 메아리쳤다고 하고, 서양에서는 갈대숲이 흔들리면 이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바람 소리, 말 그대로 풍문風聞인 것이다. 혼자만 알고 있어도 될 일이었던 것 같은데, 왜 왕의 귀를 본 이들은 꼭 이 말을 외쳐대야만 했을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으니, 당나귀 귀가 아니라 이 이상하게 생긴 귀 뒤에 뭔가 큰 다른 비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폴레옹 3세의 귀는 당나귀 귀였고 마네의 그림은 이 진실을 외쳐댔던 것이다. 당시 산업혁명의 와중에 있던 런던과 파리는 졸부들이 득세하고 사회 양극화가 극에 달해 있었으며, <지킬박사와 하이드씨>가 잘 일러주듯이 낮과 밤이 다른 거짓된 도덕이 맹위를 떨치던 위선의 시대였다. 프랑스에서는 황실을 중심으로 통음난무의 음란하기 짝이 없는 파티가 연일 열렸으며 황제 자신도 영국 출신의 애첩들을 여러 명 거느리고 뒷돈을 대주는 등 문란하기 이를 데 없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황제 밑에서 졸부들 역시 정부들을 거느렸으며 마침 개통되기 시작한 철도를 이용해 산으로 들로 나가 난교파티를 열기도 했다. 두 쌍의 남녀가 풀밭 위에 앉아, 여자는 옷을 벗고 남자들은 정장 차림을 한 <풀밭 위의 식사>에서 당시 고관대작과 부르주아는 자신들의 은밀한 사생활이 폭로되는 것을 본 것이다. 당시 이 황제와 원수로 지내며 조국에서 쫓겨나 망명 생활을 하던 작가가 바로 대문호 빅토르 위고였다.

 

 

퇴폐 미술전의 악몽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가 낙선전에 걸릴 당시 황제로부터 즉석에서 구입되는 영광을 누린 화가가 일반인들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카바넬이었고 황실이 구입해 궁전에 걸었던 그림이 바로 술집에나 걸면 안성맞춤인 보기도 민망한 <비너스의 탄생>이다.

카바넬(Alexandre Cabanel, 1823-1889), <비너스의 탄생>, 캔버스에 유채, 130X225cm, 오르세 박물관, 1863.

이 슬픈 이야기는 히틀러가 통치를 하던 시절, 이른바 퇴폐미술전”(독어 Entartete Kunst, 영어 Degenerate art)이라는 악몽으로 다시 살아난다. 꽤 감각이 있는 화가이기도 했던 히틀러는 칸딘스키, 뭉크, 클레, 피카소 등 수십 명의 전위적 화풍의 작가들의 작품을 순회전시를 하며 욕을 해대고 불 질러 버렸다. 몇몇 화가들은 이 일로 스스로 목숨을 끓기도 했다. 최근 한 경매에서 피카소 그림이 무려 2억 달러에 낙찰이 되었다고 하니 히틀러가 실수를 해도 단단히 한 셈이다. 히틀러는 <비너스의 탄생> 같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림의 내용과 제목이 딱딱 맞아떨어지고 정학한 소묘와 안정된 구도 그리고 신화, 전설, 역사를 들려주는 그림들……

   퇴폐미술전광경 1938년 독일연방고문서

 

하지만 이젠 누구도 히틀러가 좋아하던 이런 그림들을 그리지도 않고 사지고 팔지도 않는다. 대중들은 안 것이다. “내용과 제목이 딱딱 맞아떨어지는그림들이 예술이라는 가면을 쓴 사기극이라는 것을. 예술이 가장 저급하고 사악한 이데올로기의 프로파간다로 추락한 것임을. 가장 전형적인 경우가 국가도 아닌 북한의 만수대를 장식하고 있는 김일성 김정일 기마상이다(사실 이 기마상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프랑스 조각가 팔코네가 제작한 표토르 대제의 기마상을 받침대까지 그대로 모방한 조각이다. 북한이 외치는 주체는 완전 허구인 것이다).

 

예술가를 핍박하며 전시회를 가로막는 정권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진실을 발설하지 말라는 정권에 다름 아니다. 대나무와 갈대숲에서 부는 바람은 다 알고 있다. 풍문은 공연히 생겨나지 않는 법이다. 21세기 우리가 사는 디지털 세상의 풍문은 SNS. 튀니지에 일러난 재스민 혁명은 바로 이 21세기 풍문, 즉 죽간에 혹은 갈대의 일종인 파피루스에 초서체로 흘려 쓴 바람의 소리가 SNS를 타고 일으킨 혁명이었다. 누가 상상이라도 했는가? 가다피 대령이 개죽음을 당하고, 무라바크가 감옥에 갇힐 줄을.

 

 

병신과 머저리들의 쇼쇼쇼

 

프랑스에 <베베트 쇼 Bébête show>라는 인기 절정의 TV 정치 풍자 코너가 있었다. Bébête의 베베는 갓난아기를, 베트는 동물이라는 뜻으로 어리석은, 머저리 같은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이 코너에 등장하는 사람은 모두 유치하고 머저리라는 것인데, 기가 막힌 것은 이 코너의 주인공들이 모두 대통령, 수상, 장관들이라는 것이다. 꼭두각시 인형으로 둔갑한 이 정객들은 목소리까지 그대로 모방한 성우들의 노련한 연기 덕분에 끝도 없이 헛소리만 늘어놓다가 치고 박고 싸우다 퇴장한다. TV 코너를 가장 즐겨 보는 사람들이 바로 주인공들인 정치가들이었다.

  베베트쇼 bebeteshow

 

한국에도 코미디 프로는 많지만 하나같이 쓰러지고 넘어지는 옛날 포맷 그대로이다. 시니컬한 풍자도 페이소스도 없다. 조금만 풍자하려고 하면 데스크에서 잘라 버린다. 방통심의위원회 산하 방송심의소위는 <민상토론>에 대해 불쾌감을 유발했다며 품위유지 조항을 적용해 행정지도 의견제시제재를 확정했다. 그러니 그토록 대형사고가 많이 터졌는데도 코미디 프로들은 한결같이 헛소리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언론의 자유는 고사하고 풍자의 자유마저도 없는 것이다. 웃을 자유도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웃다가 울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예술과 표현의 자유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꼭 창칼을 들고 싸워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초서체의 성완종 리스트가 표구되어 “10만 달러, 2006. 9, 26독일 벨기에, 조선일보라는 검은 돈의 흐름을 알리는 시와 낙관까지 얻어가진 채 버젓한 문인화로 전시장에 걸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쓴 리스트를 예술로 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성완종도 물론 영화 <친구>에 나오는 조폭들처럼, 친구들 중 하나일 뿐이다. 액수까지 정확하게 공개되어도 법적 증거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친구들 중 하나였던 성완종도 무모한 결정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뻬드로 베루게테(Pedro Berruguete(1450-1504), <성 도미니쿠스와 알비파, Saint Dominic and the      Albigensians>, 판넬에 유채, 122X83cm, 프라도 박물관, 1499.

이단 카타리파의 서적은 단번에 불에 타지만 가톨릭 서적은 불 속에 던져도 타지 않고 세 번이나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고 하는 전설을 그린 그림. 스페인의 오토다페(분서갱유)를 묘사한 그림.

 

낙서 좀 하고 살자

 

두 명의 외국인들이 한국 지하철 역사를 침범해 “blind” 낙서를 하고 몰래 출국했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낙서를 용납하지 않는 한국에 가서 낙서를 하고 돌아왔으니 이 두 사람은 그래피티스트 세계에서는 영웅이 되었을 것이다. 낙서는 하나의 작은 예에 지나지 않는다. 성완종 리스트도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낙서를 하자는 주장을 하자는 것도 아니며 성완종 리스트를 계속 만들자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림이면 그림, 책이면 책을 우선, 보자는 것이다. 전시회를 막지 말아야 한다. 바람을 타고 퍼지던 유언비어는 이젠 댓글을 타고 온다. 연거푸 세무조사라는 칼날을 들이대면 포털들은 죽는다.

 

창조 경제는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허락할 때만 가능하다. 한국이 IT 강국이라고?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양이 질을 압도한다는 논리에 서서 미래를 예측한 마샬 맥루한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IT는 아무리 발달해도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IT 위에 콘텐츠가 있으며, 콘텐츠 위에 예술이 있고 예술 위에 자유가 있는 것이다. 한때 정치가들이 자신들은 안 읽으면서 청소년들 보고는 그렇게 읽으라고 강조하던 스티브 잡스의 전기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창의적인 정보기술(IT) 제품은 애플이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잡스가 약을 했던 것까지 따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콘텐츠 위에 예술이 그리고 예술 위에 자유가 자리 잡지 않으면 잡스는 안 나온다. 대신 잡놈들만 나올 것이다.

 




#저자 약력
丁獎鎭 1956년 서울 생. 고려대강사, 성균관대겸임교수, 문학평론가, 미술평론가. 도서출판 열린책들 기획위원. 저서 11권 (<문학과 방법, 한국소설의 무의식 등>, 역서 27권 <창조적 작가와 몽상>: 프로이트 전집, <사랑과 서구문명> 등. <법보신문>, <주간조선>, <뉴스위크>, <이데일리> 등에 문화, 예술, 영화 칼럼 연재. 1998년 예술의 전당 <루브르 조각전> 기획 등 여러 전시회 기획, 도록 집필. jjj1956@korea.ac.kr
글쓴이 : 정장진
작성일 : 2015/07/11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