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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열, 그 놈
통권 : 52 / 년월 : 2015년 7,8월 / 조회수 : 1742

검열, 그 놈

김창남

중세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이 연이어 일어난다. 이 사건을 조사하는 윌리엄 수도사는 이 사건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필사본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가 밝혀낸 살인범은 이 수도원의 늙은 수도사 호르헤다. 그는 웃음의 가치를 담은 이 책이 신에 대한 불경죄를 저지르게 하리라는 믿음에 사로 잡혀 책갈피에 독을 묻혀 놓았다. 호기심에 찬 수도사들이 이 책을 몰래 읽으며 손가락에 침을 묻히다 독에 중독되어 죽어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의 줄거리다. 이 작품은 중세 신학과 철학의 다양한 주제를 함축하고 있지만, 표현의 자유 혹은 지식과 정보의 독점과 소유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의 역사라는 측면으로 읽어도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던져준다. 호르헤는 말하자면 지배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검열관이다. 새로운 사상과 지식에 목말라 책을 몰래 찾아 읽다 죽어간 사람들은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불온 세력이다. 권력자들은 늘 정보를 독점하면서 자신들이 무해한 것으로 인정한 지식만 유통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등장하기 마련이고 이를 추구하는 세력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인간의 역사는 지식과 정보의 소유와 독점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열이란 지식과 정보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 개입하는 권력의 작용을 의미한다. 여기서 지식과 정보를 담론, 혹은 문화, 혹은 문화 담론이란 말로 바꾸어도 되겠다. 권력이 있고 담론이 있는 곳에는 어떤 식으로든 검열이 존재하며 그 검열은 크든 작든 일정한 폭력성을 수반한다. 검열의 역사는 고대 문명에까지 올라가지만 근대적 의미의 검열은 인쇄술에 의해 서적의 대량 보급이 가능해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서구 사회에서 검열의 역사는 중세 권위주의 체제에서 이성과 진보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계몽주의 시대로의 이행 과정을 반영한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자유와 진보를 방해하는 중세 권력의 검열을 비판하며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다. 그들의 사상이 중세를 무너뜨리고 근대를 가져왔지만 근대 사회라고 검열이 사라진 건 아니다. 종교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하던 검열의 권한이 제도화된 국가 기구로 이전되었을 뿐이다. 제도화된 기구를 통해 합법적으로 검열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 폭력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일정한 제도와 절차에 근거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논리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근대적 검열이 과거의 검열에 비해 가지는 핵심적 차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국가 기구가 가진 논리적 정당성은 대체로 권력자들과 사회의 지배 집단이 갖고 있는 가치와 상식, 감각과 정서에 기반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지배적 가치와 정서에 반하거나 그로부터 배제된 소수 담론의 문제가 발생한다. 한 사회의 성숙도는 이러한 주변 담론들이 어떤 방식으로 처리되는가에 의해 판가름 나기 마련이다. 좀 더 민주적이고 성숙한 사회라면 주변 집단의 가치와 감성이 폭넓게 수용되면서 각자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도록 검열의 메커니즘이 작동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회라면 주변화된 가치와 감성이 유무형의 억압 속에서 숨 쉴 자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검열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된다. 근대적 매체가 도입되고 막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인 1926년에 영화 검열제도가 생겼고 1933년에 음반 검열제도가 생겼다. 검열의 주체는 총독부였다. 당시 검열 당국이 가진 가장 중요한 판단의 기준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치안방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풍속괴란이라는 것이다. 치안방해란 정치적 비판과 저항, 혹은 현실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고 풍속괴란이란 퇴폐와 외설 등 풍속과 윤리 차원의 일탈을 의미한다. 일제 식민권력은 영화나 연극, 대중가요에서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부분은 가차 없이 가위질하거나 금지조치를 내렸다. 이와 같은 검열의 메커니즘은 해방이 되고 나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60년대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군사 독재 정권 시기는 우리 역사에서 국가 권력에 의해서 가장 가혹한 검열이 이루어진 시대이기도 하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급속한 산업화가 추진된 60, 70년대를 통해 매스미디어가 빠르게 확산되고 강력한 제도적 검열 장치가 확립되었다. 검열은 매체와 장르를 가리지 않았지만 특히 대중가요, 영화, 연극, 광고 등 대중적 파급력이 큰 매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사전 검열이 이루어졌다. 예컨대 대중가요의 경우, 먼저 악보와 가사를 제출해 심의를 받아야 했다. 조금이라도 검열관의 비위를 거스르는 표현에 대해서는 서슴없이 개작 지시가 내려졌고 그 경우 내용을 바꾸어 재심사를 받아야 했다. 최종적으로 허가가 떨어지면 음반을 제작할 수 있었지만 거기서 끝나는 건 아니었다. 제작된 음반은 다시 납본 형식으로 당국에 제출되어 심사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음반의 자켓 사진과 디자인 역시 심의를 통과해야 했다. 이 모든 절차를 거쳐 음반이 완성되면 다시 방송사 별로 방송이 가능한지 여부를 심의 받아야 했다. 방송을 통해 대중의 귀에 닿기까지는 그렇게 여러 단계의 검열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그렇게 버젓이 검열을 통과해 판매도 되고 방송이 되던 곡들도 나중에 언제든 금지될 수 있었다. 군사정권은 수시로 멀쩡히 잘 나가던 노래들을 금지하곤 했다. 영화 역시 다르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사전에 제출해 심의를 통과해야 제작이 가능했지만 그렇게 완성된 영화는 다시 한 번 가위질 당해야 했고 가위질까지 통과해 극장에서 버젓이 상영되는 영화가 상영금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공식적인 검열 기관의 제도적 검열만 존재했던 건 아니다. 국가보안법이 언제든 서슬 푸른 칼날을 휘두를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많은 작가, 지식인, 예술가들이 그 칼에 희생되어 구속되거나 재갈물림을 당해야 했다.

 

군사 정권 시절의 검열 기준 역시 일제시대 치안방해와 풍속괴란 수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표현만 좀 더 현대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1962년 방송윤리위원회가 내세운 대중가요 심의 규정을 보면, ‘국가의 존엄과 민족의 긍지를 손상할 우려가 있는 가사와 곡은 방송하지 않으며, ‘건전한 국민정서의 함양과 명랑한 사회분위기 조성에 저해가 될 우려가 있는 음악특히 퇴폐적, 허무적, 염세적 또는 자포자기적인 음악은 금지한다고 되어 있다. 치안방해와 풍속괴란의 현대적 버전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기준 자체가 모호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며 당연히 일관성 있게 적용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모호함은 검열의 효과를 높이는 전략이기도 하다. 권위주의적인 국가일수록, 표현 자유에 대한 억압이 극심한 사회일수록 검열기준은 모호하기 마련이다. 기준이 모호하다는 건 검열을 피해갈 수 있는 표현 방식을 찾기가 어렵다는 뜻이고 검열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건 언제든 검열관의 자의에 의해 표현 자유를 제약 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작가들, 문필가들, 예술가들은 어쩔 수 없이 자기검열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자신의 사고와 상상력을 제한하는 자기 검열이 일반화되는 건 검열을 통해 지배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유지 강화하고자 하는 집단의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상황일 터이다. 자기 검열이 만연한 사회에서 다양한 문화 담론, 다양한 예술적 창조가 불가능한 건 당연한 일이다. 문화는 관변 이데올로기의 전시장이 되거나 되풀이되는 동어반복 속에서 점차 창조적 활력을 잃고 쇠락해 간다. 그런 가운데 자기 검열을 거부하는 작가들의 상상력은 검열 제도 밖의 새로운 공간을 형성하고 자유로운 표현을 갈망하는 대중의 욕망도 그곳을 향하게 된다. 그렇게 제도권 내의 문화와 제도권 밖의 문화가 첨예한 갈등을 빚게 된다. 군사 정권 시절 한국사회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한국 사회가 자기 검열이 만연한 검열 국가의 수렁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된 건 당연히 민주화의 결과다. 민주화의 과정에서 검열이 점차 완화되기 시작했고 사전 심의제도에 대한 위헌 제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마침내 오랫동안 우리 작가, 예술가들의 목을 죄어왔던 사전 심의제도가 철폐되었다. 그와 함께 대부분의 선진국이 갖고 있는 등급심의제도가 만들어졌다. 검열제도가 변화하면서 표현 자유의 수위가 높아지면 문화 담론의 생산 과정이 변화한다. 새로운 창의적 인재들이 투입되고 과거에 상상하기 힘들었던 문화 담론이 만들어진다. 다양한 문화가 만개하면 당연히 대중의 일상적인 삶과 정서에도 변화가 생겨난다. 그렇게 문화가 변화하면 사회 전반의 구조도 좀 더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게 된다. 민주화 이후 한동안 한국 사회는 바로 그런 변화의 희망으로 넘쳐났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보수 정권의 연이은 등장과 함께 표현의 자유가 다시 한 번 크게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와 함께 최소한의 자유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믿었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되어 지난 몇 년 동안 일어난 사건 몇 가지를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드러난다. 2012년 사진작가 박창근 씨가 북한 관련 트위터 메시지를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것은 그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2012년 국제사면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는 이명박 정부 이후 한국사회에서 학문과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공식적 검열제도가 약화된 대신 국가보안법 같은 도구가 또 하나의 검열 장치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공표, 모욕죄 등 실정법 소송을 통해 비판적 담론을 억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런 경우 상당수가 결국 무죄판결을 받게 되지만 소송이라는 행위 자체가 비판적 담론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낳게 되는 건 자명한 일이다. 그런가 하면 공식적 검열 기구들도 보수화된 정치 환경 속에서 다시 구시대적인 잣대를 휘두르곤 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유료 웹툰 사이트 레진코믹스 접속을 차단하는 결정을 내린 일이 있었다. 이 사이트에 게재된 만화 가운데 일부에서 음란성의 혐의가 보인다는 이유였는데, 방심위의 결정이 법에 명시된 사전 통지나 의견 진술 기회도 없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비판이 쏟아졌고 결국 차단 결정이 취소되었다. 검열기구의 문제 인식과 발상이 민주화 이전 시대로 후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얼마 전에는 비전향장기수의 삶을 다룬 박건웅의 만화 <나는 공산주의자다(어느 혁명가의 삶 1920-2010)>를 두고 일부 극우 매체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만화라는 비난 기사를 실은 후 이 작품이 경기도 초등학교 추천도서에서 삭제되는 일이 있었다. 이것 역시 사회적 권력이 문화에 개입하며 표현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하나의 검열이다. 최근에는 이처럼 보수적 사회 집단들이 문화 담론에 구시대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종북 따위의 딱지를 붙이며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가끔 <개그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권력을 풍자하거나 비판하는 듯한 표현이 방송되고 나면 으레 그래도 괜찮은 건가’ ‘잘리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의 댓글이 달리는 걸 볼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 점차 자기 검열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자기 검열이 일반화되었던 군사 독재 시절을 저 멀리 지나왔다고 생각했던 한국 사회가 다시 자기 검열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와 검열의 문제는 결국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과 정확히 상응한다. 민주주의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표현 자유는 확대되고 검열 권력은 약화된다. 공식적, 비공식적 검열 권력이 활개치고 그 결과로 자기 검열이 확대되는 건 그 자체로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이 하락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징표라 할 수 있다. 한국사회는 오랜 민주화 투쟁의 험난한 과정을 거쳐 군사 정권 시대를 종식시켰다. 그 결과 군사 정권 시대의 강압적 검열 기구들이 사라지거나 재편되었다. 표현 자유가 신장되고 이를 통해 다양한 문화가 만개하리라는 기대가 충만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가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있었던 것인지 최근 몇 년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결국 문제는 다시 민주주의일 수밖에 없다.

 

 




#저자 약력
金昌南. 1960년 춘천생.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문화대학원 교수,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장, 저서로 <대중문화의 이해> <대중문화와 문화실천> 등이 있음. cnkim@skhu.ac.kr
글쓴이 : 김창남
작성일 : 2015/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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