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떻게 하면 이런 일들을 잊을 수 있을까요?

지난 10월 어느 날, 인문학 강연을 하러 간 자리에서 생긴 일이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을 받았는데 그 중 한 분이 어쩌면 질문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며 힘들게 질문을 건넸다.

“1980년 5월 광주 때 저는 여고 1학년생이었습니다. 학교가 일주일여 동안 휴교를 해서 고향집에 내려갔기 때문에 직접 광주를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그날의 일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들을 잊을 수 있을까요?”

역사의 무게가 느껴지는 질문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답을 드렸다.

“그것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속에서 일어난 어떤 비극들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코미디의 소재가 되거나 가벼운 농담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선 몇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그 비극의 희생자들, 사건과 우리들 사이에 충분한 시간적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역사적 정산精算 작업을 거쳐 사회적 의미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명확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 사건이 오늘의 현실에서 농담의 대상이 되거나 코미디의 소재가 되더라도 그로 인해 피해를 입고, 상처받았던 사람들이 또다시 상처받는 일이 없는지 면밀하게 파악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민족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 백제의 멸망을 다룬 <황산벌>이나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다룬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영화를 보며 함께 웃을 수 있는 까닭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5월 광주는 우리에게 아직 끝난 사건이 아니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상태로 있기 때문에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사건인 것이지요.”

이것은 비단 5월 광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기억하고, 애도해야 할 수많은 일들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2. 문화영년Anno Zero, 내일의 탄생

‘문화연구’를 전공했지만 문화는 여전히 내게 너무 어려운 주제이다. 흔히 문화culture를 농경cultivation과 함께 시작한 것으로 정의하지만, 나는 인류에게 있어 최초의 문화는 농경사회 이전, 원시시대의 ‘장례문화funeral culture’로부터 출발했다고 여기고 있다. 성경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했는데, 나에게 ‘말씀’이란 ‘로고스logos’ 이전에 ‘생각’과 동의어다. 흔히 생각이란 말을 한자어에서 온 것으로 혼동하기 쉽지만, 생각은 순우리말이다. 생각이란 말이 지닌 의미는 크게 네 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사람이 머리를 써서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 즉 사유思惟, 둘째, 어떤 사람이나 일 따위에 대한 기억記憶, 셋째, 어떤 일이나 사람, 사물에 대한 상상想像, 넷째, 어떻게 해야 하겠다고 마음먹는 일, 의지意志 등을 뜻한다. 사유, 기억, 상상, 의지는 생각의 의미이자 동시에 기능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조건으로서의 생각이란 언제부터 생겼을까? 현재의 유인원과 인간의 DNA를 거꾸로 추적해보면 인간과 유인원의 분리는 대략 660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 지구는 격심한 기후변화로 열대우림이 줄어들면서 초원화가 진행되었다. 숲이 줄어들어 유인원들의 생활 영역이 좁아지자 생존경쟁에 뒤지게 된 인류의 조상들은 먹잇감이 풍부하며, 포식자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열대우림에서 쫓겨나 초원에서 살아야만 했다. 오늘날의 하이에나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조상들은 초원의 쓰레기 청소부로 살아가면서 맹수들이 사냥하고 남은 부산물들을 먹기 시작(육식)했고, 인류의 두뇌가 커지기 시작했다.

포식자에게 쫓길 때 몸을 피할 수 있는 나무가 없었기 때문에 양손을 이용해 신체를 지킬 수 있는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직립보행을 해야만 했다. 직립보행의 결과로 인간의 목구멍은 원숭이보다 낮아졌고, 호흡 방식이 변했으며 인간의 후두 역시 자음과 모음을 확실하게 발음하기 좋도록 변화했다. 그러나 직립보행이 모두에게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직립보행을 위해 골반이 줄어들면서 신생아들은 두뇌가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여성들은 아기가 태어난 이후로도 한동안은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아기들을 건사하느라 먹이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로부터 남성과 여성의 분업이 생겨나게 되었고, 의사소통의 필요성 또한 커졌다.

고대 인류(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평균 수명은 11~12세에 불과했다고 하는데, 암컷들은 평균 8~9세에 첫째를 낳고, 3~4년 뒤에 둘째를 낳았다. 인간의 아기는 어머니 뱃속에서 평균 9개월 반을 머물다가 태어나고, 태어난 뒤에도 그나마 걸음마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려면 만 12개월 이상을 키워야 한다. 당시 여성들이 8~9세에 첫 임신을 해서 9~10세에 아이를 낳는다면, 아기의 부모는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미처 보지 못하고 죽는다는 결론이다.1) 인류는 어떻게 이처럼 혹독한 환경 속에서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아 현대에 이를 수 있었을까? 고고학자들은 이 시대의 인류가 ‘너’와 ‘나’의 아이를 구별하지 않고 똑같이 평등하게 양육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원시적이나마 사회공동체를 형성한 인류에게 공동체 구성원의 죽음이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인류는 태어나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과정을 지날 때마다 일정한 격식, 통과의례通過儀禮를 발전시켜 왔지만, 유일하게 주인공이 직접 참여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상喪과 제祭였다. 그런 의미에서 장례란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한 의례이자 동시에 산 자, 남은 자들을 달래고, 위로하기 위한 관습이었다. 인류에게 장례문화가 출현한 것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대체로 네안데르탈인들 시대에 이르러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중기 구석기 시대 이후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이 무렵에 이르러 복원 가능한 거의 완벽한 유골들이 갑자기 많아진 것도 그 증거 중 하나로 평가된다. 발굴된 유적들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들의 유적들 가운데에는 화장의 흔적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약초나 꽃가루에 덮인 것들도 있었다.2)

장례문화 이전까지 인류가 공동체 구성원이 숨지는 사건(죽음)에 대해 슬퍼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죽은 이의 시신을 처리하는 장례 절차가 단순히 공동체 주거 공간 주변의 위생적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오늘(현재)’이 아닌 ‘내일(죽음 이후의 세계)’을 상상하는 힘이 나타난 결과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죽음’을 단지 한 생명의 자연적인 소멸로 보지 않고, 죽음에서 의미를 찾기 위한 인류의 필사적인 시도로부터 영혼이 탄생하게 되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이나 누구에게나 다가올 내일의 세계에 대해 상상하는 일을 통해 인류는 비로소 누군가 타인에게 전하고 싶은 수많은 말씀logos들을 생각해내게 되었던 것이다. 인류가 죽음으로부터 생각을 탄생시키고, ‘기억의 한계’라는 태초의 제약을 극복하는 방편으로 문자를 탄생시키기까지는 대략 4만여 년(‘문자의 발명’에서 ‘인쇄혁명’까지는 대략 1700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3. 국가의 애도와 민주주의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유류품을 '국가'가 무성의하게 '택배'로 송달한 것이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되어 공분을 샀다. 이 시점에서 나는 두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하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였고, 다른 하나는 멜 깁슨 주연의 <위워솔저스(2002)>였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초반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배경으로 압도적인 스펙터클이 펼쳐진다. 전투가 끝난 뒤, 피로 물든 해변에 파도가 치면서 라이언 형제의 둘째가 해변에서 시체로 뒹구는 장면이 스쳐가며 영상에 담긴다. 다음 장면에서 미 육군성의 한 타이피스트가 전사통지서를 작성하다가 같은 주소로 2통의 전사 통지서가 발송된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이 사실은 즉각 군대행정체계를 관료적으로 거슬러 올라 군 지휘부까지 전달된다.

스쳐가기 쉽지만, 이 장면은 영화의 주제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얼핏 단순한 우연에 불과해 보이지만, 이 장면은 악을 쓰며 촌스럽게 애국을 외쳐대는 선전 영화들보다 미국이란 한 국가의 행정이 국민 하나하나를 얼마나 섬세하게 배려하고 있는지, 미국식 민주주의가 지닌 우수성을 선전하는 뛰어난 장면이다. 국지전도 아닌 세계대전을 치르는 나라에서 일개 병사(비록 형제의 잇따른 전사에 따른 결과라 하지만)와 남겨질 가족까지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는 정부가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것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영화 전편에 걸쳐 전하고자 하는 미국이란 국가의 이미지이며, 동시에 미국 정부와 국방성이 국민들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이다.

다른 한 편의 영화는 <위워솔져스>다. 미국이 참전했던 대개의 전쟁에서 미국은 '서전緖戰 패배의 전통'을 굳건하게 유지해온 나라이지만, 유독 베트남전에서는 첫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뒀다. 그 승리를 다루고 있는 영화가 바로 <위워솔져스>다. 전투가 시작되고 전사자가 속출하면서 본국의 군인 가족들이 거주하는 영내에 전사통지서가 전달되기 시작한다. 준비가 미처 되지 않았기에 택시 우편을 통해 전사통지서가 전달되는데, 택시 기사가 집 주소를 잘 알지 못해 이집 저집을 두드리고 다닌다. 전쟁터에 가족을 보낸 군인 가족에게 낯선 사람의 방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행정당국이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베트남전이 미국의 입장에선 계획된 전쟁이 아니라 원치 않았지만 끌려들어간 전쟁이란 메시지를 함께 전한다. 결국 부대 지휘관인 할 무어 중령의 부인과 몇몇 장교 부인들이 함께 행정당국이 제대로 된 방식으로 전사통지서를 전달하는 업무를 맡기 전까지 대신하여 임무를 수행한다. <라이언일병구하기>가 미국식 민주주의가 지닌 섬세한 행정의 일면을 보여준다면, <위워솔저스>는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의 시각과 더불어 무성의한 관료제의 작동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서로 대비된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전쟁이 없는, 그러나 전쟁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전시 못지않은 군 희생자를 양산해왔다.3) 지금 세월호 참사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예우, 진상 규명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지금까지 국가와 정부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양산한 희생자들에 대한 섬세한 행정(애도와 예우)은커녕 재발방지를 위한 진상 규명에 대해서조차 말하지 못하도록 막아왔다. 국민국가nation state 형성과정에서 폭력은 늘 존재했지만, 국가체제가 안정된 뒤에는 국가 만들기state building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에 대해 국가가 앞장서 애도와 기념을 통해 분열된 상처를 치유하고, 국가통합에 나서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분단이 지속되고, 분단을 핑계로 민주주의가 유보된 상황에서 국가를 통한 애도란 형식으로만 존재했거나 때로 정권 차원의 필요에 따라 어떤 이들은 영웅이 되고, 또 어떤 이들의 희생은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어 온 까닭에는 국가 주도의 애도와 기념이 국가주의에 의해 수렴되는 것을 경계한 나머지 국가가 애도를 편의적으로 독점하도록 방치해온 시민사회의 책임도 크다. 국가에 의한 가장 큰 희생자들 중 하나인 참전군인, 유가족들의 슬픔에 대해서도 좀 더 일찍부터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대변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면 지금보다는 그나마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국가공동체는 스스로의 존속을 위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때로 국민의 희생을 강요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가장 가혹한 희생을 요구할 때가 바로 '전쟁' 같은 비상상황일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 수많은 국가가 전쟁에서 패하여, 또는 전쟁에서 승리했더라도 그 후유증으로, 또는 전쟁을 수행하는 와중에 정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맞이했던 까닭은 국가와 국가의 지배계급이 국민의 희생을 특정계층에 과도하게 전가하거나 희생자들에 대해 부적절한 대응과 잘못된 자세로 임했던 탓인 경우가 많았다. 국가가 국민에게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과제는 때로 국가가 지닌 모든 능력을 섬세하게 동원해야만 하는 일이다. 세계사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뛰어난 헌사獻辭로 기록하고 있는 기원전 431년 고대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연설과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1863년) 모두 국가를 위해 희생된 전사자들의 추념식 자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국가의 애도란 것이 민주주의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필수적이며 중요한 과제인지 새삼 일깨워주는 증거라 할 것이다.

4. 애도의 부재와 정치의 부재 - 세월호 이전과 이후

서구에서 국가, 특히 공화국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보편적인 자연법 체계를 벗어나 국가 스스로 존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과제라는 '국가이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으로부터였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마키아벨리를 권모술수의 대가이자 부도덕한 정치이론가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마키아벨리가 상찬하는 “사자의 용기와 여우의 책략”을 갖춘 지도자의 전제는 기본적으로 사적 이익이 아닌 공익에 봉사하는 자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국가의 지도자라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국가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당신도 알 듯, 사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There is no such thing as society. 개인으로서의 남자, 여자, 그리고 가정이 있을 뿐이다. 어떤 정부도 개인을 통하는 방법 외엔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며, 개인들은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우리의 책임은 우리 자신을 먼저 돌보고, 그 다음에 이웃을 돌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너무나 많은 권리를 품고 사는데, 의무는 지지 않는다. 의무를 먼저 수행하지 않는 한, 권리 따위는 없다.”4)

사람들 중엔 대한민국 사회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것이라며, 그 까닭 중 하나로 대한민국 정부, 정권의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현재의 진행상황을 살펴보면 머지않은 미래에 후손들이 이 사건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바뀌었다고 생각할 만한 변화는 아직 오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여러 현상들은 정치나 이념이 과잉되었거나 분열이 강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며 도리어 국가가 마땅히 수행했어야 할 행정, 정당이 담당해야 할 정치적 공론의 장이 사라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보아야 옳다. 만약 우리가 세월호 사건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라볼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은 지금 우리가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기조 아래 십 수 년여의 세월을 보내며 새로운 국가의 탄생, 또는 새로운 국민의 탄생 과정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아이들이 수학여행 길에 탔던 대형여객선이 침몰하고,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사건도 충격이었지만, 그 뒤에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 희생자의 죽음에 대한 조롱과 유가족들에 대한 핍박과 조직적인 모욕은 갑작스럽게 출현한 사건이 아니라 세월호 사건 이후 인터넷을 떠돌던 우리의 슬픈 역사, 국가 위난 상황 때마다 국민을 버리고 먼저 달아나던 위정자들의 이야기들처럼 지금까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난민사회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살아온 결과이다. 공동체가 존속되기 위해 유지되어야만 하는 애도라는 ‘공통감각common sense’조차 사라진 사회, 애도가 불가능한 사회에서 통합을 위한 상호 이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지금, 애도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애도란 본래 산 자를 살아가게 하기 위해 죽은 자를 잘 떠나보내는 의식이다. 남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떠나보내고도 여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는 일이다. 그러나 애도가 불가능한 사회에서 애통한 죽음은 멈출 수도, 떠날 수도 없이 계속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그 사실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