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예술의 흐름과 전개는 공공성의 해석 여부와 관련이 깊다. 즉 ‘공공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거리예술은 짧은 역사 속에서 변화를 거치며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거리예술의 출발 자체가 ‘예술의 공공성’, ‘예술을 어떻게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까’란 질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리예술은 1970년대부터 프랑스에서 출현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오리악 축제, 살롱 축제 등은 유명한 거리예술 축제로, 프랑스는 40여 년간의 거리예술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70년대 출현, 80년대 제도화, 90년대 축제를 통한 유통, 연구, 제작, 2000년대 제작 공간과 제작공간의 네트워크 구성, 전문 교육과정 설립, 그리고 최근까지의 유럽 내의 유통 네트워크 구현이 역사의 골자이다. 거리예술의 기원은 흔히 그리스 비극과 중세 야외극까지 소급되곤 하지만, 40여 년의 계획과 실행이 최근의 거리예술 확산의 주요 동력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거리예술은 프랑스, 영국, 스페인, 일본, 호주 등 전 세계적으로 확산돼 사랑받고 있다.

우리의 거리예술은 횟수로는 비슷하지만, 좀 더 단절과 변화가 크다. 70년대 ‘마당극 운동’으로 거리예술이 출현했지만, 정치적 이슈가 민주화 이후 대중 사이에서 힘을 잃자 80년대 이후 급감하기 시작한다. 마당극의 빈자리를 메운 것은 90년대 이후 실시된 지자체에서 열린 축제들로, 우리의 거리예술은 주로 유럽의 거리예술과 국내의 새로운 거리예술 창작품이 선보이는 축제를 통해 보급되고 확산된다. 2000년대 이후 최근의 국내의 거리예술은 제작소의 설립, 거리예술 창작품의 예술성 향상을 위한 교육과 여러 시도들, 거리예술 네트워크 구축 등의 변화가 숨 가쁘게 동시에 진행되며 유럽의 거리예술의 지형과 비슷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변화는 보다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외에도 최근에는 장소특정적 공연에서 펼쳐지는 야외 공연의 수용, ‘촛불문화제’ 이후에 정치적 이슈가 힘을 얻는 상황에서 여러 시위의 현장에서 ‘민족극’ 계열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거리예술이 조금씩 등장하기도 한다. 우리의 거리예술은 2011년 춘천국제마임페스티벌의 축제사무국 조직 문제, 작년의 하이서울페스티벌의 ‘싸이 사건’, 올해 ‘세월호 사고’ 이후의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전면 취소, 해외 공연에 대한 의존 비판과 더불어 과천축제를 둘러싼 논란 등, 한편으론 ‘여전히 축제가 지역과 지역민의 삶 속에 뿌리박지 못하고 있다’는 거리예술의 미성숙함에 대한 지적이 도드라지는 동시에, 국제적인 네트워크와 축제를 넘어서는 거리예술의 확장에 대한 요구 등 동시대를 반영하는 거리예술의 미래를 위한 변화를 함께 수용하기를 과제로 갖고 있다.

거리예술은 전 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가 가속화될수록 심화되는 경쟁 및 인간성 파괴의 와중에, 필연적으로 부상한 개인의 ‘삶다운 삶’을 위한 장소 및 도시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외로움, 고통, 억압 등의 고민들과 직접적으로 맞닿은 점이 있다. 거리예술의 공공성은 이러한 현실과 밀착된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거리예술은 언제나 공공성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며, 공공적 가치의 실험을 ‘문화민주주의’, ‘참여’, ‘일상의 침투’ 등으로 다양하게 지속하며 전개해 왔다.

‘문화민주주의’를 토대로 하는 공통의 경험

프랑스에서 처음 출현한 거리예술이 ‘비非관객의 존재’를 주장하며 이에 대한 대안을 거리예술의 존재 조건으로 삼은 것처럼, 거리예술에서 문화예술에 소외된 이들에게 골고루 문화예술의 향유를 공유하려는 것은 무척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도 각 지역에 문화예술재단이 설립되며, 서울 편중의 문화 예술 향유 기회를 고르게 분배하려는 목적으로 지역에서 축제가 활성화 되게 된다. 우리의 대표적인 거리예술 축제인 춘천국제마임축제(1989년 시작), 수원화성국제연극제(1996년 시작), 과천축제(1997년 시작), 안산국제거리극축제(2005년 시작), 고양호수예술축제(2008년 시작) 등은 이러한 배경으로 시작돼 ‘문화민주주의’를 토대로 삼고 있다. 가난한 이들, 어린이들, 노인들, 이민자, 신체적으로 불편한 이들 등의 사회적 약자들에게 ‘극장 방문’은 여전히 힘든 일이며, 축제는 공연 예술 향유의 불균등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기회가 된다.

최근에는 문화 예술 향유 기회의 불균등을 ‘서울과 서울 외의 지역’이란 단순한 대립적 구도로 보기 힘들며, 지역의 공연예술축제가 ‘지역 정체성 확립에 도움을 주며 지역 홍보의 방법으로 긍정적 효과’를 가진 것으로 여겨져 많은 축제가 생겨나며, ‘문화민주주의’라는 거리예술의 공공적 가치가 유효한가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축제가 거리예술의 공공적 가치 구현에 적합한 장인가라는 문제제기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문화민주주의’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축제는 거리예술의 독특한 장르적 특성을 명확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거리예술 축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대규모의 야외 공연’은 극장을 찾아 온 특정한 관객이 아닌, 무작위의 시민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 예술의 특성이 빚어낸 결과이다. 몇 백, 몇 천 명이 아닌, 한 회에 몇 만, 몇 백만의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거리예술은 대형 크레인, 대형 인형, 불꽃, 도시의 빌딩 벽, 줄타기 등을 이용해 공중 공간을 사용하며 시각선을 확보한다. 배나 수상스키 도구 등을 사용해 물 위에서, 혹은 잔디 광장, 언덕 등의 자연 경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무작위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펼쳐지는 거리예술 특유의 장르적 조건은 화려한 경관을 연출하기 위한 여러 가지 뛰어난 테크닉과 도구, 기계들을 거리예술 안으로 끌어들이며 다른 공연예술과 구별되는 거리예술만의 차별성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거리예술의 배우들은 산만한 야외의 공간에서 존재감을 갖기 위해 마임, 아크로바틱, 연희 등의 ‘신체극’ 계열의 신체적 테크닉이 도드라지는 경우가 대다수며, 마찬가지의 이유로 미술적으로도 대담하며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강렬한 시도들이 많다. 또한 대사 중심이 아니기 때문에, 음악은 거리예술의 필수적인 요소다.

거리예술의 짧은 역사는 거리예술 장르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극장의 공연 예술에 비해 예술적인 완성도가 뒤떨어진다는 식의 견해이다. 하지만 극장과는 전혀 다른 조건 속에서 스펙터클을 만들어내야 하는 조건 상 예술적 표현을 위한 여러 가지 기술적 뒷받침이 필수적인 거리예술은 오히려 상당히 전문적이며 특수한 장르이다. 저변이 아직 좁은 새로운 예술 장르라 할 수 있다.

‘참여’를 통한 축제의 확장

해마다 공연예술축제들은 축제 기간 중의 방문객 수를 몇 십만에서 백만 혹은 그 이상으로 추산하곤 한다. 물론 중복 계산된 경우를 무시할 수 없으므로 정확하게 여길 수는 없지만, 확실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연 예술 관람의 빈도수가 늘어나며, 축제를 즐기는 수요가 많아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예술을 접하는 기회가 늘어날수록 관객은 단순한 비전문가에서 높은 안목과 뛰어난 기술을 가진 준전문가로 바뀌는 것이 용이해진다. 예술가가 던지는 메시지의 수용자에서 관객은 의미의 생산자이자 주체로 자리를 바꾸는 것이다.

거리예술은 유독 관객의 참여가 용이하며, 관객의 참여를 통해 ‘쌍방향의 소통’이라는 거리예술의 공공적 가치를 실현한다. 예술가와 관객이 구분이 되지 않는 ‘참여’를 통해 관객은 일방적인 수신자에서 메시지의 송신자 역할을 함께할 수 있다. 관객의 이러한 특별한 경험은 ‘예술을 어떻게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까’란 거리예술의 공공적 가치에 대한 고민과 직결된다. ‘문화민주주의’가 예술의 공유에 있어 기회의 균등에 집중한다면, ‘참여’에 의한 쌍방향의 소통은 예술의 공유에 있어 경험적 가치와 연결된다. ‘참여’에 의한 공공성의 실현은 ‘문화민주주의’에 의한 것보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벗어나는 것들이 많다. 따라서 축제의 초기보다는 축제가 지역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이후에 보다 본격적으로 시도되곤 한다.

관객 참여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시민들이 배우로 참여, 일정 기간의 리허설을 거친 후 전문 배우들과 함께 퍼포먼스를 실현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거리예술 축제에서 이 같은 형태를 찾아 볼 수 있으며, 최근에는 시민 참여의 범위가 점점 확대되며 대규모의 스펙터클을 만드는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관객 참여가 실제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지만, 작품의 창작에 깊숙이 관여하며 관객 참여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 ‘관객의 삶’ 자체가 작품 창작의 실제적인 재료가 되는 것으로, 주로 지역민의 삶 자체가 예술적 가공을 최소화한 채 전시물, 서사 등의 창작물로 드러나게 된다. 이외 아마추어 활동의 발표의 자리를 통해 관객 참여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관객이 의미의 주체로서 자리하는 현상은 비단 거리예술에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다. 극장에서도 이와 연관된 흥미로운 현상이 속속 등장하는데, 거리예술의 관객 참여는 쌍방형 소통이라는 공공적 가치의 실현과 연관되며 축제가 지역과 지역민의 삶 속에 안착하는 것을 돕는다. 축제를 통한 공동체 의식이 ‘문화민주주의’의 실현뿐 아니라, ‘참여’를 통한 경험적 가치 공유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거리예술이 축제가 진행되는 단 며칠간이 아닌, 축제를 넘어 확장되기 위한 가능성이 관객 참여를 통한 공공적 가치의 실현으로 타진된다. 흔히 축제의 관객 참여는 관객의 아마추어 활동의 발표 기회로만 이해되기도 하는데, 이는 참여를 통한 공공적 가치의 실현이란 측면에 대해 좁게 이해하는 것이다.

일상의 침투 - 공공 공간으로

프랑스의 거리예술은 축제를 통한 유통, 제작, 교육 등의 거리예술의 전문화 시대 이후에 제작소의 건립, 거리예술 지구 등의 네트워크 확립으로 변화해갔다. 우리의 거리예술도 비슷한 방향으로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주로 서울에서 이뤄지는 거리예술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도로는 도시의 폐건물에 자리한 제작소 건립 추진, 낙후된 지역을 중심으로 거리예술 지구 확립, 가장 최근의 서울의 주요 공원에서 치러지는 ‘거리예술 시즌제’의 도입 등이 있다. 하이서울페스티벌도 작년부터 거리예술 중심으로 치러지며, 특정한 건물이나 거리 등의 도시 공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작품들이 등장해 기존의 거리예술 축제와는 다른 변화를 수용하는 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공연예술센터에서 열리기 시작한 ‘마로니에 여름축제’도 대학로를 거점으로 운영되며 비슷한 방향을 보여준다.

거리예술에 나타난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은 도시의 축제가 비일상의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과는 달리, 도시의 일상에 스며들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거리나 건물, 공원 등의 공공 공간에서 시민들과 일상을 교류하며 거리예술의 공공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특정한 지역에 거주하며 지속적으로 작업을 펼치는 경우도 있다. 신자유주의가 가속화될수록, 점점 복잡해지는 갈등 속에서 그것은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건드릴 때도 있고, 특정한 계층 등의 소수만이 공유하는 작은 공동체를 만들며 새로운 방향으로 공공적 가치를 실현한다. 이때의 거리예술의 관객은 공원 등의 일상의 공공 공간에 우연적이며 무작위로 모인 시민들부터 이민자, 노동자, 어린이 등의 특정하며 유대감이 강한 특정한 소수의 선별된 관객이라는 ‘극과 극의 관객’이 함께 존재하게 된다. 축제가 막대한 예산과 대규모의 인력이 필요한 반면에, 거리예술의 새로운 변화들은 ‘축제의 큰 덩치’를 보완하려는 측면이 강하다.

거리예술은 짧은 역사 속에서 공공적 가치의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역동적인 흐름과 전개를 보여왔다. 거리예술은 공공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문화민주주의’의 실현, 관객 참여, 일상의 침투 등 다양한 방향의 노력을 보여준다. 아마 거리예술의 공공성은 도시 속 개인의 삶에 대한 구체적이며 열정적인 관심 속에 태어나게 된 거리예술의 출발에서 비롯된 특성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