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시대를 배회하는 시장미술의 예술학

『플랫폼』에서 원고 청탁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직감했다. 그들이 지금 분노하거나 역겨워하고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세계화나 예술 따위가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물론 나는 그들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신자유주의 세계의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또한 잊지 않고 있다. 뉴욕이나 동경이나 런던이나 파리처럼 서울도, 대한민국도, 신자유주의가 작동하는 폭력적인 세계화 시스템에서 이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잖은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세계화라는 시스템을 통해 국가 간의 계층구조hierarchy를 강력하게 수직화하면서 동시에 하층부를 사막화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우리 사회로 은근슬쩍 파고든 세계화의 이슈는 그러나 지식인들에게는 흥분과 환희와 경이로움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세계화Globalization,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 글로벌리즘globalism(세계통합주의), 그리고 또 무엇이라고 불렀을까? ‘인터내셔널-’이니 ‘글로벌-’이니 하는 것들이 접두사로 붙어서 황홀하게 고착된 외래어의 유행은 그때부터 프로젝트아트나 예술기획 테마 곳곳에 번졌으니까. 1987년 6․10항쟁을 통해 ‘87체제’로 충돌했던 자유화와 민주화의 창조적 열망조차 글로벌리즘 아래에선 꼼짝을 못했다. 사회구성체 논쟁이 1990년을 넘기며 급격하게 사그라졌던 것을 생각해 보라! 혁명의 패배는 아방가르드 민중미학의 패배이기도 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세계는 모든 것의 최우선 철학을 ‘자본의 경제학’에 둔다는 점에서 예술도 비켜갈 수 없게 만들었다. 다국적 자본주의나 탈 조직 자본주의가 지배해온 신자유주의 시대의 미술은 그래서 모더니즘이 거부해온 객관성에는 관심도 없고, 권력에 대한 저항 따위에도 근거가 없다고 내몰아쳤다. 그들에게 포스트모던 예술은 모더니즘의 변종일 뿐이었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알렉스 캘리니코스Alex Callinicos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 : 마르크스 주의의 비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뿌리가 서구 세계 전역에서 1968의 여파로 나타난 정치적 환멸과,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주의가 상층 화이트칼라에게 제공한 ‘과잉소비주의’ 라이프 스타일 기회가 맞물린 데 있다고 분석했는데 그것은 우리의 1987년과 거의 동일하게 비쳐진다.

1990년을 전후로 우리 미술계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뜨거웠으나 그것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간파하려는 예술의 장 내부의 진동이나 주도력이 아니라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의 미학적 헤게모니를 차지하려는 낮은 수준의 논쟁에 불과했다. 1990년대의 담론이 표류하고 있을 때 신자유주의는 모더니즘이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따위를 빠르게 무력화 삼키면서 글로벌 시장미술의 세계를 한국미술과 접속시켰다. 1993년의 <휘트니비엔날레 서울>, 1995년의 <광주비엔날레> 그리고 옥션의 등장과 대형 화랑들이 탄생하면서 미술은 자본의 가치로 미학적 가치를 가늠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모더니즘이든 포스트모더니즘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시장미술로서 가치가 있다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에게는 그것이 좋은 자본의 예술경제학으로 비쳐질 게 분명해진 것이다.

2. 신자유주의 시대의 부정과 독단의 예술학

신자유주의 시대의 미술이 자본에 종속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알렉스가 지적했던 68세대의 정치적 환멸과 좌절로 다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서구의 68세대가 정치적 환멸에 빠져 혁명을 포기하고 전문 관리직인 ‘신중간계급’이 되어서 체제내화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슨 대단한 사상적 문화적 현상이라기보다는 68세대의 정치적 좌절과 사회적 지위 상승의 징후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렇다. 1990년이라는 시대령을 건너오면서 우리 또한 그와 유사한 상황에 직면했고 사실상 거의 모든 87세대들이 1990년대에 화이트칼라가 되었던 것을 비판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1994년 봄 <민중미술, 15년>전과 더불어 민중미술도 15년의 역사를 끝내지 않았던가!

이러쿵저러쿵 따져 물을지라도,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았던 순수미술과 반모더니즘의 저항을 외쳤던 참여미술의 대립구도와 미학적 논쟁도 그와 더불어 끝났다고 보아야 할지 모른다. 1980년대 양 진영의 치열한 비평적 대립과 대항 주체들 간의 창작 열기는 그것이 모더니즘이든 반모더니즘이든 한국미술의 풍요를 낳았음에 분명했을 터. 역설적으로 1990년대는 그런 두 진영으로부터 완전한 탈주를 감행했던 아나키스트적인 신세대들에 의해 모반謀反되었고 그것은 또한 1990년대의 풍요를 이끌기도 했다. 신세대 미술은 이쪽과 저쪽 둘 다를 부정했으나 둘 다의 정신이 흘렀고, 게다가 서구미술이 리얼타임으로 도입되었으니 일순간 한국미술은 서구와 동시대의 시간차를 형성하는 듯도 했다. 아마도 바로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동시에 밀려든 것이.

신자유주의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되는 우르과이라운드 최종의정서 채택과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이 1994년에 있었고, 그리고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자, 그렇다면 2014년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결과에 직면하고 있을까? 나는 세 개의 사건을 통해 현재의 우리 사회 신자유주의 미술을 엿볼 수 있다고 본다. 첫째는 홍성담과 시각매체연구회의 <세월오월> 사건이다.1) 둘째는 2014년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선정논란이고, 셋째는 단색조 회화의 이상 열풍에 휩싸인 화랑가다.

<세월오월>과 신자유주의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현 윤장현 광주시장은 1980년대 광주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있었다. 올해 6월 지방 선거에서 외쳤던 그의 호소는 “5․18 운동 당시 부상자들을 몸소 치료하고, 이리역 참사 당시 상관의 명을 거역하고 이리역으로 달려갔던 윤장현, 유명 안과의사로 번 거의 모든 돈을 시민운동 동지들을 위해 쓴 나머지 남은 돈이 별로 없는 윤장현, YMCA 전국 대표를 하면서 평생을 시민운동에 몰입했던 윤장현…”이었다.2) 시장에 당선된 그는 그러나 <세월오월>의 전시를 거부했다. 심지어 광주시는 책임큐레이터 윤범모 가천대 교수를 압박해서 작품의 일부를 수차례에 걸쳐 수정 요구했고 결국 수정된 작품조차 전시장에 걸지 못하게 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윤 교수에 따르면 시 관계자들이 “광주시가 내년 예산으로 4조 원의 국비를 요청해 뒀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 10%가 삭감되면 4000억 원인데 이 돈이면 광주 전체 기초생활수급자 1년 지원금이다. 그 그림 때문에 못사는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된다.”고 했다한다.3) 취임 한 달이 채 안 된 사이에 벌어진 이 사태의 본질은 무엇일까?

예술가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 광주정신의 실종? 민주인권평화 문화도시 광주의 명예훼손?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의 파행? 문화민주주의의 후퇴? 광주시의 국제적 망신? 물론 그 모든 것들이 이 사태와 스크럼을 짜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핵심은 한 예술가의 정치적 환멸에 있을지 모른다. 혁명을 포기하고 행정가입네 하며 들어앉은 관리직 시장의 낯선 태도에 대한 좌절도 있을 것이다. 정치적 욕망을 빠르게 체제내화한 불임의 저항성과 예산편성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신을 밀어준 시민세력들에 대한 불신도 한 몫 할 테고.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사회적 지위 상승의 욕망을 성취한 뒤에는 그를 따르는 모든 세력을 불신하고 배반한다!

지난 해 연말, 부산비엔날레는 2014년 전시감독 선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오광수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이 포함된 9인의 선정위원회는 득표자 1위인 김성연 전 대안공간 반디 대표를 ‘부산 지방작가’라는 이유로 2위 득표자인 프랑스 기획자 올리비에 케플렝과의 ‘공동감독제’를 강권했다. 그것은 분명 사리에 맞지 않을 뿐더러 선정위원회의 결과를 불법적으로 무시하는 권력남용이었다. 이 독단의 정치를 휘두른 사람은 오광수 위원장이었고 그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이 일을 밀어붙였다. 이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남용해서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개발도상국을 요리하는데, 개발도상국의 리더들은 그것도 모르고 마치 사마리아인들이 그들을 세계적 선진질서 속에 자신들을 편입시키는 줄 알고 좋아서 속아 넘어간다는 것이다. 오광수 위원장은 그 자신이 사마리아인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 사마리아인가? 그가 보기에는 이미 해외에서 공부하고 왔을지라도 지방에서 대안 공간 따위나 운영하고 작업하는 작가는 그저 별 볼일 없는 큐레이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깨닫건대, 우리 안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머리는 철학이나 사회이론, 역사 서술을 종합하는 지적 전통이 공허하게 비어 있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인식해야만 한다.

한겨레 노형석 기자는 1970년대 단색조 회화의 ‘이상 열풍’에 휩싸인 화랑가를 빗대서 “한국 미술시장에 40여 년 전의 유령이 떠돈다”고 했다.4) 이것은 또 무슨 해괴망측駭怪罔測한 일일까? 국내의 한 메이저 화랑 관계자는 “국외 컬렉터들도 관심이 많아, 올 하반기부터 시장 안팎에 회오리바람이 불 것”이라고 장담했다. 7월,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연 원로작가 정상화(82) 작가의 작품은 솔드아웃(매진) 되었고, 하종현 작가의 작품은 최근 서너 달 만에 3배 이상 올랐으며, 박경미 피케이엠 대표는 윤형근 작가의 유족과 전속계약을 맺어 작품을 매집했다. 단색조 회화에 대한 한국 미술계 내의 담론조차 허술한 상황에서 이러한 기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미술평론가 정준모는 “단적으로 더 이상 팔 것이 없어 무언가를 찾다가 나타난 현상”이라고 일축하고 있으나, 분명한 것은 단색조 회화들이 비싼 값에 팔려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전략은 흔히 주식투자에서 볼 수 있듯이 살 때와 팔 때를 적절히 이용해서 결국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외국 투자자들에게 농락당하는 것이 어디 주식세계일 뿐일까? 결과적으로 한국미술사의 사적 전통과 흐름을 풍부하게 컬렉션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 훗날 아주 톡톡히 비싼 값에 그것들을 사들여야 할지 모른다. 그것이 폭압적 독재정권 하에서 거세된 백색미학이라고 비판받을지라도 우리 미술의 실체인 이상.

3.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미술계와 공공적 예술의 확장

한심한 작태가 벌어지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도 우리 미술은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민중미술의 미학이 역사적 종지부를 찍은 뒤에도 포스트민중미술의 논의로 이어져서 1990년대 이후의 정치미술을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대안 공간 운동에 따른 지역 미술운동/문화운동의 복합성이 더욱 심화 발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21세기에 접어들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쟁은 우리 내부의 다문화주의, 다국적 노마디즘, 탈근대 디아스포라, 탈경계 지역주의로 시선을 돌리면서 보다 ‘한국적인’ 주제로 넓어졌다. 그리고 2004년을 전후해 공공미술로 불을 지폈던 새로운 공동체예술론의 시발점은 예술의 주관성과 비등하는 예술의 객관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을 정도로 깊어졌다. 근대적 예술가 주체론을 재사유하는 곳에서 커뮤니티아트(공동체예술/동네미술/공공미술/공동체 기반 예술/파견미술)가 미술계 전반으로 담론이 번지고 있는 것이다.

페스티벌 봄의 경우처럼 예술의 전 장르가 한데로 섞여서 전위를 터트리기도 하고, 영화적 속성이 미디어와 점핑해서 영화미술의 개념을 탄생시키기도 하고,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의 미디어 참여가 일상화되고 있으며, 스마트폰을 활용한 SNS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실시간으로 예술현장을 리뷰하기도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공공적 예술의 장에서는 나쁜 사마리아인들과의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예술가들을 다시 등장시키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주춤했던 저항의 기제는 우루과이라운드의 쌀 시장 완전개방이 시작되는 올해부터 더 본격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대추리 예술행동과 용산참사, 한진중공업 싸움, 제주 강정 예술행동, 부천 콜트콜텍 스쾃, 밀양과 세월호. 어쩌면 이것은 1980년대와는 아주 다른 공공적 예술행동의 확장선일지 모른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터진 뒤 우리 사회는 마치 잃어버렸던 대항주체들의 귀환을 보여주듯 새로운 주체들의 등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거대 영웅서사로 기록될 민주투사를 열망하지 않으며, 위대한 광장의 상징으로 우뚝 서는 예술론을 표방하지도 않는다. 예술가 주체를 내려놓은 곳에서 서로가 함께 어울려 조직해 내는 청년예술가들의 태도에는 이전의 선배 예술가들이 갖지 못했던 집단적이되 개별적인 주체들의 자유로운 예술상상이 농후하다. 그들도 여전히 예술의 장 내부를 살피면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예술계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를 묻지만, 이합집산의 예술적 파장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공공적 예술을 실험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대응하기 위한 전략은 본래 우리가 누구였는지를 다시 사유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 미술은 서구 근대의 그것처럼 예술가 주체론을 부르짖지 않았을 뿐더러 민중 모두가 공유하는 공공적 예술론을 표방했다. 나는 그러한 공공적 예술론의 미학과 서구 근대의 미학이 수평적으로 다시 충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니라 동학과 서학이, 서화와 미술이, 모두 함께 나누어 누리는 민화와 소유의 미술이 이데올로기의 옷을 벗고 한 판 씨름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식민화 따위, 독재 따위, 국가 이데올로기 따위, 서구 미술사 따위를 벗고 오롯이 민중의 미술로 합일될 수 있는 미술을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언제고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이간질하면서 우리를 농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