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마하트마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여행할 때 일어난 일이다. 역무원이 일등칸을 예약하고 기차에 오른 간디를 화물칸으로 되돌려보내려 했다.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식민지 사람은 일등칸에 탈 수 없었다. 변호사였던 간디는 이를 수용할 수 없었다. 역무원을 호통하며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역무원 또한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간디의 가방을 내던지며 기차에서 내리라고 소리쳤다. ‘내가 이런 수모와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가 식민치하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당당히 한 시민으로서 대접을 받으려면 우선 나라가 힘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간디는 이 사건을 ‘분노의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에 적고 있다.

간디는 그 자리에서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모욕적인 언행에도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대신 분노를 자신의 가치관을 승화하는 에너지로 삼았다. 인도로 돌아온 간디는 ‘분노의 사건’을 가슴에 품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결국 인도를 독립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간디는 말한다. “혹독한 체험을 통해서 나는 분노를 모아 두는 한 가지 숭고한 교훈을 터득했다. 마치 보존된 열이 에너지를 내놓듯이 우리의 분노도 다스려지기만 한다면 세계를 움직일 힘을 쏟아낼 수 있다는 교훈이다.”

예술이 말하는, 기억된 분노

사람은 자기의 욕구를 부정당하거나 저지당할 때, 그 저항의 결과로 감정이 생긴다. 그 감정이 오랜 시간 내면에 쌓이면 ‘증오’가, 순간적으로 밖으로 드러나면 ‘분노’가 된다. 자기절제를 넘어서는 폭발적 감정이 신체적으로 표출되는 것. 그래서 우리는 분노하는 사람에게 화, 노여움, 울분, 진노, 격분, 노발대발 같은 단어의 옷을 입힌다. 생각해 보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분노하는 사람은 대개 주인공이 아니다. 그들은 복수를 다짐하며 입술을 깨물지만 결국 뒷목을 잡고 쓰러지거나 실어증에 걸린다. 그러니 어서 분노를 삭이라거나 가라앉히라는 조언은 응당 타당해 보인다.

분노를 어떻게 이해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타인에 의해 강제로 ‘억압된 분노’는 부정적이고 소모적으로 양산된다. 반대로 자신에 의해 다스려진 ‘기억된 분노’는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발휘된다. 미술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러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우리가 잘 아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라는 작품이다.

1936년에서 1939년까지 일어난 스페인내전은 스페인 전 지역을 황폐하게 하였다. 작고 평화로운 마을 게르니카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나치는 이 지역에 폭격 실험을 자행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인구 7,000여 명 가운데 1,600여 명이 죽었고, 가옥 80퍼센트 이상이 폭격 당했다. 전쟁에서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한꺼번에 1,600명 이상 희생되는 어처구니없는 광경이 세상을 분노케 했다. 물론 피카소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붓을 잡은 사람은 붓으로 세상에 참여해야 한다’고 믿었던 피카소는 35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게르니카> 작업에 매달렸다. 불이 난 집, 죽은 아이의 시체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 멍한 황소의 머리, 부러진 칼을 쥐고 쓰러진 병사, 광기에 울부짖는 말, 상처 입은 말, 램프를 들고 있는 여인, 여인들의 절규, 분해된 시신 등 전쟁터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그의 그림 안에 뒤엉켜 있다. 1937년 6월 3일 피카소는 60여 점의 크로키와 데생을 그렸고, 이것을 폭 3.49미터, 길이 7.75미터에 달하는 캔버스에 조합하여 하나의 작품, <게르니카>로 완성하였다. 그리고 6월 4일 엘뤼아르는 ‘게르니카의 승리’라는 시를 써 함께 만국박람회의 스페인 관에 전시했다. 피카소와 엘뤼아르는 게르니카의 참상에 대해 시와 그림으로 항거했다. 이들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폭력과 전쟁, 죽음과 암흑을 또렷하게 기억하기 위한 분노일 것이다.

오두막집의 좋은 사람들/ 광산에 뜰에/ 불에 좋은 얼굴들 추위에 좋은 얼굴들/ 거부에 밤에 욕설에 구타에/ 모든 것에 좋은 얼굴들/ 이제 당신을 응시하는 허공/ 당신의 죽음은 교훈이 될 것을/ 죽음에 뒤집어진 가슴/ 그들은 당신에게 빵을/ 하늘을 땅을 물을 수면을/ 그리고 비참함을/ 생명으로 보상케 하였거늘/ 그들은 옳은 지성을 원한다고 했었고/ 그들은 강자를 배급했고 광인을 판단했고/ 동냥을 하였고 한 푼을 둘로 나누었으며/ 그들은 시체에 인사를 하였고/ 그들은 정중함에 시달려 왔다/ 그들은 고집부리고/ 그들은 과장하며/ 그들은 우리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여인들 어린아이들의 맑은 눈빛 속에는/ 봄철 초록빛 잎새와 맑은 우유와/ 지속의 같은 보석을 가지고 있고/ 여인들 어린아이들의 눈빛 속에는/ 같은 보석을 가지고 있고/ 남자들은 있는 힘을 다해 이를 보호하고/ 여인들 어린아이들의 눈빛 속에는/ 같은 붉은 장미를 가지고 있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피를 보이네/ 살고 죽기 위한 공포와 용기/ 그렇게 어렵고 그렇게 쉽기도 한 죽음/ 보석을 노래하게 한 사람들/ 보석을 망쳐버린 사람들/ 절망 때문에 희망의 삼켜버릴 듯한/ 불을 피게 한 사람들/ 미래의 마지막 꽃봉오리를 피우자/ 적군의 죽음/ 땅과 흉악함은/ 우리네 밤과 같은 단일색을 갖거늘/ 우리의 옮음이 판명될 것이다

엘뤼아르 ‘게르니카의 승리’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피카소라는 이름은 누구나 알고 있다. 20세기 모든 작가가 그의 이름 뒤로 나열될 수밖에 없는 것은 비단 그의 천부적 재능, 다채로운 작품 세계와 무한한 실험정신뿐 아니라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하고 이를 작가로서 작품으로 남긴 까닭이다. 그는 <게르니카>에 이어 1951년 <한국의 학살Massacre in Korea>이라는 작품을 통해 반전 메시지를 담아냈다. 이는 당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한국전쟁의 보도를 접하고 그린 작품이다. 피카소는 전쟁과 평화, 사랑의 화두를 끊임없이 캔버스에 옮기며 분노를 예술적으로 승화한 예술가였다.

예술이 기억하는, 거룩한 분노

우리에게도 이러한 예술가가 존재한다. 피카소에 버금가는 작가로서 이쾌대를 손에 꼽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통해 조국인 스페인의 고통을 표출했다면, 이쾌대는 <군상> 시리즈를 통해 해방과 동시에 정치적 대립으로 다시 분열된 나라에서 살아야 했던 민중의 삶과 고통을 표현했다.

이쾌대는 분노했다. 자유로운 영혼의 화가였던 그는 예술과 이념, 남과 북이라는 양자택일의 상황을 벗어나려 평생 몸부림쳤지만, 결국 이분법에 매몰된 사회에서 인위적으로 그 위대한 이름이 지워졌고 곧 사람들에게서 철저히 잊혔다. 하지만 그의 예술가적 진정성만은 그가 그린 화폭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군상> 연작은 모두 네 개의 작품이다. 정확한 데생으로 표현한 인물들이 서로 뒤엉켜 있다. 그들은 연극 무대 위 배우처럼 충실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몸짓 하나하나에서 장대한 서사가 읽힌다. <군상 1 - 해방고지>는 왼쪽에서 오른쪽을 향해 다급히 뛰어가는 두 명의 여성과 그녀들을 에워싸고 있는 군중으로 이뤄져 있다. 두 여성이 군중 속으로 달려가고 있지만, 그녀들을 응시하는 이는 별로 없다. 모두 자신의 처지와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땅바닥에 널브러진 남자와 그를 붙들고 소리 지르는 또 다른 남자, 오열하는 여자, 상반신을 내놓고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부인, 뒤를 돌아보며 무엇인가 대결하려는 자세의 남자 등. 그림이 그려진 연대가 1948년이고 제목에서 ‘해방고지’라 밝히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두 여성이 많은 이들에게 다급히 전하려는 말은 해방되었다는 기쁜 소식이었을 터. 하지만 주변 사람의 반응은 그리 반갑게 그려지지 않는다. 이는 당시 민중이 느끼는 해방에 대한 이중적 감정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민중의 편에 선 작가의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작가는 일제강점기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민중의 닫힌 감정이 해방이라는 소식으로 쉽게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민중의 분노가 해방이라는 단어 하나에 사라질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혹은 해방이 가져올 또 다른 불안을 이미 예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기로에서 그들의 편이 되어줄 진정한 지도자가 없다고 생각한 민중이 해방이라는 소식조차 불안의 기제로 여긴 슬픔의 아이러니를 표현한 건지도. 이러한 양가의 감정은 연작으로 이어진다.

<군상 2>에서는 광활한 벌판에 두 여인이 팔을 벌리며 뛰어오고 있다. 하지만 여러 군중의 머리 위에는 이미 먹구름이 뒤덮여 있다. <군상 1, 2>에서 긴박함이 느껴진다면 <군상 3>은 상대적으로 평화롭다. 화면 속 20여 명의 사람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야기를 나누거나 한적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군상 4>로 가면 또 다시 긴장이 되살아난다. 서른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싸우고 물어뜯고, 갈등하면서 한편으로는 화면 밖을 응시하며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있다.

군상이 만들어내는 혼란과 긴장 속에서 우리는 하염없이 헤매고 너무 쉽게 변모하는 스스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식민지 시절, 6ㆍ25전쟁, 군부독재와 분단의 현실. 이쾌대는 분노를 기억하라, 말한다.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하고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와 시대를. 그가 그린 절망과 아비규환의 상황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술이 우리에게 거룩한 분노를 기억하라 한다.

피카소는 예술가의 이름으로 분노했다. 내면에 들끓었던 분노를 시대의 역작으로 승화했다. 이쾌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분노는 인간다움의 증명이었다. 인간으로서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분노는 단순한 극복 대상이 아니다. 기억을 반추하고 삶을 환기시키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 분노가 절대적으로 파괴적이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들끓는 감정과 흥분이 격돌하는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분노를 쉽게 잊거나 소외시킨다. 하지만 삶의 반성을 촉구할 때, 분노는 비로소 거룩해진다. 우리는 피카소와 이쾌대를 통해 분노의 미학적 승화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기억이 과거를 재현시키고 현재적 의미를 재구성하듯, 기억된 분노는 과거 어느 한 세대나 특정한 시대를 뛰어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편적 삶의 사실성을 인식케 한다. 분노의 부유물이 가라앉고 순수한 열망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 우리는 새로운 인식의 눈으로 세상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거룩히 분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