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ing dead, working dead 신자유주의와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의 발생

브래드 피트 감독의 포스트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 <월드워Z>(2013)를 보고 영화의 원작소설인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 Z』(2006; 한국어판 2008)를 읽게 되면, 이제 좀비는 가히 전 지구적인 괴물이 되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국경의 튼튼한 철조망과 철옹성의 높은 담벼락을 기어이 뛰어넘으며,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끊임없이 밀려 내려올 뿐만 아니라, 그 속도 또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으니 말이다. 이런 좀비에게는 미국 TV시리즈물 제목인 <워킹 데드>보다도 ‘러닝 데드’(running dead)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겠다. 조지 로메로의 고전적인 영화에서 묘지 주변을 고독한 산책자처럼 혼자 쓸쓸하게 헤매던 불치의 각기병 환자 그리고 쇼핑센터 주변을 눈이 빨개진 채 밤새도록 어슬렁거리는 정신 나간 쇼핑족을 빼닮았던 구식 좀비는 퇴장했으며, 보다 빠른 유연성과 기동성 그리고 이동성을 갖춘 신형 좀비가 등장한 것이다. 마치 독점자본주의가 역사의 장막을 내리고 후기자본주의, 놀랄만한 노동유연성과 이동성을 갖춘 신자유주의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좀비 또한 그렇게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좀비는 무엇에 대한 비유형상일까. 중세의 밤을 활개를 치며 돌아다니던 유령이 물러간 근대의 새벽부터 괴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죽어라 일하는 노동에 대한 비유형상이었다. 그 최초의 비평적 선구자로 발자크뿐만 아니라 고딕소설의 애독자이기도 했던 칼 마르크스는 일찌감치『자본』에서 뱀파이어, 즉 드라큘라를 ‘산 노동(living labor)’을 끊임없이 소진시킴으로써 증식하는 탐욕스러운 ‘죽은 노동(dead labor)’, 곧 자본의 비유형상으로 명확하게 각인시켰다. 마르크스의 고딕적인 상상력을 확대해보면, 메리 셸리의『프랑켄슈타인』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창조한 괴물은 자본에 의해 마침내 소진되어 폐기처분된 몸통과 사지四肢들, 곧 산 노동의 브리콜라주에 가깝다고 새롭게 읽어야겠다. 그렇다면 좀비는? 좀비는 뱀파이어와도 다르며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비슷하면서도 구별된다. 좀비는 드라큘라처럼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아 뜯어 먹고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탐욕스러운 죽은 노동 같은가 하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끊임없이 소진되다가 서서히 폐기처분되고 마는 산 노동의 덩어리와도 같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프랑스로부터 노예혁명을 달성했던 아이티에서 유래한 좀비는 부두교의 마술로 사탕수수 농장에서 잠을 자지도 않고 끊임없이 일하던 노예였으며, 마침내 이 노예들은 자신의 주인, 곧 프랑스대혁명을 일으켰던 바로 그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게 되었다. 수전 벅 모스가『헤겔과 아이티』에서 놀라울 정도로 꼼꼼하게 추리한 것처럼, 아이티혁명에 지극히 관심이 많았던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개진한 주인과 노예의 목숨을 건 인정투쟁이란 한갓된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생생한 역사적 비유형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세기 건너 아이티 근방의 미국에서 되살아난 좀비의 형상에서 주인과 노예, 죽은 노동과 산 노동이 하나로 결합되는 구체적이고도 독특한 역사적 순간이 목격된다. 도대체 어떻게? 죽은 노동과 산 노동, 자본과 임노동은 어떻게 결합이 가능한가. 자본과 임노동은 역사가 종말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관계이며, 마르크스는 자본과 임노동 간에 일어나는 적대의 종식에서 역사의 종말, 공산주의의 시작을 보았다. 그런데 자본과 임노동의 화해어린 결합이라는 게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불가능하면서도 가능하다. 어떻게?
첫째, 자본과 임노동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관계가 종말에 이른다는 뜻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종말에 대한 (불)가능한 꿈으로, 그것은 마르크스의 꿈이었으며 지난 세기 공산주의의 꿈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사회주의의 실패를 전후로 이 꿈은 이제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대신해 꾸는 꿈이 되었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종종 말하는 것처럼, 공산주의가 퇴거해버린 역사의 종말 이후로,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대신에 속 편하게 세계의 종말을 꿈꾼다. 그것은 또한 자본주의의 꿈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문화사업의 꿈이 구현한 신제품이기도 하다. 무수히 많은 재난소설과 재난영화들에서 곧 소행성이 곧 지구와 충돌할 것이며, 거대한 해일이 도시를 휩쓸고 극한의 추위가 지구를 뒤덮는 식으로 세계의 종말에 대한 지치지 않는 꿈의 신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바로 자신의 종말을 꿈꾸는 체제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종말은 세계의 종말이라는 보다 추상화된 방식으로 좀비 아포칼립스의 배경, 곧 노동과 상품거래, 자본의 자기증식이 중지된 폐허의 배경을 이루게 된다.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도처에 마주치게 되는 것들은 기름이 떨어져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져버린 자동차들, 휴지가 되어버린 지폐들, 부패해가는 음식물들, 좀비가 점령한 주택과 병원 즉 폐기물들이거나 지극히 희소해져버린 자원들이다. 그런데 둘째, 자본과 임노동이 하나가 되는 것, 서로를 부정하거나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하나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가능하다. 그 자신이 자본가를 꿈꾸는 노동자, 자본가인 노동자를 만드는, 또는 그것을 약속한 신자유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인적자본론은 한 마디로 노동자가 기업가라는 뜻이다. 노동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유연성과 이동성은 신자유주의적 주체인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에게 필수적이다. 그러나 시장에 ‘자유방임된’ 그는 단 한 번의 자산관리와 경영실패로도 그 손실을 만회할 수 없거나 오직 채무로 만회할 수밖에 없는, 시장으로부터 잠재적으로 ‘방기된’ 소모품에 불과하다. 시장에서 폐기물이 되지 않기 위해 그는 마치 좀비처럼 그리고 좀비에 대적하는 생존자처럼 끊임없이 뛰고 이동해야만 한다. 단 한 번이라도 좀비에게 물리면, 그도 좀비가 된다. 빚을 갚기 전에는 죽을 수도 없다.

확실히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독점자본주의 시대의 자본과 임노동에 더 어울리는 역사적인 피조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괴물들은 곧 전 지구적인 신자유주의 시대에 내몰릴 수밖에 없게 되며, 그에 따라 그 모습을 평등하게도 모든 인간, 예외라고는 없는 전 지구적인 인간에게 공평하게 분배되는 방식으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즘에 TV와 영화에 등장하지만 도시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교외와 숲속에 사는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어딘지 모르게 애처롭고 예스러운 단독자의 모습을 띠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평등하고도 잠재적으로 좀비가 될 수 있는 신자유주의, 이른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는 신자유주의의 일그러진 고르곤 얼굴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의 모습은 인간과 지극히 닮았으면서도 더 이상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는 어떤 존재다. 물론 그 존재란 좀비이다.

그렇다면 좀비는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의 교집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딱 절반만 그러하다. 오히려 좀비는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공통분모를 비워버린 나머지의, 공허한, 텅 빈 윤곽이다. 좀비는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의 영도零度, 이 두 괴물에 대한 부정의 영도로 출현한 역사적인 피조물이다. 바로 좀비는 산 노동과 죽은 노동을 구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living dead’ labor) 새로운 적대의 문턱에 어른거리는, 전도된 노동=자본의 인간, 신자유주의의 증인인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주체인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는 노동하는working 자본dead [labor]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자본dead [labor]을 꿈꾸는 노동자worker다!’ 그런데 이러한 선언은 TV시리즈물 <워킹 데드>의 모토와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We are the Walking Dead!’ 여기서 working dead는 walking dead처럼 읽힌다. dead worker가 dead walker로 읽히는 것과 비슷하게도.
이처럼 좀비 아포칼립스는 (불)가능한 형태로 자본주의가 자신의 종말을 상상하면서 자신의 생존을 연장해나가는 신자유주의적인 문화상품이 되었다. 그러나 좀비 아포칼립스는 어떤 의미에서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던 지난 세기의 공산주의의 꿈을 종말과 폐허의 서사적인 형식으로 연장하고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이것이 사람들이 좀비 아포칼립스를 지속적으로 꿈꾸거나 즐기는 이유는 혹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