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에서 ‘아버지’는 그다지 사랑받지 못했던 존재였다. 유교적 가부장제의 근엄함 때문인지, 아니면 급속한 산업화 사회 속에서 노동자로서의 기능만 강조된 탓인지는 몰라도, 영화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낸다는 건 조금은 어색한 일이었다. 물론 한국영화사엔 ‘한국의 아버지상’을 대표했던 김승호 같은 배우가 있으며, 그 뒤를 ‘김 회장’ 최불암 같은 배우가 잇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스크린에서 아버지는 주인공의 주변인물 정도로 밀려나 버렸다. 한국영화가 점점 젊은 캐릭터 중심으로 변해 가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지만, 어쩌면 이런 현상은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다. 한국 사회의 살인적인 노동 시간 속에서 아버지는 점점 돈 버는 기계처럼 변해 갔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가정보다는 직장의 구성원이 되어 버렸다. 영화가 일정 부분 현실의 반영이라고 한다면, 한국영화에서 아버지의 존재감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계기가 있었다면 1990년대 말에 대한민국을 강타한 IMF였다. 정리 해고의 폭력 앞에 아버지들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중년의 위기’ 혹은 ‘노년의 불안함’은 이때부터 한국 사회의 가장 고통스러운 화두가 되었고, 우린 아직도 그 여파 속에서 살고 있다. 영화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는 소재였던 ‘고개 숙인 아버지’가 스크린 위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의 수술비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사채 빚 때문에 파탄지경에 이르는 상황들이 심심찮게 등장했고 그 가운데엔 항상 무기력한 아버지가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다양해 보이지만, 그들은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가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경제적 궁핍으로부터, 세상의 폭력으로부터, 나의 아들과 나의 딸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버지’라는 프리즘으로 바라보면 최근 한국영화는 이례적이다. 많은 영화들이 아버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가장 전형적인 영화는 <전설의 주먹>(2013)이다. 강우석 감독 특유의 ‘남성에 대한 연민’이 여전히 드러나고 있는 이 영화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중년이 되어 ‘전설의 주먹’이라는 버라이어티 쇼의 링에서 다시 만난다는 설정이다. 겉으로는 액션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갈등은 링 위에서의 격투가 아니라, ‘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며 여기엔 자식들을 위해 세상에서 간 쓸개 다 빼줘야 하는 현재 40대 가장들의 애환이 있다. 그런 면에서 임덕규(황정민)와 이상훈(유준상)은 이 영화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덕규는 딸(지우)을 위해, 기러기 아빠인 상훈(유준상)은 아들과 아내를 위해, 할 수 없이 링에 오른다.

 특히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덕규의 사연은 링의 처절함과 결합되어 신파적 감성을 자아내는데, 그는 돈을 위해 링에 오르고 피투성이가 된다. 그의 모습은 우리의 아버지들이 얼마나 많은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 부담 속에서 살아가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왕따’인 딸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덕규가 직접적인 폭력으로 제압하는 대목이다. 이 부분은 관객에게 일시적인 통쾌함을 선사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딸을 지키기 위해 폭력마저 감수해야 하는, 세상이 폭력적이기에 아버지도 폭력을 행사해야 하는, 씁쓸한 현실을 반영한다.

 <전설의 주먹>의 덕규가 가족 안에서 ‘진정한 가장’의 자리에 앉기 위해 힘겹게 사투를 벌인다면, <남쪽으로 튀어>(2013)의 최해갑(김윤석)은 어쩌면 더 큰 부담감 안에서 살아가는 가장이다. 표면적으로 그는 세상에서 해탈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국민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자신에게 부과되는 모든 억압을 거부하며, 가족들과 함께 남쪽 끝에 있는 ‘들섬’이라는 곳으로 간다. 그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남행’으로 인해 거대한 교육 체제에서 이탈하게 되고 어쩌면 그들은 한국 사회의 언저리에서 그렇게 평생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지만, 최해갑은 남쪽에서의 삶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남쪽으로 튀어>는 섬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그림엽서 같은 영화가 아니다. 학생운동 경력이 있는 해갑을 감시하기 위해 섬엔 국정원 직원이 비밀리에 파견되고, 게다가 정치와 결탁한 자본에 의해 섬은 리조트 개발로 파괴되기 직전이다. 여기서 해갑은 일당백이 되어 포크레인에 맞서 싸운다. 이것은 세상과의 싸움이자 궁극적으로는 가족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다. 그런 면에서 <남쪽으로 튀어>는 <전설의 주먹>과 같은 아버지를 보여준다. 싸워야 하는, 그래야 자그마한 밥상이라도 평화롭게 지킬 수 있는 현실을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악전고투’의 입장에서 본다면 <런닝맨>(2013)의 차종우(신하균)는 단연 갑일 것이다. 십대 시절에 낳은 아들 기혁(이민호)과 살아가는 그는, 낮엔 카센터에서 일하고 밤엔 대리운전을 한다. 그의 척박한 삶은, 어느 날 밤 우연히 만난 손님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게다가 그가 살인자로 몰리면서 나락으로 떨어진다. 알고 보니 그는 군수산업과 관련된 거대한 비리에 관련된 상황이었고, 그는 끝없이 도망치면서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적들은 그의 아들을 빌미로 그에게 압박을 가해오고, 종우는 곤경에서 벗어나면서 아들도 지켜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장르적 요소로 치장되어 액션 영화처럼 보이지만, <런닝맨>의 종우가 그토록 ‘런닝’을 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그는 아들을 죽음에서 보호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그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려 한다. 이것은 <전설의 주먹>이나 <남쪽으로 튀어>의 아버지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현재 우리에게 아버지는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존재이며, 이 테마를 최대한 증폭된 신파적 감성 속에서 극대화한 영화가 바로 <7번방의 선물>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천만 관객’을 훌쩍 넘긴 이 영화는 수많은 관객의 눈물을 자아냈는데, 그 원인은 억울하게 사형 당하는 아버지 용구(류승룡)의 ‘죽음’이고, 그 안엔 우리 시대의 아버지가 모두 느끼는 어떠한 ‘공포’가 있다. 그 공포의 본질은, 부모는 자식을 영원히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부모는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거칠고 흉폭하게 변하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자식이 다쳐 상처 입었을 때, 보듬어 줄 부모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은, 자식을 세상에 남겨 놓고 먼저 떠나야 하는 부모에겐 너무나 힘든 일이다. 요즘처럼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에선 더욱 그렇다.

 여기서 <7번방의 선물>은 세상에서 가장 부족한 아버지인 용구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딸인 예승이(갈소원)를 등장시킨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용구가 보여주는 부성애가 한국의 전통적인 아버지상과 큰 거리를 둔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아버지는 ‘속정’은 깊지만 거리를 두고 자식을 바라보는, 자신의 고통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용구의 부성애는 스킨십과 직접적인 감정 표현을 바탕으로 하는 ‘모성적 부성애’다. 이것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TV 프로그램인 <아빠 어디 가?>의 아버지들을 연상시킨다. ‘돈 벌어 오는 아버지’가 아닌, 자식의 디테일한 모든 일상을 챙겨주고 그러면서 소통하는 아버지.

 하지만 <7번방의 선물>의 용구는 결국 어린 딸을 남겨주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데, 만약 여기서 이 영화가 끝났다면 그토록 많은 관객들이 손수건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이 영화는, 성인이 된 예승이(박신혜)가 아빠의 누명을 벗겨 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진심을 딸은 알고 있었다’는 이 대목은 수많은 부모들에게, 용구처럼 세상에서 고통 받는 아버지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된다. “내 아이가 나의 진심을 몰라주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에 시달리는 부모라면, 이 영화는 정말 커다란 힐링이 된다.

 최근 한국영화 속의 아버지들은 ‘여전히 위기 상황’이다. <미나 문방구>(2013)의 모녀처럼 애증 관계에서 결국 화해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고령화가족>(2013)의 숨겨져 있던 아버지처럼 뒤늦게 가족이 되는 짠한 모습일 때도 있으며, 대부분의 영화에서 거친 현실 속의 연민의 대상으로 보이고 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이것은 우리의 현실이며, 그 현실은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진 않다. 그렇다면 절망일까? 그럼에도 희망이 있다면, 당신은 가족을 지킬 수 있다는 해피엔딩의 메시지다. 링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면, 죽음을 감수할 만큼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식을 위해 세상과 싸울 의지가 있다면, 당신은 ‘아버지’가 될 수 있다. 너무 잔인한 희망 고문 아니냐고? 글쎄… 어쩌면 현실은 더욱 가혹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