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일과 심순애보다 훌륭한 전형적 인물을 창조한 사람이 누구이냐고 불러볼 때‘내다!’고 직답할 사람이 누구일지 나는 심히 의심스럽다.” 임화는 <문학의 논리>에 그렇게 썼다. 그 사이 강산이 여덟 번 가까이 바뀌었지만 이 명민한 비평가의 발언에 지금도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물론 임화가 조일재의 번안소설『장한몽』을 추켜세운 것은 아니다. 그는『장한몽』을“속문학보다도 떠러지는 문학”이라고 단정했다. 다만 이 ‘떨어지는 문학’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의 생명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생명력의 정체가 문제다. 백 년 전 세상에 나온 이수일과 심순애는 건강한 육체의 자연적 노화를 겪고 있는 게 아니라 흡혈귀나 좀비처럼 수명을 연장하고 있다. 이 한숨과 눈물과 자학의 커플은 1913년의 신문 연재소설란이나 연극 무대의 한복판에서는 밀려났지만 2013년 현재도 안방극장과 변두리 무대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예컨대 막장드라마 논란을 낳으면서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최근 종영한 <야왕>을 보라. 복수심에 불타는 하류와 신분상승의 욕망을 따라 질주하는 주다해를 보면『장한몽』의 길고 한스런 꿈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뿐인가. 구글이나 네이버에‘이수일’과‘심순애’를 넣고 검색해 보라. 21세기 한국의 어디에선가 <이수일과 심순애>가 여전히 공연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비유적 의미가 아니다. 정말로 신파극의 형태이든 악극의 형태이든 <이수일과 심순애>가 공연되고 있으며 <이수일과 심순애>를 뮤지컬로 만들어 창단 공연을 하는 지방 극단도 있다.

 왜 이수일과 심순애는 이렇게 모질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째서 그들을 좀비나 흡혈귀라고 부르는가. 이미 삼십여 년 전에 최원식 교수는『장한몽과 위안으로서의 문학』에서『장한몽』에서 제기한 ‘돈이냐 사랑이냐’는 질문의 그릇됨을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이수일과 심순애가 눈물을 뻔질나게 흘리면서 토로하고 있는 것이 과연 사랑이었을까? 그들이 말한 사랑은 실은 봉건적 가치인 의리에 더 가깝다는 점에서 ‘돈이냐 사랑이냐’는 질문은 ‘돈이냐 의리냐’로 수정되어야 한다. 결국 이수일과 심순애가 돈을 버리고 의리를 선택함으로써『장한몽』은 과거로의 회귀를 선언하는 동시에 물질과 관념을 분리해 버린다. 이는 심순애가 김중배와 혼인한 후에도 이수일에 대한 정조를 지키기 위해 6년간 부부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설정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그렇다. 이수일과 심순애는 태생적으로 좀비나 흡혈귀만큼 비현실적인 존재인 것이다.

 현실의 괴로움을 타개할 방법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비현실적 세계에서 달콤한 위안을 찾기 마련이다. 극장은 현실의 질곡을 벗어나려는 사회적 꿈꾸기의 장소가 되지 못할 때 현실에 잠시 눈을 감는 집단 수면실이 된다.『장한몽』이 ‘위안으로서의 문학’이면서 동시에 신파극이었던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달콤한 위안을 파는 문학의 동업자로서 신파극만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많은 논자들이 밝혔듯이 1910년대 대중소설과 신파극은 당대의 엔터테인먼트 상품으로서 시너지효과를 발휘했다. 이는 지금의 대중소설과 상업영화의 관계와 비슷하다. 인기 있는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영화화에 힙 입어 소설은 판매고를 올린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뮤지컬로 만들어지는 소설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이 하나 있다. 신파극『장한몽』의 계보를 어찌 해서 연극이 잇지 않고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혹은 뮤지컬이 잇는가. 대중문화 시장에서 연극은 매우 영세하다. 아니 어느 순간부터 연극은 대중문화 시장에서 퇴각하고 있는 중이다. 더러 예외적인 텍스트가 등장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다. 그래서 다행스럽게도『장한몽』이 갖고 있는 문화적 DNA는 적어도 해방 이후 주류 연극무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말하자면 이수일 흡혈귀와 심순애 좀비는 그들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피와 숙주가 충분히 있는 곳으로 이동한 것이다.

 대중문화 시장의 조건 말고도 무대에서 이수일과 심순애가 진화하지 못한 이유는 또 있다.『장한몽』은 어리석은 질문( ‘돈이냐 사랑이냐’)을 내놓고 눈물( ‘배신이란 죄에 대한 인정과 회개’)로 답하는 남녀 주인공과 이 둘 사이에 김중배라는 돈 많은 비호감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우리 눈에 아주 익숙한 삼각관계를 탄생시킨다. 그런데 여기에 육체성이 배제되어 있어서 연애든 혼인이든 남녀 사이는 굉장히 왜곡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감상성은 살아있는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관념의 꼭두각시로서만 유효하다. 따라서 무대에서 형상화될 때 이수일과 심순애는 눈물 흘리는 기계로서 기능할 뿐 육체와 영혼이 합일된 인간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계화된 인간은 베르크손(Henri Bergson)이 지적했듯이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희극적 존재이지 결코 비극적 운명을 상기시키는 고귀한 인물이 되지 못한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억지 해피엔딩과 공익사업 운운은 이에 대한 방증이다. 실제로 요즘 변두리 무대에서 올려지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홍보문구에는 ‘99퍼센트의 웃음과 1퍼센트의 눈물’이라고 적혀 있다. 손수건 없이는 볼 수 있지만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던『장한몽』이 이제는 코미디로 변신한 것이다.

 이쯤에서 이수일과 심순애의 이동경로와 운명을 주의 깊게 살피고 오늘날의 대중연애극의 현주소를 점검할 필요를 느낀다. 1910년대 연극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이수일과 심순애는 이제 변두리에서도 가장자리로 한참 밀려나 있다.『장한몽』이라는 이름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이수일과 심순애>라는 제목으로 여전히 각종 지역 축제나 아마추어 연극모임에서 심심찮게 공연되고 있다. 다만 이수일과 심순애의 눈물은 더 이상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지 못하고 웃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이 감상주의의 눈물에서 복고주의의 웃음으로의 전환이야말로 이수일과 심순애가 맞이해도 좋을 진짜 운명이다.“가지 마세요, 수일 씨!”“놔라, 바짓가랑이 찢어진다!”왕년의 TV 코미디 <웃으면 복이 와요>에선 애절한 이 장면의 끝에서 이수일의 바지가 실제로 찢어지곤 했다. 찢어진 바지 때문에 당황하는 이수일이야말로 정말 인간다웠다.

 다시 임화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 대학로에서 청춘남녀의 사랑을 다룬 이른바 대중연애극에서 이수일이나 심순애만큼“훌륭한 전형적 인물”이 있는가. ‘내다!’고 직답하기가 어렵다. 이는 연극이 영세한 문화산업으로서 사회적 영향력이 떨어진 데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스스로 너무 가벼워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중연애극을 표방하는 연극들은 비루하고 산문적인 세계 속의 유일한 구원으로서의 사랑을 구현하는 대신 농담 따먹기, 수다의 소재로서 연애를 다룬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성을 유혹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어설픈 강의든지 시대착오적인 순정물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감행하는 모험이 결여되어 있다.

 복고주의를 내세운 몇몇 뮤지컬에서는 이수일과 심순애를 배아복제하려는 시도가 보인다. 이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흘러간 노래로 향수를 자극하는 이 뮤지컬들은 옛날의 사랑은 순수했고, 지금의 자신은 타락했다고 고백한다. 여기에서도 관념과 물질의 간단한 분리를 손쉽게 볼 수 있다. 사랑은 영혼의 문제일 뿐 육체성을 지니지 못한다. 역시나 백 년 전의 그릇된 문제를 붙들고 있는 셈이다. 어리석은 질문에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역시 코미디라 아니할 수 없다. 코미디는 코미디로되 자기가 코미디인 줄 모르는 덜 떨어진 코미디로다.

 이수일과 심순애는 이제 백 살이 되었다. 도무지 자연사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괴물 연인에게‘내다!’라고 직답할 작가가 어서 나오기를 고대한다. 그가 이수일 흡혈귀의 가슴에 은빛 대못을 박고 심순애 좀비의 머리를 자르고 불사르기를 희망한다. 위대한 작가란 구시대의 망령을 쫓는 퇴마사다. 물론 그는 주문을 외는 대신 철저하게 현실을 계산해서 답안을 제출해야 한다. 그 답안이 사회적 꿈꾸기의 장소인 극장에서 아름답게 펼쳐지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