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에 처음 선을 보인 일본 소설『곤지키야샤(金色夜叉)』가 16년 뒤 한국 소설『장한몽(長恨夢)』으로 ‘다시 태어난’지가 벌써 100년이 되었다.『장한몽』의 지난 100년은, 첫 출발부터가 번안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거듭되는 환생의 100년이었다. 때마다 형태와 내용을 조금씩 달리하면서 변해 온『장한몽』의 역정, 주인공 이수일(李守一)과 심순애(沈順愛)가 걸어온 길은 그대로 한국 대중문화 100년의 역사와 연결이 된다.

 일간지『매일신보(每日申報)』에 조중환(趙重桓)이 연재한『장한몽』은 1913년 5월 13일에 제1회를 시작해, 흐느끼는 심순애를 걷어차는 이수일의 발길질로 유명한 대동강변 장면을 6월 초에 거쳐서, 그해 10월 1일에 119회로 끝을 맺었다. 근 다섯 달 동안 연재가 진행되면서『장한몽』의 인기는 날로 높아졌고, 연재가 끝남과 동시에 단행본도 출간되어 화제를 이어 갔다. 또 2년 뒤인 1915년 5월에는 역시 조중환이 펜을 든 속편이 다시『매일신보』 지면에 등장해 전편(前篇)보다 더 긴 분량으로 연말까지 연재되기도 했다.

 한편, 연재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13년 7월에는 아직 완결되지도 않은 소설이 연극으로 만들어져『장한몽』 변신의 첫 장이 열렸다. 극단 유일단(唯一團)의 7월 공연에 이어, 연재 완료 한 달 뒤인 11월에는 신파극의 거두 임성구(林聖九)가 이끌던 극단 혁신단(革新團)에서 역시『장한몽』을 연극으로 꾸며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이후 유일단이나 혁신단은 물론 다른 수많은 극단에서도, 심지어 신파극을 비판하며 새로운 연극을 지향했던 토월회(土月會)에서까지도 <장한몽>은 인기 있는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고,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신파극의 대명사로 꼽히고 있다. 다소 번다하게까지 느껴지는 문체의 유장함이 소설『장한몽』에서 두드러졌던 점을 생각해 보면, 보름밤 대동강변 이별 장면 등이 후대 사람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데에는 소설을 무대에 맞게 압축해 재탄생시킨 신파극 <장한몽>의 공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장한몽>이 1910년대 한국 극계를 풍미하고 있던 무렵, 원작『곤지키야샤』의 주인공 간이치(貫一)와 오미야(お宮) 또한 지면을 넘어 극장 무대에서도 일본 대중을 매료시키고 있었다. 1918년에는 길거리에서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엔카시(演歌師)들이 만든 연극 주제가가 발표되어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이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또 한국으로 건너와서 <장한몽가>라는 노래로 유행하게 되었다. ‘熱海の海岸散步する 貫一お宮の二人連れ’를‘대동강변 부벽루에 산보하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양인이로다’로 충실하게 번안한 <장한몽가>는 이미 1920년부터 당대의 인기곡으로 많은 노래책에 수록되었고, 1925년 이후 음반으로도 수차례 발매되어 <장한몽>이 대중가요로까지 영역을 넓히는 데에 선구가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현해탄을 건너면서 생긴 노래의 변화가 비단 가사에만 있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원곡 <곤지키야샤> 주제가는 곡조가 단조로 되어 있는 반면 <장한몽가>는 같은 선율이 대개 장조로 바뀌어 불렸다. 외래 음악이 익숙함보다는 아직은 낯섦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던 1920년대였기에 가사뿐만 아니라 음악적 번안까지 함께 일어났던 것이다. 이후 <장한몽>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는 1960년대까지 열 곡 이상 꾸준히 발표되었고, 그 중에는 ‘가요황제’남인수(南仁樹)가 부른 <수일의 노래>와‘엘레지의 여왕’ 이미자(李美子)가 부른 <순애의 노래>도 있다.

 대중가요 <장한몽>과 함께 1920년에는 영화 <장한몽>의 역사 또한 시작되었다. 지금도 대중문화의 양대 축으로 꼽히는 것이 대중가요와 영화이니, 양자가 <장한몽>으로 당시 같은 궤적을 보였던 것도 이채로운 점이다. 무대극과 영상을 결합시킨 연쇄극(連鎖劇)으로 1920년 <장한몽>이 첫 선을 보인 이래 1926년 무성영화 <장한몽>, 1931년 <수일과 순애>, 1959년 <애정과 반항>, 1965년 <이수일과 심순애>, 1969년 신상옥(申相玉) 감독 판 <장한몽>, 1973년 <가버린 사랑>, 그리고 1987년 <성(聖) 리수일뎐> 등, 1980년대까지 영화화된 <장한몽>은 확인되는 것만 해도 여덟 편에 이른다. 토종 콘텐츠 <춘향전(春香傳)>이 1920년대부터 21세기 들어서까지 열다섯 번 정도 영화로 만들어진 것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외래종 가운데에는 <장한몽>을 능가하는 작품이 아마 없을 것이다.

 이수일과 심순애가 대중과 만나는 형식은 또 대중가요와 영화에만 그치지 않았다. 1920년대 말에 이르러 마이크를 사용하는 전기녹음이 새로운 기술로 도입되어 음반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대중가요뿐만 아니라 다양한 극 음반도 많이 제작되었는데, 거기서도 <장한몽>은 빠뜨릴 수 없는 단골 소재였다. <익살 장한몽>, <서양 장한몽>, <만국 장한몽>, <칵테일 장한몽> 등 웃음을 자아내는 이색적인 변조를 비롯해 심지어는 판소리 명창 박녹주(朴綠珠)가 녹음한 창극 <장한몽> 음반까지 발매되었다. 또 1940년대 접어들어 일본의 전시체제 강화로 음반산업이 주춤하면서부터 공연예술의 총아로 대두하기 시작한 악극 역시 <장한몽>을 비껴가지 않았다. 악극의 대명사로 지금도 전설의 무대로 기억되고 있는 조선악극단의 1941년 작 <노래하는 금색야차>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소설로 출발해 연극, 영화, 대중가요, 악극 등으로 다채롭게 변모해 온 <장한몽>은 비록 그 원조가 바다 건너에 있다고는 해도 100년의 환생 역정을 통해 이제 실상 우리 것이 되었다. 이수일을 한 꺼풀 벗기고 보면 그 안에 간이치가 있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잘 몰랐다 보니 <장한몽>이 어영부영 이 땅에 자리를 잡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황금의 세력 앞에 가련한 순정이 짓밟히고 곡절 끝에 인연을 다시 이어 사랑을 이루게 되는 이야기 자체에 대한 대중의 공명이 워낙 강렬했기에, 그리고 그 울림의 여운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기에, 수일과 순애의 원산지 표시 같은 것은 애당초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수 있다.

 사람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악귀처럼 끊임없이 주위를 맴돌며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또 돈이다. <장한몽>의 지난 100년은 그 돈을 아예 노골적으로 모든 가치의 우선에 두는 자본주의 체제가 한국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해 온 100년이기도 하다. 이수일은 돈의 위력에 심순애를 빼앗겨 사랑을 잃었고 그 한에 스스로도 돈의 노예가 되었지만, 그보다 더 치명적인 상실과 상처에 괴로워하는 이들이 지금도 많다. 대중문화는 대중의 욕망이 분출되는 장으로, 현실에서 쉽게 어찌할 수 없는 바를 일시적으로나마 대신 풀어 주는 역할을 한다. 지난 세월 이런 저런 <장한몽>들을 듣고 보아 온 이들 가운데 순애의 흐느낌과 수일의 분루(憤淚)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사람이 적지 않았기에, 세월의 격랑 중에도 작품은 이 땅에 뿌리를 단단히 내렸다.

 <장한몽>에서 대중의 뇌리에 가장 깊이 각인된 장면이  “수일씨!” 붙잡는 순애와“놓아라!” 돌아서는 수일의 모습이기는 하나, 소설의 결말은 두 사람이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해피엔딩이다. 다소 진부한 감이 있다고는 해도 대중은 그러한 결말에서 언젠가 맞고 싶은 장차 자신의 행복을 미리 보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은 사랑을 이룬 두 사람이 그래서 더 친숙해졌기 때문일까. 100년 동안 우리 곁에서 살아 온 이수일과 심순애는 어느덧 실존 인물처럼 묘사되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작가의 착각 때문이었겠지만, 1991년에 발표되어 마침 그 무렵 같이 등장해 대한민국 음악 문화를 일변시킨 노래방 마무리 곡으로 일세를 풍미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노래에 등장하는 100명 가운데 아동문학가 방정환(方定煥)의 뒤를 이어 96번째와 97번째 인물로 이수일과 심순애가 나오고 있으니, 이로써 두 사람은 정말 다시 세상에 살아난 셈이 되었다. 반가워해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