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계화된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질서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제국주의적 식민주의화, 식민지의 독립과 개발, 무역 자유화라는 세 단계를 거치며 형성되고 구축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무역 자유화의 세계화는 구미(歐美) 자본의 이윤 창출을 위해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초국적 금융 시스템들과 다국적 기업들이 주도하고, 개별 민족국가가 지지 또는 추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재화와 노동의 제약 없는 이동을 위한 자유무역, 자본의 제약 없는 이동, 민영화, 규제 완화, 환경 및 사회적 요인의 ‘외부화’ 현상은 어느 특정 국가에서의 일국(一國)적 현상으로 더 이상 간주할 수는 없게 되었다. 전 지구적인 글로벌 스탠더드처럼 인식되고 있으며, 현실을 규정하는 힘을 갖고 강제적 구속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자본주의체제의 바깥은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구미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는 언제나 항상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적 플랜과 프로젝트들을 통해 작동한다는 점이다. 피지배자들이 구미 각국의 문명화 사업들에 대해 일종의 ‘정신적 무감각’ 상태를 낳도록 작용하는 것이다. E.사이드(Edward Said)가 『문화와 제국주의』(1993)에서 영국, 프랑스, 미국의 제국주의 경험과 문화(소설)의 관련 양상을 탐사하면서 언급한 말은 좋은 참조점이 될 것이다. “제국주의도 식민주의도 단순한 축적과 획득의 행위가 아니다. 둘 다, 어떤 영토와 인민이 지배받기를 요구하고 간청한다는 관념을 포함하는 현저한 이데올로기적 형성에 의해, 그리고 동시에 지배와 연대 관계를 갖는 지식이라는 형태에 의해 지원되고 추진된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1984』에서 소개했던 방식의 기만적인 ‘뉴스피크(Newspeak)’ 언어 조작에 의존하고, 신자유주의와 상관없는 성공 스토리를 믿게 하는 식으로 작동한다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오래된 미래』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 Hodge)는 신자유주의가 유포하는 가짜 성공 스토리들의 사례들로 녹색혁명, 뉴질랜드의 기적,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꼽는다.
이 점에서 구미중심주의(=유럽중심주의)의 제국주의 문화에 깊이 침윤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비서구 문학들의 연구와 문학인들의 교류는 자본의 세계화에 대항하여 ‘지역화’의 새로운 방식을 통해 복수(複數)의 근대 혹은 근대 이후를 모색하고 성찰하려는 상상력의 국제연대가 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비서구 문학(인)들의 국제연대는 식민지 독립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식민주의의 역사적 상흔을 치유하며 진정한 정신적 독립을 이루는 동시에, 탈식민적 전환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 문학과 문학인들의 수행(perfomative)적 힘으로 크게 작용할 것이다. 비서구 문학인들의 국제교류가 갖는 의미는 이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문학인들의 국제교류 행사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교류의 지속가능성과 담론 생산의 의미 차원에서 주목할 수 있는 행사는 예상보다는 많지 않은 듯하다.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서울국제문학포럼>과 <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을 비롯해 창비•세교연구소가 주최하는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편집인회의>, 그리고 <이병주 하동국제문학제> 같은 행사들을 특정할 수 있을 듯하다. 이밖에도 대학의 연구소는 물론이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와 한국문학번역원 같은 공공기관과 지역 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교류 행사와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러나 예의 지속가능성과 담론의 의미 생산에서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소감이다. 대체로 일회성에 머무는 이벤트 행사들이 많은 탓이다.

 
그리고 동아시아 역내(域內)의 문학인들과 지식인들이 참여하는 문학 행사들의 경우 동아시아적 ‘감정의 지정학’이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한-일, 한-중, 중-일, 중-대만 간에 조성되는 문학 외적인 차원의 과거사 문제와 평화안보 문제는 여전히 현재적 휘발성이 높은 사안들이다. 동아시아 문학인들과 지식인들의 교류 행사에 있어서 역내의 지정학적 쟁점들로 인하여 다소간 영향을 받는 소이(所以)이다. 이에 따라 일국적 관점을 넘어 동아시아 문학인들의 문화적 공통감각을 형성하는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형국이다. 한 예로 2012년 노벨상을 수상한 중국 작가 모옌(莫言)에 대해 국내•외에서 ‘관변 작가’ 논란이 제기된 것도 실상 동아시아 역내에서 작용하는 감정의 지정학과 마냥 무관할 수만은 없으리라. 여하튼 중국 작가들의 과잉된 국가주의도 문제이고, 일본 작가들의 국민주의에 기반한 이른바 ‘전학생 의식’(가토 노리히로)도 상생과 평화의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에는 저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문학인들과 지식인들의 교류와 소통은 더없이 필요하다. 동아시아 문학인 교류에서 한국(남한)의 문학인들이 일종의 균형자 역할을 자임(自任)하면서 장차 북한 문학인들과의 교류도 염두에 두고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러한 노력들 속에서 “아시아 시민의식의 제고”(<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는 물론이요, “평화와 공동번영의 동아시아 공동체”(<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편집인 회의>)를 추구하려는 의미 있는 문학인들의 교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오늘의 문학인들은 역내(域內) 교류와 실천뿐만 아니라 구미중심주의의 ‘세계문학’ 패러다임에 대한 일종의 문화정치적 상징투쟁과 실질적인 대안 마련에도 공동의 힘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2010년부터 진행된 <인천AALA문학포럼>이 지금껏 해마다 세계문학, 평화, 지역화라는 화두를 놓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문학인들과 소통하며 ‘지구적 세계문학’이라는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고자 한 점은 포스트(post) 시대의 문학 교류가 갖는 문화정치적 위상과 과제를 잊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맥락을 최원식 교수가 2011년에 발표한 논문 「다시 살아난 불씨」에서 문장을 따오면 다음과 같은 역설적 의미 내용이 될 것이다. “정치를 잊지는 말되 정치를 버립시다. 나라를 기억하되 나라를 잊읍시다. 대륙을 잊지는 말되 대륙도 떠납시다.” <인천AALA문학포럼>이 추구하고 지향하는 절대공동체는 오로지 이러한 자유의 여정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는 축제의 한마당이라고 간주해야 마땅하다.

이 점에서 <인천AALA문학포럼>은 옛 제국주의에 대해 원한과 증오를 품은 현재의 약소국가들이 지역적 대항블록을 구축하며 안티테제를 구축하려는 정치적 기획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것은 사랑과 연대의 방식으로써만 가능한 문학적 방식을 통해 지식인과 권력 관계를 되묻고, 그릇된 역사에 대해 되구부리기를 실현하려는 다시-쓰기(re-write)의 문화적 형식에 더 가깝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구미중심주의 세계문학 개념과 정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동시에, 새로운 주체적 안목으로 ‘세계문학 선집’을 기획하고 편집하려는 것도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과테말라 시인 루벤 다리오(Ruben Dario)의 시선집 『봄에 부르는 가을 노래』를 비롯해 『AALA문학총서』를 꾸준히 발행하는 것은 그 좋은 예가 된다. 국내 출판시장과 독서시장에서도 구미중심주의 세계문학에 대한 맹목적인 중독 현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출판과 독서 행위가 일어나고 있는 점은 퍽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작가들도 세계 일급 작가들의 수준 높은 문학을 접하고 더 높은 차원의 상상력의 연대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문학은 억압 없는 세상을 꿈꾼다. 문학의 본질은 자유를 꿈꾸는 힘에 달려 있다. <인천AALA문학포럼>은 구미중심주의의 역사적 해악을 성찰하고, 세계문학에 대한 마음의 불문율을 넘어, 자유와 평화에 관한 인류의 오래된 꿈을 노래하고 가치를 실현하려는 세계 문학인들의 상상력이 교차하는 허브(hub) 마당이다. 이 문학의 향연에 참여하려면 축제를 더불어 즐기려는 우정과 연대의 마음이 필요할 따름이다. <인천AALA문학포럼>에서 비서구 문학인들의 상상력의 국제연대가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런 이유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