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쿠 수단 카바쉬』라니? 책을 펼쳤다. 책날개에 강인한 인상의 여성 작가 살와 바크르 사진이 있다. 역사와 문화비평을 공부했고, 근로자들을 옹호하는 운동에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는 약력이 나온다. 작가에 대한, 작품에 대한 어떤 선입견이 들어선다. 나는 작가 소개에 문학과 관련된 작품 외에는 다른 것을 싣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나 같은, 약력으로 선입견을 갖는 독자 때문이다.
그런데, 쿠쿠 수단 카바쉬는 도대체 뭐지? 책 삼분의 일을 다 읽도록 쿠쿠 수단 카바쉬라는 글자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칼리다라는 젊고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며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여성이 등장한다. 작가의 불친절이 슬슬 불편해 온다.
삼분의 일 지점이 지나서야 쿠쿠 수단 카바쉬라는 글자가 나온다. 사람 이름이다. 아프리카 수단에 살던 청년 이름이다. 울창한 아프리카 밀림을 누비다가 갑작스럽게 상인들에게 잡혀 한 순간 노예로 전락하고, 노예시장에 팔린 뒤 이집트로 오게 된 검은빛의 청년이다. 이집트에 와서도 남의 나라 전쟁터에 끌려가 참혹하게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던 한 젊은 청년의 이름이다.
작가는 쿠쿠 수단 카바쉬로 대표되는, 노예로 팔려와 남의 나라 전쟁터에 끌려간 청년을 통해 이집트의 숨겨진 치욕스런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춘다. 에둘러 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쿠쿠 수단 카바쉬가 참전했던 전쟁은 19세기, 1863년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며, 일반 국민들은 대부분 모르는 역사적 진실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당시 이야기를 생생하게 증언하기 위해 같이 전쟁에 참여했던, 군대 내에 종교의 의무와 이슬람 성법을 책임지는 일종의 군종 같은 역할을 한 오스만 후프니의 수기를 등장시킨다. 그러니까 쿠쿠 수단 카바쉬는 오스만 후프니의 기록 속에 등장하는 청년인 것이다.
수기를 건네준 이는 루돌포라는 청년이다. 이 청년이 주인공 칼리다와 우연히 같은 비행기 옆자리에 앉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되는 셈이다. 여성변호사로 인권협회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국제인권회의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칼리다는 우연히 루돌포라는 외국인 남자와 앉아 오게 된다. 이 루돌포는 복잡한 혈통의 소유자였는데 외증조부는 이집트인, 외증조모는 멕시코 인디언, 외조부는 노르웨이인, 아버지는 독일인이었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국제연합’이었다. 이 복잡한 혈통의 사내는 자신의 뿌리인 이집트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데, 이집트에 온 이유도 이집트에 남아 있을 것으로 믿는 외증조부 오스만 후프니의 가문과 후손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루돌포는 칼리다에게 외증조부가 생전에 기록한 수기(手記)인 종이들을 칼리다에게 건네주며 그것들을 참고해 이집트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칼리다는 루돌포의 부탁을 들어 주기로 하고 그의 외증조부인 오스만 후프니가 남긴 글을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글 속에서 쿠쿠 수단 카바쉬를 만난다. 그러니까 소설의 외피는 루돌포의 뿌리 찾기를 칼리다가 도와주기 위해 루돌포의 외증조부가 쓴 수기를 읽는 형태이다. 그러나 정작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글 뒤편에 있다. 
루돌포의 뿌리를 찾기 위해 읽기 시작한 글이었지만 글을 읽어 가는 동안, 칼리다는 약육강식의 세계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국가의 치부로 간주되어 정부가 감추려 드는, 그래서 교과서에도 빠져 있는 역사. 한때 이집트가 강대국의 주구(走狗)였다는 사실, 이집트는 프랑스와 비밀거래로 이집트 병사들을 프랑스 편에 서서 멕시코와의 전쟁에 참전하게 한다. 이때 이집트는 자국의 젊은이들과 특히 노예사냥으로 잡혀온 아프리카 수단계 흑인들을 파병 대대에 편입시켰다. 그로 인해 수많은 쿠쿠 수단 카바쉬가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전쟁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칼리다는 변호사 일과 인권운동을 해 나가는 틈틈이 글을 읽어 나간다. 그녀는 점차 변해간다. 뿌리를 찾는 일보다,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변호를 하고, 인권운동에 앞장서는 일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칼리다는 그러한 생각을 담아 루돌포에게 편지를 보낸다.
작가는 소설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두 가지 중요한 장치를 해 둔다. 그 한 가지는 주인공 칼리다의 꿈이다. 꿈속에서 작가는 이 세계에 대한 통렬한 역습을 시도하는데 그녀가 일상으로 드나들던 법정이 그 무대였다. 법정의 재판장은 쿠쿠 수단 카바쉬며 피고는 프랑스와 멕스코 간의 전쟁을 일으킨 주범이었다. 이 꿈의 내용은 꽤 작위적이며 희극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그 동안의 글의 흐름과 상당히 다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작가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부분을 넣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왜일까. 인물들을 서로 뒤바뀐 처지에 놓이게 함으로써 작가는 쿠쿠 수단 카바쉬에게 나라를 대신해, 아니면 약육강식의 이 세계의 한 사람으로 사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염원을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정작 사죄할 사람은 끝끝내 사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작가 살와 바크르의 세계관과 문학관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살와 바크르는 글쓰기가 기존의 관념과 세계관, 인생관을 새롭게 개혁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글쓰기야말로 왜곡된 세계에서 벗어나 인간성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작가였다.
사실 내게는 꿈이지만 역습이랄 수 있는 법정 공간이 흥미롭기는 했지만 같은 소설가로서 썩 매력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겠지만 사회 참여 작가로서 책무에 짓눌린 듯한 인상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마지막 종이’였다. 이 종이는 칼리다가 침대 밑으로 흘린 것으로 오스만 후프니의 마지막 기록이랄 수 있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쿠쿠 수단 카바쉬와 그것을 기록한 오스만 후프니, 다시 그 기록을 읽는 칼리다의 구조를 작가가 왜 택했을까가 궁금했다. 종이의 기록자인 오스만 후프니 때문에 쿠쿠 수단 카바쉬는 멀리 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글 속에서도 쿠쿠 수단 카바쉬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지금은 희미해졌지만, 쿠쿠 수단 카바쉬처럼 밀림에서 잡혀 한 순간 노예로 전락한 아프리카 흑인의 삶을 다룬 영화 ‘뿌리’를 보았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선명하다. 좀 더 직접적으로 쿠쿠 수단 카바쉬를 이야기할 수는 없었을까. 이런 아쉬움이 오스만 후프니의 마지막 기록을 통해 상쇄되었다.
이집트인이면서 종교인이었던 오스만 후프니는 한밤중 갑자기 벌어진 총격전에서 도망쳐 가까운 정글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인디언 여인을 구해주게 되는 데까지가 칼리다가 읽은 내용이었다. 그리고 칼리다는 루돌포에게 자신의 심경을 담은 편지를 썼고, 법정에 재판장으로 쿠쿠 수단 카바쉬를 세운 꿈을 꾸었다. 그 뒤에야 마지막 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내 문제를 두고 망설이고 있다. 내가 돌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맨 마지막 문장 역시 같은 맥락이다. “나는 계속 생각에 잠긴 채 묻고 있다. ‘돌아가야 하나, 돌아가지 말아야 하나?'
"인디언 여자와 결혼해 그곳에서 살게 된 모스만 후프니는 그리움에 싸여 가족과 조국을 그리워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전쟁이나 미지의 세계로 내모는 그런 자들이 있는 조국으로 돌아가야 하나를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인이었으며, 종교지도자였으며, 나름의 부를 누리고 살았던 한 인간이 가족과 자신이 살던 곳을 뼛속까지 그리워하지만 자신이 속한 세계의 폭압을 깨닫고, 차마 돌아가지 못하고 갈등하는 결말이 내게는 무겁게 다가왔다. 작가가 오스만 후프니의 글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려 한 것은 오스만 후프니의 갈등이 지금 이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가 떠안아야 할 갈등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들른 ‘이민사 박물관.’ 돈을 벌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꼬임에 넘어가 멕시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이민 가족이 찍은 빛바랜 가족사진은 오랫동안 나를 눈물짓게 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꽃다운 처녀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녀들은 일본의 사죄도 받지 못했으며 우리나라의 성의 있는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꽃다운 처녀들은 이제 할머니가 되었고, 많은 이들이 저 세상으로 갔다. 그뿐이겠는가. 교묘하게 재편되고 약육강식되는 이 세계는 여전하다. 나는 책을 덮고 나서도 오스만 후프니의 심정이 되어 쿠쿠 수단 카바쉬, 그 이름을 부를 수밖에 없는 내가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