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의 독을 삼키다
예술작품에 대한 검열은 작가의 정신을 삭여 버린다. 작가는 작품이 권력의 억압 아래 갈가리 찢기면, 자기 검열이라는 압박에 시달린다. 작가가 스스로 감당하는 내적 검열은 권력의 효과로 오래 지속된다. 검열은 작가 정신에 대한 파괴행위이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특별히 강한 몇몇 작가는 검열과 금기에 대항하면서 단련되기도 한다. 서사의 결이 은유적으로 변형되고, 언어가 더 정교해진다. 일제 강점기에 발표한 이기영의 소설 『고향』(1934)이나, 일본어로 쓰인 김사량의 「빛 속으로」(1939)가 그 예이다. 때때로 작가들은 금기의 독을 삼킨다. 이를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훼손하여 체제의 폭력성을 증언한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은 자유를 위한 투쟁이었다.    
중국 작가 옌롄커(閻連科, 1958~)는 1990년대 이후 끊임없이 검열과 대면해야 했다. 그는 자기 검열의 세계로 내몰리지 않고, 오히려 금기를 돋을새김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비유컨대, 그는 정신이 삭아드는 것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작품을 검열과 융합시켜 발효의 경지에 도달하는 현명함을 발휘해 온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불온성’이라는 독을 먹고, 금기의 물결을 굽이굽이 돌아 자유로이 헤엄쳤다. 고난을 견딘 사람은 내면이 더 단단해진다고 했던가. 이제, 옌롄커는 ‘중국 정부가 금기시하는 작가’이면서, ‘중국 인민이 사랑하는 작가’가 되었다.

편견을 넘어 찬탄으로
옌롄커의 작품 중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 그리고 『여름 해가 지다(夏日落)』는 중국 정부로부터 발행금지 처분을 받았다. 모든 추문과 해프닝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중국에서 발생한 검열 사건은 해외에서 세 작품이 활발히 번역 출간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 검열로 인해 더 많은 외국인이 관심을 갖고 이 작품을 읽게 된 것이다.   
나도 중국 사회의 그림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처음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읽었다. 이 작품은 2005년 중국에서 발표되자마자 검열에 의해 상당 부분 삭제되었고, 3만 권에 달하는 책이 전부 회수되는 수난을 받았다. 중국 당국에 의해 금서(禁書)로 묶이자, 한국에서는 2008년에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중국의 예민한 상처를 건드린 작품일 수 있지만,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적지 않게 실망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마오쩌둥을 희화화함으로써 중국 사회 내 불러온 파장이 이방인인 내게는 실감 나게 다가서지 않았던 것이다. 이 작품은 대중서사의 패턴을 충실히 따르면서 급격한 이야기의 흐름을 타는 풍속소설이었다. 작가는 ‘유혹과 수락’, ‘정념과 무심’, ‘공공과 개인’이라는 대립 구조를 버무려내는 솜씨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옌롄커가 대중사회의 아이콘을 포착해 중국적 금기에 도전한 도발적 작가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작품 자체로서의 문학적 완성도는, 최소한 한국문학적 감각으로는 너무 낯익어서 진부하게 읽혔다. 
옌롄커에 대한 내 부정적인 생각은 『딩씨 마을의 꿈』을 읽으면서, 급격히 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장편소설 또한 2005년에 ‘금기를 범했고’ ‘민감한 사안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발행과 재판, 홍보가 전면적으로 금지되는 수난을 겪었다. 나는 기대치를 한껏 낮춰 이 작품을 읽었고,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리는 충격적 경험을 하게 되었다. 피를 사고파는 데서 시작해 피의 복수로 이어지는 기묘한 분위기는 소설의 전체를 어두운 색채로 뒤덮고 있었다. 실재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사자(死者)의 목소리’를 소설적 화자로 과감하게 내세웠고, 서로를 용서하지 않는 아버지와 아들의 첨예한 갈등은 위기감을 지속시켰다. 무엇보다, 거대 권력에 속수무책인 무력한 공동체 마을의 모습을 애잔한 목소리로 증언하는 딩샤오창(丁小强)의 목소리가 ‘사라져 가는 것 속에 깃든 슬픔’을 쓰다듬고 있어 가슴 아팠다. 작가는 『딩씨 마을의 꿈』에다가 인간의 파괴적 욕망, 뒤돌아보지 않는 사랑의 열정, 죽음을 앞둔 자들의 절망, 그리고 안간힘을 쓰고서도 지켜내기가 쉽지 않은 삶의 윤리를 잘 담아냈다. 작가적 역량에 놀라면서,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딩씨 마을의 꿈』보다 먼저 한국에 소개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작가에 대한 첫 인상이 잔상효과로 남아, 작품 세계를 재단하는 편견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건 이후 남겨진 것들
옌롄커의 작품세계는 어떤 형상일까. 옌롄커의 비교적 초기작인 『여름 해가 지다』는 1992년에 발표되었다. 이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신군대 소설’, ‘신사실주의 소설’로 각광을 받았지만, 홍콩에서 발행되는 잡지가 높이 평가하면서 갑작스럽게 출판금지가 조치가 내려졌다. 당시 홍콩은 중국에 반환되기 전이었다. 이 사건은 1965년 한국에서 발생한 남정현의 ‘분지 필화사건’을 연상시킨다. 남정현의 소설 「분지」도 북한에서 문제작으로 선정해 『조국통일』에 실으면서 문제가 되었다. 남북이 서로 대립관계에 있는 상황에서, ‘적이 찬양한 문학’은 유죄판결의 결정적 증거였다. 문학적 풍자를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경직된 사회는 작가를 불행하게 만든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남정현의 작가적 생명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되었다. 옌롄커에게도 『여름 해가 지다』의 필화 사건은 그의 문학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를 초래했다. 다행히, 주변 작가들의 도움으로 재기함으로써 그는 문학적으로 더 성숙해지고 강해졌다.
『여름 해가 지다』는 중국에서 발표된 지 20년이 지난 2012년 말에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옌롄커는 허난성 동부에 주둔한 보병 3중대에서 발생한 자살 사건을 소설화했다. 이를 통해, 도시/농촌문제와 병영문화의 변화, 전쟁 이후 벌어지는 생활 속 전투를 다루었다. 소설 속 주요인물인 중대장 자오린(趙林)과 지도원 가오바오신(高保新)의 성격 형상화가 개성적으로 이뤄져 있어 흥미롭다. 이 소설은 옌롄커의 문학적 기질이 어디서 기원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서도 그 의미가 남다르다.    
『여름 해가 지다』는 초반부터 단도직입적으로 중요 사건들을 미리 제시하면서 서사를 이끌어나간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핵심 정보를 미리 접하면, 서사적 격랑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조마조마해진다. 서사적 기대지평이 높아진 상태에서 독서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소설적 패턴은 『딩씨 마을의 꿈』과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딩씨 마을의 꿈』에서는 딩씨 마을의 상황과 관련한 여덟 가지의 사실을 미리 이야기했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사단장 부인인 류롄과 고참 공무분대장 우다왕의 심상치 않은 관계를 예고하면서 시작한다. 『여름 해가 지다』도 소설의 핵심적 사건인 “먼저 소총을 한 자루 분실하더니 그 다음에는 병사 하나가 죽었다”라는 문장을 소설 첫머리에 제시한다. 동양화를 그리듯, 서사의 핵심적 윤곽을 알려주고 난 후에 세밀화를 그리듯 내부를 채워나가는 기법을 활용한다. 옌롄커의 소설적 재능은 오밀조밀하게 짜인 작은 사건들로 서사의 격자를 차근차근 맞춰 나가는 데서 빛을 발산한다.   
옌롄커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이 발산하는 효과’에 더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여름 해가 지다』는 핵심 모티프가 취사반의 사병인 샤를뤄(夏日落)의 자살이다. 하지만, 작가는 샤를뤄의 자살 원인을 규명하기보다는, 이 사건을 무마하려는 중대장 자오린과 지도원 가오바오신의 갈등을 심리적 측면까지 세밀하게 터치하며 그려냈다. 자오린은 가족에게 도시 호구(戶口)를 만들어주기 위해 강제 전역만은 절대로 피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오바오신 지도원도 군대 내에서 진급하여 교도원, 군사위원회 주석까지 나아가려는 야망을 포기할 수 없다. 그렇기에 가오바오신은 자오린을 매수해서라도 강제 전역만을 피하려고 발버둥 친다. 두 사람은 체제가 개인에게 짐 지우는 ‘희생양 만들기’를 벗어나려고 악전고투한다. 이러한 소설적 골격은 『딩씨 마을의 꿈』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다. 이 작품도 열병이 발생하게 된 원인만을 형상화하지 않고, 열병에 감염된 사람들이 학교에 모여 공동체 삶을 꾸려나가면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촘촘하게 그려냈다. 작가는 이러한 서사전략을 통해, ‘죽은 자의 고뇌’ 보다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도 삶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이 그의 작품의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다. 작가는 인간의 현세적 욕망에 육박해 들어감으로써, 삶의 윤리 문제를 스스로 질문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옌롄커의 작품들은 역사적 사건에서 출발해, 개인으로 귀결된다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끈다. 옌롄커는 역사를 벗고, 삶의 진창을 입은 작가이다. 시간적 측면에서 『여름 해가 지다』는 1979년의 중국•베트남 전쟁에 대한 회상과 1991년의 중국•베트남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공동성명 발표를 겹쳐 놓았다. 한때 전우였던 자오린과 가오바오신은 중국•베트남 전쟁에서 32명의 중대원 전원이 사망했던 뼈저린 상처의 가슴에 품고 있었다. 둘은 함께 적국인 베트남을 향해 총을 겨눈 경험을 공유했지만, 샤를뤄의 자살로 인해 서로를 향해 적대감을 표출하는 개별적 존재로 내던져진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자신의 인생에 새겨진 가장 큰 상흔이 공허한 과거사로 치부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인간의 존재 조건’에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와 『딩씨 마을의 꿈』도 ‘역사적 사명(혹은 사건)과 개인의 삶’을 화두(話頭)로 제시했다. 이 두 작품은 국가적 요구에 충실하기보다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라고 권유한다. 솔직하지 않으면, 진실을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을 깊이 응시하며 ‘내면의 발견’에 도달할 때, ‘세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옌롄커의 작품세계는 권력에 동원되지 않는 삶, 인간으로서 스스로에게 충실할 수 있는 삶을 향해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알레고리적 상상력에 기대다
그렇다면, 중국작가인 옌롄커가 한국 독자인 나를 놀라운 ‘읽기 체험’으로 이끈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서로 다른 현실에 있으면서도, 문학의 공명판이 울릴 수 있는 원인에 대한 탐색으로 나아간다. 문학은 숱한 현실적 경계를 넘어 인간의 공통감각을 자극한다. 나는 외국문학 작품을 읽는 독자로서, 이질적인 언어와 현실에 접맥되는 나의 감각에 대해 성찰해 보았다. 그리고는 문학이 발산하는 ‘알레고리적 상상력’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다. 
알레고리는 작가가 ‘다른 목소리로 말하면서, 실상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옌롄커는 『여름 해가 지다』에서 중국•베트남 전쟁과 병영 속에서 고뇌하는 군대 간부들의 이야기를 구체적 현실에 밀착해 다뤘다. 『딩씨 마을의 꿈』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에서 국가권력이 ‘농민들의 매혈운동을 조직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중국 농촌이 감당해야 했던 참혹한 피해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도 이데올로기로 주입된 ‘인민의 대한 복무’를 희화화함으로써, 호명되고 동원되는 허망한 주체를 풍자했다. 이 소설들은 독자에게 어디에나 존재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고, 더 나아가 권위주의적 체계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한 알레고리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작가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문학적 언어로 밀착해 들어가고, 독자는 자신의 경험을 작품과 밀착시키면서 ‘다른 목소리가 전달하는 진실’을 재구성해낸다. 나는 이것이 작가와 독자의 ‘알레고리적 상상력’이라고 본다. 즉, 옌롄커 소설 속 이야기들은 중국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형상화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독자인 나는 ‘알레고리적 상상력’을 통해 ‘근대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공동체 사회의 모습’이나 ‘체제의 폭력에 희생된 개인의 고통’을 곳곳에서 환기하곤 했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 ‘자존감 있는 삶의 양식’을 포기하는 것이라든지, 거대 국가권력의 일원이 됨으로써 개인의 존재가치를 지워 버리는 폭력성,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희망을 이어나가려는 삶의 윤리를 이 소설들에서 읽어냈다.
‘알레고리적 상상력’은 문학이 한 국가나 민족의 현실에만 국한되지 않은 ‘인간의 문제’에 대한 보편적 교감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환기시켜 준다. 문학적 교감은 작가가 보편적 입장에서 서사를 조탁(彫琢)해냈기 때문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 자신을 바짝 갖다 놓음으로써 독자를 자신이 구축한 세계로 초대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외국문학을 읽으면서 행복한 책 읽기를 경험하는 길도 바로 ‘알레고리적 상상력’을 통해 적극적으로 책 읽기를 했을 때 가능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옌롄커는 중국 현실과 싸우면서, 동아시아 독자들과 자연스럽게 교감하게 된 행복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