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창 시절의 어느 즈음이었다. 한국의 근대문학사가 ‘이식문학사’라는 선언을 전해 듣는 순간, 무언가가 뿌리 뽑히는 듯한 느낌, 가슴의 한 귀퉁이가 베여 버리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언젠가 더 어리던 시절, 시라는 것은 근원을 알 수 없는 뜨거움으로 다가온 적 있었고, 그 이후 시를 공부하는 것은 그 느낌을 지속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처럼 여겨졌다. 개인적으로 그것은 인문적 지성으로 다 설명되지 못하는, 영성의 에피파니를 탐구해 가는 환상적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식문학사에 대한 논변을 접하는 순간, 시에 대한 낭만적 아우라가 한 순간 제거된 듯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먼저 시가 있고, 그것의 역사적 이해를 위해 시사가 있어야 하는데, 마치 시사가 먼저 있고 그 관과 같은 좁은 틀 속에 시라는 존재가 짜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이후, 시라는 것이 삶의 전체적 섭리를 현현시키는 상처이자 틈이라고 다시 생각해 보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러한 생각은 큰 위로가 되지는 못했고, 더 이상 시라는 존재는 예전처럼 설레는 뜨거움으로 다가오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당시는 왜 그렇게 삶의 한 부분이 절훼된 듯한 느낌이 들었을까. 다소 비약이 있지만 아마도 우리의 시적 전통이 내재적 발전이 아닌 근대의 외재적 충격을 통해 이식되고 또 굳건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시라고 믿었던 거대한 무언가가 양식의 문제로 축소되는 듯하여 서운했던 모양이다. 정신을 제거하고 단지 이식될 수 있는 시형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 그리하여 시가 그저 해석될 수 있는 물질적 대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한 순간 실망감을 주었다. 끊임없이 분절화된 언어로 세계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문학이지만 그 차이의 연쇄는 결국 다자들의 상호상입 속에서 세계의 전체적 섭리를 구성하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적 언어라는 것은 중심적인 세계를 거부하는 형식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근원적 세계의 체제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형식을 지향하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수행한 형식들은 결국 시의 내용적 측면으로도 상입되어 시의 전체상을 드러내리라 믿지 않았던가. 추상적으로나마 시란 그런 양방향적인 생명의 운동이라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고 싶었다.
물론 그러한 막연한 확신을 논리적으로는 한없이 의심하면서 시를 읽어 오기는 했지만, 누구에게나 호불호는 있는 법이다. 지배적 위치의 세계를 환멸하면서 시의 실체적 근원을 꿈꾸는, 시의 세부에 충실하면서 세계의 전체상을 엿보기 위해 분투하는 시인들이 엄연히 우리의 자산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시를 그러한 양방향적인 작업으로 개방해 가는 시인들에게 개인적인 애정을 멈추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또 그러한 발길을 선구적으로 디딤으로써 시사의 창조적 진화를 이끌었던 시인에 대한 호감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이식적 시사에 대한 불편함과 이물감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크게 위로가 되는 세계적인 거목들이 있어 소개하려 한다. 중남미 문학은 물론 세계문학에서 상당한 지위와 영향력을 확보한 루벤 다리오(Ruben Dario, 1867~1916)는 우리를 대표적으로 위로할 수 있는 인물이리라. 근대문학적 양식에 정전의 자리를 그대로 내주고, 구미 중심 문학의 수렴청정을 자연화해 온 우리들에게 루벤 다리오의 시가 이루어온 위업은 가히 충격적이다. 대륙의 저편에서 피식민지인으로서 살아 온 존재들이 제국들에 대면하는 결속을 노래함은 물론, 역으로 식민 제국의 시를 변형시켜 시의 새로운 전체상을 현시해 가는 역사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피식민지인으로서 이식문학사를 순순히 수용하며 그것을 문학적 진보의 지름길로 여겨왔던 우리 민족이, 독보적인 미학을 구축하여 지역문학의 중심축이 됨은 물론 식민제국민의 보편문학사까지 새로 써 버린 세계적 시인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부러우면서도 부끄러운 경험이다. 이러한 독서 경험이 번역문학에 익숙해진 21세기 현재까지도 한없이 지연되고 있었다는 것은 더욱 더 부끄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뒤늦게나마 『AALA 문학총서』를 통해 루벤 다리오 시를 접하고, 그의 문학적 위업에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다행이긴 하지만 말이다.

 
2.
시선집 후기에서 역자가 언급한 바 있듯이,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루벤 다리오 이전과 이후로 양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스페인어권 현대시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루벤 다리오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모더니티를 적극적으로 열어낸 시초이면서, 모데르니스모(Modernismo)라는 세기말의 혁신적인 문학운동을 주도하여 향후의 모더니즘 운동에 충격을 가한 중심축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가 여행하고 체류하는 동선에 따라 중남미 문학계에 즉각적인 영향을 끼치며 자신의 문학적 개성을 라틴적 문학의 정수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49세에 그의 조국인 니카라과에서 사망하기까지 시인은 그의 고국이 속한 중남미는 물론 98세대의 후배 작가와 스페인어권 문학계에 독보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다리오의 시에 대한 혁신적 갱신 의지는 영미 모더니즘 운동보다도 30~40년 전이나 앞선 선구적인 것이었다. 또한 그의 문학은 스페인 제국의 문학에 단순 이입된 차원이 아니라 한동안 정체되어 있던 스페인 문학을 새로 부활시키는 지경을 열어주기도 하였다.
루벤 다리오는 예술 사조를 주도하였지만 그의 문학적 여정은 하나의 경향으로 일별되지 않는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당대의 물질주의적 세속화에 대한 거부는 모데르니스모 문학의 상아탑적, 순수예술지향적 성향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난 나의 시에 / 이 언어로 된 찬가의 구절들 중 / 가장 수려한 말을 담겠네”(「봄날」)와 같은 발화를 하면서도 이를 통해 “보편적인 / 리라의 전음(顫音)을 품”고자 하는 시인의 시도를 우리는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매혹적인 여인과의 개인적인 사랑을 노래할 때도 그 여인은 “세계 시민답고, / 보편적이며, 광대하고, 유일하고, 하나뿐인 동시에 / 모두이며, 신비롭고 고명한, 치명적인 여인”(「방랑」)으로 묘사된다. 순수하고 유미적인 시를 찬미하는 순간에도 보편적인 이상에 대한 추구는 포기되지 않는 것이다.
‘백조’의 고결한 ‘사랑’으로 상징되는 그의 이상주의는 이러한 세계시민적 보편성을 지향하기에 고대의 문화적 유산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다. 지역적으로는 미국과 연접해 있으면서 문화적으로 프랑스와 스페인 등 유럽의 문화권과 긴밀히 연결된 중남미의 문화는 토착 지역 문화와의 융합을 통해 그 지역 특유의 정치적 개성을 분출하는 작품들을 낳았다. 때로 그는 제국에게 발견되면서 뿌리 뽑히게 된 원주민들의 위기감을 방랑자의 뜨거운 시선으로 절절이 노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스페인이나 프랑스 문화의 자산을 놀라울 정도로 적극적으로 흡수하여 제국의 문화적 영향관계를 역전시키는 방식을 택한다. 신화적이면서도 이국적인 표지들과 참조점들을 시에 적극적으로 개방하여 혁신적인 스페인 문학의 시형 속에서 새롭게 관계화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시인의 미적 모더니티가 “환멸의 바다에서 길을 잃”(「엉겅퀴」)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탐식적 여정 속에서 새로운 사랑의 길을 찾아나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번에 발간된 시선집 「봄에 부르는 가을 노래」에는 그의 시작의 정수들이 연대기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개의 번역시가 그러하듯이 선집에 수록된 일부의 시들은 시형의 혁신적 도전을 통한 다리오의 시적 위업을 체감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여주지만, 적어도 그를 이해하기 위한 온전한 입구 정도는 마련해 주고 있다. 이 시선집 안에서 다리오는 언어적 참신함을 바탕으로 한 세계적 방랑의 황홀경을 펼쳐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헬레니즘 신화와 가톨릭 문화는 물론 동서양 문화를 망라한 이국적 풍경들의 제시, 영미 문학의 흔적 및 프랑스 고답파와 상징주의의 영향까지도 우리는 이 선집에서 어렵지 않게 감각할 수 있다. 독자에게 친절하게 제시된 222개에 달하는 시선집의 미주는 시의 혁신적 갱신을 위해 피식민지의 시인이 어떤 문화적 자산까지 포용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는 지방색에 갇혀 세계에 대해 무조건적 적대를 보이는 태도와는 거리를 둔다. 대신 근원을 잃고 방랑하는 피식민지인들의 불안정한 세계가 앞으로 어떤 조화를 지향해 나가야 하는지에 관심을 둔다. 영감의 모든 원천들을 개방하는 세계 내 열린 예술 작품을 통해, 어느 한 지역을 고립하여 바라보는 시각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인 시각으로 뻗어 나가는 근원의 텍스트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다리오의 시에서도 물론 부르주아지 현실에 대한 환멸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그의 작업을 현실에 대한 도피주의 같은 것으로 일갈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보다 그의 시에서는, 현실과 연관된 환상과 이상들이 어떠한 시적 복합체로 현시되어 혁신적 힘을 발산하는지를 주목하는 것이 더욱 합당할 것이다. 그의 시는 시적 발화와 텍스트의 외부적 세계가 따로 구분되지 않고, 안과 밖에서 서로 뒤섞여 ‘텍스트 공동체’를 이루는 형태를 보여준다. 그의 시에는 특정 텍스트가 하나의 외딴 섬이 되지 않으며, 무수한 참조점들의 성좌가 그려내는 우주적 시계가 시 세계 전반을 통해 펼쳐진다. 그의 시에는 ‘~에게’라는 부제가 붙은 시들이 많은데, 시의 화자가 시의 내적 청자와 담화해 가는 형식 속에서 그 세계를 보는 시각을 점차 확장해 가는 형태가 제시되기도 한다. 외부의 다양한 맥락들은 내부의 발화와 혼효되면서 작금의 실재적 현실을 돌아보는 장치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삶과 희망의 노래」는 곧 과거가 되어 지나가 버릴 오늘과 같이, 현재의 절단면 속에서만 흘러나오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대한 환상과 고대의 무수한 참조점들에서 근원적 생명의 양분을 얻는다. “성서에 등장하는 건장한 아담은 / 인간의 피로 살아가고, / 우리의 혀는 아직 / 사과 맛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리오는 “옛 열정이여 돌아오라, 그 열정이 강림할 때 / 불의 언어를 뿌릴 불타는 정신이여 돌아오라”고 외친다. “무한한 활동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며, “그렇게 희망은 우리 안에 영속하는 환영”이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고통이 짓누르고 불운한 운명이 / 우리를 해친다 해도 / 우리 안에는 우주의 / 수액이 흐르”(「가을의 시」)므로 시인은 세계에 대한 ‘죽음의 왕국으로“ 갈지라도 우주적 ‘사랑’의 길을 몽상하기를 선택하게 된다. 세계 속에서 “영원한 불행을 예언하는 입”이나 “불길한 별자리밖에 보지 못하는 눈을 저주”(「낙천주의자의 인사」)하면서, 시인은 세계를 환멸하는 자들이 무한한 언어의 조합 속에서 어떠한 ‘낙천’적 ‘환영’을 발견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자 한다.
“나의 노래는 어디에서 오”며 “난 어디로 가는가”를 끝없는 방랑 속에서 자문했던 다리오는 “자아와 비아(非我)의 / 광산”(「아아」)으로 들어가 “유럽의 수액”과 인본의 자산 속에서 “만국의 생명”(「아르헨티나 찬가」)을 지속적으로 노래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만국의 생명을 제압하는 물질주의적 욕망에 대해서는 과감하고 현실적인 발언을 내어 놓기도 했다. 미서전쟁 이후 패권주의가 강화되는 당대의 맥락에서 “미래의 침략자”이자 사냥꾼인 미국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며 범 라틴아메리카의 상을 그려 나가기도 한 것이다. “아득한 태곳적부터 / 빛과 향기, 사랑으로 살아가는 우리 아메리카”(「루스벨트에게 고함」)를 지목하면서 시인은 지역의 뜨거운 민족사와 고대 인류에게서 생명의 수액처럼 전해 오는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물질주의에 결코 침략당해서는 안 되는 전 세계 시민들의 희망을 놓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그런 것을 회복되어야 할 질서이자 희망적인 시적 실체라고 감각하기도 하였다.
 

3.
이러한 루벤 다리오의 시는 제국에게 이식된 문학을 현대적인 것의 원형으로 믿고 있는 무수한 피식민지인들에게는 복음과도 같은 노래로 다가올 것이다. 다리오는 그의 시를 통해 제국의 언어를 혁신하고 문화를 포월해 나간 시적 혁명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바다 건너 대륙의 저편에서 그러한 시적 혁명이 실존했다는 것은 피식민지인의 이식적 문화사를 기억하는 우리 민족에게는 매우 경이로운 전설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과제는 그러한 전설적 위업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시사 저편의 시사와 그러한 시적 혁명의 전설까지를 포함하여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시의 현대성이 어떤 전체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구미 중심의 제국시사가 아니라 시 형식의 실험과 내용적 혁신의 전체상을 포기 않는 해방의 세계시사가 다시 쓰이게 될 때까지, 독자들은 더욱 더 이방의 노래에 귀 기울여야 하리라. 그리고 이방의 노래가 지배적 노래를 새로 쓰면서 더 큰 지배적 세계에 대항해 온 역사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계기를 통해서 범 라틴주의의 시사가 원주민들의 흑색전설의 시사와 대결하는 풍경도 함께 이야기한다면 좋겠다. ‘봄’과 ‘가을’이 지나도록 우리들의 삶과 희망을, 언제나 살아남는 시적 진실의 환영을, 함께 이야기한다면 좋겠다. 우리들의 교양을 재구성한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