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목소리는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흘러나오는 순간, 일순 주위의 공기와 색깔을 변화시키는 목소리. 이전의 소리들을 휘발시키며 그렇게 자신이 놓여 있는 공간을 이전과는 다른 장소로 바꿔놓는 목소리. 이승열의 목소리 또한 그런 종류의 목소리이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낮고 느리게, 어둡고 깊게, 울지 않으면서 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목소리 자체가 얼마나 완벽한 악기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목소리의 질감만으로도 어떤 상상의 공간이 열리면서 그 공간 속을 무한히 비상하게 하는 그런 소리의 운동성, 소리의 힘을 즉각적으로 느끼게 하는 목소리. 이승열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순간은 그리하여 내게는 심리적 타격감을 남긴 사건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저주 받은 걸작으로 평가 받는 이승열과 방준석의 밴드 ‘유앤미블루’의 첫 번째 앨범은 당시 국내 음악 씬에서는 조금은 낯선 지점에 놓여 있었다. 물론, 1990년대 초반, 라디오헤드(Radiohead)의 그 몽환적이면서 우울한 루저들의 송가인 <크립Creep>(1993)을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잔인한    너>(1994), <꿈이 멈추기 전에>(1994)의 ‘뮤턴트’와 <커피 향기의 오후>(1994) 같은 곡을 부른 ‘이슈’ 같은 몇몇 모던 록 밴드들을 비롯,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댄스적인 느낌은 적은 반면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전자 기술로 믹스하는 장르의 내면적인 트랜스의 차원까지 아우르지는 못했지만, 클럽 등에서 춤을 출 수 있을 정도의 댄서블하고 소프트한 신스팝(Synthpop)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에 걸쳐서 세계적으로 유행한 팝 음악의 스타일의 물결이 형성되고 있었다. 그런데 유앤미블루는 그들과는 어딘가 다른, 약간 빗겨나 있는, 그 음악을 듣고서야 그런 음악이 가능하다는 것을 기교적 차원에서라기보다는 감정으로 육박해오는 밀도의 측면에서 알려주는 사운드였다.

 
주목 받아 마땅한 앨범들을 발표했음에도 이렇다 할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긴 공백기를 가져야만 했던 이승열. 그런 그가 어느 날 조용히 솔로 앨범을 시작으로 활동을 이어 갔고, 어느새 그의 세 번째 앨범이 도착했다. 세 번째 앨범 《와이 위 페일(Why We Fail)》은 이전의 앨범들에 비해 다소 무거운 앨범이다. 침잠해 들어가는 목소리도 목소리려니와 노랫말은 한결 더 비애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는 이 앨범 속에서 <로라(Lola)>라는 슬픔의 이름을 부르며 어둡고 무력한 존재들을 호명한다. 수렁에 떨어진 자들, 고장 난 몸으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는 자들, 지친 몸으로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꿈꾸는 자들, 세상 끝에 서 있는 자들. 그는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듯 간절히 노래한다. 이 목소리의 마디마디에는 간절한 울음이 배어 있다. 그가 두 눈을 질끈 감고 오직 그 자신의 목소리에만 집중한 채로 노래할 때 그의 목소리는 그가 전하려는 그 모든 메시지를 초월한다.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발음하는 듯한 그의 노랫말들은 그 의미를 넘어서서 그 목소리 자체로 수렴되며 슬픔의 정서를 오롯이 드러낸다. 그러나 이 기도는 어떠한가. 비애로 가득한 자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인사라고는 하지만, 이 가사들은 하나같이 암울하며 비상하는 듯 추락하는 그의 목소리처럼 어찌할 수 없는 체념들로 가득하다. 더 이상 날아오를 수 없는 순간이 오기 전에 그만 살아나라고, 그만 날아오르라고 말하지만 왠지 쓸쓸한 느낌이 묻어 있는 ‘돌아오지 않아’, ‘It's OK’를 반복하면서 괜찮아, 괜찮아, 라고 말하지만, 힘든 나날을 지나온 그 기다림의 끝에서 주어질 보상은 왜 그런지 요원해 보이기만 한다. 그리하여 그는 이런 나약한 인간적 상황을 긍정하면서도 한편으론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더 높은 차원의 존재에게 간절히 희구하는 것처럼 노래한다. 저 높은 하늘의 존재에게 이 바닥의 차가운 눈물을 보고 들어달라고 노래한다. 왜 실패하는지에 대한 답을 말하기는 힘들지만, 물론 답을 구하려고 한다면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인 답들이 있겠지만, 그 무수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좀 더 믿으라며, 그 실패 속에서 단단해져가는 거라며, 기울어진 어깨들 위에 말없이 손을 얹어준다.
 

세계는 날이 갈수록 풍요로워지는 듯하지만 그와 비례해서 비애와 절망에도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사회구조적 모순은 커져만 간다. 자신도 알 수 없는 그 시스템 속으로 흘러들어간, 흘러들어갈 수밖에 없는, 인간은 하루하루 버티듯이 견디듯이 일상을 꾸려나간다. 그 체계에서 떨어져 나온다는 것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멈춘다는 것은 실패했다는 말에 다름 아니라고 느끼면서.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에 문득문득 저항을 해보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해가는 위축감을 떨치지 못하면서. 그러나 이 세계는 과연 그렇게 속수무책이라고 느낄 만큼 견고한 것일까. 이승열은 그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그는 이 세계를 하나의 작고 둥근 점이라 여기고 바라보듯이,       줄 지어 기어가는 개미들을 내려다보듯이, 잠깐 멈추어 서서 그 자신도 모르게 학습되어 버린 가치들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신이 있었던 곳, 본래의 자신이 존재하고 싶었던 곳, 그 마음의 깊은 제자리를 떠올려본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편적인 실패의 이름으로부터도 조금은 멀어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유앤미블루로부터 시작해서 세 번째 앨범까지, 그 오랜 시간 동안 그는 줄곧 대중들과는 약간은 떨어진 거리에서, 그러나 은둔자적인, 혹은 작가적인 포즈를 취하지 않으면서, 우직하고 고집스럽게 그 자신의 노래를 만들고 불러왔다. 세상의 기대와 요구에 응답하려 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색깔을 고수하면서, 조금은 더디 가는 길이라고 해도, 조금은 힘들고 외롭다 해도, 그 자신의 심장의 북소리를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온전히 그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그렇게 간직해온 희망을 지속적으로 꿈꾸는 것이야말로, 변덕스러운 이 세계의 잠재적인 갈망과 요구를 넘어서서, 어떤 아름다움의 실체, 위로와도 같은 일상의 행복과 맞닿을 수 있는 길이라고 그는 말하는 듯하다. 이런 음악적 행로야말로 이 앨범의 메시지를 그대로 대변해주는 것은 아닐까. 
인생은 어떤 식으로든,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간다. 기쁘게, 슬프게, 느리게, 빠르게, 그렇게 순간순간 흘러간다. 순간순간 시작되고 순간순간 멈추고 순간순간 다시 시작된다. 저마다의 내면에서 울면서 노래하는 간절함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인생은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