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계의 큰형님’들이 납셨다. 그 이름도 찬란한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이들이 누군가. 플리(Flea)와 데이브 나바로(Dave Navarro) 등 <기인열전> 혹은 <화성인 바이러스>에 나와도 전혀 무리가 없을 4차원 양반들이 현직 혹은 전직으로 몸 담은 역사를 안고 있으며, 1990년대 록의 아이콘이었던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1990대 유행한 록의 장르과 그런지(Grunge)얼터너티브 록의 하위 장르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언제나 첫 장 정도에 등장함이 마땅한 팀이 아니던가. 밴드 이름을 구성하는 단어가 모두 매운맛과 연관된 것처럼, 1983년 데뷔 후 발표하는 앨범마다 강렬한 인상과 인기를 동반했던 그들이 영미권과 유럽, 일본 등 주요 28개 국가에서 1위를 거머쥔 2006년의 더블 앨범 《스태디움 아카디움Stadium Arcadium》 이후 5년 만에 신보 《아임 위드 유I'm With You》를 들고 귀환했다.
 

어? 그런데 이들의 라인업에 살짝 아니 많은 변화가 있는 게 보인다. 바로 오랜 기간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약해 온 존 프루시안테(John Frusciante)가 떠나고 그 공백에 조시 클링호퍼(Josh Klinghoffer)라는 다소 낯선 인물이 자리한 것. 전임자인 존 프루시안테가 지금까지도 밴드를 가장 대표하는 《블러드 슈가 섹스 매직Blood Sugar Sex Magik》(1991)을 비롯해 《캘리포니케이션Californication》(1999)등을 거쳐 전작인 《스태디움 아카디움》까지 핵심 주요작들을 연주해 왔기에, 대부분의 팬들은 트위터 등을 통해 사운드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를 심각하게 토로하기까지 했다. 앞서 ‘살짝 아니 많은 변화’라는 표현을 쓴 것도 바뀐 사람은 기타리스트 한 명이지만 ‘떠나간 자’의 상당한 무게감을 간과할 수 없어서였다.
 

그런데? 이것 봐라. 초장부터 아주 제대로 ‘레드 핫’스러운 아우라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첫 곡이자 싱글 곡으로도 손색이 없는 <모너키 오브 로지스Monarchy Of Roses>가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과거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느낌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하며, 이어지는 트랙들에서도 《스태디움 아카디움》에서 십분 느껴지던 중후한 사운드와 《블러드 슈가 섹스 매직》의 넘실대는 리듬감, 그리고 데이브 나바로(Dave Navarro)가 재직하던 시절 앨범인 《원 핫 미닛One Hot Minute》(1995)의 싱글 커트 넘버앨범 발매할 때 싱글앨범으로 따로 발매한 노래   <마이 프렌즈My Friends>의 차분함이 마치 영화필름과도 같이 흐른다. 록 밴드에서 기타리스트가 바뀐다는 건 보컬리스트의 변화보다도 더욱 사운드상에서의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전제한다면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이 당황스러움은 새로운 기타리스트 조시 클링호퍼의 배경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전임자 존 프루시안테와 함께 활동한 경력도 있으며 전작의 투어에서는 세션맨음반녹음이나 공연무대에서 악기를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사람 자격으로 밴드와 함께 움직인 인물이다. 밴드가 어떤 자세로 어떻게 연주를 풀어나가는지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봐오며 팀 고유의 색을 자신의 스타일로 체득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전임자가 갖고 있던 최대 장점인 융화력을 100% 그대로 전수받았다. 이는 앨범 발매일인 8월 30일에 앞서 지난 7월 18일 먼저 공개된 싱글 <어드벤처스 오브 레인 댄스 매기The Adventures Of Rain Dance Maggie>를 통해서도 살며시 나타났던 부분이며, 앨범에서는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베이시스트 플리가 가진 특유의 리듬 감각이 아직 유효하다는 점이다. 그는 지금까지 밴드가 발표한 앨범들 중에서 장점만 골라 소스로 활용한 듯 ‘여전히 팔딱대는’ 탄력을 보여준다. 게다가 피아노가 리드하는 <해피니스 러브스 컴퍼니Happiness Loves Company>와 같은 곡에서는 팝 음악만 들었을 이들도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을 매력을 얹어놓기도 했다. 그가 전작의 활동을 마친 후 음악 역량 강화를 위해 대학까지 들어가 음악 수업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 시기에 공부와 신보의 구상을 함께 도모한 것으로 판단된다. 때문에 앨범은 그들의 디스코그래피(discography)작곡가별, 연주가별, 장르별 등 특정한 목적 아래 그것에 관한 음반을 망라하고, 여러 가지 데이터를 수록한 목록 중 가장 다양한 작품 세계가 구현된 느낌을 청자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앨범의 제목 ‘아임 위드 유’가 갖는 전체적인 의미에 있다. 영국 미술가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가 직접 디자인한 앨범 재킷에 등장하는 파리와 알약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 겪었던 실수와 아픔이 현대사회의 젊은이들에게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일종의 안타까움이다. 실제 앨범 재킷에서의 파리는 여러 가지의 약을 섭취하다가 결국 죽어가는 모습이 부클릿(booklet)앨범 안에 있는 가사집에 실려 있는데, 이는 약물에 의존하는 삶이 결국은 죽음일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일부 수록곡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환각 성분을 함유한 카트잎을 씹으면서 허기를 잊는 사람들이 있다는 에티오피아를 곡의 소스로 이용한 <에티오피아Ethiopia>에 대해, 보컬리스트 앤소니 키디스(Anthony Kiedis)는 나 자신과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을 위해 약물과 알코올에 의지하지 말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전했다. 돌이켜 보면, 앤소니 키디스와 전임자인 존 프루시안테 역시 심각한 헤로인 중독을 경험한 바 있고, 밴드의 1980년대를 함께 했던 멤버 힐렐 슬로박(Hillel Slovak)은 약물 중독으로 인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으며, 이에 친구이자 멤버인 잭 아이언스(Jack Irons)이후 펄 잼(Pearl Jam)의 드러머로 활동는 “친구가 죽은 밴드에서는 연주를 못 하겠다”며 그룹을 떠난 아픈 역사도 짊어져야 했다.

예전엔 떨쳐버리고 싶어도 쉽지 않았던 과거를 스스로 찾아 헤매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렇게 파리와 알약의 이미지,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를 담은 음악으로 귀결된 건 아니었을까. 신보의 타이틀인 ‘아임 위드 유’라는 제목 역시 술과 약으로의 탐닉을 원하는 이들을 끌어내 지금은 심신이 건강한 자신들과 함께 하자는 일종의 권유일 것이다. 자기들도 과거엔 그렇게 술과 약에 끔찍하게 당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