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디밴드의 데뷔앨범으로는 이례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장기하와 얼굴들’이 2년 만에 자신의 밴드이름을 타이틀로 내건 2집을 가지고 컴백했다. 1집 《별일 없이 산다》(2009)에 쏠렸던 대중적 관심이 거의 열풍에 가까웠던 탓에 후속작을 준비하는 창작자 본인은 물론, 그의 신작을 기다리는 팬들도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마음이었으리라. 아닌 게 아니라 장기하와 얼굴들이 대중에게 알려지고 유명세를 타게 된 그간의 과정들은 여러모로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가 발현할 최적의 전제조건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런 일각의 우려 혹은 부정적 기대에 대한 명쾌한 응답을 내놓기라도 하듯 그들은 이번 작품에서 밴드라는 정체성에 부합하는 탄탄한 록 사운드를 들려준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둘러싼 몇 가지 눈에 띄는 변화를 먼저 언급해야 할 듯하다. 우선 장기하의 얼굴에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았던 검은 테 안경과 수염이 말끔하게 사라졌고, 독특한 퍼포먼스와 인상적인 코러스를 선보였던 ‘미미 시스터즈’가 밴드를 떠났으며, 대신 ‘킹스턴 루디스카’에서 활동했던 건반 연주자 이종민이 밴드에 새롭게 합류했다. 게다가 ‘산울림밴드’의 기타리스트인 하세가와 요헤이(長谷川陽平)가 장기하와 함께 이번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로 작업한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물론 이런 변화들 중에서도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사운드 자체의 변화일 것이다.
전작에서는 장기하라는 싱어송라이터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고 키치적 퍼모먼스와 재기발랄한 노랫말의 대중적 호소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던 반면, 이번 앨범에서는 무엇보다 각각의 악기들과 보컬이 서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면서 전체적으로 사운드의 조화를 추구하는 경향으로 발전했다. 한마디로 밴드음악다운 사운드로의 본격적인 변신인 것이다. 2집 앨범의 제목을 밴드이름으로 내세운 사실에서도 이들의 의도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밴드음악다운 사운드라고 하면 우리는 거의 반사적으로 모던록이나 얼터너티브록으로의 선회를 떠올리게 되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우리를 아주 먼, 낯선 곳으로 인도한다. 긴 여행을 떠나기 전 마치 준비운동을 하듯 앨범은 우선 전작과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포크록 넘버들로 친근하게 출발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그 연속성 안에서도 분명한 변화가 감지되는데 해먼드 오르간(Hammond organ)이 더해진 연주는 때로는 마치 ‘이엘오(ELO)’의 사운드를 떠올릴 만큼 펑키한 리듬으로 충만했다가<뭘 그렇게 놀래>, <그렇고 그런 사이> 때로는 텐 이어즈 애프터(Ten Years After), 무디 블루스(Moody Blues), 제너시스(Genesis)의 초기 넘버들처럼 쓸쓸하게 가라앉기도 한다.<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깊은 밤 전화번호부>, <그때 그 노래> 그리고 각 트랙들은 마치 동일한 맥락의 내러티브를 공유하듯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사실적이고도 구체적인 직설화법을 구사하는 노랫말은 우리의 일상을 24시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익숙한 풍경 속에서 현실적인 상념들을 툭툭 끄집어낸다.(“채널만 이리저리 돌리다가 꺼버리고 나면”, “가나다순으로 보다보니 일곱 번쯤 돌았구나”, “마지못해 전화기를 한 뺨에다가 얹어 놓기만 하고”, “달랑 한 곡 들었을 뿐인데도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물론 장기하와 얼굴들답게 청승맞지 않게,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앨범의 후반으로 갈수록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풍미했던 영국 프로그레시브록 음악의 싸이키델릭한 색채는 더욱더 진해진다. 앨범 마지막에 마치 연작처럼 실린 두 곡, <마냥 걷는다>와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는 가히 2집의 백미라고 칭할 만하다. 1967년에 발표된 무디 블루스의 역작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드Days Of Future Passed≫에 수록된 <더 애프터눈The Afternoon>을 떠올리게 만드는 <마냥 걷는다>에서 우리는 얼어붙은 슬픔이 천천히 녹아내리다 해먼드 오르간의 건반을 타고 위태롭게 흘러넘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파격적인 반전과 정통 프로그레시브록 사운드가 압권인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내일을 자신 있게 예고하는 듯하다. 2011년 한국에서 이런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니, 기대는 했었지만 정말 “이렇게나 멋지게 해낼 줄은 몰랐”다.

혹자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복고’라는 말로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하기도 하지만 그건 좀 어폐가 있는 것 같다. 대중문화에서 복고란, 과거에 인기를 누렸던 유행이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게 됨을 뜻하는데 장기하와 얼굴들이 추구하는 음악은 실제로 한국 대중음악에서 한 번도 주류가 되어본 적이 없으며 심지어 창작자 본인들조차도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기이한 현상을 이해하려면 복고보다는 추체험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앨범 ≪장기하와 얼굴들≫이 가진 가장 놀라운 점은 40년도 더 된 ‘늙은 음악’을 단순한 카피로 되살려낸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것이 애초부터 우리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동시대적인 음악이었다고 믿게 만드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