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40도를 오르내리던 열병을 앓은 이튿날의 기억이다. 쌉싸래한 크레졸 냄새와 분유가 섞인 토사물의 시큼한 냄새가 부유하던 소아과 복도의 풍경. 나의 기억 속에 최초로 각인된 체열검사, 시리게 빛나던 수은 체온계가 겨드랑이에 꽂혔을 때 섬뜩한 찰나의 깨달음. 아아, 나는 뜨거운 존재로구나.
인간의 체온은 음성되먹임(negative feedback)*의 기작(機作)을 통해 36.5℃로 유지된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일마저도 체온을 급격히 변동시키고 우리 몸은 이를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한 복잡한 과정을 수행한다. 이처럼 인간은 항상성(homeostasis)생체가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성질을 목표로 살아가는 항온동물(homeotherm)체온을 항상 일정하고 따뜻하게 유지하는 동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대중음악계의 여성 아티스트들은 자의든 타의든 간에 변온동물(poikilotherm)이 되고자 하는 것 같다. 빙점에 가까운 차도녀에서 발화점에 가까운 섹시녀를 넘나들며, 체온의 변동을 이겨내는 저항력을 미덕으로 여긴다. 마치 한줌의 해초로도 며칠을 버티는 변온동물처럼. 그래서일까, 그녀들의 노래는 언제나 따뜻한 사랑을 갈구(혹은 구걸)한다. 그녀들의 사랑가는 언제나 영원에 도달하지 못하고 좌절한다.
반면 대부분의 인디 여성 아티스트들은 항온동물의 본성을 충실히 이행해 나간다. 항온동물이 털과 가죽 그리고 피하지방층으로 체온을 유지하는 것처럼 인디 여성 아티스트들은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의 고집으로, 때로는 이전의 성공적이었던 롤모델을 따르는 것으로 항상성을 유지했다. 다만 요즘에 와서는 그러한 전술들이 진부해져 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이바디, 요조, 한희정, 장윤주, 박지윤이라는 너무나 다른 여성 아티스트들이 한 앨범에 담겨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을 장르와 음색, 이야기로 노래한다. 인디라는 생태계에 이처럼 여성 아티스트들의 종(種) 다양성이 희박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최고은이라는 아티스트에 대한 가벼운 정보들은 과감히 제외하겠다. 우리에게는 인터넷이 있으니까. 대신 그녀가 항상성을 유지하는 기작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카를라 브루니(Carla Bruni), 리사 오노(Lisa Ono), 노라 존스(Norah Jones)가 여전히 각광받는 롤모델이고 음악적 요소보다는 스타일의 차용이 주가 되는데, 그 이유는 봉천동 월세방에서 파리(Paris)와 도쿄(東京)와 뉴욕(New York)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런 괴리와 동경이 통기타를 들고 무대에 홀로 서게 했다면 그 결과만으로 진정성을 획득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하고 혼동하게 만드는 시대고 그런 인디음악계의 풍경이다.
최고은의 음색과 연주는 사라 맥라클란(Sarah McLachlan), 노라 존스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런 유사성의 탐색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지점은 최고은이 한글이 아닌 영어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가 자신의 롤모델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것인지, 진부함을 탈피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과감히 한글을 버리고 영어를 택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점들의 획득에 있는 것인지(영어만이 들려줄 수 있는 라임, 영어만이 전달해 주는 독특한 정서 혹은 장르에 대한 보다 절실한 구현) 단언하기에는 이 앨범에 담긴 여섯 곡으로는 참으로 난감할 따름이다. 적어도 비평하는 입장에서 확신할 수 있는 사항은 최고은이 영어로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기고 있다는 것. “확 바뀐 fantastic magical/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혀 다른 나는 fly girl/It'`s time 4 limelight 날 비추는 Highlight/니 몸은 지글지글 뜨거워져 hot like”걸 그룹 ‘달샤벳’의 타이틀곡 <수파 두파 디바> 중라고 노래하는 달샤벳의 어처구니없는 발화방식과는 확연히 다르다. 최고은은 인터뷰에서 영어로 노래하는 것에서 자연스러움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최고은의 이러한 발화방식이 노래 안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해 나갈지 아이돌 그룹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번안한 가사를 외워 불러야 하는 것과는 다른 지점의 결과물을 기대해보게 된다.

그래, 그래,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었으니 얼마나 배가 고플거나, 그래 그래…….
- 허수경, 「카라쿨양의 에세이」 중에서

ⓒ붕붕퍼시픽｜2010

 인정의 ‘그래’인가 동정의 ‘그래’인가의 문제는 제쳐두고 분명 우리나라 여성 아티스트들은 어머니란 존재의 상실에서 음악인생을 출발한다. 여성 아티스트들이 어머니로 삼아야 할 존재가 우리 음악계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의 롤모델을 끊임없이 이식해 왔던 것이고 그럼으로써 발생하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허기. 하지만 언제나 뜨거운 피를 펌프질해야만 하는 심장을 갖고 있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인식, 그중에서도 가장 따뜻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어미, 가 되어야 하는 운명. 그래서 다시 여신에서 암컷으로 전락하는 빌어먹을 회귀의 천형을 지닌 존재였던 것. 언제나 나는 꿈꾸어왔다. 누군가 이 지긋지긋한 영겁회귀를 중단시키는 새로운 종을 잉태한 어머니의 발견을. 아직 그 위대한 어머니가 될 여성 아티스트들은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최고은, 그리고 사비나 앤 드론즈, 그리고 이부영, 그리고 오지은, 그리고 수많은 ‘그리고’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나는 인디라는 생태계에 희망을 품고 있다.
* 어떤 원인에 의해 결과가 나타나고 그 결과가 원인을 억제함으로써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조절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