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각쟁이 은진>을 들었다. 일제시대 대중가요에 울고 웃으며 대중가요를 연구해 온 한 사람으로서 근대 가요 열세 곡을 다시 부른 이 음반이 그저 반가웠다. <풍각쟁이 은진>이란 음반 제목이 필자의 책 제목이었던 『오빠는 풍각쟁이야-대중가요로 본 근대의 풍경』(2006)과 겹쳐지면서 기분마저 좋았다. 책에서도 밝혔지만, 이 시기 대중가요에 트로트(당시에 ‘트로트’라는 용어는 없었다. ‘유행가’라고 칭해지던 노래 중에 오늘날 우리가 트로트라고 하는 노래들이 포함되었다)만 있는 것처럼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트로트, 신민요, 재즈송, 만요와 같은 대표적인 대중가요 갈래들도 서로 교섭하고 공존했다.

일본 대중음악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트로트, 전통가요가 대중가요화된 신민요, 서양 대중음악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는 재즈송, 그리고 코믹송(comic song)의 일종인 만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초창기 한국 대중음악을 장식한 것이다. <풍각쟁이 은진>에서 <고향>, <님 전상서>, <화류춘몽>, <연락선은 떠난다>, <구십춘광>이 트로트라면, <아리랑 낭낭>과 <아리랑 그리운 나라원제는 <가벼운 인조견을>>는 신민요, <다방의 푸른 꿈>과 <이태리의 정원>은 재즈송, 마지막으로 <오빠는 풍각쟁이>, <신접살이 풍경>, <엉터리 대학생>, <활동사진 강짜>는 만요로 이해할 수 있다. 일제시대 대표적인 대중가요 갈래에 해당하는 노래를 골고루 맛볼 수 있는 이 음반은 나이 든 이들에게는 일종의 ‘추억의 사진첩’, 젊은 사람들에게는 이 시기 대중가요의 ‘소개서’ 내지는 ‘지침서’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시기 노래에 깊은 애정을 지닌 필자로서는 이 음반의 미덕보다 한계와 아쉬움에 눈길이 머무는 것이 사실이다. 첫째, 편곡과 연주에 대한 아쉬움이다. 이 음반의 제작과 연주를 담당한 가스가 하찌 히로부미(春日博文)는 ‘하찌와 TJ’로 알려진 실력파 음악인이다. 하지만 과연 그가 적합한 제작자였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단순히 그가 일본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기타를 중심으로 한 그의 악기 편성은 일관되나, 그 일관성이 오히려 일제시대에 발매되었던 각 노래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태리의 정원>과 같은 재즈송이 그렇다. 최은진이 부른 G장조 <이태리의 정원>의 처음 8마디의 계이름은 최승희의 원곡과 다르다. 그리고 처음 두 번째 마디에서 4분 음표와 8분 음표가 뒤바뀌면서 최은진이 부른 노래의 리듬 또한 원곡의 리듬과 달라졌다. 모르는 사람은 그냥 넘어가겠으나 이 노래를 수천 번도 넘게 들어본 사람으로서는 이 부분이 이상하고 거슬린다. 게다가 탱고 밴드의 반주로 이루어진 원곡이 최은진의 <이태리의 정원>에서 기타 위주의 반주로 바뀌면서 원곡이 주는 맑고 청아한 느낌 또한 반감되었다.

둘째, 기획 취지와 선곡, 그리고 가사의 문제다. 리메이크 음반을 제작하는 일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일단 창작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는 점에서 쉬울 수 있으나 자칫하면 원곡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어렵다. 앨범의 기획 취지는 분명하지 않은데, 이는 선곡과 가사 표기에서도 드러난다. 확인되는 것만도 약 4,000여 곡이 훨씬 넘는 일제시대 노래 중에서 어떤 기준으로 13곡을 선정했는지 알 수 없다. 또한 일제시대에 발매된 노래를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되도록 원곡의 가사를 그대로 사용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과 <다방의 푸른 꿈>의 가사는 원곡과 달라져 버렸다. 물론 일제시대에 발매된 노래는 이후 시기에 여러 번 리메이크 되면서 다른 가사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가요 다시 부르기’라는 목적에 부합하려면 원곡의 가사를 살렸어야 한다.

원곡이 있다는 것은 안전함과 무모함의 경계를 오가는 일이다. 원곡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그저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날 수도 있다. 최은진의 목소리는 감칠맛이 나고 그녀의 기교는 능청스럽다. 허나 원곡이 주었던 감동과 감탄, 그리고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앞으로도 최은진의 노래보다는 지지직거리는 유성기 소리와 더불어 원곡을 더 찾을 듯하다. 그녀의 무모하지만 아름다운 도전이 반짝 행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천명의 그녀는 이제 막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의 목적지와 종착지가 어디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부디 그녀의 여행이 즐겁고 보람되기를 바란다.

ⓒ비트볼뮤직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