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매된 오지은의 2집 제목은 그저 ‘지은’이다. 지은이. 2집의 지은이는 지은이. 모든 곡, 가사의 지은이도, 노래를 부른 이도, 사운드의 윤곽을 그린 이도, 모두모두 오지은. 오지은의 1집의 제목 역시 ‘지은’. 싱글 앨범을 빼고는 1집, 2집 앨범엔 오지은 사진이 실렸다. 이 자켓 사진들은 모두 오지은의 증명사진이나 마찬가지다. 오지은은 지은으로 곡을 쓰고 노래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무대에 서는 바로 그 여자가 맞다. 처녀자리에 A형, 취미는 잠, 특기는 일어, 좋아하는 것은 외출안하기인 새침한 보통 여자 ‘오지은’이 노래하는 ‘오지은’ 맞다.

어쩌면 그녀의 앨범은 그녀의 신분증일지도 모른다. 1집과 2집의 음악적인 차이는 조금 있다. 편곡이 더 그럴듯해지고 한 마디로 더 프로다운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10년 전 주민등록증의 사진과 지금 주민등록증의 사진이 주는 차이 정도라고나 할까.

오지은이 대중적으로 주목받은 이유는 바로 그것일지 모른다. 오지은의 쌩얼, 쌩목소리, 쌩느낌을 다른 데서가 아닌 그의 음악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실제의 자신과 뮤지션인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 거리감이 없다. 그녀의 음악은 연출되지 않은 야생의 존재, 살아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하는 스냅사진처럼 우리 앞에 던져진다.

가령 이효리와 오지은을 비교해 볼 수도 있겠다. 이효리는 물론 <패밀리가 떴다>(SBS, 이하 패떴) 같은 프로그램에서 쌩얼을 보여주지만 과연 그것이 그녀의 일상생활일까. 얼마 전 신문에 난 기사를 보면 이효리는 일류 호텔 수영장에서 대기업 회장의 아들과 데이트하며 삐까번쩍한 스포츠카를 타고 다닌다. 구체적인 사실 관계는 더 확인해봐야겠지만 <패떴>에서처럼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찌개를 끓이는 효리보다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효리가 더 현실성 있어 보인다. 나도 효리를 좋아하지만 어쨌든 <패떴>은 우리의 일상에 다가와 있는 것 같아도 확실한 가짜다.

오지은을 인디(indie)냐 아니냐 이야기하는 것은 별로 생산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인디씬(indiescene)에도 다양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뮤지션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어쨌든 그와 같은 일종의 존재증명으로서의 음악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인디씬이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스타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주류 상업적 대중문화는 하나의 이미지를 현실의 정거장에 놔두지 않고 저 높이 태워 올려 신비화시킨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음악을 자발적으로 생산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인디씬은 그런 짓을 조금은 덜 한다.

오지은의 음악은 단순하고 확실하다. 유튜브(You Tube)에 올라와 있는, 그녀가 침대로 보이는 곳에 걸터앉아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데모(demo) 비슷한 버전들이 어쩌면 진본일지 모른다. 입에서 흥얼거리는 대로 나온 속내 이야기를 별 장식 없이 순간순간 흐르는 대로 붙드는 듯한 그녀의 멜로디는 자연스럽다. 그것이 좋냐 나쁘냐를 물을 수도 없을 정도다. 사람의 말투가 제각기 다른데 그 ‘다름’에 관해,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고 일일이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녀의 노래는 그녀의 말투다.

그렇다고 이 노래들이 무성의하게 만들어졌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다. 순간포착 능력이 없으면 이 멜로디들은 연기처럼 허공으로 사라진다. 이 가사들은 재떨이에 비벼 끄는 꽁초들 같은 상념일 수 있다. 그러나 지은은 과감하게 자기 방에서 자기 서랍에 들어 있는 자기 일기장을 펼쳐서 대중에게 보여주듯 그 순간들을 공개한다.
처음에는 이 말투의 개성 때문에 한발 물러서서 남의 이야기 듣듯 그녀의 음악을 듣는다. 그러나 두번 세번 듣다 보면 곧 익숙해지면서 귀를 더 기울이게 된다. 그게 오지은의 매력이다. 2집 <지은>에 실린 13곡이 모두 한 곡이나 마찬가지다. 동시에 그 열 세 페이지의 지은은 미세하게 오지은의 여러 감정들을 색색으로 물들인 다양한 자기 모습이다. 사랑의 기쁨을, 헤어짐의 슬픔을, 의심을, 아픔을, 지루함을 솔직하게 노래하는 그녀의 노래들 속에서 묘한 소울(soul)을 느낀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꺾이는 그 굴곡들을 음미하다 보면 이 싱어 송라이터(singer-songwriter)는 그런 점에서 리듬 앤 블루스(R&B)적이기도 한 것 같다.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같은 노래에서 특히 그런데 오지은의 몸 안에 있는 근육들이 꿈틀거리는 것 같다. 서른이 다 되어가는 어느 여자의 핸드백 속에 들어 있는 일상적인 시간들은 그렇게 꿈틀거리듯 우리에게 다가온다. 꿈틀거리는 것을 보는 일은 그리 편하지 않다. 오지은을 통해 물질적으로 살아 숨 쉬며 우리에게 전해지는 그녀만의 평범한 시간들은 그래서 결국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앨범<지은>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