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악은 전통과 거의 동의어로 쓰였다. 요즘은 다르다. 국악하면 퓨전(fusion)을 떠올리게 되었다. 2000년 이후 퓨전국악이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공연이나 음반을 통해서도 확연히 알 수 있다. 퓨전국악은 대중과의 소통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이런 퓨전국악을 옹호만 할 때도 아니고, 무조건 부정할 때도 아니다. 퓨전국악의 옥석을 가릴 시점이다.

정민아의 <상사몽(相思夢)>은 퓨전국악의 범주에 속한다. 음반의 타이틀에 ‘모던가야금’이란 단어가 발견된다. 모던이란 단어는 전통 혹은 과거와의 변별성을 강조한 것이다. 정민아 혹은 이 음반에서 ‘모던’은, 오늘날의 대중과 소통하고자 하는 뜻에서 선택한 단어이다.

정민아의 음반을 실제로 들어보면, 포크(folk)적인 감수성이 진하게 배어 있음을 얼 수 있다. 그는 현재 홍대클럽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이다. 하지만 장르와 분위기로 연결한다면 오히려 1970년대 명동 쉘부르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생머리의 여가수가 떠오른다. 그것이 어쩌면 이 시대의 국악 혹은 가야금에서 바라본 ‘모던’인지 모른다.

정민아의 음반에서 만난 노래 중 <상사몽>과 <노란 샤스의 사나이>가 인상적이다. 그런데 두 곡에 대한 나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상사몽>은 황진이의 시조가 바탕이 된 임을 그리는 노래로, 정민아는 이런 정서를 절절하다기보다 담담하게 해석한다. 그녀가 밤에는 클럽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이지만, 낮에는 전화상담원이라는 ‘사실’ 혹은 매스컴이 만들어낸 ‘이슈’와 가장 잘 연결되는 노래다. 담담한 그의 성음에서 어떤 초월적인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노란 샤스의 사나이>는 1961년 가수 한명숙을 통해 크게 히트한 노래로, 일본이나 타이완에서도 이 노래가 크게 퍼졌다. 25현 가야금을 반주 삼아서 노래하는 정민아 이상으로, 나는 솔직히 이 곡을 만든 손석우가 빼어난 작곡가임을 새삼 확인한다. 이 곡에 한해 정민아를 판단한다면, 그녀가 한명숙, 이성애에 버금가는 가창력을 갖고 있는가? 아니라면 정민아 특유의 목소리의 매력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의문도 갖게 된다.

<럴러바이 오브 버드랜드(Lullabay of birdland)>에선 가야금으로 탱고를 연주한다. 요즘 한국음악의 전반적인 추세일 수도 있겠지만, 탱고와 보사노바는 퓨전국악 뮤지션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들어보면 모두 2% 부족하다. 그건 국악기의 한계가 아니다. 뮤지션들의 한계다. 이런 종류의 리듬에 대한 적응력이 부족하다. 비트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도 필요하고, 리듬을 몸으로 익혀서 동물적인 감각으로 음악을 만들어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이 음반에서 정민아가 사용하고 있는 악기는 25현으로 된 가야금이다. 가야금을 통해서 피아노 혹은 하프 같은 연주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원래 가야금은 12현이다. 요즘 국악계에선 전통 가야금만을 가야금이라고 하고, 이렇게 줄 수를 늘린 악기를 다현금(多絃琴)으로 부른다. 그렇다면 정민아는 다현금으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리더로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하는  것을 가야금 병창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정민아는 ‘다현금 병창’의 선구자인 셈이다. 

25현 가야금을 주로 사용하는 경우로  가야금 앙상블 ‘사계’, 가야금 사중주단 ‘여울’, 솔리스트 ‘슬기’의 음반이 있다. 이런 음반이  다현금의 기교발전에 기여한다면, 정민아의 음반은 노래를 중심으로 다현금이 나아가야 할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일어나보니 유명해졌다는 말이 있던가? 지금 정민아는 매스컴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한 때의 관심이 아닌 지속적인 애정을 받기 위해선, 그녀의 노력이 더해져야 함을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 음반을 통해서 솔직담백한 음악을 만들어낸 정민아가 앞으로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다가올 날을 기대해본다. 이제 남은 과제는 포크적 감성과 재즈적 감성의 현명한 퓨전이 아닐까? 진정한 ‘모던’을 원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