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늦가을, 장기하라는 뮤지션이 인터넷을 통해 대중들에게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음악보다는 그 위악적인 제스처에 더 주목하였다. 미미시스터즈의 독특한 율동과 타령조의 랩, 무표정한 무대 매너와 레트로재유행의, 재연의 감성의 생경한 가사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장기하의 음악은 대중들에게 이상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힘의 원천이 단지 개그가 아님은 점점 더 확실해졌고, 사람들은 장기하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2월 말 발매한 그의 첫번째 정규 앨범은 자그마치 빅뱅과 소녀시대를 제치고 한동안 음반판매량 1위 자리를 고수하더니, 급기야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그는 <싸구려 커피>(2008)로 ‘올해의 노래’, ‘최우수 록 노래’, ‘네티즌이 뽑은 남자 아티스트상’을 연달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쯤 되면, 이제까지의 인디씬에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장기하와 얼굴들’ 1집 앨범 <별일 없이 산다>(2009)의 수록곡들을 들어보면 우리는 그의 음악이 예의 독특한 퍼포먼스와는 별개로 매우 완성도 높은 음악임을 알 수 있다. 앨범 곳곳에 김창완, 송창식, ‘송골매’의 배철수, 한대수, 신중현 등의 1970~1980년대 뮤지션의 영향이 여실히 느껴진다. 이것은 그의 음악이 여느 인디밴드의 감수성과는 확실하게 구별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영국, 미국, 일본 등의 주류 상업음악 계보에 기대는 보통의 트렌드와는 달리 이제는 망각 속에 묻힌 과거의 한국음악을 현재로 되살려 낸 것이다.

장기하의 발성과 가사를 다루는 방식 또한 아주 특이하다. 한국어를 마치 영어처럼 연음화해 멜로디에 묻어버리듯 노래하는 것은 한국가요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현상이지만, 그는 가사 하나하나를 도드라지게 드러낸다. 특히 종결어미를 의도적으로 변형시키거나(없잖아→없잖어, 말아요→말어요), “좋다”, “아주 그냥”, “이건 뭐”, “엉엉엉엉”, “찐득찐득찐득” 등의 독특한 추임새를 넣는 것은 마치 타령이나 판소리의 창법을 연상시킨다. 그에게는 ‘말하듯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하듯 말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물론 장기하를 둘러싼 (약간은 과도해 보이는) 열풍 현상이 이런 음악 형식에 대한 해석으로 모두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음악 자체만으로 보면 그는 일련의 국내 뮤지션 계보를 시대착오적일 정도로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하에게 매료되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의 음악이 “새롭다”고 말한다. 그가 가진 새로움은 과연 어떤 종류의 새로움일까? 혹자는 그의 음악이 88만원 세대의 정서를 실감나게 표현했기에 특히 20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그의 출신학교는 종종 유의미한 정황으로 슬쩍 개입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해석은 지나치게 도식적인 것이 아닐까?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 음악에는 흔히 두 개의 양 극단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철학적 노래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사랑 타령이다. 전자가 개인의 실존을 탐구하여 나아가 현실을 비판하는 사회 참여적 성격으로 귀결된다면 후자는 연애지상주의적인 절박한 감성을 과장되게 토로한다. 이 둘의 감수성은 양립이 불가할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지만 그 감수성 자체가 진지하고 비장하다는 면에서는 서로 일치한다. 유구한 세월 동안 수많은 시인들이 읊었던 내용 또한 크게 이 두 가지 범주에 해당한다. 그러나 장기하의 감수성은 이 양 극단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노랫말에는 분명 불만족스러운 현실이나 잘 풀리지 않는 연애담이 등장하긴 하지만 현실을 소리 높여 비난한다든지 미치도록 네가 보고 싶다든지 하는 상투적 메시지는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장기하의 음악에서는 왜 상투성이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까?

엉뚱하게도 장기하는 자신의 노래에다 유머라는 기제를 작동시켰다. 그것은 코미디언들이 캐롤을 부르는 식의 익살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유머」(1927)라는 논문에서 “유머는 체념적이지 않고 도전적이다. 유머는 자아의 승리를 의미할 뿐 아니라 쾌락원칙의 개가, 즉 현실적 조건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관철시킬 수 있는 쾌락원칙의 개가를 의미한다”고 말한 바 있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유머는 쾌락을 추구하는 공격적 성격의 농담과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비록 유머가 자아내는 쾌락이 농담이나 희극처럼 강렬한 것은 아니지만 “유머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또 흥이 나게 하는 것”이다.

장기하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새로움은 전적으로 유머라는 감수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중들이 그의 노래를 듣고 애호의 감정에 빠지는 것은 단순히 개그적 재미 때문만도 아니고 또 그의 출신학교나 외모에 반해서도 아니다. 유머라는 얼개 속에서 장기하는 중의성과 양면성의 자유를 만끽하고 사람들은 바로 그런 상상력에 열광한다. 장기하의 음악이 전파하는 유머가 일종의 안도감과 쾌감을 선사하는 것은 사람들이 바로 유머라는 매개를 통해 어떤 긍정적인 세계관을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장기하의 음악과 장기하를 둘러싼 대중의 애호 현상을 이해할 때 이 유머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아주 우스꽝스러운 결론에 이르고 만다. 흔히, 장기하에 대해 논할 때 “장기하 현상이 감추고 있는 진실”을 마치 거대한 음모론인 양 간주하고 지극히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그 비밀을 캐내려는 심각한 문화비평적 태도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해석은 오히려 유머의 불가해성에서 비롯된 일종의 착오가 아닐까.

유머는 우리를 즐겁게 만들고 또 그만큼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쾌감을 선사하는 유머가 있는가 하면 이해불가의 유머도 있는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유머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아이러니는 다음과 같다. 유머의 본질을 풀어 설명하려는 바로 그 순간, 유머가 지닌 마술 같은 힘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 

유머는 거의 전적으로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 전달하지만 유머는 세상에서 가장 배우기 힘든 언어에 속한다. 유머는 비극적 감수성과는 달리, 번역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언어권 안에서만 성립하는 지극히 문화의존적인 감수성이기 때문이다. 중세의 유머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알려진 프랑수아 라블레(Francois Rabelais, 1483~1553)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우리는 불가해한 유머가 과연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현대의 독자들이 라블레의 소설 『팡타그뤼엘Pantagruel』(1532)로부터 얻는 것은 통쾌한 웃음이 아니라 오히려 극심한 고통이다. 난해한 조어와 합성어, 비속어,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의미한 말의 홍수에 독자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독자와 소설가 사이에 놓인 공간적, 시간적, 언어적, 문화적 거리가 라블레 소설이 가진 유머의 힘을 모두 빼앗아 버렸다. 과연 라블레 동시대인들은 『팡타그뤼엘』의 유머를 곧바로 이해했던 것일까? 바흐친(Mikhail Bakhtin, 1895~1975)은 “세계사의 모든 행동에는 웃음의 합창이 수반되어 있었다. 그러나 모든 시대에 다 라블레 같은 지휘자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나로서는 라블레의 동시대 독자들이 모두 라블레의 지휘에 맞추어 한결같은 웃음 합창을 이루어내는 모습은 결코 상상할 수 없다. 라블레 소설에 등장하는 부조리한 상황들이 실제 16세기의 웃음 코드를 반영한 것은 분명할 터이다. 그러나 라블레의 텍스트는 외견상으로는 상스럽고 외설적인 이미지가 주를 이루는 것 같지만, 말의 형식을 깨뜨리고 부조리를 창조해내는 방식은 인문학적 지식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아마도 당대의 소수 교양 있는 독자만이 그의 텍스트를 읽으며 은밀한 웃음을 지었으리라.

사람들이 유머에 열광하게 되는 것은, 형식의 파괴와 의미전복이라는 일탈적 즐거움과 긍정적인 세계관에 대한 감화라는 두 측면 외에도 유머의 배타성 때문이기도 하다. 유머를 접했을 때 우리가 느끼게 되는 즐거움 속에는 아마도 ‘이건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것이야. 그런데 바로 내가 그 유머를 즉각적으로 알아들었어’라는 일종의 특별한 쾌감도 포함하고 있다. 특정한 표지를 가진 사람들, 이를 테면 같은 직업의 사람들이라든지 같은 모국어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통용하는 유머의 독점성은 유머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비밀스러운 연대감과 우쭐함을 선사하는 게 아닐까. 만국공통어라는 웃음이 배타성을 통해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이야말로 웃음이 가진 가장 불가해한 역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광하는 대중들의 반응과는 달리 장기하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가가 종종 싸늘한 폄하로 흐르는 것은 일견 라블레가 비난해마지 않았던 아젤라스트(agelst)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아젤라스트는 프랑수아 라블레가 만들어낸 수많은 신조어 중의 하나로, ‘웃지 않는 사람’ 혹은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을 뜻한다. 장기하의 음악이 품고 있는 중의적인 유머를 즉각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젤라스트들에게는 뮤지션의 추임새나 율동, 노래 가사 하나하나가 무슨 계급적 단서라도 되는 양 심각하게 비쳐질 것이다. 장기하의 노래는 실존이니 연애니 심각하게 읊어대는 시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 유머와 상상력으로 충만한 소설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장기하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작사, 작곡을 했다는데, 이 노래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라고 묻는 아젤라스트적인 질문에 바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것을 말로 할 것 같았으면 노래를 안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