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중음악의 위기에 대한 우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음반시장의 침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음악계의 빅스타가 사라져버린 현실에 대한 한탄이다. 대중음악은 좋은 음악과 무대도 중요하지만, 그것의 대중적 인기와 상업적 성공의 핵심은 스타뮤지션의 존재이다. 수려한 외모나 댄스실력, 가창력만으로도 ‘반짝’ 스타의 반열에 오를 수는 있겠지만, 한 시대를 관통하는 대중문화 아이콘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내로라하는 스타 가수들이었지만 신승훈, 이승환, 김건모, 조성모, 박진영 등은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존재로 부상하지 못했고 비와 이효리, 그리고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지만 그들 역시 대중들을 즐겁게 하는 엔터테이너 이상의 지위를 갖지 못한다. 오히려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이미자, 신중현, 조용필 등 이러한 위상에 어울리는 이름들을 꼽을 수 있게 된다. 이쯤 되면 누구나 떠올리게 되는 이름이 있을 것이다. 바로 서태지이다. 다른 시각도 있을 수 있지만 그는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고도 대중들과 매체에 늘 회자되며 선도자적 추앙을 받고 있는 거의 유일한 스타뮤지션인 것이다.

서태지가 정규앨범에 앞서 4곡을 담은 싱글앨범 <Seotaiji 8th Atomos Part Moai>를 발표했다. 그의 컴백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파격적인 음악을 가지고 나올까’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는 국내 대중음악계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장르의 음악으로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 왔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컴백홈Come Back Home>을 통해 동양인 아이들 버전의 갱스터 랩(gangsta rap)을 들고 나왔고, 솔로 데뷔 이후 외국에선 한물 간 얼터너티브 메틀(alternative metal)1 이나 하드 코어(hard core)음악2 을 가장 혁신적인 음악으로 둔갑시킨 바도 있다. 그리고 7집 앨범 <Seotaiji 7th Issue>에서는 이모코어(emo-core) 감성코어라는 해괴한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그런데 이번 컴백에서는 정규 앨범이 아직 나오지 않아 본격적인 평가는 어렵지만, 일단 싱글 곡들은 다소 평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묵시적인 가사와 육성을 왜곡시켜 표현하는 현란한 보컬은 여전하지만, 기존 앨범들에 비해 소프트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의 비중이 강화된 것 같다. 그 스스로는 ‘네이처 파운드(Nature Pound)’라고 설명한다. ‘자연’에 ‘(리듬을) 잘게 쪼갠다’는 뜻의 ‘파운드’를 붙인 말이라고 하는데, 역시 기존의 자신의 음악과 다를 뿐 새로운 스타일과 방법론을 개발한 것은 아니다. 혹자는 일본에서 태생한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3 음악 장르인 시부야케에(谷系)4를 거론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사운드가 살랑거리는 것은 또 아니다. 어쨌든 서태지의 음악 팬이라면 여전히 세련된 사운드와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 다른 가요와 뭔가 다른 기묘한 무드에 매료될 만하다.

서태지  

신비로운 불가사의의 하나인 이스터섬(Easter Island)의 모아이석상 이스터섬에 있는 사람 얼굴 모양의 석상에서 모티프를 얻은 타이틀 곡 <모아이Moai>는 ‘네이처 파운드’라는 그의 설명답게 잘게 끊어 치는 비트와 부드러운 키보드 연주를 바탕으로 대중친화적인 멜로디를 전개하는 일렉트로닉 팝이다. 대중성을 의식하면서 최근 경향인 소프트한 전자음악 스타일로 채색되어 있는데, 파격과 극단을 기대했던 입장에서는 심심하고 평범하지만 정교한 사운드와 세련된 멜로디는 역시 완성도가 높다. <휴먼 드림Human Dream> 역시 멜로디와 연주 자체는 대학가요제에 나오는 밴드들의 곡마냥 평범한 소프트 록(Soft rock)에 가깝지만 ‘뿅뿅’거리는 전자음을 삽입하여 복고풍 일렉트로니카의 색채를 입혔다. 그가 자주 구사하는 거친 록 사운드는 세번째 트랙인 <틱톡T’ikT’ak>에서 부분적으로 등장한다. 이 곡은 거친 기타 리프에 현란하고 기계적인 비트를 조합하고 중반부에 현악연주까지 삽입하는 다양한 사운드로 비교적 실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서태지가 영감을 얻은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  

“여행하면서 느낀 자연의 불가사의와 초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음악에 담았다”라는 그의 설명이 사운드와 가사에 어떤 식으로 녹아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도시의 일상을 떠올리는 내용을 담은 <모아이>의 가사는 모아이석상들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적절히 차용하긴 했지만 ‘도시’와 ‘자연’을 대비시키는 이분법과 감상주의에 빠져 있으며, 지구의 신비로운 광경에 외계를 대입하는 방식도 <엑스파일The X-Files> 시리즈 등으로 익숙해진 초자연주의적 포장일 뿐이다.

<모아이>뮤직비디오장면    

서태지의 최근 음악은 자연과 신비를 표방하지만 도시적이고 디지털 의존적이다. 그는 늘 미디어와 대중으로부터 일정 정도의 거리를 둔 ‘명민한 은둔자’의 입장을 취하면서 파격적인 음악과 행보를 통해 미디어와 대중을 이끌어 간다. 당연히 드러내지 않는 전략을 통해서. 물론 모두들 이를 모르지는 않지만 척박한 국내 대중음악계의 현실과 미디어는 그의 영웅적 스타성을 필요로 한다. 이제 서태지의 신화는 깨질 필요가 있으며 그의 음악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노력과 음악 자체만을 즐기는 태도가 뒤따라야한다. 이번 앨범이 그 계기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주)

1      1990년대 초 상업적인 LA메틀에 대한 대안적 음악.

2      뉴메틀, 랩코어 등을 포괄하는 용어로 과격한 기타 리프와 랩이 혼합된 것이 특징적임.

3      전자음악을 기초로 재즈, 댄스 등 갖가지 장르를 혼합하는 광범위한 장르로 전자음의 합성, 반복적 리듬 등이 특징적임.

4      일본 도쿄의 시부야를 중심으로 유행한 일렉트로니카 음악. 박자를 세밀하게 쪼개 통통튀는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

 1972년 서울생. 대중음악웹진 <웨이브> 편집위원. 최근 글로 「허공의 성」 등. jyook@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