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의 계승자는 누구였나

음반-한대수 40주년 기념음반 《Rebirth : Hahn Dae Soo 40th Anniversary》(2015.04) 

나도원

한대수처럼 대중성을 획득하며 장르의 긴장을 유지한 예는 찾기가 쉽지 않다. 대중예술은 대개 자아성찰을 거쳐 관계와 소통으로, 그리고 교류와 연대로 나아가는 단계를 밟아왔다. 한대수 역시 “외국물 먹은 히피청년”에서 “모던 포크의 전파자”라는 인증서를 스스로 발급하였고, 후대에는 후배들에 의하여 실험적인 로커로 재평가 받았다. 사실 초기에도 록을 하고 싶었으나 당시 한국에는 공감이 가능한 연주자가 많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포크에 가까운 스타일이 된 사정이 있었다.

1968년과 1974년 그리고 2015년

이미 한대수는 또 다른 40주년이었던 2008년에 헌정음반을 선물 받은 바 있다. <물 좀 주소> 한 곡을 열두 팀이 저마다 독특하게 해석하는 방식의 트리뷰트앨범 《물 좀 주소》이다. 코코어, 불싸조, 어어부밴드 등 언더그라운드 내지 인디밴드들이 중심이 된 프로젝트였다. 한 곡을 여러 음악인들이 제각각 재해석함으로써 활발한 분화가 이루어진 인디음악의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신을 일구어왔음에도 이전 세대와 단절된 집단으로 오해받았던 인디음악인들이 선배음악인에게 존경을 표함으로써 정신은 모습을 바꾸어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잠복과 돌출에 의한 불규칙한 연속이 음악적 계승의 실제이며, 혁신의 가능성이 꾸준히 모색되어왔음을 보여준 한 조각이다. 같음의 확인이 공감이고 다름의 인정이 존중 아닌가.

《물 좀 주소》가 1968년부터 시작한 활동을 기점으로 했다면 《Rebirth : Hahn Dae Soo 40th Anniversary》는 음반 《멀고 먼-길》 발표 시점인 1974년을 기준으로 잡았다. 1968년과 1974년 사이에는 음악인들이 대개 그렇듯이 한대수 역시 활동이 순탄할 리 없었고, 노래는 있으나 음반은 없는 인사로 지내야 했으며, 병역도 마쳐야 했다. 대신 김민기와 양희은이 <바람과 나>와 <행복의 나라>를 불러주어 노래가 살아남았고, 사회로 돌아온 한대수도 음반을 낼 수 있었다. 그러고도 40년 넘게 흘렀다.

이 정도라면 거장의 칭호를 받고 음반사를 통하여 헌정음반이 나왔을 법 하다. 하지만 신중현․산울림․김현식․김민기를 위한 작품은 진즉에 만들어졌으나 한대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방식도 특이하다. CBS 라디오 프로그램의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고, 제작비도 소셜 펀딩과 후원 그리고 재능기부로 이루어졌다. 미담처럼 들리지만 아티스트의 위상을 생각할 때에, 그리고 이 작업에 참여한 음악인들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보상을 고려할 때에 그저 훈훈해하고 말 일은 아니다. 1968년과 1974년에 음악인들은 음악성에 비례하는 주목과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러면 2015년에는 달라졌을까?

아직, 살아있네!

《Rebirth : Hahn Dae Soo 40th Anniversary》를 들으며 ‘아직, 살아있네!’를 홀로 읊조렸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그 뜻 말고 다른 뜻이 더 있는데, 곧 속내를 드러낼 것이다.

좋은 리메이크의 최우선 조건은 투철한 실험정신과 아우라의 극복… 등등이 아니다. 원곡을 모르는 사람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때 개성의 강조와 원곡의 매력 살리기의 균형이 중요하다. 개성에 치우치면 원곡이 재료로 강등되고, 원곡에 매달리면 리메이크의 이유와 의미가 감소한다. 양자가 조화를 이룰 때에 좋은 리메이크라 말할 수 있다. 내 귀는 여기에 관심이 많다. 이보다 더 좋은 경우는 원곡조차 스스로 발견하지 못해 감추어질 수밖에 없었던 매력을 끄집어내고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숨어있던 멜로디 혹은 코드 진행 혹은 잠깐 지나가버렸던 효과가 살아남으로써 원곡보다 더 유명한 곡으로 다시 태어나는 동력을 얻은 사례가 간혹 있다. 내 가슴은 여기에 관심이 많다.

전인권은 <자유의 길>을 처음부터 자신의 곡이었던 양 부르고, 또한 썩 잘 어울린다. 그 자신이 이미 알 스튜어트(Al Stewart)의 <Palace of Versailles>를 번안하여 리메이크 한 <사랑한 후에>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린 역사를 가지고 있다. 비록 시차는 있을지라도 전인권은 한대수와 비슷한 정서와 분위기를 지닌 시대를 경유해온, 그리고 함께 나이 들어온 사람이다. 반면 YB는 리메이크 전문가들답게 선곡부터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행복의 나라>를 택했고, 편곡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스타일에 머물렀다. 몽니 역시 <멍든 마음 손에 들고>를 공연장의 흥을 돋우는 용도에 적당한 곡으로 바꾸어놓았다. 이런 곡들보다는 차라리 김목경과 신대철, 김도균과 손무현이 잼을 하는 것처럼 연주한 <Run Baby Run>이 현장에서 반응을 더 이끌어낼 것이다.

이 음반이 발표된 지 다소 시간이 지난 덕에 앞서 나온 기사와 평가를 찾아볼 기회를 얻었는데, 위에 언급한 곡들 중 일부에 대한 언급에 도저히 동의하기 힘들었다. 특히 조영남의 <바람과 나>는 단지 ‘조영남스러운’ 노래였는데, 전혀 다른 감흥을 지닌 사람도 있었다. YB와 조영남 그리고 몽니에게 공연 레퍼토리가 하나 더 늘어난 정도 아닌가. 또한 이현도와 MC메타의 <물 좀 주소> 역시 앞서 언급한 헌정음반 《물 좀 주소》 중 한 곡 정도로 족한 수준이다. 이 간극을 확인하며 오만하게도 ‘아직, (내 귀가) 살아있네!’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자부심에 빠져버렸다. 섬세한 팝 스타일로 변신시킨, 실은 근래 자신이 주로 부르는 방식으로 노래한 호란의 <그대>처럼 호감을 주는 곡들과 세리모니에 불과한 합창곡 <하루아침>이 뒤섞여 있는 음반이다.

그리고 이상은과 강산에가 있었다

그러나 이 불만을 상쇄시킨 사람들이 있다. 이상은과 강산에다.

한대수의 꾸준한 행보를 지켜본 사람들이 인정하는 앨범이, 이번에도 기획을 주도한 손무현과 함께 한, 《무한대》(1989)이다. 여기에 실린 아름다운 명곡이 <One Day>이다. 한대수의 현재를 알고, 심지어 1990년대 이후 한대수와 함께 여러 공연을 함께 했으며, 그 자신의 음악여정도 비슷한 음악인이 이상은이다.

지금까지 이상은의 음악 여정은 셋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기간은 가장 짧았음에도 한대수처럼 일반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버린 초기 아이돌(!) 시기와 1990년대부터 음악 구도자로서 작품을 만들어내며 자신의 영토를 개척하게 된 시기, 그리고 2000년대 들어 대중성과 예술성의 접합 혹은 절충을 모색하는 동거기가 그것이다. 어떤 이들은 아직도 이상은을 <담다디>를 부른 선머슴 같은 여자가수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그는 시대의 걸작으로 인정받는 《공무도하가》(1995)와 색다른 시도를 더한, 아니 실은 덜어낸 《외롭고 웃긴 가게》(1997)를 통하여 다른 차원으로 비상했다.

그의 곁에는 하지무 다케다와 이즈미 와다와 같은 일본의 베테랑 뮤지션들이 있었고, 그 무렵을 지나면서 장필순과 함께 한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대표하는 지위를 얻게 된다. 그러면서 모종의 가치지향성을 지니게 된다. 무려 스무 장 가까운 정규음반들에 공을 들여오며 생태와 여성성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 의식과 세계의 매개를 시도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관심사, 거창하게 말하면 사상과 음악의 일치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상의 조건과 의미에서 이상은의 는 탁월한 선곡이었으며, 진취적인 밴드사운드의 충실히 구현이라는 점에서도 훌륭하다.

<옥의 슬픔>을 부른 강산에는 어떠한가. 한대수가 ‘실험’이라면 강산에는 ‘줏대’이다. 그의 여러 곡들이 안에서, 그리고 바깥에서 다채로운 시도와 만나왔다. 한국 사투리와 중남미 언어의 유사성을 교묘히 발견해낸 <와그라노>의 재치, <떡 됐슴다>(2011)를 비롯하여 여러 곡에서 부산 사투리의 맛을 제대로 살려 부르곤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리고 한대수를 향한 오마주가 아닌가 싶은 <명태>를 통하여 아쟁과 스크래치, 록과 가곡을 한데 섞으며 얽매이지 않은 음악적 기질을 웃음과 함께 담아낸 바 있다. 피아노와 스트링 그리고 목소리의 힘만으로 이끌어가는 <옥의 슬픔>은 단연 이 프로젝트의 성과이다. 강산에 역시 부모들의 슬픔을 바라보며 살았고, 회한이 담긴 노래를 여럿 만들어왔다. 정서라고 하든 정감이라고 하든, 그런 것이 통하는 강산에는 <옥의 슬픔>을 자신의 곡처럼 부른다. 자기 식으로 소화했다는, 그 흔한 칭찬이 아니라(그것이 어떻게 칭찬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정말 자신의 곡으로 부른다.

전설은 이어받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 만드는 것

10년 전, 한대수의 신촌 오피스텔에서 음악인 대 비평가로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나이를 기준으로 삼자면 젊은 방문객도 꽤 오래 음악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가 단호히 말했다. 하지 말라고. 음악을 해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어떤 음악을 지향하고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묻지도 않은 채 그런 말을 하는 모습에 반발심이 발동할 법도 했겠지만, 바로 동의했다. 성공한 스타들 중에 자신을 포함시킨 것 같지 않았으며,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한대수의 머리칼이 검었을 때나 하얗게 변한 지금이나 딱히 변한 건 없다. 한대수와 같은 이가 음반을 한 장 더 낼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그는 기막힌 곡들이었던 <호치민>과 <먼지>처럼 비판 의식과 자유분방한 음악의 결합체인 <I Surrender>를 새로이 만들어 들려준다. ‘아직, (한대수가) 살아있네!’이다. 간혹 혹자들이 한대수의 계승자는 누구인가 자문한다. 그러나 이 글의 제목은 ‘계승자는 누구였나’라는 과거형이다. 우리 곁에는 이미 그런 이들이 있었다. 이미 그만한 자격을 지닌 음악인들이 있었다. 현존하는 예술가를 전설로 만들어버릴 것이 아니라 계속 담장을 넘나드는 현재의 그를 재발견해야 한다. 담장을 넘어섰던 전설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지금도 분전 중인 새로운 전설을 발견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진보한다. 극단의 선을 넘음으로써, 극단이 더 이상 극단이 아니도록 함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