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사진 하나가 올랐다. 서울 시내의 대형 음반 매장으로 짐작되는 곳에 조용필의 열아홉 번째 정규작 《헬로우^Hello》(이하 《Hello》)를 따로 진열해 놓은 매대를 찍은 사진이었다. 매대는 텅 비어 있었다. 사진이 오른 인터넷 커뮤니티는 아이돌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이는 곳이었다. 게시물 밑에는 ‘굉장하다’, ‘존경스럽다’ 등의 덧글이 적혀 있었다. 이 사진과 그에 따른 반응은 조용필의 새로운 음반이 어떤 반응을 얻고 있는지를 요약한다.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 조용필은 7080세대의 ‘가왕’도, 과거의 영광으로 사는 ‘거장’도 아니다. 그는 2013년 상반기의 가장 ‘핫’한 뮤지션이다.

 조용필이 이렇게 화려하게 복귀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 2003년 발표했던 18집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는 시장에서 무관심에 가까운 반응을 얻었다. 곧 만들겠다던 19집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뤄져 갔다. 공연은 늘 매진을 기록했지만 이미 그는 음악사^史의 흐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역사를 써 가는 뮤지션이 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10년 만에 나온 《Hello》는 그 흐름을 극적으로 되돌렸다. 홍보부터 심상치 않았다. 포털 사이트에서 티저 영상과 음원을 선 공개하며 관심을 끌어올렸다. 기자들과 평론가 등을 초청해서 음감회를 갖는 등의 전통적 방식도 빠지지는 않았지만, 발매 후에는 지상파 방송이 아니라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쇼케이스를 가졌고, 음악 인생 처음으로 록페스티벌 무대에 서기로 했다. 음악 작업에서도 큰 변화를 보였다. 외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외국 작곡가의 곡을 받았고, 버벌 진트와 김이나 등의 ‘젊은 피’가 가세했다.

 ‘여의도’를 벗어나 ‘네트워크’로 발걸음을 옮긴 이 전략이 오늘의 젊은 음악 팬들에게 다가가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화살은 과녁에 명중했다. 씨디^CD는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18만장이 팔렸다. 음원 사이트에서도 ‘줄 세우기’(음반 수록곡 전곡이 1위부터 나란히 순위에 오르는 것)와 ‘지붕 뚫기’(실시간 점유율 그래프가 표시할 수 있는 한계를 넘는 것), 그리고 ‘올킬’(각 음원 사이트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하는 것)을 모두 달성했다. 화제성에서나 성적에서나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싸이의 <젠틀맨^Gentleman>을 넘어섰다. 대중은 열광하고 후배 가수들의 찬사가 트위터에서 물결쳤다. 상황이 워낙 잘 돌아갔기 때문인지 《Hello》 자체의 완성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적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찬사를 바치는 게 거장에 대한 예우는 아닐 것이다.

* 《Hello》 : 거장의 베타 테스트

 《Hello》는 조용필이라는 존재의 음악 외적 맥락 없이 감상하기 어려운 음반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이 음반은 ‘조용필임에도’와 ‘조용필이지만’으로 나뉜다. 전자는 반세기에 가까운 경력을 유지해 온 거물 뮤지션이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지금의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다. 평론가 김학선의 말마따나 “여기에서 ‘사실^fact’은 새롭다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미디어에선 앨범에 대한 분석보다는 ‘새롭다’와 ‘훌륭하다’가 마치 연결된 것처럼 관성적으로 극찬을 쏟아^{”『한겨레21』제959호}내는 지점이 여기다. 덧붙이자면 미디어가 관성적으로 극찬을 쏟아냈다기보다는 그런 극찬 자체가 미디어의 관성이라는 점을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움과 훌륭함을 무비판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대중예술의 홍보에서 가장 기본적인 전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조용필임에도’가 조용필이라는 존재의 음악 외적 맥락을 감안하면서 음반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조용필이지만’은 음반에 대한 보다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Hello》는 잘 조율된 사운드를 통해 트렌드에 대한 ‘촉’을 유감없이 드러냄에도 전체적으로 합이 잘 맞는 음반은 아니다. 그건 음반이 다양한 스타일을 과시하기 때문이 아니다. 다채로움은 언제나 조용필의 장점이었다. 문제는 곡 자체에 있다. 미카^Mika와 같은 뮤지션을 연상시키는 <Bounce>에서 통통 튀는 리듬과 깨끗하게 다듬어진 편곡은 조용필의 까끌까끌한 보컬과 계속 충돌한다. 원 디렉션^{One Direction} 같은 영·미권 아이돌 그룹의 곡이라고 해도 믿을 젊은 사운드와 “한참을 망설이다 용기를 내/밤새워 준비한 순애보/고백해도 될까”와 같은 가사 사이의 부조화도 크다. 마룬 파이브^{Marron 5}와 같은 댄서블한 로큰롤을 선보이는 《Hello》와 <충전이 필요해>, 테크노와 록 기타를 결합한 <서툰 바람>, 클럽 댄스 사운드를 적극 차용한 <그리운 것은>도 마찬가지다. 다시 한 번, <그리운 것은>의 단단한 하우스 비트 위를 흐르는 “속삭이는 향기 찾아/매화꽃이 만발한 그곳에/고이 흘러내린 달빛”이라는 가사는 진지한 것만큼이나 어색하다.

 그래서인지 《Hello》에서 조용필의 새로운 시도는 ‘완성형’이나 ‘음악적 대통합’이라기보다는 ‘베타 테스트’에 더 가깝게 들린다. 종종 짜릿한 순간이 터지지만, 그는 아직 지금의 유행과 자신 사이의 균형을 끌어내는 정확한 답을 얻어낸 것 같지는 않다. 다른 한편 자주 언급되지 않는 음반의 다른 부분, 즉 ‘옛 조용필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곡들은 섬세하게 조율되어 있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걷고 싶다>는 올드팬뿐 아니라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등에 익숙한 젊은 팬들도 사로잡을 만한 곡이다. 최근 50대를 조명한 책^{『그들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을 낸 송호근 교수가 가사를 쓰고 조용필이 유일하게 작곡한 곡인 <어느 날 귀로에서>는 오랜 팬들에 대한 연서에 다름 아닌 것처럼 들린다. 밝고 상큼한 팝-록 넘버인 <설렘> 같은 경우 곡 자체의 인상이 강한 편은 아니지만 ‘모던’하면서도 안정적인 소리를 들려준다.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것과 옛 것이 가장 균형을 잘 잡은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 ‘포스트 아이돌’ 시대?
 이쯤에서 《Hello》가 등장한 타이밍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 각자의 위치에서 보는 관점이 다르긴 하겠지만 현재의 음악시장이 ‘포스트-아이돌’ 시대를 맞이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의견을 꺼내 보는 게 큰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아이돌의 생존전략은 불특정 대중에서 확고한 팬덤^fandom 중심으로 옮아간 지가 제법 된 것 같은데, 이를테면 그건 체감할 수 있는 ‘히트곡’과 ‘음원차트 1위곡’ 사이의 괴리가 커져 가고 있는 현실에서 상대적으로 강고한 팬덤을 갖고 있는 남성 그룹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에스엠^SM이나 와이지^YG 엔터테인먼트뿐 아니라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발표하는 신곡들은 점점 복잡하고 현란해지면서 ‘팬들만이 알아듣는 언어’로 바뀌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는 확연히 꺾였고, 한편에서는 <나는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 등의 지상파 프로그램들이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존경을 꾸준히 바치면서 ‘진짜 음악’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시청자를 유혹해 왔다. 지배적이던 흐름은 물러나기 시작했고 새로운 경향은 도래하지 않은 일종의 공백기가 제법 오래 지속되는 상황에서 간간이 뜻밖의 히트작들이 나왔다. 버스커 버스커가 그렇고 싸이가 그랬다. 이번에는 조용필이다.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거장이 ‘젊은이에게 뒤지지 않는’ 음악이 아니라 ‘그냥 젊은’ 음악을 들고 나왔다. 신^新과 구^舊, 안과 밖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순간이다.

 하지만 그 다음은? 《Hello》가 차트에서 사라진 다음에는 어찌될 것인가? 조용필에게 기꺼이 지갑을 열었던 ‘어른’들은 그때 가서는 누구의 음악을 들으러 갈 것인가? 새로운 음악을 듣기는 할 것인가?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중요한 건 조용필이라는 개인의 성공보다는 그 성공이 ‘잠재적’인가 ‘일회적’인가를 가늠해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룹보다는 솔로 뮤지션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인디 씬에서도 주목할 만한 결과물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다른 언어와 스타일을 가진 음악이 그 공백에 진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때 ‘공백에 진입한다’는 건 새로운 트렌드가 시장을 독점하길 바란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다양성’이 유지될 수 있을 정도로 시장의 균형이 잡히길 바라는 기대에 가깝다. 물론 현재로서는 어떤 추세가 보인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아직 좀 성급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언뜻 ‘일회성’으로 보이는 현상들이 ‘거장의 복귀’나 ‘깜짝 히트’를 넘어서는 어떤 패턴을 드러내게 될 때까지 관심을 두고 지켜볼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