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이 글은 비틀즈(The Beatles)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하는 글이다. 올해가 2013년이니 비틀즈가 데뷔한 해는 1963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이미 작년 2012년에 비틀즈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하는 많은 행사가 국내외적으로 개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비틀즈의 데뷔연도는 1962년이라는 말이 된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어릴 적부터 밴드 활동을 함께 한 존 레논(John Lennon),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이 비틀즈라는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이고, 데뷔 싱글  《Love Me Do》를 발표한 것은 1962년의 일이다. 같은 해 발표한 두 번째 싱글 《Please Please Me》가 영국 차트 1위에 오르면서 비틀즈는 명실상부한 대 스타가 된다. 그리고 이 곡을 기점으로 전설적 팬덤인 비틀마니아(Beatlemania)가 태동한다. 즉 비틀즈는 1962년에 이미 모든 것을 이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3년을 비틀즈의 원년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해에 이들의 영국 데뷔 앨범  《Please Please Me》가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아티스트에 대한 평가는 앨범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아무리 히트곡을 많이 생산했다 해도 명반으로 평가되는 앨범이 없으면 비중 있는 아티스트로 대접받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첫 앨범의 발표 연도를 비틀즈 역사의 기점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들을 단순한 대중 가수가 아닌 진지한 아티스트로 간주한다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데뷔 앨범  《Please Please Me》이후 그룹이 해체한 1970년까지 7년 동안 비틀즈는 총 11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그 외에도 다수의 싱글 및 사운드트랙 앨범을 완성했다. 통상적으로 1년에 앨범 한 장 정도를 내는 오늘날의 추세와 비교할 때, 참으로 놀라운 생산성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만들어진 앨범의 대다수가 역사에 길이 남는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음악정보 사이트 올뮤직닷컴(allmusic.com)의 평점을 보면 <Let It Be>와 <Yellow Submarine>을 제외한 모든 정규 앨범이 별 다섯 개 만점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Yellow Submarine>은 연주곡 중심의 사운드트랙 앨범으로서 제대로 된 비틀즈 작품이라고 하기 어렵고, <Let It Be>의 평점은 만점에 가까운 별 네 개 반이다. 이는 결국 이들의 앨범 중 하나도 빼놓을 것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이들의 왕성한 생산력이 돈을 목적으로 한 무성의와 날림의 결과가 아니라 주체할 수 없이 치솟는 창조력의 산물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비틀즈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다. 올드 팬들에게는 학창시절을 함께한 추억의 명그룹일 것이고, 비틀즈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젊은 음악 팬들에게는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 판매고를 올린 전설의 팝 밴드일 것이다.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비틀즈는 <Yesterday>, <Let It Be>, <Hey Jude> 등 불멸의 명곡을 남긴 최고의 아티스트일 것이다. 그러나 문화혁명가로서 비틀즈의 족적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글에서는 이들의 이러한 면모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려 한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벽을 허물다

 비틀즈의 유산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어야 할 것은 그들이 견고하던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벽을 허물어서 우리가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꿨다는 점이다. 비록 대중예술인들의 지위가 예전보다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그들을‘딴따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서양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틀즈가 데뷔하던 1960년대 초만 해도 팝 음악은 그저 싸구려 엔터테인먼트 정도에 불과했다. 팝 음악을 예술이라고 부르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60년대 중반에 이르면 팝 음악을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 오히려 구시대적 사고방식으로 비쳤다. 팝 음악가들은‘아티스트’라고 불리기 시작했고 그들의‘작품’은 진지한 평론과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불과 5~6년 정도의 짧은 기간에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비틀즈의 공으로 돌리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흐름을 선두에서 이끌었다는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그들의 1967년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는 이러한 맥락에서 기념비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팝 아트의 거장 피터 블레이크(Peter Blake)가 디자인한 의미심장한 앨범 커버,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화려한 색채의 사운드, 여기에 관현악, 재즈, 인도음악에서 구체음악을 망라하는 음악적 파노라마까지… 이 앨범을 통해 비틀즈는 단순한 팝 밴드에서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의 하나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나 이 앨범의 진정한 의의는 여기에 있지 않다. 이 작품을 접한 수많은 동료 및 후배 뮤지션들은 음악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대중음악의 한계를 넘어서려 노력했으며, 보다 야심찬 작품들을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중음악은 더 이상 저급한 상업문화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는, 예술성 충만한 것으로 변신해 갔다. 이것이 바로 비틀즈가 남긴 문화유산의 핵심적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의 진실은 앨범이다

 비틀즈의 또 다른 유산으로 거론될 수 있는 것은 앨범의 재발명이다. 그들은 이를 통해 우리가 음악 듣는 방식을 영원히 변화시켰다. 오늘날 우리는 음악을 감상할 때 어떤 아티스트의 앨범을 듣고 그 앨범에 대하여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의견을 형성한다. 또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어떤 앨범은 명반’이라든지‘그 앨범은 별로’라든지 하는 식으로 앨범을 단위로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지 않았다. 앨범이 오늘날 앨범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비틀즈 이후부터다.

 음악 매체로서의 앨범 포맷은 이미 1948년부터 상용화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앨범은 단순히 여러 곡의 노래를 수록한 레코드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다. 비틀즈 이전까지 대중음악 앨범은 한 두 곡의 히트곡과 필러(filler)라 불리는‘버리는 곡’들로 채워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비틀즈는 앨범을 예술적 표현의 단위로 만들었다. 마치 시인들이 여러 편의 시로 시집을 만들고, 미술가들이 여러 개의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듯이, 비틀즈는 여러 곡의 노래로 하나의 작품집을 구성한다는 개념을 팝 음악에 도입하였다. 물론 이것 역시 비틀즈만의 업적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나 밥 딜런(Bob Dylan) 등도 당시 유사한 컨셉을 가지고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틀즈만큼 철저하게 이 개념을 밀고 나간 아티스트도 드물다. 그들은 1966년을 끝으로 일체의 공연활동을 중단한 채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앨범을 만드는 데만 전념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공연이나 방송은 진정한 음악 활동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직 앨범만이 그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예술적 표현이고 유일하게 가치 있는 활동이었다. 1968년 앨범  《The Beatles》는 이런 점에서 그들의 이러한 개념에 가장 잘 부합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더블 앨범이라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높은 완성도와 수록곡들의 고른 질적 수준을 자랑하는 이 작품은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역사상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거론된다.

맺는 말

 지금까지 비틀즈 데뷔 50주년을 맞아 그들의 업적과 유산을 간략히 돌아봤다. 비틀즈는 역사적으로 매우 독특한 현상이었다. 하나의 밴드가 대중음악을 넘어 문화 전반에 걸쳐 이토록 깊고 폭 넒은 영향을 미친 사례는 전무후무하다. 이들의 해체 이후 전 세계의 음악팬들은 제2, 제3의 비틀즈를 간절히 기다렸지만 아마 앞으로도 비틀즈와 같은 그룹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비틀즈의 업적은 그들 자신의 탁월한 재능과 역량뿐 아니라 1960년대 서양이라는 특수한 시대와 장소의 산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든 우리에게 비틀즈의 음악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지난 50년간 이들의 음악은 시들지 않았다. 앞으로 찾아올 60주년, 70주년에도 그것은 여전히 변치 않는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만일 시들었다면 나에게 항의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