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대중음악계의 화두 중 하나를 손꼽는다면 거장의 컴백이 될 것이다. 물론 관록 있는 뮤지션이 새로운 음반을 발표하는 일의 경우 (한국의 경우 자주는 아니더라도) 때때로 목도할 수 있으므로 그 자체만으로는 특별한 사건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2013년의 경우 이에 해당하는 사례도 많지 않았으니 중요한 이슈로 거론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음악가가 누구인지, 무엇보다 그가 오랜만에 발표한 새로운 작품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켰는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말할 필요도 없이 조용필이 새로운 음반을 통해 노련하면서도 ‘젊은’ 음악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던 일은 분명 흥미로운 사건일 수밖에 없다. 그의 사례는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보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러한 용어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흔히 사용되는 어법을 빌어 ‘전설의 재림’이라 할 만한 또 하나의 진귀한 사례를 거론해야 한다. 들국화의 원년 세 멤버 전인권(보컬), 최성원(베이스, 보컬), 고^故 주찬권(드럼, 보컬)은 2012년 14년 만에 들국화를 재결성한 뒤 여러 콘서트 무대에 서면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팬들의 갈증을 해소해주었다. 이들의 음악을 경험하지 못한 어린 세대에게도 들국화가 소개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2013년이 저물
어가고 있던 12월, ‘들국화’라는 제호를 단 앨범을 발표했다.
1986년 들국화가 2집을 발표한 뒤 27년 만의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지만 조용필만큼 떠들썩하게 등장하지는 않았다. 그건 어떤 점에서 지극히 들국화다운 일이다. 이들이 라이브 소극장 무대들을 발판으로 서서히 타올랐던(물론 절정의 순간 사라져버린 것을 포함한) 1980년대 중후반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들국화라는 꽃 이름에 내포된 의미들을 곱씹어 본다면, 당장 화려하거나 시끌벅적하게 등장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전혀 없다. 새로운 앨범이 발표되기 두 달 전 영면한 지음^知音 주찬권을 기억하고자 하는 앨범의 의도도 이러한 행보와 일치한다. 검게 처리된 주변 배경 위에 들국화 꽃잎들이 하얗게 빛나고 있는 이 음반의 표지는 그런 점에서 상징적이다.

이 글에서 들국화의 행보와 의미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들이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서 음반 판매와 라이브 콘서트를 통해 전국을 휩쓰는 신기원을 이루었다는 사실, 짧지만 강렬한 궤적을 남기고 사라진 뒤에 각기 솔로 활동을 하거나 후배의 음악을 발굴했던 일들, 또는 나중에 잠시 활동을 재개했다가 다시 멈추게 된 사연 등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은 생략하자.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온전한 의미에서 들국화가 엄밀하게 꽉 짜인 록 밴드였던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들국화가 1집을 만들었을 시점에는 네 명의 앨범 표지 사진이 보여주는 것처럼 붙박이 드러머가 없었고, 공연과 음반 작업에 몇몇 멤버들이 드나들었다. 말하자면 (당시 전인권이 속해 활동하기도 했던 한 그룹의 이름을 빌어보면) ‘따로 또 같이’ 움직이는 느슨하고 자유로운 그룹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또한 온전한 의미에서 ‘밴드’였다. 전인권이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도 나머지 멤버들은 ‘들국화의 보컬은 인권이’라고 못 박으며 그의 재기를 응원했다. 주찬권이 떠나가고 그의 유작이 된 이 앨범을 발매한 후에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여타의 앨범 관련 활동에 나서지 않았다.
들국화의 이 앨범은 두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새로운 노래와 기존의 노래 열아홉 곡을 나눠 담았다. 첫 번째 음반은 창작곡을 중심으로, 두 번째 음반은 들국화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는 곡들로 수록했다. 이 음반은 정규 앨범으로 셈하면 (전인권이 다른 뮤지션들과 만든 1995년 앨범을 포함해서) 4집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런 환산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 음반은 주찬권이 마지막으로 함께 한 유작으로서의 사료적 가치도 가진다.
우선 첫 번째 CD에 수록된 노래들을 들어보자. 당연하게도 새로 발표한 다섯 노래들이 눈에 띄는데, 전인권이 2곡, 최성원이 2곡, 주찬권이 1곡을 작곡했다. 숭엄하면서도 잔잔한 트럼펫으로 시작하는 전인권 작사·작곡의 첫 곡 <걷고, 걷고>는 가령 젊은 날의 질주의 속도를 담은 <행진>(역시 전인권 작사·작곡)과 비견할 수 있을까. 오랜 세월을 감내해온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꾹꾹 눌러 담은 걸음의 무게가 이 노래 안에 들어 있다. 전인권 작사·최성원 작곡의 <노래여 잠에서 깨라>는 셔플 리듬 속에 (전인권이 과거에 들려주기도 했던) 한국적 장단이나 타령의 맥락과 맞닿아있다가도 이후 장조로 전환되면서 밝은 분위기로 전환된다. 비교하자면 최성원이 과거에 작곡했던 <그것만이 내 세상>과는 또 다른 긴장의 묘미를 선사한다. 이 곡들은 전인권이 가지고 있던 폭발하는 듯한 고음의 탁성에 부응하면서도 한층 여유가 더해진 노래들이다.
이들의 메시지는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직선적이면서도 은유적이다. <노래여 잠에서 깨라>의 경우는 노래 자체의 힘에 대한 메시지를 명징하게 들려준다. 반면 거칠고 투박하게 내리치는 기타 스트러밍이 강단을 느끼게 해주는 <재채기>는 시인 김수영의 <눈>이 제시했던 ‘기침’이라는 은유적 시어를 연상할 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최성원이 작사·작곡하고 노래한 <들국화로 필래(必來)>의 경우 예의 아름다운 화성을 강조하는 나즈막한 서정이 실려있다. 이를 통해 거친 풍파 속에서 오롯이 피어난 들국화 본인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세상에 모든 어린 들국화”에게 향하는 따뜻한 전언을 중첩시키고 있다. 누가 또 이렇게 어린 세대(또는 후배 뮤지션)를 위해 연륜과 애정을 담은 노래를 띄울 수 있을까.
무엇보다 여기 실린 많은 노래들에는 속절없이 떠나간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교차한다. 말하자면 오랜 벗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을 담은 컨셉트 앨범 같다. 원래부터 죽은 친구를 위한 노래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친구>의 리메이크는 물론이고, 주찬권이 세상을 뜨기 전날까지 녹음했다고 한 <들국화로 필래>는 사후에 최성원과 주찬권의 듀엣으로 재구성되면서 애잔한 정서를 자아낸다. 또한 주찬권 작곡의 <하나둘씩 떨어져>는 전인권이 미처 매듭짓지 못하던 가사를 주찬권의 죽음 이후 완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다른 한편으로 두 번째 음반에는 지난 2년 동안의 라이브를 통해 조율된 들국화의 히트송들이 실려 있는데 과거보다 여유롭고 풍성해졌으며 정갈해졌다. 김광민(키보드), 정원영(키보드, 피아노), 한상원(기타), 하찌(기타), 함춘호(어쿠스틱 기타), 송형진(프루겔혼, 트럼펫) 등의 유명 뮤지션들이 가세하여 품격을 더했다. 그룹 들국화의 노래뿐 아니라 전인권과 최성원이 솔로로 활동했던 곡들을 수록했는데 전인권의 노래로는 <사랑한 후에>(1집, 1988), <다시 이제부터>(3집, 2003), <걱정 말아요 그대>(4집, 2004)가 실렸고, 최성원의 노래로는 <제주도의 푸른 밤> <이별이란 말은 없는 거야>(1집, 1988)가 담겼다. 이는 들국화가 해체된 다음 각 멤버들의 행보도 들국화의 역사로서 껴안았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첫 번째 음반에서, 예전부터 공연장에서 즐겨 부르던 홀리스^{The Hollies}의 <He Ain’t Heavy, He’s My Brother>와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의 <As Tears Go By>를 라이브 버전으로 실은 것도, 조동진의 <겨울비>와 김민기의 <친구>의 리메이크를 포함시킨 것도 적절해 보인다. 그것은 들국화를 있게 한 뿌리들을 재확인시키는 동시에 들국화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해석력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들국화의 역사는 그 어떤 해설서나 평전에서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음악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요약된다.

사실 들국화의 활동이나 새로운 음반을 두고 역경을 딛고 재기에 성공한 이를테면 ‘인간극장’ 식의 짠한 감동으로 소비할 필요도 없고, 또는 그저 ‘록 밴드의 살아있는 전설’이나 ‘노장의 귀환’ 등으로 무조건적으로 추앙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최신 트렌드와도 거리가 멀고, 화려하거나 열정적인 행보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젊고 따끈한 트렌드를 반영해야 훌륭한 음악이 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의 신곡이 적어서 실망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도 다다익선이 최선은 아니라고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더불어 음악적 성취나 진화라는 잣대로서 이 음반을 냉철하게 평가하는 것도 부당하게 느껴진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록 밴드가 오랜 세월을 지나온 가운데에도 놓치지 않고 가꿔온 꿈과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