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직접 그를 만난 것은 지난여름, 어느 무덥던 날이었다. 한국음악발전소의 소장님으로 계신 그를 만나기 위해 여의도로 갔었다. 그때 그의 첫 인상은 수수하고 털털한, 그러면서도 뭔가 우수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식당에서 그는 “노래가 참 어렵다”며 한창 녹음 중이라는 <목련>이란 곡을 들려주었었다. 탱고의 강렬한 선율, 격정적인 피아노와 스트링 사운드를 타고 들려오던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제까지 듣던 가요와는 다르면서도 숨 막히게 아름다운 노래에 충격을 받았었다. 김소월의 <초혼>이란 시를 떠오르게 하는 <목련>의 가사는 선율만큼 아름다웠다. 사랑의 덧없음을 ‘목련’에 비유한 것이 가슴 절절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음반이 나오기 전에 이 노래를 들을 수 있는 호사를 누렸으니 개인적으로는 영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백호의 이번 음반 《다시 길 위에서》는 2000년에 발매된 정규 음반 《어느 여배우에게》 이후 12년 만의 정규 음반이다. 이제 예순을 넘긴 최백호가 데뷔한지 36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그는 노장 가수라고 할 수 있다. 이 노장 가수의 새 음반은 대체로 젊은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는 대중음악계에서 무척 값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값진 것은 《다시 길 위에서》에서라는 음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가 새롭고도 다양한 시도를 음반에서 모색하고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인생길에서 우리는 대개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곤 한다. ‘안정’과 ‘변화’가 그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과감하게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단순히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의 반향마저 불러일으켰다. 자신이 직접 작사하고 작곡하는 노래를 주로 부르던 최백호에게 이번 음반은 이전과는 다른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 모든 작곡을 맡긴 것은 그들과의 소통에 대한 의지와 더불어 자신은 노래에만 집중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이번 음반에서 그는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는 다재다능함을 보여주었다. 음악적으로 팝 재즈, 누에보 탱고, 라틴, 집시 스윙 등을 오가고 있고, 말로(보컬), 전제덕(하모니카), 박주원(기타), 민경인(피아노), 조윤성(피아노) 등 우리나라 대표적인 재즈 뮤지션들이 이 음반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음악적인 다양성과 전문성에 더해, JHN 대표인 이주엽의 가사는 이 노래들을 돋보이게 하는데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길 위에서》는 <목련>을 포함하여 총 11곡의 노래를 수록하고 있다. 1976년, 최백호의 데뷔 음반에 수록했던 곡을 리메이크 한 <뛰어>는 말로의 스캣과 최백호의 힘찬 목소리가 어우러져 있다. <뛰어>가 새로운 마음을 담아 힘 있게 그의 시작을 알렸다면, <만추>는 늦가을의 정취를 누에보 탱고 느낌에 담은 낭만적인 곡이라 할 수 있다. 빠른 템포의 볼레로로 이루어진 <바람을 따라>와 집시 스윙 리듬이 돋보이는 <집시>에 이르기까지 한 음반에서 그의 음악적 행보는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안주’는 때로 정체와, 심지어 퇴행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그의 이번 음반은 ‘머무름’ 대신에 ‘떠남’을, ‘정체’ 대신에 ‘변화’를 시도했기에 아름답다.

 다양한 음악적 시도에 더해 이번 음반에서 빼먹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아름다운 가사라 할 수 있다. 그의 노래 가사는 ‘흐름’ 내지는 ‘떠남’을 지향한다. <뛰어>, <길 위에서>, <막차를 기다리며>, <바람을 따라>, <굿바이>, <집시> 등의 노래 제목에서도 이를 알 수 있을뿐더러 “쏟아지는 빗속을 뛰어 봐요”(<뛰어>), “떠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면”(<길 위에서>), “어디로 흘러가는지”(<막차를 기다리며>, “이제는 떠나야 겠어”(<바람을 따라>), “떠나네 가자”(<봄>), “구름처럼 왔다 구름처럼 간다/ 머물 곳은 묻지 말아주오”(<집시>) 등이 모두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과 무상함, 떠나온 것들에 대한 회한과 애상, 그리고 다시 떠남을 예고하는 노래 가사들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의 노래에는 젊은 연인들의 달콤한 사랑 얘기는 없다. 그보다는 달관과 체념의 경지를 보여주는 노래가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흐름의 미학’이라 칭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알고 있다. 잡으려 하면 할수록 잡을 수 없다는 것을. 모든 것은 떠나고 흐르고, 우리는 그 길 위에 있음을 말이다. 모든 것이 먼지처럼 가볍게 스쳐가는 세상 속에서 그의 노래는 그야말로 진중함을 담아내면서도 세련미와 완숙미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에 더해 허스키하면서도 시원하게 내지르는 그의 고음과 완전히 숨을 내뱉듯이 잔잔한 바이브레이션과 함께 들려오는 저음의 넘나듦은 듣는 이에게 절절한 감동을 전해준다.

 헛된 욕망을 쫓아 타락과 파멸을 향해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모두 ‘인간’이 된다거나, 혹은 ‘곱거’나 ‘곧은’ 것만이 아님을 이제는 경험으로 안다.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긴 채 끝없이 의미 있는 변화를 추구하는 지금의 그처럼 우리도 나이들 수 있다면, 아름답지 아니한가? 먼 훗날,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그의 노래처럼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리하여 다시 길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