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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텍스트를 노래하기 혹은 텍스트를 연주하기
통권 : 37 / 년월 : 2012년 11,12월 / 조회수 : 8398
3호선 버터플라이 《드림토크》와 성기완 시집 『ㄹ』을 겹쳐보기

 

텍스트의 즐거움은 고전, 문화, 지성, 아이러니, 섬세함, 행복감, 자제력, 삶의 기술인 안정감이다.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 중에서


Ⅰ.

 개기 일식의 기억이 존재한다. 쉬는 시간이 되자 까맣게 그을린 유리판을 손에 들고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어디선가 “나는 하록 선장이다!”라는 외침이 들렸다. 한쪽 눈을 까만 유리판으로 가린 채 태양을 응시하는 수십 명의 애꾸눈 선장들이 개기일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빛이 달고나 색깔처럼 카라멜라이즈 되면서 드디어 달이 태양을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그 누구도 교실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학교를 지배하던 쇠창살 같던 법칙들이 잠시 엿가락처럼 휘어진 느낌이었다. 그 벌어진 틈으로 빠져 나와 모두들 달달한 해방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언제까지나 달고나 같은 하늘 아래서 일식을 바라보며 살아가면 좋지 않을까 하면서도 이제 예정되어 있는 보통의 안정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자각이 엄습해 왔기 때문이었다. 누가 먼저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태양이 다시 제 모습을 찾기도 전에 하나 둘 암시야(暗視野)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유리판을 발바닥으로 짓이겨버리는 파열음이 들려오기도 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수업 시작한데 빨리 안 들어오면 선생님이 각오하래!”라는 반장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의 시점에서 케이팝(K-pop)이라는 논제에 집중해야 하는 분위기임에도, 효용성이 떨어져 보이는 대중음악의 텍스트와 컨텍스트에 대한 논의를 하는 이유는, 개기일식이 상징하는 ‘동일성의 재현’에서 현실 인식과 같은 순수한 카타르시스를 회복하고자 함이다. 아무리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시대적인 전범이 될지라도 우리에게는 암시야를 통해서라도 마주하고 싶은 ‘진정성’의 표상이 있지 않은가.

 

 

Ⅱ.

 사람들은 여전히 너무 ‘의미화’된 것에만 매달린다. 공식화된 것, 유의미한 것만을 보고 그것들을 중요시한다. 무의미한 것은 뭔가? 쓸데없는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당신이 그 의미를 모를 뿐이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억압할 권리도 없고 무시해야 할 의무도 없다.
-성기완 『모듈』 중에서

 

 3호선 버터플라이 4집 앨범 《드림토크(Dreamtalk)》(비트볼뮤직, 2012.10)에서 먼저 논의되어야 할 곡은 <스모우크핫커피리필>이다. 이미 웹진 <웨이브(weiv)>에서 차우진에 의해 거론된 바 이 곡의 “문장들은 의미와 맥락이 아니라 오직 이미지 구현” 1)에만 애쓰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성기완의 방법론을 염두에 두며 차우진의 논의를 확장해 본다면 ‘무의미’한 텍스트를 음악이라는 ‘층위’적인 형식을 빌려 연주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성기완의 시집 『ㄹ』(민음사, 2012.8)에는 「스모우크핫커피리필」이라는 동일한 제목의 시가 실려 있다. 시와 노래에서 공통되는 부분을 살펴보자. ‘스모우크핫커피리필, ‘달이뜨지않고니가뜨는밤’은 시와 노래에서 주축을 이루는 부분으로 양쪽에서 동일하게 반복된다. 반면 ‘붉은눈시울’과 ‘갈비뼈콩크리트눈시울망초’라는 시어는 ‘붉은눈시울망초’로 ‘뜨거운피’와 ‘귀뚜리피리’라는 시어는 ‘뜨거운피귀뚜리피리’로 변형된다. 그리고 ‘지나가는흰구름이쓰는이름’은 시와 노래에서 동일하다.

 ‘시’의 그라운드에서는 텍스트의 변용과 의미 확장이 자유롭게 용인되는 반면, 음악(또는 음향)이 갖는 ‘층위’적인 미학의 구현에는 한계가 있다. (시는 낭독되지 않는 한 ‘묵독’의 쇠창살에 감금된 상태일 수밖에 없다) 반면 ‘스모우크핫커피리필’이라는 분절되지 않고 음성의 고저가 표기되지 않은 텍스트가, 노래에서는 일정한 분절과 톤을 유지하면서 일정한 ‘모듈’을 부여받는다. 성기완의 자신의 책 『모듈』에서 언급한 ‘텍스트 레이어링’ 방법론은 시집 『ㄹ』을 통해 구현되고, 앨범 《드림토크》에서 컨텍스트로 재탄생한다. (시 「쿠쿠루쿠쿠비둘기」와 노래 <쿠쿠루쿠쿠비둘기> 역시 음악을 통한 텍스트의 컨텍스트화를 보여준다.)

 이번에는 앨범의 다른 수록곡 <끝말잇기>를 살펴보자.

 

미성년자 자웅동체 체질개선 선수입장 장미문신 신내림굿판 / 판도라의 상자 자니 캐시 현금박치기 기본이죠 죠니 캐시 한박자쉬고 / 시끄럽냐 야반도주 주거볼래 내일모레 래디오가가 가터벨트 / 트러블메이커 커피한잔 잔치국수 수퍼모델 델꾸와바 바톤터치 / 치마바지 지못미 미스터정 정말좋아 아님마3 3호선버터플라이

 

 끝말을 이어가는 가사는 노래에서 연주와 남상아의 보컬을 통해 4박자의 개러지 록(Garage Rock) 컨텍스트로 구현된다. 온전히 텍스트로만 존재할 경우보다 싱커페이션(당김음)과 음성을 통한 톤의 구현이 배가되면서 ‘즐거움’이 증폭된다.

 누구든지 텍스트의 즐거움이 확실치 않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 동일한 텍스트다 두 번째도 똑같이 우리 마음에 들리라고 말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기분이나 습관, 상황에 의해 쪼개지는 부스러지기 쉬운 즐거움이다. 그것은 불안정한 즐거움이다.
-롤랑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 중에서

 텍스트의 즐거움은 노래를 통한 레이어(트랙별 녹음)와 음향, 음성을 부여 받으면 일종의 ‘정서’를 환기시키면서 컨텍스트가 된다. 만약 라이브 공연이라는 새로운 모듈이 부가된다면 컨텍스트가 되었던 노래는 다시 불안정한 텍스트로 바뀔 것이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의도에 따라 연주를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으며 무대 공간과 조명 같은 하드웨어의 변용을 통해 컨텍스트를 해체하고 새로운 텍스트를 제시한다.

 
Ⅲ.

 그렇다면 반대로 하기는 어떨까? 성기완은 시집 『ㄹ』에 음반을 포함하여 선보였다. 수록곡들 중에는 백그라운드 뮤직에 충실한 음악들과 시낭송도 수록되어 있지만, ‘밤섬의 저음’의 경우는 텍스트로는 명백히 컨텍스트를 구현할 수 있음에도( ‘당신과건넌비오는밤섬은 거대한녹색의저음이었어요’) 이를 해체하는 실험적인 사운드를 통해 즐거움의 ‘불안정성’을 강조한다. 롤랑바르트의 ‘멜로디에 대한 예술이 음성적인 글쓰기를 구현할 수도 있지만 현재는 멜로디가 죽어버렸기 때문에 영화가 대신한다’는 주장은 성기완에게는 유효하지 않다. 현재의 디지털 음악 제작 환경은 음성적인 글쓰기(텍스트화)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병치하는 기호학적인 즐거움이 과연 몇 명의 청자들과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대중음악의 열렬한 가치 탐구가 과연 무엇을 지향하고 있을까. 암시야를 통해서만 바라볼 수 있는 기적 같은 현상들. 쉽게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도 않는(하지만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이상향을 향유하는 짧은 순간의 환희가 이 세상 어느 곳에 존재한다는 진실을 담은 예술. 고된 노동 후 휴식시간에, 구애의 황홀한 순간에, 댄스홀의 화려한 조명 아래 존재할 수는 없지만 소수의 열렬한 신도들에 의해 전승되고 창작되는 노래가 앞으로도 이 나라의 어느 곳에서 계속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억에 간신히 의지하는 희망을 역설하고 싶다.




#저자 약력
필명_1980년 제주생. 음악비평가, 2010년 제3회 플랫폼 음악비평상 당선. 최근 글로 「프랜차이즈 치킨에 대한 어떤 아쉬움」 등. 808drugs@naver.com

#주석
1) 차우진, 「스모크 or 스모우크」(http://www.weiv.co.kr/archives/4097)
글쓴이 : 노루
작성일 : 201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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