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EBS에서 방영한 〈부흥의 길(復興之路)〉은 아편전쟁(1840∼1842) 이래 낙후한 제국을 ‘부흥’으로 이끌려 했던 중국의 노력을 회고함으로써 ‘중국적 사회주의’의 역사적 정당성을 천명한 다큐멘터리이다. 과거에 방영된 〈대국굴기(大國?起)〉(2006)와 제작진(중국CCTV)이 동일하다는 점, 그리고 〈대국굴기〉가 외국의 역사를 참조한 것이라면 이번에는 중국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다는 점에서 〈부흥의 길〉은 〈대국굴기〉의 자매편이자 완결편이기도 하다.
전체 6편 중 1949년 이전에 2편을 할당하고 1949년 이후에 4편을 할당한 것이 나름의 특징이다. 우선 부흥을 얘기하려면 부흥 이전의 어두운 과거가 있어야 하기에 1949년까지의 중국근대사는 현재의 부흥을 부각시키기 위한 배경으로서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또 현재에 가까운 역사적 사실은 ‘두텁게’, 현재로부터 먼 과거는 ‘가볍게’ 다룬다는 중국 역사서술의 전통, 박고후금(薄古厚今)의 원칙에 충실했다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흥의 길〉이 제17차 중국공산당전국대표대회 개최와 같은 날(2007년 10월 5일) 방영되었다는 점을 볼 때, 중국공산당의 발전전략을 중국대중에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제작의도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하지만 눈에 띄는 역사 해석의 변화도 없지 않다. 그 단적인 예가 리 홍장(李鴻章, 1823~ 1901)이다. 총감독 런 쉬애안(任學安)은 “리 홍장이 이끈 양무운동(洋務運動)1이 중국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중국에서 가장 일찍 터져 나온 자강(自强)의 목소리였다”고 재평가했고, 이것은 베이양2해군(北洋海軍)을 이끌고 청일전쟁을 벌였던 리 홍장의 경험이 훗날 국민당 군대가 항일전쟁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다큐멘터리의 언급에도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리 홍장 재평가에는 양무운동의 역사적 상황과 현재의 중국공산당의 현실이 오버랩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양무운동의 기본 방향은 황제를 정점으로 한 정치권력은 그대로 둔 채 군사·경제 부문에 한해 개혁함으로써 중흥을 도모한다는 것이었다. 이 발상은 일당독재라는 현재의 권력구조는 그대로 두면서 경제발전에 한해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해온 중국공산당의 발전전략과 딱 맞아떨어진다. 이 때문에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고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3을 비롯한 30여 건의 불평등조약 체결에 앞장선 반동적·반민족적 정치가로서의 리 홍장의 이미지보다 중국 근대화의 선구자로서의 리 홍장이 더 필요했을 터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획기적인 변화는 중국국민당에 대한 재평가에서 나타난다. 1945년 중일전쟁이 중국의 ‘승리’로 끝난 후, 국민당과 공산당 간에는 역량 차이가 현저했다. 군사력도 국민당이 공산당의 3배였고 인구도 국민당이 71%를 차지한 상태였다. 누가 뭐래도 당시의 여론은 중국의 유일한 중앙정부로 국민당정부를 지지하던 상황이었다. 〈부흥의 길〉은 이렇게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전에서 국민당은 왜 패했으며, 공산당은 왜 승리했는가?” 그리고 답한다. 국민당정부의 법정화폐(法幣)와 여타 지방정부가 발행한 화폐의 교환비율을 국민당정부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정하여 강제통용시킴으로써 상공업계층의 지지를 상실하고, 물가를 제대로 잡지 못해 월급쟁이, 즉 소시민계층의 지지도 상실한 데다, 국민당의 고질적인 부패와 조직의 해이로 민심을 점차 상실해나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민당은 베이징·상하이 등의 대도시에서부터 민심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대도시와 상공업자를 주된 지지층으로 삼고 있던 국민당으로서는 재앙에 가까운 실책이었다. 때문에 당시 국민당과 공산당 이외의 정치세력이 국민당에 대한 기대를 접고 점차 공산당 쪽에 기울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전시기에 대한 〈부흥의 길〉의 해석은 미국 역사학자 로이드 이스트만(Lloyd Eastman)의 『장개석은 왜 패했는가Seeds of Destruction』(민두기 역, 1986)라는 책을 연상시켰다. 이 책에 따르면 중일전쟁 이후 국민당은 대륙을 석권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으나 조직·기율의 문란, 만연한 부패, 경제정책의 실패 등으로 도시 상공업·소시민 계층의 지지를 잃었고 그 반사이익을 공산당이 보게 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공산당의 승리는 국민당 ‘자멸’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인식 이면에 ‘사회주의 중국’의 성립을 인정치 않으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내가 놀란 것은 『장개석은 왜 패했는가』가 보이는 역사의식을 중국공산당의 홍보영상인 〈부흥의 길〉이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논리를 끝까지 따라가면, 사회주의 중국의 성립은 정상적인 역사로부터의 (일시적인) 일탈이 되고, 중화인민공화국 성립과 중국공산당의 역사적 의미는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 “중국국민당이 1920~1930년대에 추진했던 ‘국민당 일당독재 하의 경제발전’과 현재 중국공산당이 추진하고 있는 ‘중국공산당 영도 하의 경제발전’이 뭐가 그리 다른가?” 따라서 “국민당이 대륙을 석권했더라면 중국의 현대화 노력은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 같은 재앙 수준의 일탈 없이) 30년 정도 빨랐을 것 아닌가?” 이런 문제의식이 국민당 자멸론(自滅論)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흥의 길〉은 이러한 정치적 함의까지 수용한 것일까?

그랬을 리는 없을 것이다. 총감독 런 쉬애안의 말을 빌리면 〈부흥의 길〉의 제작 의도는 중국이 “왜 (중국식 사회주의라는) 특정한 노선을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1)중국근대사의 고난에 찬 전개 과정에서 중국 인민은 어째서 결국 맑스주의를 선택하게 되었는가? 2)1840년 이래 중국이 선택한 모든 노선이 중국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데 반해 어째서 중국공산당이 제시한 길만 성공하게 되었는가? 3)왜 중국은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했는가? 그리고 국가제도로서, 인민의 생활방식으로서 사회주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세 가지 문제를 제시하고 해답을 추구한 것이 〈부흥의 길〉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을 이렇게 제시했다. 중국공산당의 영도 하에 1840년 이래의 첫번째 역사적 과제인 중화민족의 독립·자주 및 국가의 기본적인 통일이 완성되었고, 두번째 역사적 과제인 국가의 부강과 인민의 공동부유(共同富裕)를 1949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추구해왔다는 것이다. 런 쉬애안의 인터뷰, 〈今晩報〉)

이렇게 보면 〈부흥의 길〉이 사회주의 중국의 성립에 부여하는 의미는 좀더 분명해진다. 외세의 정치·경제적 침탈로부터 자유로운 정치공동체를 수립함으로써 이후의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 사회주의였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 중국의 성립을 과거에 비해 상대화해 인식하려는 역사인식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울러 사회주의 노선의 필연적 승리를 강조하던 신민주주의 혁명사관으로부터도 상당히 멀어진, 꽤 획기적인 변화이다. 중국의 공식 입장이 ‘여기까지 변했구나’ 하는 점을 실감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사회주의 중국의 성립을 상대화해 이해함으로써 개혁·개방 이래의 중국공산당이 수립, 집행한 발전전략의 정당화에도 숨통이 트이게 된다. 이미 시장경제가 경제부문만 아니라 사회 각 부문에까지 확대되어 “중국공산당이란 간판 빼고는 모두 자본주의”라는 평가까지 듣는 상황에서도 사회주의를 앞에 내걸어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형용모순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적 변용이 개혁·개방 이래 현재까지의 중국사회의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후의 더 큰 변화를 감당해낼 수 있을까? 일정한 경제성장이 사회적 자유화와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하고 이것이 권위주의 체제의 변화를 이끌어냈음을 한국과 타이완의 현대사에서 확인했다면, 중국만은 이 경험적 현상으로부터 예외일 거라고,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정치체제(또는 이념)와 경제 현실의 상극(相剋)이 중국에서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진진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때 가서야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