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지난 5월 26일부터 6월 3일까지 4회에 걸쳐서  <인사이트 온 아시아, 유교>라는 자체 제작 다큐를 방영하였다. 제작팀은 현대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 인류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유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국겵薩퉩일본겾맛結?베트남겱隔°糖?등 아시아 6개국의 유교사상과 그 문화적 성취들을 석학들의 해석을 토대로 비교적 심도있게 분석하였다. 이른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부터 촉발된 ‘유교의 힘’은 그 실체에 대한 회의를 넘어 이제는 아시아의 힘으로까지 표상되고 있는데, 근자에 벌어지고 있는 유교부활의 징후를 감안하면 다큐가 인(仁)겴?義)겳?禮)겵?智)라는 유교의 네 가지 덕목을 통하여 힘의 실체를 규정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만하다.

권력이 확장되고 있을 때 그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고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원천을 정확히 알아야 권력의 지속적인 확대와 관리가 가능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힘이란 무한에 가까운 요소들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원천을 찾아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힘의 실체를 찾으려는 시도는 근본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인 속성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다큐에서 유교와 유가(儒 家)를 구분하여 쓰려는 성의를 보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리라.

다큐는 “아비가 아들을 위해 감춰주고 아들이 아비를 위해 감춰주면 정직함이 그 가운데 있을 게다”라는 공자의 말을 인의 근본인 효(孝)의 모습으로 묘사하였다. ‘감춰주는 것이 정직함이다’라 하지 않고, 정직함이 ‘그 가운데’ 있다고 말한 것처럼 가능한 한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으려는 것이 공자의 수사법이다. 왜냐하면 악을 감추고 선을 드러내는 것이 미덕임이 의미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주의를 통치이념으로 고착시킨 한대(漢代) 이후의 유교를 마치 가족이기 때문에 죄를 적극적으로 숨겨주는 것처럼 단순화하고 있는데, 이는 공자의 의도와 거리가 있다. 정치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자의 말처럼 가르칠 수는 없다. 권력이란 자신의 기반을 안정시켜야 하므로 가족을 이념으로 포장할 수밖에 없는데, 이념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중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여기서 효의 주체인 자식이 희생하면서 그 대가로 권력을 발생시킨다. 왕이 단지 이 권력을 인정해주기만 하면 국가체제가 저절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유교의 가족중심주의가 기도하는 바이다. 다큐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전설 같은 갖가지 효행들은 바로 이런 메커니즘 때문에 가능했다. 대중을 움직이려면 이념에 신화의 옷을 입혀야 하는데, 그 신화의 자리에 공자를 앉혀 놓았던 것이다.

다큐는 유교를 ‘변화의 철학’이라고 소개한다. 실제로 중국 역사에서 유교는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시대마다 약간씩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곤 하였다. 이는 예라는 독특한 형식주의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즉 형식은 카오스로부터 사람이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주지만, 반면에 실재를 소외시키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모순을 야기한다. 이 모순을 해소하기 위하여 공자는 예와 더불어 인을 말했던 것이다. 그래야 형식이 실재(존재)를 떠나 경직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를 통해 구축된 체제가 일단 권력을 소유하면 이를 지키기 위해 형식주의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결국 모순은 커져서 체제를 전복시키고 모든 것을 카오스로 돌려버린다. 카오스는 다시 형식을 필요로 할 것이므로 다른 대안이 없는 한 유교의 예는 다시 등장하게 되는 것이 이른바 ‘변화의 철학’의 실상이다.

그렇다면 근자에 우리가 느끼는 ‘아시아의 힘’의 정체는 무엇인가? 힘이란 하나의 체제가 외부의 어떤 체제와 접속하느냐에 따라서 그 크기가 달라진다. 이를테면, 예는 그간 욕심을 절제하고 관계를 중시하는 기능을 통하여 전통사회를 유지시켜왔지만, 반면에 스스로 힘을 억제하는 모순도 안고 있다. 그러다가 서구의 개인주의에 접속되면서 절제기능은 약화되고 관계기능이 증폭되어 그간 억압되었던 물질에 대한 욕망이 해방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형태의 힘을 발생시킨 것이 ‘아시아의 힘’의 본질이다. 이제 자본의 축적은 ‘불의’도 아니고 ‘비례(非禮)’도 아니다. 또한 ‘효’는 복지예산을 절감시키는 효과가 있다. 다큐는 ‘이득은 의로운지를 살펴보고 취하라’는 공자의 말을 근거로 동아시아의 경영윤리를 설명했지만, 일찍이 진실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없는 유교문화에서는 대중의 목줄을 쥐고 있는 기업권력과 자본이 곧 ‘의’가 아니겠는가?

포스트맑시즘 이후 중국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동질성을 확보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코드가 유교인데, 이것이 사회적인 코드로 수용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기층의 도교사상에 빚지고 있다. 게다가 다문화적인 중국을 유교사회로 표상한 것이 서양의 합리주의자들이라는 점에서 유교의 부활은 이미 오리엔탈리즘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을 다시 KBS 다큐가 무심코 아시아의 힘으로 확장해주는 꼴이 된다면, 우리는 영원히 자신을 표상하지 못하는 중국의 변방으로 남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