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편의 노희경표 드라마가 돌아왔다.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사랑지상주의적인 제목과 달리 동생을 포크로 찍어대는 형에서부터 택시를 뺏어 광란의 질주를 하는 정신분열증 환자까지 드라마 속 세상은 미쳐 돌아간다. 주인공 장재열(조인성 분)은 빈번하게 등장하던 한강우의 존재가 환시라는 게 밝혀지며 스키조(정신분열)로 판명된다. 여주인공 지해수(공효진 분)는 정신과 의사임에도 불안장애를 가졌다. 함께 사는 박수광(이광수 분)은 숨길 수 없는 툴렛 증후군 환자다.

1. 정신병리학적 증상에 시달리는 사회에 대한 공감

드라마 속 인물들만이 아니다. 우리들도 단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저마다 가벼운 강박장애에서부터 불안증까지 경미한 복수형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괜찮아 사랑이야> 속 제 정신이 아닌 주인공들과 그 주변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자체가 ‘정신병리학적 제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현대는 자기 스스로를 노예처럼 과잉 노동으로 몰고 가는 자기 착취의 시대이다. 근대 규율 사회에서는 국가와 자본이 ‘놀지 마, 일해’라고 강제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이 ‘넌 할 수 있다’고 유혹하는 성공의 신기루에 홀려 죽도록 일하다 피로에 지쳐 나자빠진 끝에 우울증과 자살의 막다른 길로 내몰린다’(1)는 사회적 공감이 <괜찮아 사랑이야>를 보기 위한 ‘스키마’이다.

장재열은 의붓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충격에 기억을 잃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들이었고, 그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서 썩어야 했던 형에게 한없이 미안함을 느끼는 마음 약한 동생이었다. 혈육의 죄를 저버리지 못한 '착한' 마음은 그의 냉철한 이성을 넘어 자신과 같은 한강우라는 소년을 만들어 그를 보살펴주는 것으로 자신의 아픔을 견뎌내고자 한다. 즉, 그의 정신적 ‘방어기제’가 그에게 ‘환각’을 선사한 것이다. <괜찮아 사랑이야>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이제 만연하고 있는 각종 정신증 증상의 상당수가 그들이 ‘착해서’ 견디지 못해 드러내는 ‘방어기제’이며, 최후의 자기표현이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어른들에게 ‘착하기만 하면 손해 본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다. 착한 건 곧 ‘나약함’이었다. 남을 밟고서라도 경쟁에서 이겨내는 것이 훌륭한 것이라 배워왔다. 우리 사회가 ‘착하면 안 된다’라고 몇 십 년 동안 다짐하고 윽박지르던 것들이 오늘에 이르러 사회적 증후군처럼 정신병증의 범람으로 귀결되게 되었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리고 이는 경쟁을 내재화하여 치달리다 우울증과 자살에 이른다는 ‘피로사회’의 또 다른 이면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외부의 낯설고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질 공포증 사회’다.(2) 내 주변 누군가의 ‘이상함’을 못 견뎌 한다. 각종 정신과학적 용어로 규정하고 전염병 환자라도 되는 듯이 우리가 사는 울타리 밖으로 내몰기에 혈안이 된다. 그러나 노희경은 등장인물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상 범위를 벗어난 상태를 덤덤하게 그려낸다. ‘강박 장애야’라고 장재열은 무심하게 말하며, 지해수의 심각한 성적 혐오는 감기의 제 증상처럼 편하게 회자된다. 박수광의 툴렛 증후군은 그저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증상일 뿐이다. 네 사람의 등장인물뿐이 아니다. 지해수가 정신과 의사로서 만나게 되는 환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저마다 겪고 있는 증상들이 ‘장애’나, ‘낙인’이 아니라, 그저 정신의 ‘감기’ 같은 것들이라며 색안경을 빼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규정짓고, 선 긋고, 밀어내지 말고, 육체의 병이 ‘사랑’을 통해 기적을 얻듯이, 그들의 병도 ‘사랑’으로 품어주면 안되겠냐고 반문한다. 드라마 속 사랑은 치유의 도구다. ‘복수형 인간형’이라 위험하다는 형 장재범의 폭력성을 장재열은 사랑으로 감수한다. 그리고 도어락으로 잠가두었던,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숨어들었던 때 이래 유일한 피난처였던 화장실을 지해수에게 보여준다. 지해수는 자신의 아픈 상처인 가족들을 장재열에게 소개한다. 그렇게 서로의 ‘상처’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사랑으로 장재열과 지혜수는 서로를 치유해간다.

2. 소통할 수 없는 사회에서의 소통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소통을 외친다. 그런데 정작 소통하기가 쉽지 않다. 불신과 적대가 가득하다. 오프라인에서는 차단하기 바쁘고 SNS에서는 과잉 접속한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처를 끊임없이 말한다.’(3)

이렇게 소통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대다수 드라마들의 해결 방법은 ‘가족’이다. 우리 사회가 개인에 대해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않을수록 드라마들은 믿을 건 결국 가족 밖에 없다며 ‘가족 지상주의’를 외친다. 그런데 <괜찮아 사랑이야>의 생각은 다르다. 성기를 그리는 증상을 가진 소년의 병증은 어린 시절 그가 자는 줄 알고 옆방에서 남자와 성행위를 나누었던 엄마에게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소년의 상처는 역시나 어린 시절 엄마의 외도를 목격했던, 그래서 누군가와 나누는 사랑의 행위가 부정의 행위로 각인된 지해수의 불안증으로 이어진다. 아버지에게 맞는 엄마를 두고 도망치지 못해 함께 맞는 소년 한강우처럼, 그리고 그 한강우를 통해 투시된 장재열의 고통처럼 <괜찮아 사랑이야> 속 등장인물들의 상처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비롯된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개인의 가장 든든한 바람막이이자 안전판이 되어야 할 가족이기에 가족에 기댈 수밖에 없는 개인들은 그 ‘부실한’ 가족으로 인해 고통 받는다고 말한다. 다른 드라마에서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갈등의 동인이자 흥밋거리이며 동시에 구원의 대상이기도 했던 가족이 이제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본격적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병리학적 원인으로 대두된다. 우리가 그간 ‘괜찮아 가족이야’라며 덮어두었던 치부들이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한 개인을 정신적 고통으로 몰아넣는 원인으로 드러난다.

그런 면에서 네 명의 등장인물이 홈메이트로 함께 살아가는 설정은 상징적이다. 네 명이 불가피하게 한 집에서 살게 된 설정은 그저 ‘미드’의 ‘쿨한’ 생활 방식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 인해 저마다의 상처를 가진 인물들이 전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상처를 회복할 계기를 가진다는 대안적 삶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 아니라도 대화하며 소통할 수 있는 ‘비단속적 관계’(4)가 <괜찮아 사랑이야>의 대안이다. 애인과 헤어지는 순간 그녀의 격정적 토로를 가만히 숨죽여 들어주고, 그녀의 아픔을 너스레를 떨며 걱정해주는 홈메이트들이 가족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치유할 수단이다.

3. ‘우리’ 안으로 들어온 정신질환

이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가지 정신질환, 그 중에서도 주인공 장재열이 앓고 있는 스키조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정신가 의사의 글이 등장하기도 했다. 맞다. 실제 우리 사회 스키조를 앓는 환자들은 끊임없이 재발되는 증상으로 인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그런 환자들을 돌보다 결국은 가족마저도 나가떨어지는 게 현실일지도 모른다.

여주인공인 지해수(공효진 분)는 스킨십을 하려고 들면 심장 박동이 급격하게 증가되면서 식은땀이 나는 강박증세에 시달리는 강박장애 환자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병을 앓으면서도 오히려 그런 병을 앓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었다. 남자 주인공 장재열은 어떤가. ‘환시’가 병행되는 중증 스키조 환자이다. 하지만 그는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라디오프로그램까지 진행하는 인기남이다.

모델같이 길쭉길쭉한 자태를 뽐내며 그 자태를 능가하는 사랑스러운 얼굴을 가진 두 주인공들은 사랑으로 서로의 정신적 장애를 이겨낸다. 영원히 스킨십을 못할 거 같던 지해수는 장재열과 사랑을 나누게 되었고, 장재열은 ‘사랑하는 우리 애인’ 덕분에 3년 동안 그의 분신이었던 환시 한강우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족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 아이까지 갖게 되었다. 두 주인공만이 아니다. 장재열의 형도, 엄마도,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그들의 상처에서 한발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정신적 장애를 겪는 선남선녀가 서로의 사랑으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 병을 너끈히 이겨내고 행복한 삶을 누린다. 정신과 의사의 비감한 현실에서는 쉽게 만나보기 힘든 ‘판타지’다.

전문적이지 않아 오해나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괜찮아 사랑이야>는 정신과 의사처럼 실질적으로 환자를 고치는 데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대신 우리가 그 질환에 대해 사로잡혔던 ‘편견’을 한 겹 덜어내고 정신과 질환을 우리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스키조는 그 전문적 용어보다는 정신분열이라는 천형의 이름으로 낙인찍힌 채 생명이 오가는 암보다도 두려운 우리 사회의 ‘타자’로 자리 잡아왔다. 사회 구성원 중 열 명에 한 명 꼴로 정신적 질환을 겪는, 말 그대로 ‘정신 분열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공황장애 정도가 조금 이해가 될 뿐, 기타 정신과 질환은 음지에 숨어 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만으로 치부되는 세상에서 <괜찮아 사랑이야>는 그렇게 음지의 고통을 가장 아름다운 주인공들의 사랑을 매개로 세상 속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되돌아보면 노희경 작가는 언제나 우리 밖에 있는 우리가 외면했던 타자였던 것들을 그녀의 드라마들을 통해 하나씩 끌어들였다. <꽃보다 아름다워>에서는 치매를, <슬픈 유혹>에서는 동성 간의 사랑이 그녀의 화두였다. 세상에, 우리가 아니라고, 나는 아니라고 외면할 그런 일이 노희경의 드라마에선 없다. 흔하디흔한 출생의 비밀도 지긋지긋한 삼각관계도 없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해낸다. 하지만 여기서 사랑은 그저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고독한 개인들에게 위로를 주는 인간적인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