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드라마라면 장르와 시대적 배경을 따지지 않고 웬만하면 빠지지 않는 요소가 있다. 출생의 비밀, 고부 갈등, 삼각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KBS2를 통해 주말 안방을 찾아드는 <넝쿨째 굴러온 당신> 역시 그런 전형적인 드라마 설정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간다.
여주인공 차윤희^{김남주 분}는 여성이라면 피해가야 할 연옥을 ‘시월드’라며 대놓고 타깃을 설정하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미국 출신의 고아 의사 방귀남^{유준상 분}을 통해 이상적인 결혼을 꿈꾼다. 하지만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이 고아인줄 알았던 방귀남에게는 시할머니에, 시삼촌에, 시누이 셋까지 딸린 시월드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차윤희 vs. 시월드의 고군분투기다.
하지만 이전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고부 갈등’이란 이름으로 가해지던 일방적인 여성잔혹사를 이 드라마에서 찾아보긴 어렵다. 그나마 최근 시류를 타고 변했다는 드라마들이 여전히 결혼을 통한 계층 상승, 그에 이은 시월드의 일방적인 며느리 탄압, 인고의 세월, 뒤이은 방출, 그리고 그에 따른 복수나 여성의 입지전적 성공이라는 매뉴얼을 답보한다면,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이러한 감정적 혹은 한풀이식의 시월드 해법을 지양한다.
시월드 대표주자 시어머니와 차윤희의 친정 엄마의 ‘남의 집에 보내는데 잘 가르쳐 보내야 하지 않느냐?’, ‘일부러 가르치지 않았다. 왜 딸만 가르쳐야 하는가? 아들을 잘 가르쳐 보내는 집은 없지 않느냐?’, ‘아들 빵 먹여 내보내는 며느리 좋겠는가?’, ‘똑똑한 딸 자기가 잘하는 걸 하면 돼지, 집안 살림까지 잘할 필요 있겠는가?’라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설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진단하는 대한민국의 고부 갈등의 현실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에 따른 변화된 결혼관과 굳건하게 잔존하고 있는 전통적 결혼관의 충돌이다. 충돌은 단지 시월드와 며느리 사이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결혼한, 거기에 임신까지 한 직장 여성에게는 단번에 그녀의 책상을 구석으로 내팽개치는 사회 역시 시월드 못지않은 적군이 되어 여성을 몰아댄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드라마적 재미 이상의 매력을 발산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머리를 싸매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의 해법을 구체적이며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대놓고 시누이 노릇을 해대던 막내딸 말숙^{오연서 분}이가 차윤희의 동생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시월드 vs. 차윤희의 구도는 불가피한 역전을 하게 된다. 작가는 이런 전복된 설정을 통해 이른바 대한민국의 가족 중심 사고방식이 얼마나 아전인수인가를 드러내 보이며 역지사지를 통해 시월드라는 전통적 관습 혹은 사고방식을 무력화시키고자 한다. 또한 작가가 지향하는 해법은 종종 미국에서 살다온 이른바 한국문화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방귀남을 통해 드러난다. 아내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지로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방귀남은 고부 갈등에 있어 3자임을 주장하며 한 발 비껴서는 비겁함을 무기로 삼는 현실의 남편들과 달리 용감하게 ‘탈혈연적이며’, ‘이성적’인 해결 방식을 제시한다. 일 때문에 제사에 늦는 아내 대신 자신이 제사상을 준비하고, 겹사돈이 될 수도 있는 막내 동생들의 사랑에는 기본적으로 그것은 양가 어른들의 의견 이전에 그들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해결 방식은 방귀남 역의 유준상을 국민 남편으로 만들 만큼 대중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뿐만 아니다. 차윤희는 똑 부러지는 그녀의 캐릭터에 맞게 임신으로 인한 직장 내 왕따 문제도 자기 능력의 증명을 통해 해결해 나가고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여성이 여성의 동지가 되는 과정을 실천해 나간다. 고부 갈등도 마찬가지다. 몸 바쳐 집안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시댁 일이라도 적극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솔선수범하는 것으로 이 시대 고부 갈등의 바람직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고부 갈등으로 인한 이혼율이 높은 대한민국에서 시청률 40%를 넘보는 주말드라마의 이러한 건강한 모색은 어떤 캠페인 못지않은 영향력을 시청자들에게 미치리라 본다. 또한 혈연에 이끌려 하는 복수나, 비상식적 갈등의 극대화가 아닌 ‘이성적’으로 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족드라마의 순기능적 역할을 드높이는 드라마로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