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 공자는 이 나이를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나이라 하여 ‘불혹’이라 칭했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마흔에게는 돈, 명예, 자식, 가정, 사랑까지 수많은 유혹들이 눈앞을 지나가고 그 앞에서 눈을 질끈 감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온 세월이 적당한 만큼 세계가 주는 달콤함과 쓴맛을 모두 알지만, 남은 인생이 길어진 만큼 욕망에 초연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밀회>의 여주인공은 정확히 마흔이다. 적당히 이루었지만 더 이루어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지킬 것도 많다는 것.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지키며 잃어온 것이 얼마나 아까운 것인지도 아는 마흔.

JTBC의 드라마 <밀회>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듯 보이는 오혜원(김희애)을 통해 그 나이의 인물이 가진 욕망과 유혹과 흔들림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욕망의 카테고리를 성공과 명예, 돈과 순수함으로 구분한 뒤 한데 엮어 오혜원이라는 인물에게 투사하고 그녀를 중앙에 둔 채 모든 세계를 설계한다. 언뜻 <밀회> 오혜원은 서한그룹의 인물들과 남편, 아트센터와 선재(유아인)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실상 오혜원은 모든 이들이 쥐려는 헤게모니의 중심에 서 있다. 서한그룹의 인물들이 자신들의 뒤처리를 깔끔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삼중 첩자’ 노릇을 하며 각 적들의 내밀한 정보까지 알려주는 오혜원을 갖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것만 봐도 그녀가 이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임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그녀를 싫어하는 서영우(김혜은)마저도 사업을 위해서는 오혜원을 곁에 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을 쥐고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모습이야말로 <밀회>가 구상한 세계의 중심이 결국은 혜원임을 반증한다. 그래서 <밀회>는 남편의 제자와 한 중년의 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것 같은 외피를 하고 있더라도, 결국은 오혜원이라는 한 여자가 갖고 있는 욕망과 유혹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극 초반 <밀회>는 서한예술재단과 아트센터를 중심으로 혜원이 속한 클래식 세계의 추잡한 모습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예술과 그 예술인들을 기르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입시 비리와 추악한 거래들 속에서도 혜원은 마치 그들과는 다른 세계를 걷고 있는 인물들처럼 고고하고 우아하다. 이사장 한성숙(심혜진)과 서영우(김혜은)의 온갖 뒷일을 처리하고, 서필원(김용건) 회장의 여자들까지 관리하는 일을 하면서도 혜원은 클래식을 향한, 음악을 향한 열정을 여전히 품고 있는 듯 보인다. 혜원에게는 여전히 아트센터 대표라는 목표가 있고 지민우(신지호) 같은 제자를 발굴해 조인서(박종훈)에게 건네는 열정이 있으며, 아트센터가 해야 할 공연의 품격을 고민할 만큼 예술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다. 예술재단과 아트센터가 그저 탈세와 품격 유지의 수단일 뿐인 서한의 인물들과는 분명 길을 달리하는 것이다.

이처럼 <밀회>의 초반, 입시 비리와 서한 그룹의 비리들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는 혜원의 모습은 ‘권력과 명예’에 대한 카테고리로 읽힌다. 혜원은 건초염으로 결국 피아노를 그만 두지만, 대신 ‘서한아트센터 대표’직에 대한 욕망으로 한성숙(심혜진)과 서영우(김혜은) 사이를 오가며 첩자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재능을 포기한 한 여자가 차선책으로 선택한 자신의 욕망의 당위성을 그렇게 증명해 나가는 것이다. 젊음 자체가 재능일 수 있었던 한 시절이 지난 가운데, 혜원의 나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목표나 미래 앞에서 ‘사회의 이치’는 때로 치사하고 모욕적이라 하더라도 견뎌내야만 하는 무엇인 셈이다.

서한예술재단과 서한음대를 배경으로 클래식계의 추악한 일면과 그 한 쪽에서 그들의 수발을 들며 인생의 목표를 향해 살아가는 혜원의 고달픈 일상을 보여주던 <밀회>는 서서히 그 시선을 ‘돈’의 카테고리로 옮겨간다. 단순히 서영우(김혜은)의 스캔들을 처리해 주거나, ‘제자 하나 구해달라’ 떼를 쓰는 남편 강준혁(박혁권)을 달래주는 것으로 다한 듯 보였던 그녀의 역할은 한성숙(심혜진)의 해외 계좌를 관리해 주거나 영우의 계열사 사업을 지원하는 데까지 이른다. 여기에 서필원(김용건) 회장의 뒷수발까지 들며 예술재단 전 부분에 걸쳐 서한그룹의 자금 세탁에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달픈 일상이지만 자신의 명예가 지켜질 수 있고, 권력 사이를 위태롭게 오갈 수 있는 것 또한 자신이 대신 관리하는 ‘돈’을 통해서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혜원은 명예와 권력, 돈을 오가며 위태롭게 삶을 유지해 나간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숱하게 애써 왔던 시간의 결과물을 들고, 여전히 닿지 않은 목표를 위한 중간 지점에서 그녀는 발버둥 친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로열패밀리들의 집사 노릇을 마다치 않으며 일상에 지쳐 가던 중 혜원은 이선재(유아인)를 만나며 또 다른 욕망의 카테고리를 찾게 된다. 바로 ‘젊음과 열정’이다.

선재(유아인)는 혜원에게 자신이 지켜 온 것을 잃게 만들 수 있는 존재이자 동시에 자신이 갖고 있던, 혹은 잃어버린 예술적 순수한 욕망을 모두 갖고 있는 인물이다. 때문에 선재는 단순히 끌리는 ‘젊은 남자’라는 존재가 아니라, 아트센터 실장으로서 자신이 품고 있었지만 서한그룹의 인물들이 갖고 있지 않는 예술적 이상에 대한 열망을 표현해 줄 수 있는 존재다. 동시에 혜원의 스무 살 시절, 성공을 향한 열망 때문에 그 시절 자신이 가질 수 없었던 순수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인물이기도 하다. 때문에 선재는 혜원이 잃어온 것, 혹은 꼭 갖고 싶었지만 놓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표상처럼 보인다. <밀회>는 언뜻 이들의 사랑을 스무 살 차이 나는 두 사람의 ‘금기된 사랑’으로 포장하지만, 실은 이미 청춘을 다 지나쳐 온 혜원이 다시금 찾고 싶은 모든 것들을 가진 ‘선재’라는 인물을 통해 되돌릴 수 없는 지난 것들에 대한 애정을 ‘금기’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밀회>에서 오혜원과 이선재의 사랑은 단순히 두 남녀의 애정 관계를 넘어 예술의 이상을 향한 복합적인 컨텍스트로 읽혀진다. 오혜원이 이선재를 향해 애정을 품기 시작하는 순간은 이선재가 자신이 갖지 못했던 재능으로 피아노를 치는 순간이었고, ‘네 손을 위한 판타지아’를 함께 연주하면서 성적 희열과 흡사한 느낌을 가졌을 때다. 여기에서 시작된 혜원의 애정은 가질 수 없는, 혹은 가질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욕망으로 이어진다. 혜원은 ‘더럽게 머리만 굴리며’ 모든 것을 던질 연애 한 번 해 볼 만한 용기 없던 스무 살을 떠올리며 ‘스무 살을 어떻게 당하냐’고 읊조린다. 이에 반해 선재는 저돌적으로 혜원을 향해 달려든다. 다소 작위적일 만큼 일방향을 향해 퍼부어지는 감정이 단순한 이성적 사랑이 아니기에 혜원은 무방비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밀회>는 스무 살 어린 남편 제자와 사회에서 많은 것을 이룬 한 중년의 여자 사이의 위험한 사랑이라는 포장을 통해 결국은 오혜원이라는 한 여자를 둘러싼 수많은 욕망과 유혹을 이야기한다. 오혜원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권력과 돈을 이용하고, 젊은 시절 품어 왔던 예술적 기대에 대한 욕망을 위태롭게 품고 있다. 하지만 이제와 지금의 자신을 이루기 위해 달려 왔던 시간 동안 스스로 버렸던 순수함과 예술 그 자체를 위한 열망을 이선재를 통해 발견한다. 그저 젊은 남자를 통해 외로움을 해소하려는 서영우(김혜은)의 삶과 오혜원의 삶이 분리되는 지점이 바로 그것이다. 오혜원은 선재를 통해 잃어버린 자신의 과거와 위태로운 사랑에 빠진 것이다. 오혜원이 그 사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순수함에 모든 것을 버리기로 결심하는 순간, 혜원이 갖고 있는 서한예술재단과 그룹의 모든 비리는 세상에 폭로될 가능성이 높다는 면에서 분명 그는 위험한 외도다. 때문에 <밀회>의 세계를 구축하고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바로 오혜원 한 명이다.

<밀회>는 그렇게 오혜원의 삶을 통해 이 시대에서 중년을 살고 있는 한 여성이 가진 모든 욕망에 대한 서사시를 풀어낸다. 잃어버린 재능과 젊음, 그리고 지켜야만 하는 사회적 지위와 품위와 그것을 이루어 줄 자본, 그 사이에서 오혜원이 그러하듯 많은 사람들은 위험한 외줄타기를 한다. 하지만 곧 선택의 순간은 온다. 잃어버린 것들을 받아들이고 ‘사회의 이치’로 불리는 나락을 지나 목표한 그것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내가 이루어 온 것들을 버리더라도 지난날의 순수함과 예술적 이상을 향해 다시 인생을 선택할 것인가. 그 어떤 것에도 답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오혜원이 감내해야 할 선택의 무게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무게와 선택에 <밀회>가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가 들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