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마지막 날 퇴근길에 어떤 청년이 호소문 한 장을 내밀었다. 기업의 간부들이 공금으로 펀드에 가입해 손해를 보았는데 그 손해를 고스란히 비정규직의 해고로 무마했단다. 긴 호소문을 간단히 요약하자면(물론 간단치 않겠지만) 일로 복귀하게 해 달라는 것. 잠깐 그를 보다가 사회가 벌써 오랫동안 흉흉했던지라, 게다가 나의 입장도 기간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중인지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여력이 없었기에 가던 길을 가기로 했다.

덕분에 의문이 들었다. 돈을 더 많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정규직으로 만들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사람들이 있는 사회에서 ‘일’은 대체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일을 구걸하고 있는 걸까? 대체 일이 뭐기에?
메이데이가 오고 있었다. 노동자의 근무의욕을 높이고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지정했다는 법정 기념일. 하지만 위로할 노고가 없고 높일 근무 의욕이 없는 청년이 8.7%에 육박하는 지금 메이데이는 대체 누구를 위한 기념일일까. 나는 홍익대로 향했다. 청년실업네트워킹센터 희망청이 <당신에게 일은 무엇입니까?>란 주제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메이데이’를 개최하고 있었다.

행사는 전시, 공연, 포럼의 오프라인 행사와 온라인 이벤트로 이루어졌다. 온라인 이벤트는 희망청 사이트를 방문한 누리꾼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하나, 당신이 일하는 곳의 사진을 찍어 보여주세요. 둘, 당신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셋, 행복을 위해 지금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요? 남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들여다보고 싶었던 나는 생각보다 저조한 참여율에 실망하면서도 일하는 공간과 일의 의미, 그리고 행복으로 이어지는 질문들이 자못 흥미로웠다. 행복을 위해 일이 필요하진 않느냐 물었던 것인가 싶어서. 물론 이들이 말하는 ‘일’은 생계수단으로써의 일은 아닐 것이다.

해가 쨍쨍했던 5월 1일, 홍익대 앞은 북적였다. 오프라인 행사는 오후 두 시 ‘일론(論)회 포럼’으로 시작되었다. 50여명 남짓 모인 홍익대 근처의 한 바에서 『88만원 세대』(레디앙, 2007)의 저자 우석훈과 극우파 록밴드에서 좌파 사회운동가로 전향한 이력의 아마미야 카린(雨宮??), 그리고 하자센터영등포에 위치한 대안학교의 김종휘가 자신들의 ‘일론’을 펼쳤다.

우석훈은 현재의 무한 경쟁시대가 너무 가늘어서 끊어지기 직전의 20대를 만들고 있다고 통탄했다. 그는 나만을 생각해서 하는 일은 ‘악마의 일’이니 내가 조금 일하더라도 남들과 나눌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평범한 말이지만 뼈아프다. 비단 청년들에게만 하는 소리는 아닐 터.

카린은 ‘불안정한 삶을 알리는 활동이 내겐 곧 놀이이자 일’이라 정의했다. 풀어보자. 불안정한 삶? 스스로 프리카리아트(precariat)1의 삶을 살아 왔던 카린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점점 늘어가는 프리터(freeter)2들을 발견했다. ‘대한민국’의 비정규직과는 좀 다르지만 적은 임금에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혹은 아무나) 대신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세대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 카린은 이 상황을 기성세대에 알리는 일을 해 왔다. 글을 쓰고 시위를 하며 세상에 알리기, 그녀는 이 ‘쓴 일’에서 달콤한 행복을 느낀단다. 반성도 빼놓지 않았다. 양극화가 첨예화하면서 온 사회가 거기에만 신경을 쏟다보니 삶보다도 ‘일’만 도드라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주객이 제대로 전도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삶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맞는 말이다. 우린 토익 점수 올릴 줄이나 알았지, 그걸 대체 왜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는데는 단 일초도 아까운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할까?

'노리단'의 퍼레이드 장면

김종휘가 대답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해보라고. 그는 신조어 ‘맥잡(McJob)’3을 예로 들었다. 이는 비단 맥도날드에서만 쓰는 말은 아니다. 대기업 정규직일지라도 맥잡일 수 있다는 것. 즉,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 모르는 상태에서 전공 따라 돈 따라 ‘일’을 한다면 돈은 의미 없이 순환하고 이익은 위로 편중된다. ‘내’가 아닌 ‘나의 직무’를 대신할 사람들만 끝도 없이 양산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자기 소리를 내려거든 자기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그가 힘주어 말했다.

생각할 거리들이 많았지만 포럼은 무겁지 않은, 참여자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였다. 백미는 그 다음이었다. 오프닝 공연을 담당했던 ‘노리단’이 포럼 참가자 모두를 이끌고 한바탕 퍼레이드를 가졌다. 공연주체와 관객이 구분되지 않았다. 음악이 좋고 나눔이 좋아서 노리단이 되었다는 이들이 부러웠다.
이제 포럼의 사회자도, 길을 안내하는 퍼레이드도 없다. 듣고 체험했으니 자기 갈 길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멍하니 구경해도 좋고 나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둘러봐도 좋고 함께 박수치고 흔들거리는 것도 좋다. 멍하니 앉아 기회가 찾아오기만을 바라거나 다른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엿볼 수도 있다. 여럿이 고군분투해볼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주체가 되어 ‘나의 일’을 정의해 보는 숙제는 잊지 말길.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커트라인에 목을 매달 필요는 없다. 당장 제대로 된 소속이 없다고 해서 일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다가오는 메이데이는 ‘일’하는 사람들의 메이데이가 되길. 더불어 그 ‘일’이 남들이 정의한 일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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