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구(cultural studies)’가 중국 학계에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이다. 비슷한 시기의 한국에서도 문화연구가 사회분석의 대안적 방법론으로서 떠오른 점을 감안하면 이를 학문담론의 전지구화의 일환으로 봄직도 하지만, 중국에는 한층 미묘한 맥락이 놓여있다. 1990년대 중반은 ‘사회주의’ 중국에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가 가동되면서 ‘노동’과 ‘분배’ 대신 ‘소비’와 ‘양극화’가, 사회 주체로서 ‘혁명인민’ 자리에 ‘소비대중’이 부상한 시대였다. 또한 대외적으로 홍콩과 마카오를 돌려받음으로써 국제적 위상을 회복하고, 한때 적이었던 서구와 어깨를 견주며 상처받은 중화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해간 때이기도 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1949) 이래, 지난 세기말처럼 변화와 갈등이 극한까지 솟구쳤던 때는 없을 것이다. 정치, 경제상의 변화가 인민의 생활세계 안으로 침투하면서 ‘대중의 감정구조(the structure of feeling)’는 전면적 해체의 국면에 봉착했다. 일부 포스트주의자들은 이제껏 사회를 통제해 온 국가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되었다며 환호했지만, “이데올로기란 구조로서 영원하다”는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8~1990)의 말처럼, 세계화라는 낯선 바람을 타고 초고속 발전가도를 달리는 중국인의 생활세계 속에 이데올로기는 보이지 않되 무소부재하다. 문화연구가 사회 분석의 메스로 요청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21세기 중국의 문화지도』의 저자들은 중국사회를 움직이는 형체 없는 이데올로기를 포착하고 타격하기 위해 전방위적 탐색전을 벌인다. MTV, 부동산, 호텔, 바(bar) 들로 대표되는 도시문화의 면면과 그 속에 담긴 식민 향수, 홍콩 반환 이후 달궈진 진 융(金庸)무협소설가열 안에 웅크린 중화주의적 국족(國族) 상상, 셀프오리엔탈리즘에서 ‘중국식 블록버스터’로 옮겨가는 중국 영화의 숨은 욕망과 콤플렉스, 그 외에도 문화연구의 변방이라 할 농민공(農民工)농촌에서 대도시로 이주한 불법 노동자과 소수민족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지난 10여 년간 중국 현대문화의 수면을 부침해온 주요 현상과 이슈들을 전경화하여 심층적 분석을 가한 일종의 백과전서식 문화사전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필자들이 그린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문화연구의 쟁점이자 현대 중국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이정표들과 만나게 된다. 그 첫째는 문화연구의 대상으로 포착된 농촌이다. 문화연구하면 발달한 도시를 연상하는 우리에겐 얼핏 의아해 보이지만, 농촌 문제는 중국 문화연구의 맹점인 동시에 심층이다. 농민혁명을 기반으로 근대국가를 수립했고 인구의 절대다수가 농민인 중국에서 농촌을 배제한 사회분석은 진정성을 얻기 힘들다. 1990년대 후반부터 베이징과 상하이 등지로 밀려들어 도시의 바닥을 떠받치는 농민공의 존재는 오늘날 중국에서 농촌과 도시 문제가 분리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특히 뤼 신위(呂新雨)가 다룬 바, 문화대혁명 때 농촌으로 하방당한 지청(知靑)들이 낳은 사생아들의 아비찾기는 현대 중국에서 ‘농촌’과 ‘도시’가 혈연으로 맺어진 운명공동체임을 보여주는 역사적 은유이다. 문화연구가 서구의 세련된 이론을 수입하여 우리 삶의 현장(loci)을 분석한다는 원론적 한계에 노출되어 있음을 생각할 때, 도시/농촌이 문화연구의 총체적 대상으로 긴밀한 유기성을 획득하는 이런 측면은 세심히 눈여겨 볼 대목이다.

두번째는 이 책 저자들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건드리고 있는, 이른바 문화의 ‘민간(民間)성’이다. ‘민간’이라는 용어는 1990년대 중반에 출현한 신조어로서 주류 이데올로기의 자장권 안으로 포섭되지 않는 개인들의 생활공간을 지칭한다.1 그런데 과연 문화는 ‘민간적’인가? 다시 묻건대, 문화를 주류 이데올로기 바깥에 독립적으로 구축된 대안 공간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중국의 특수한 상황이 고려되어야겠지만, 이는 문화연구가 보편적으로 직면하는 아포리아이기도 하다. 문화는 이데올로기의 은막을 걷어내는 무기일 수 있지만, 자본과의 타고난 밀착성으로 인해 언제든 이데올로기와 공모하거나 혹은 그 자체로 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기말 중국에 떠오른 ‘약자’ 네티즌이 오히려 중국의 하층민을 더욱더 암담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다이 진화(戴錦華)의 예리한 비판이나, 매체의 ‘자유공간’이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레이 치리(雷啓立)의 허탈한 물음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문화영웅’이라는 환각에 빠뜨리는 문화의 함정에 맞닥뜨리고 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새로운 사회분석 담론으로서 문화연구의 양면을 보여준다. 세계화에 잠식당하는 중국 인민의 일상 곳곳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필자들의 게릴라전에 탄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본과 결합한 난공불락의 국가권력 앞에 무력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문화연구의 진지전은 구축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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