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에 들어와 우리나라에서도 근대 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 고장 인천뿐 아니라 부산이나 목포 등 다른 도시에서도 근대 건축물의 보존 문제를 놓고 시민사회와 소유주, 그리고 지방정부에서 갖가지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근대건축물의 대부분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설계 및 건축되고 또 사용되어 왔다는 역사적 사실과 한계를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문화재로 인정하고 보호하는 것에 한국인이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잠재적 저항심을 느끼게 마련이다. 일본제국이 우리나라를 통치하고 수탈하기 위해 건축한 근대건축물들이 과연 보호의 대상이냐는 물음에 대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옛 조선총독부가 있었던 중앙청 건물을 1995년 철거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실천에 옮겼다. 그런데 해방 이후 50여 년간을 용케도 버텨왔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근대건축물이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사라진 후,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 도시에서는 근대건축물에 대한 관심과 보존을 주장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었으니 역사적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인천에서도 중구청 일대(중구 관동)에 남아있는 근대건축물들을 개조겫맬Ｇ求?한편, 자유공원(중구 송학동) 일대에서는 사라진 근대 건축물들을 복원하는 계획이 구체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제3의 도시로, 동북아시아의 거점도시로, 또한 국제도시를 지향하고 있는 인천의 미래를 위해서 근대건축물들의 보호와 복원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하고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인천시민들이 과거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인천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기를 원하는가, 또 인천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고 있느냐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태어나서 인천에서 살고 있는 필자에게 중구청을 중심으로 하는 구도심지에 대한 향수와 애정은 남다르다. 학창시절까지는 요즈음 신포동이라고 통칭되는 중앙동에서 살았고, 1980년대부터는 자유공원 근처인 송학동에서 거주했으니 일생을 중구청 관내에서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일본식 근대건물들이 대부분이었던 중구 관내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필자에게, 인천은 일본 식민지 시대에 일본인들이 살기 위해 만든 도시라는 관념이 일찍부터 자리잡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물러간 후 1960년대까지만 해도 중구청 일대의 구도심 지역은 일본의 중소도시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인천시청, 경찰서, 우체국, 공회당, 세관 건물들은 물론, 필자가 다니던 창영초등학교와 인천중학교 건물도 일본인이 설계하고 건축한 건물들이었다. 학창생활을 끝내고 언론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한 직후까지도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피해의식이나 반감보다는 열등감이 앞섰던 것은, 일본인들의 도시에서 태어나 살고 있다는 잠재의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같은 인천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 거주지역에서 생활한 사람들과의 차이를 느끼기도 했다). 이렇듯 일본에 의해서 개항되고 도시화된 인천이라는 공간에서 태생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었던 일본에 대한 열등감과 정체성 혼란은 유럽에서 언론사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서서히 해소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일보>사의 파리특파원으로 10여 년간 활동하면서 일본의 근대건축물로 알고 있었던 인천의 근대건축물들의 원형이 모두 유럽에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일본의 근대건축물들은 유럽이나 미국의 건축가에 의해 직겙Ａ♣岵막?영향을 받았고, 일본식을 절충한 경우라도 대부분의 원형은 유럽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 유럽에서 얻은 소득은 개항 이후 인천이 일본인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유럽과 미국 시민들도 섞여서 사는 국제도시였다는 사실이었다.

프랑스 특파원 시절 파리 국립도서관을 비롯하여 영국의 해양박물관 등을 자주 드나들면서 인천 관련 자료를 찾는 일은 큰 보람과 흥미를 안겨주었다. 유럽 각국의 도서관이나 박물관에서 인천 관련 책자나 자료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사진엽서나 우편사 관련자료 그리고 서적 수집이 시작되었다. 비록 인천이 일제 치하에 있기는 했지만 미국이나 유럽 상인과 선교사도 함께 거주하는 국제도시였고, 인천항을 통해 세계 각지의 상품과 사람들도 오갔다는 사실은 여러 자료에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복원이 거론되고 있는 존스톤 별장과 세창양행 사옥이 각각 영국인과 독일인이 건축한 건물이고, 현재도 남아있는 제물포클럽(현 중구문화원)이 인천 거주 외국인들의 사교장으로 건립되었다는 것도 인천이 국제도시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더구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이나 미국에서 큰 부수를 자랑하던 신문에서는 세계 각국의 여행기를 연재하는 것이 큰 유행이었는데, 한국 여행기에서 제물포(인천)가 빠진 적이 없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인천의 근대건축물의 원형이 유럽에 있다는 점, 인천이 국제도시였으며, 당시 각국의 유수한 신문에서 인천 관련 기사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는 점은 큰 보람이자 소득이었다. 이를 계기로 인천 향토사 연구와 자료 수집은 자연스럽게 계속되었다.

인천이 비록 일제 식민지 시대에 조성된 도시이기는 하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제물포라는 한국의 대표적 항구이자 국제도시로 유럽이나 미국에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은, 필자로 하여금 인천의 정체성을 국내외적으로 제대로 확립해야겠다는 의지로도 연결되었다. 또한 조부와 선친께서 보여주었던 한결같은 애향 정신 역시 인천 향토사에 관한 관심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일본인처럼 근대건축물에 남다른 애착심을 갖고 있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쪽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메이지(明治) 초기부터 다이쇼(大正) 때까지, 즉 1860년도부터 1920년대 초까지 건립된 서양식 건물을 근대건축으로 분류하고 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후 60년 동안 외국인(주로 미국 또는 유럽인)이나 일본인에 의해서 설계되고 건축된 근대건축물들이다. 이 건물들은 근대 국가를 지향하고 경제 발전을 효과적으로 진행했던 시기와도 맞물려 있기 때문에 우리와는 달리 성공한 역사의 상징이기도 하다. 미국의 페리(Mattew C. Perry, 1794~1858) 제독에 의해서 최초로 개항되었던 요코하마(橫浜), 고베(神戶), 하코다테(函館) 같은 일본의 대표적인 항구도시에는 개항 당시의 근대건축물들이 대부분 잘 보존되어 있다. 하코다테의 경우, 과거 우체국 건물은 메이지칸(明治館)이라는 이름의 토산품 겸 기념품 상점가로 활용되고 있으며, 빨간색 벽돌의 옛 창고 건물들 역시 리모델링하여 식당이나 상점 등 관광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페리 제독에 의한 개항 이전부터 막부 정부가 제한적으로 제국에 개방하고 있었던 나가사키(長崎)에는, 이보다 연대가 오래된 서양식 건물들과 일본식 건축 양식을 절묘하게 조합한 근대 화풍(和風) 건축물들이 남아있다. 나가사키 항구가 바라보이는 야마테쵸오(山手町,과거 인천의 송학동 명칭도 山手町이었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는 아니었을 것이다) 일대에 보존되어 있는 대부분이의 근대건축물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연간 1천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을 나가사키로 유치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가 되었던 그라바엔(グラバ園)과 성당 및 선박회사건물들은 입장권을 사서 관람하도록 되어 있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치지 않는다.

일본 열도와 한반도 및 대륙을 연결하던 관부(關釜) 연락선의 일본 쪽 항구도시인 야마구치(山口)현의 시모노세키(下關)를 가보면 근대건축에 대한 일본인들의 애정과 집착을 실감할 수 있다. 1906년에 완공된 일본 최초의 외국 공관 건물인 붉은 벽돌로 된 영국 역사관(현재 시민휴식공간으로 이용)과 서양식과 일본식을 배합한 화양(和洋) 절충식 해운회사 아키타(秋田)상회 건물(1915년 완공)도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우체국 건물(1900년 완공)은 현재도 시모노세키(下關) 난부쵸오(南部町) 우체국으로 사용되고 있는 순수 서양식 건물도 시모노세키의 자랑거리다. 오래전부터 인천과 자매도시 관계를 맺고 있는 후쿠오카(福岡)현 기타큐슈(北九州)시의 일부인 모지(門司)항에도 유명한 근대건축물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벽돌 2층의 모지(門司) 세관 건물(1912년 완공)과 목조 2층의 오사카 상선(大阪商船) 건물(1917년)이 있으며 목조건물로 된 모지항 역사(驛舍,1914년 완공)와 미츠이(三井)물산 모지 지점 사교클럽 건물은 아인슈타인 박사 부처가 투숙했던 곳으로도 유명한데, 모두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시모노세키나 모지 같은 중소도시에서까지 근대건축물들을 대표적인 관광지로 꼽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도 근대건축물에 대한 일본인들의 애정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일본에서도 기존 건물을 보존하고 이를 리모델링하여 도서관, 자료실, 기념품상점, 식당, 시민휴게실 등으로 이용하고 있으나, 없어진 건물을 복원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에서는 서양의 영향을 받은 근대 건축물이 초기에는 외국인에 의해 설계겙플碩퓸珦립?곧 이어서 일본인에 의해 일본 건축으로 서서히 일본화된 뒤 현대건축으로 자연스럽게 이전되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본의 형편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근대건축과 현대 건축 사이에 필연적인 공백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이 같은 공백 현상이 근대건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인식에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 근대건축을 스스로 수용하고, 여기에 전통 건축양식을 절충해 가면서 우리 건축문화를 자연스럽게 발전시킬 수 있는 과정을 박탈당했으니, 우리로서는 식민지 시대의 근대건축물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양극화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쿄올림픽이 열리던 1964년, 필자는 대학 졸업반 시절에 일본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2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극복하고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던 일본의 집집마다 있는 텔레비젼과 냉장고, 도쿄와 오사카를 3시간 대에 주파하는 신칸센(新幹線), 대도시에 있는 일급 호텔시설 등에 놀라기도 했지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나라(奈良)시에서 고적들을 답사하면서 우연히 보게 된 나라 현청(縣廳) 건물이었다. 일본의 유서 깊은 역사 도시에 있는 현청 건물답게 현대식으로 설계되었지만 일본 신사(神社) 입구나 불교사원에서 느낄 수 있는 일본식 곡선과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1990년도에 완공된 도쿄(東京) 도청(都廳) 건물과 작년에 개관한 후쿠오카의 기타큐슈 박물관 건물들도 일본의 현대 건축문화가 근대건축에 확고한 바탕을 두고 발전해 왔음을 말해준다.

일본인들이 지진이나 전쟁 때문에 없어진 근대건축물들을 복원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나라에 비해 근대건축물이 워낙 많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복원의 의미를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건축은 역사와 시대의 증거물이고, 그 시대의 실용성과 미적 감각을 그 당시의 기술과 자재들을 사용해서 만들어낸 종합적인 작품이다. 1백년 전 건물을 오늘의 자재를 이용해서 기계 위주의 기술로 복원하는 것을 디즈니랜드 식이라고 비유하는 데도 일리가 있다고 한다면 인천의 근대건축물 복원문제도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모방과 복제품 만들기에는 남다른 재주가 있다는 일본인들이 네덜란드 건물을 모델로 만든 하우스텐보스나 제정(帝政) 러시아가 극동 진출의 본부로 삼았던 중국 따렌(大連)의 동청(東淸)철도건물(1902년 완공)을 일본의 국제우호기념도서관(후쿠오카 기타큐슈현 모지 소재)으로 복제해 놓은 건물을 살펴보면, 건축사적 의미나 역사적 유물의 복원이라는 의미보다는 관광시설의 하나 정도로 느껴진다. 오늘날 제대로 된 한옥(韓屋)을 짓기가 불가능해졌다는 전문가들의 한탄조의 고백을 듣다 보면, 근대건축물의 복원 문제가 간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인천은 1950년대에 이미 고(故) 최성연(崔聖淵, 1914~2000)의 『개항과 양관역정(洋館歷程)』이라는 근대건축물에 관한 저서가 나올 정도로 이 방면에 선구자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 근대건축물들이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뒤 휴전 후에도 건축물에 대한 무관심과 정책부재로 많은 건물들이 사라지고 말았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의식주가 궁핍했던 시절, 경제개발 과정에서 사라진 건축물들을 포함한 인천의 근대건축물에 대한 학술적 관심은 2000년대를 전후하여, 중국 베이징 칭화대학의 건축학원 연구교수인 이안의 연구와 저서를 통해서 실로 오랜만에 재조명되었다. 이안은 중국의 근대건축을 연구하고, 2003년도에는 『상해 근대도시와 건축(1845-1949)』라는 역저를 낸 바 있는데, 앞으로 인천 근대건축물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기대해 본다. 또한 손장원이 2006년 말에 내놓은 『인천 근대건축』은 최성연의 『개항과 양관역정』 발간 50년 만에 인천의 근대건축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역저라 할만하다.

지난 50년 동안에도 간헐적으로 인천의 근대건축물에 대한 관심이나 견해가 발표된 적은 있었지만, 인천광역시와 중구청이 본격적으로 근대건축물 보존과 복원 사업에 나서고 있는 시점에서, 이안과 손장원이 연구결과를 내놓고, 인천문화재단에서도 만국공원 기억전 등을 통해 건물복원 문제를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는 일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중구청이 4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중구청 앞길의 일본식 가옥 10여 채의 외관을 리모델링하고 있는 현장을 보면, 획일적이고 비전문적으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이런 식으로 리모델링이나 건물 복원을 하게 된다면 관광자원이라기보다는 웃음거리나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우려다. 여하튼 인천의 대표적인 구 도심지역에 살고 있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근대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를 보호하고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접할 때마다 보람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09년 도시엑스포와 2014년 아시안게임 유치를 통해서 국제도시로 거듭나려는 인천은 근대건축물의 보존과 복원에 있어서도 좀 더 전문적이고 진지한 논의를 거쳐 차근차근 집행해 나갔으면 한다. 잘 보존된 근대건축물과 첨단 현대식 건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품격 있는 국제도시 인천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