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인형 탄생 50주년
이 시대, 바비(Barbie) 미국의 장난감 회사 마텔(mattel)에서 만든 성인 여성 모양의 인형 가 좋아할 남성상은 어떤 부류일까? 한번 상상해보자. 이 패셔너블한 여자가 서울에서 태어났고, 주기적으로 다이어트를 하며, 힙합을 듣고, 아멜리 노통브 (Amelie Nothomb)유명 프랑스 소설가, 1992년『살인자의 건강법』으로 데뷔의 소설을 읽으며 담배 피우는 걸 주저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여자라면, 아마 그녀가 좋아할 만한 남자는 단연 빅뱅 국내 아이돌 그룹가수 같은 부류일 거다. 패션지 기자들이 입이 아플 정도로 떠드는 에지(edge) 날카로운 감각라는 말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하지만 천만에 말씀! 바비는 이 아이돌 그룹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빅뱅이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중년의 여인과 어울릴 수 있나. 인간의 나이로 치자면 바비는 늙었다. 마텔사 최고의 히트작 바비 인형이 탄생한 지 올해로 꼭 50주년이다.
세계의 바비 인형들
잡지사에 다니던 시절, 바비 인형으로 화보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패션팀 화보였는데, 당시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입힌 바비와 한복을 입고 머리에 가채를 쓴 색다른 바비를 촬영했었다. 기모노, 아오자이,베트남 전통의상 왈츠복, 튀튀(tutu) 발레리나 의상으로 챙이 넓은 치마가 달린 의상까지 각국 의상을 입은 바비는 이미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었다. 바비의 경우 패션쇼가 열릴 정도니, 그녀의 의상은 세상의 디자이너 숫자만큼이나 많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한복을 입힌 바비의 얼굴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던 건, 그녀의 푸른색 눈빛과 금발머리 탓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뭐랄까. 모름지기 한복이란 단아한 맛이 나는 의상으로, 어깨가 좁고 아담한 체격의 한국 여자들에 맞게끔 디자인되어 있는 옷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옷과 얼굴이 따로 노는 듯한 모습은 영 어색하다. 왜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아름다운 금발의 서양여자라도 한복을 입으면 어정쩡한 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
세계의 바비 인형들
사실 최초의 바비가 입은 의상이 수영복이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 같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검정색 스트라이프 수영복. 그것이 바비의 첫번째 옷이었다. 굳이 페미니스트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그녀가 국소 부위만 가린 채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은 많은 사회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 지금보다 조금 덜 길고 조금 덜 마른 최초 바비의 다리는 특히 눈에 띈다. 그 시대의 아이콘(icon) 마릴린 몬로(Norma Jean Mortensen, 1926 ~1962)의 육감적인 몸매가 그녀에게서 엿보이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허리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가늘고 종아리는 제법 굴곡이 있다. 바비의 나이가 50세인 걸 감안하면, 초창기의 바비는 그 시절의 이상적인 몸매를 정확히 반영해, 육감적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육감적인 인형은 점점 깡말라, 기어이 깡마른 모델의 대명사 케이트 모스(Katherine Ann Moss) 뺨치는, 이쑤시개만큼 가는 다리를 자랑하게 되었다. 변해봐야 지독한 말라깽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진 않지만 말이다. 여자 아이들이 바비를 가지고 놀게 되었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비극적인 사건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몸이 뚱뚱하다는 자의식을 가지는 것은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상을입은 바비들
왜 난 바비처럼 날씬하지 않지? 이런 의문은 빼빼 마른 사람들의 집합소인 모델 세계에서조차 적용돼서, 작년 한 해 영양실조로 죽은 모델만 대여섯 명이 넘을 정도다. 세계적으로 성형 수술 열풍이 가장 거센 브라질의 경우, 모델들이 영양실조와 거식증으로 연달아 사망한 경우까지 있었다. 정말 끔찍한 일 아닌가. 직업병의 하나가 영양실조와 거식증에 의한 사망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영국에선 말라깽이 모델들을 기용하지 않는 법률안을 마련했고, 이태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잔뜩 인상을 쓴 디자이너들도 반대했다지만 사람들의 눈은 이미 빼빼 마른 다리에 익숙해서 조금이라도 풍만한 몸집의 여자를 보면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너무 뚱뚱하잖아!
바비에 대한 공격은 사실 수십 년 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자극적인 드라마, 소위 막장드라마가 매체의 엄청난 비판에도 시청률의 고공 행진을 기록하는 것처럼 바비는 단 한번도 인형업계의 권좌(權座)를 내주지 않았다. 나름대로 자신의 스타일을 이어가며 다양한 시도를 한 것이다. 바비의 여동생과 남자친구, 이웃들은 그렇게 해서 태어났고 바비라는 콘텐츠 하나로 각종 패션용품과 주변 산업들이 발전했다. 무엇보다 바비가 선택한 진화는 영리했다. 이 말라깽이 여자는 그저 얼굴이 예쁜 멍청한 금발머리 여자에서 파일럿, 경찰관, 의사 등 자신의 직업을 늘려가더니, 급기야 여자 레슬러까지 되어 스스로 21세기형 여자로 진화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여성의 급변하는 위상에 맞춰 직업이 변하고, 자의식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법칙이 하나 있다. 50년 동안 한 번도 뚱뚱한 바비는 태어나지 않았다.
다이어트 때문에 연간 수조 원의 돈이 왔다 갔다 하는 이 시대에 바비만큼은 여전히 이쑤시개 몸매 그대로이다. 사실 바비의 패션보다는 몸이 훨씬 더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비의 의상은 패션을 선도하기보다 현실을 모방하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미니멀리즘(minimalism)1 시대엔 그녀의 의상은 담백해졌고, 힙합과 에스닉(ethnic) 시대2엔 한껏 늘어지고 풍성한 색감의 옷을 입었다. 소품 역시 명품을 든 바비부터 전통 대나무 가방을 든 바비까지 다양하다. 중요한 건 그 말라깽이 몸매에 맞는 옷들이다. 뚱뚱한 여자가 입을 수 없는 옷들이라는 거다. 착각하기 쉽겠지만 인류가 온통 날씬한 여자만 선호했던 것은 아니다. 다이어트란 그저 시대정신일 뿐이란 소리다. 과거에 통통한 몸이 부의 상징이었던 것처럼 미의 여신 비너스의 몸은 풍만함, 그 자체다. 사실 중세 여자들 또한 육감적인 몸매를 가꾸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고 한다. 젊음을 위해 소녀들의 피로 목욕까지 한 바토리 백작 부인(Elizabeth Bathory) <더 카운테스The Countess>(2008)로 영화화함 같은 엽기적인 인물도 있었으니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단 하나, 중세 여자들은 그 누구도 감량을 위해 안달하지 않았다. 당시엔 체중이 100파운드(45킬로그램) 이하로 내려가면 하루아침에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하는 일이 횡행했기 때문이다. 몸이 가벼우면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나? 하루 500칼로리 밖에 먹지 않는다는 엘리자베스 헐리(Elizabeth Jane Hurley)나 힌두교 도사가 제안한 맛없는 식단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는 기네스 펠트로(Gwyneth Kate Paltrow)가 들으면 기겁할 일이다. 말인즉, 미의 기준이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탄생 50년을 맞이한 이 패셔너블한 아이템이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으면 좋겠다. 거식증에 걸린 듯한 말라깽이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중간치 즉 평균 몸무게의 여자도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 말이다. 물론 인형이 판타지를 추구한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50년을 배짱 좋게 말라깽이들로 밀어붙였으니, 이제 몸매도 조금 현실적으로 바꿔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주)
1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과 문화적인 흐름으로, 제2차 세계대전(1939 ~1945)을 전후하여 시각예술 분야에서 출현하여 음악, 건축, 패션, 철학 등 여러 영역으로 확대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음.
2 유럽 이외의 세계 여러 나라 민속 의상과 민족 고유의 염색, 직물, 자수, 액세서리 등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패션이 두드러지는 시대.
白榮玉 1974년 서울생. 소설가. 작품으로 『스타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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