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인천은 두 개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어린 시절 자유공원에서 보았던  ‘죽지 않는 노병’ 맥아더의 동상, 그리고 십대 끝에 찾아간 월미도 카페 거리의 유치한 낭만. 물론, 이 두 공간에 대한 기억은 모두 희미하다. 지금 인천은 인천공항이 있는 곳 정도로 기억될 뿐이다. 그러다 ‘만국공원 복원’ 논쟁을 계기로, 처음 인천이라는 공간을 생각해본다. 서구 열강들의 출입구로 기능하던 곳. 맥아더 동상으로 표상되는 한국전쟁전후 미국에 대한 우리의 기억을 간직한 곳.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가 있는 곳. 이런 기억들만 종합해보면 인천은 그 자체로 인터내셔널한(글자 그대로 ‘만국적(萬國的)’인) 공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부자유스런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자유공원’ 대신 ‘만국공원’이라는 이름을 복권시키자는 것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만국공원을 복원하는 문제는 공원의 개명(改名)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원의 기억과 관련된 문제다. 무엇을 기억해낼 것인가, 누구의 기억을 왜,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라는. 이 ‘기억’을 문제삼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복원은 무의미하다. 기억은 과거에 대한 표상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현재적이기 때문이다.

만국공원 복원 문제를 놓고 이뤄진 논쟁들은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되는 듯하다. 하나는 창조적 복원이 가능한가, 그것이 과연 복원할 가치가 있는가, 라는 복원의 현실성과 가치를 둘러싼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공원’에 대한 공적/사적 기억을 둘러싼 문제이다.

근대공원은 개인들의 사적인(private) 이야기(기억)들로 채워지는 공적(public)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유공원은 공적인 기억이 개인들의 사적인 기억을 뒤덮고 있다는 점에서(전쟁-인천상륙작전-영웅 맥아더-자유수호자 미국이라는 표상의 계열) 그 자체로 거대한 기념비에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한 공간의 배치 자체가 우리의 시선과 의식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보면, 맥아더 동상을 정점으로 하는 공간 배치를 바꾸거나 냉전시대의 표상들을 이동시키는 등의 기획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만국공원 복원은 공간의 배치나 자유공원의 기억에 대해 질문하고 그것을 공론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사라진 공간을 ‘복원’함으로써 공간에 새로운 기억을 부여하려는 기획이다. 복원 자체에 대한 의문(‘창조적 복원’이 가능한가? 복원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인가?)이   논쟁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나는 만국공원 시절의 건축물들이 갖는 건축사적 의의에 대해서는 문외한일 뿐더러, 정확한 복원의 가능성이라든지 가치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이 논쟁을 따라가는 내내 한 장의 사진에 눈길이 머물렀다.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자리에 있었다는, 자유공원의 꼭대기에서 만국공원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건축된 존스턴 별장의 사진. 이 사진을 보고 난 후 떠나지 않았던 의문은 왜 존스턴이라는 인물의 사적인 건물이 공적인 공간(The Public Garden)에 자리 잡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위 - 인천항 정경 중간 - 맥아더 동상과 화도진 아래 - 만국고원

<만국공원의 기억>전 도록(인천문화재단)에 따르면, 자유공원의 기원은 “1888년에 미국, 러시아, 영국, 일본, 중국 등 여러 국가의 외교관들이 공동 서명하여 설립한” ‘각국공원’이라고 한다. 이후 여기에 존스턴 별장을 비롯해 독일 상사원들의 숙소인 세창양행 사택이며, 독일 상인 파울 바우만의 주택, 미국, 독일, 러시아, 일본인들의 사교장인 제물포구락부, 성 루카 병원 등이 조성되었다. 그러니까 만국공원의 ‘공공성Publicity’이란 결국, 서양인들의 사적 공공성이었던 셈이다. 그럴진대, 여러 나라의 건축물이 공존했다는 이유만으로 여기서 다문화의 융합성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거꾸로, 만국공원을 조망하는 존스턴 별장의 시선에서 아시아로의 시장 진출을 꿈꾸는 제국의 오만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런 시선과 기억들을 무시한 채 식민지 이전의 공간을 복원하는 것이, 자유공원의 기억보다 더 행복한 기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복원해낸 기억이 우리를 식민지와 이념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그 공간이 ‘원래 그러했음’을 확인하는 것 외에 대중은 그렇게 복원된 ‘공간’과 ‘기억’으로부터 무엇을 사유할 수 있을까? 맥아더 동상이 철거된 자리에 들어선 한 영국인의 별장을 보면서 자유 이데올로기 대신 서양문화의 세련됨을 동경해야 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개항 당시 서양 열강들의 흔적을 통해 인천은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을까? 역사적 복원이라는 거대한 열망 안에, 어쩌면 역사를 구경거리화하고 한 공간에서 이외의 기능을 거세해버리는 초라한 관광주의가 내재해 있는 건 아닐까?

청계천이 복원되었다. 하지만 청계천은 과연 무엇을 ‘복원’했는가? 밤마다 환한 전등축제가 벌어지고 연일 사람들로 북적댄다. 하지만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됨에도 불구하고 물은 썩어 들어가고 진정 복원되어야 했을 하천 생명체들의 삶은 철저히 소외되었다. 청계천은 구경거리로서 복원되었고 우리는 구경꾼으로 초대되었다. 사유 없는 복원. 나는 진심으로, 만국공원이 그런 구경거리로 복원되지 않기를, 우리가 그 인공적인 역사의 공간에 초대받은 구경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부자유한 자유공원으로 남아 있기를, 그러다 점점 잊히기를, 또 그러다 언젠가 진정한 ‘공원(公園, public garden)’으로 거듭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