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10월 5일이 ‘세계 한인의 날’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그 일환으로 10월 4일부터 7일까지 ‘세계한인주간 코리안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곳곳에서 문화예술행사들이 개최되었다. ‘지구촌 한인 예술가들의 축제 한마당’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아티스트(주로 공연예술인)들이 서울의 한 자리에 모여 행사를 가진 것이다.

이 행사에서 대형행사로는 10월 6일 대학로에서 개최된 한인예술한마당이었다. 1부는 ‘우리 전통, 세계한인과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국악과 클래식의 협연’이 이루어졌고, 2부는 록 밴드들의 공연과 더불어 DJ와 함께 하는 파티가 이어졌다. 이 가운데 1부에서 연주된 음악은 나의 전문 분야도 관심 분야도 아니니 특별한 평은 하지 않겠다. 단지 1부가 끝날 때 출연했던 아티스트들을 무대 위에 모두 불러서 사회자가 집요하게 ‘우리는 같은 핏줄’을 강조했던 부분은 내가 사전에 했던 기우를 현실로 만들었다. 재외한국인들의 정체성을 한국인의 신체로 태어나서 상이한 문화 속에서 성장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고려하지 않고, 어떤 ‘본질’을 전제하는 발언의 기조는 때로 ‘불편한’ 수준이었다.

그 점에서 1부와 2부의 차이는 ‘1부는 고급예술, 2부는 대중문화’라는 차이보다 더 컸다. 상징적으로 1부에 출연한 재외 한국인 아티스트들 대부분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알았던 반면, 2부에 출연한 아티스트들은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거나 어눌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한 밴드를 제외한다면, 그들이 대동한 밴드 멤버들은 한국계가 아니었다. 중국 베이징에서 온 추이 (崔健)은 10명으로 구성된 대형 밴드 가운데 유일한 한국계(조선족)였고, 일본 도쿄에서 온 시바다 타케나리(紫田剛成)는 3명으로 구성된 나인(Nine)의 멤버들 가운데 유일한 한국계(재일한국인)였고, 미국 시카고에서 온 제니 최(Jenny Choi)는 2명으로 이루어진 사나운(Sanawon)의 일원일 뿐이었다. 카이트 오퍼레이션(Kite Operation)만이 4명의 젊은 교포들로 구성되었다. 당연히 노래의 가사는 중국어, 일본어, 영어 사이에서 횡단과 진동을 거듭했다. 

따라서 2부의 공연은 ‘우리는 하나’를 확인시켜준 자리라기보다는 한국인이 얼마나 상이한 정체성으로 살아갈 수 있고, 얼마나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자리였다. 음악적으로 보더라도 모두 ‘록 음악’이라고 묶일 수 있는 음악이기는 했지만 스타일과 정서는 모두 달랐다. 중국의 민속악기를 혼합한 추이 의 에너지 넘치는 ‘중국 특색의 록 음악’, 제이팝(J-pop) 의 향취를 머금은 나인의 깔끔한 기타 밴드의 음악, 기타 없이 키보드가 이끌어가는 사나운의 인디 팝(indie pop), 노이즈와 샤우팅으로 뒤덮인 카이트 오퍼레이션의 실험적 사운드 사이의 차이는 ‘민족의 동질성’으로 쉽게 뒤덮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만약 중국, 일본, 미국에서 한국계 멤버가 없는 다른 밴드들이 왔다고 해도 이 날의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즉, 이들의 음악에서 ‘한국성’을 느끼기란 쉽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서 이 날 연주된 음악은 한국 가요는 물론, 한국 록과도 사뭇 이질적이었다.

물론 한국계가 밴드의 일원으로, 대부분 리더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들 음악에 ‘순수한’ 중국/일본/미국의 음악과는 무언가 다른 질감을 부여해 주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가운데 가장 명시적이었던 것은 추이 이었다. 첫번째 곡 <붉은 깃발 아래의 알(紅旗下的蛋)>은 음반에 수록된 것이나 평소에 연주하던 것과 그리 다르게 편곡되지 않았지만, 두번째 연주한 <날아(飛)>는 사뭇 달랐다. 아마도 민족의식이 강한 사람이라면 한국의 민속 리듬이라고 느꼈을 만한 편곡이었다. 그 뒤 마지막 곡을 연주하기 전 추이 은 영어로 연주할 곡을 설명했다. 자신이 한국말을 못해서 미안하다며 한국의 리듬을 중국의 전통적 멜로디와 결합한 곡을 연주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연주된 곡은 의외로 영어 가사를 가진 <아웃사이드 걸Outside Girl>이라는 곡이었다. 한국의 리듬, 중국의 멜로디, 영어 가사. 이렇게 이질적인 문화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을 통해 나는 어떤 경계들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이는 재외교포를 ‘한국인이냐 외국인이냐’라는 이분법으로 생각하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다.

그리곤 추이 은 홀연히 떠나갔다. 그 전날 쿤밍에서 공연을 갖고 그 다음날은 다시 상하이로 날아간다고 했다. 음악의 힘이란 민족의(혹은 다른 무엇의) 본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경계를 넘어다니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