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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디션을 넘어 플랫폼으로
통권 : 49 / 년월 : 2015년 1,2월 / 조회수 : 3521

음악시장의 ‘미생’

얼마 전 화제 속에 종영된 드라마 <미생>의 OST에는 한희정, 장미여관, 볼빨간 사춘기 등 아직은 주류 음악시장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드라마 OST에 실력 있는 비주류 뮤지션이 참여하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일이지만 드라마 <미생>의 경우 극의 내용과 맞물려서 OST의 음악 외적 효과까지 입혀질 수 있었다. 예컨대 드라마 속 주인공이 정점의 수난을 당하는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쓸쓸하게 흘러나오던 볼빨간 사춘기의 <가리워진 길>을 들을 때면 드라마 속 가상의 주인공과 노래를 부르는 실제의 주인공이 오버랩되곤 했다. 가상과 현실을 가로질러 그들의 미래가 노랫말처럼 “보일 듯 말 듯” 막막하게 느껴졌다.

                     

                      tvN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경북 영주의 버스킹 밴드 출신인 볼빨간 사춘기는 올해 열린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6>(이하 <슈스케6>)를 통해 전국의 음악팬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열한 개 팀이 생방송 경연무대에 오르는 ‘탑11’ 선발 직전에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텔레비전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미 방송과 연예기획사, 그리고 주요 음원사이트의 이해관계를 연결시켜주는 음악시장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일정한 단계를 넘어선 화제의 팀들은 오디션 통과자로서의 기회와 특권을 누리곤 한다. 볼빨간 사춘기는 <슈스케> 출연 이후 오래지 않아 인기 드라마의 OST에 참여하는 행운을 얻었으니 지방의 무명 10대 밴드에 불과했던 이들의 때 이른 성공은 “기적을 노래하라!”라고 하는 <슈스케>의 캐치 프레이즈에 부합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 짓기는 곤란한 속사정들도 엿보인다. 원래 4인조 혼성밴드였던 볼빨간 사춘기는 <슈스케6>가 채 막을 내리기도 전에 3인조 여성밴드로 재구성되어야 했고, 전문 편곡자와 세션 연주자들이 가세한 드라마 OST 음원에서는 사실상 보컬인 안지영의 목소리만 부각되었을 뿐이다. 머잖아 밴드 자체가 해체되고 안지영 혼자 솔로로 남게 될지도 모르며, 그녀 혼자만이라도 계속해서 ‘가리워진 길’의 성공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들의 운명이 그들 자신의 자율적 결정과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 씁쓸하지만, 그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달갑게 받아들여야 할 전제조건이다.



자본주의 시장의 불확실성이 비단 음악시장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음반시장의 몰락 이후 호흡이 부쩍 가팔라진 음악시장의 생리상 주류 음악인들이 발표하는 음악의 상업적 성공 여부 또는 성공의 지속 가능성조차 불투명해진 게 사실이다. 바로 이 지점, 누구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불투명한 음악시장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 현실적 토대가 된다. 인정욕구에 기반한 상징적 기대이든 현실의 부와 명예를 향한 물질적 기대이든, 아마추어 뮤지션들에게 <슈스케>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대중음악가로서의 ‘성공’을 위한 거의 유일하고 확실한 수단과 발판으로 간주된다. 이때 ‘성공’의 내용은 사실상 문제 삼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문제적이다.

                      

                       Mnet <슈퍼스타K6>에 참가한 4인조 혼성밴드 볼빨간 사춘기

오디션 프로그램을 대비하는 아마추어 뮤지션들의 심정은 대기업 취업 준비생의 심정과 닮아 있다. 실력과 스펙, 면접과 미션, 지시와 순응이 요구되거나 수반되는 혹독한 통과의례의 과정을 무사히 넘어서는 것, 그 다음 일에 대해서는 사실상 생각할 겨를이 없다. 물론 이러한 비유는 지나친 면이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우 그 통과의례의 과정 자체에서 참가자들이 기업의 이윤을 위해 동원되고 착취되며(광고 출연이나 음원 판매), ‘정규직’ 선발은 애초에 전제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디션 프로그램의 도전자들은 1차 예선 탈락자에서 최종우승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미생’이다.

대중음악의 종언

오디션 프로그램의 유행이 음반에서 디지털 음원으로의 매체 변화를 배경으로 하는 음악시장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관련이 있는 한편, 그와 무관하지만은 않은 대중음악의 제도화와도 연관이 있다. 한국의 대학에서 보통 ‘실용음악과’라고 불리는 대중음악 관련 학과의 인기는 지난 10여년 사이에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커졌다. 그 결과 이제 대중음악인도 자연스레 전공자와 비전공자로 나뉜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말하자면, ‘음악 전공자’라는 라이선스를 획득하는 유사 입시의 상징적 관문이기도 한 것이다. 대중음악이 이렇듯 제도화된다는 것은 ‘대중음악’의 개념적 맥락상 자기부정적이다.



최근에 발간된 번역서 『레트로 마니아』의 저자 사이먼 레이놀즈가 진단하듯 20세기적 의미의 대중음악(번역서에서의 정확한 워딩은 ‘팝음악’)은 지금 종언을 고하고 있다. ‘종언’이라는 묵시록적 표현이 거북하지만 다음 시기에 출현할 새로운 국면을 전망하는 의미에서라면 써볼 만하다. 우리에겐 클래식음악이라는 좋은 선례가 있다. 20세기 초에 이미 18-19세기적 의미의 클래식음악은 종언을 고했다. 그 조짐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연관되는 과정으로 나타났다. 과거의 음악에 대한 집착, 위대한 작곡가와 정전正典에 대한 경배,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제도적 구분, 경쟁(콩쿠르)을 통한 연주자의 희소가치 창출 등, 지금 대중음악이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는 일들이다.

『레트로 마니아』의 표지

20세기 초부터 음반이라는 매체에 힘입어 클래식음악에서 과거의 음악들이 현재로 소환되었다면, 21세기 디지털 매체 환경을 배경으로 대중음악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클래식 콩쿠르에서 과거의 모든 음악을 현재라는 평면 위에 뒤섞어 다루어 왔듯이 21세기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제 대중음악이 그렇게 되고 있다. 클래식음악에 이어 대중음악에서도 ‘음악사’는 ‘현재’라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음악사의 이러한 순환적 과정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다만, 현 시점에서 클래식 콩쿠르와 대중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의 기시체험적 상동성이 밝혀주는 한 가지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콩쿠르 우승자와 오디션 우승자가 구사하는 세련된 음악이란 기실 청중들의 높아진 미감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매체변화와 음악경제적 한계상황에 대응하여 불평등한 자격 배분을 통해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제도화된 기술과 자본이 요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미생에서 완생으로

요컨대 오디션 프로그램은 디지털 기술혁명의 혼란기에 자리 잡은 과도기적 이벤트다. 그것은 음원판매라는 새로운 이윤추구 형식의 가능성을 독점적 방식으로 극대화하면서 기존 음악시장의 해체를 필사적으로 지연시키고자 하는 문화산업적 시도이기도 하다. ‘포스트음반시대’를 향한 이 과도기적 상황은 주류와 비주류를 막론하고 음악가의 생존을 위협하고 그들을 그 어느 때보다 주류 음악시장에 순응하도록 만들고 있지만,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양면적이다. 기술은 근대적 개인으로부터 소외되어 타자화된 세계를 구성하지만 그 타자화된 세계의 횡포에 맞설 수 있는 힘 또한 그러한 기술의 습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세련된 음악적 기술을 갖춘 많고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존재 자체가 증명하듯 전면화된 디지털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음악적 개인들로 하여금 음악적 기술을 쉽게 익힐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나아가 홈레코딩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되고 인터넷 기반의 음악 플랫폼이 다각화되면서 자신의 음악을 통해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음악가들의 기회는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영화 <비긴 어게인>의 한 장면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들이 스스로 회사를 차려 ‘미생’에서 ‘완생’이 되고자 새로이 선택했던 방식, 혹은 음악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그려진 바 홈레코딩을 통한 ‘작업장 공동체’가 기업형 음반사의 제안을 거부하고 새로운 플랫폼을 찾았던 방식이 그저 드라마나 영화 속 낭만적 환상이나 꿈만은 아니다. 적어도 음악에서 그것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음악가들은 이제 오디션의 수동적 기회를 넘어서 그들의 다양한 욕구와 소통을 실현시킬 수 있는 ‘작업장 공동체’의 플랫폼을 능동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예술과 음악에서 진정으로 ‘성공’을 논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심미적 공동체와 민주주의의 실현을 통해서만이 아닐까.




#저자 약력
崔裕峻 1969년 부산 생.
음악평론가. 전남대학교 감성인문학연구단 HK교수. 최근 저서로 『대중의 음악과 공감의 그늘』, 『음악문화와 감성정치』 등.
hoggenug@naver.com

글쓴이 : 최유준
작성일 : 2015/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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