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 Menu Body
플랫폼
웹진 검색하기          상세검색

 비평공간 / <b>문화현상</b>
HOME > 비평공간 / 문화현상
sub title
  웹툰, ‘진짜 세계’를 그리다
통권 : 47 / 년월 : 2014년 9,10월 / 조회수 : 4640
- 최규석의 『송곳』이 나오기까지

웹툰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논쟁적인 미디어다. 지난 몇 년 사이 시장 규모는 급격히 확대되었고, 산업에서의 활용도는 꾸준히 확장되었으며, 소비자와의 연대감도 견고하게 형성되었다. 또한 최근에는 정책적 지원을 통해 웹툰을 문화콘텐츠산업의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실로 감개무량하다.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만화는 대표적인 유해매체로 취급받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감동은 의심스럽다. 지나치게 호들갑스럽고, 빈번하게 반복되었던 까닭이다. 그동안 영화, 게임, 드라마, 애니메이션, 가요 등이 순차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요즘 웹툰을 향해 쏟아지는 관심은 이 매체들이 받았던 찬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물론 관심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한국 문화콘텐츠의 고속 성장은 열광에 가까웠던 국민들의 관심과 그를 정략으로 활용한 정부의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렇지만 화려한 성장의 뒷면에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고, 거대 자본이 유입되면서 갈등은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문화콘텐츠산업은 압축성장을 지향했던 한국 사회의 산업화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기대했던 만큼 낙수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사실마저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웹툰 역시 다르지 않다. 근본적으로 경쟁을 통한 승자독식 구조를 견지하기 때문에, 성공사례가 늘어나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기회가 빈번해지더라도 혜택은 소수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에서는 아무리 관심과 지원이 활성화되더라도 웹툰 전체에 미치는 효과는 미비할 뿐이다. 오히려 대다수의 창작자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만 초래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부분은 웹툰의 성공 여부가 거의 절대적으로 독자들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애당초 웹툰은 ‘잉여’들의 문화로 출발했다. 초창기 웹툰이 기존의 만화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한 작가지망생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작품 내용도 보잘 것 없는 일상을 전달하는 수준이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 잉여들에게 작가의 지위를 부여한 것은 권위 있는 전문가가 아니라 독자들이었다. 여기에서 독자는 막연한 묶음 단위로의 대중이 아니라 개별적 소수의 총합이다. 그러하기에 다채로운 취향과 주의주장이 혼재되어 있다.

웹툰은 이 다양한 목소리를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제작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비용은 미디어의 성격을 규정하는 주요한 요인이지만, 기존의 논의들에서는 소홀하게 취급되었다. 재화를 투자해야만 기회가 주어진다는 자본주의의 명백한 규칙에도 불구하고. 소수자가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확고한 표현의지만큼이나 필요비용의 확보가 중요하다. 가성비가 높은 미디어일수록 다채로운 목소리를 포용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웹툰의 가능성이 있다. 거대 자본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그에 따라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다는 점.

 

최규석, <송곳> 2부 5회

 

무용담에서 음담패설까지, 웹툰이 다루고 있는 범주는 무궁무진하고 표현 수위도 노골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정면승부를 피해왔다. 관심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독재자에 대한 사적私的 단죄를 표현한 강풀의『26년』, 한국 신화를 다루면서 군대 의문사와 철거민 문제를 함께 제시한 주호민의『신과 함께』, 교육 현실을 비판한 김규삼의『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 분단 상황을 반영한 최종훈의『은밀하게 위대하게』,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다룬 윤태호의『미생未生』 등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방식으로 사회를 다루고, 환상과 풍자를 통해 문제의식을 제기했을 뿐이다.

그에 비해 최규석의『송곳』은 보다 직접적인 대결을 시도하고 있다. 2013년 12월 연재를 시작한 이 작품은 자본주의의 맨얼굴을 제시한다. 노동에 대한 왜곡된 인식, 노동운동에 대한 편견, 경영자와 노동자의 입장 차이, 그 사이에 낀 중간관리자의 고뇌와 기회주의적 속성,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용어로 포장된 비정규직 문제, 거대 자본과의 대립 과정에서 느끼는 무력감……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누적된 문제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러한 현실인식은 결코 돌출적인 것이 아니다. 최규석의 만화는 노동문학의 전통과 연결된다. 멀게는 일제강점기의 송영, 임화, 이북명, 한설야, 이기영, 강경애부터, 가깝게는 산업화시기의 황석영, 조세희, 박노해, 백무산, 정화진, 홍희담, 방현석, 권운상 등등으로 이어지는 흐름과 맥이 통한다. 문학에서는 이미 사그라진 관심을 디지털기술과 결합된 만화가 이어받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송곳』의 문화사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논의를 최규석의 작품만으로 한정하더라도,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결코 일회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현실과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창작활동을 전개해 왔다. 초기 대표작 「공룡 둘리」에서 명랑만화의 주인공이었던 둘리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을 잘린다. 가난한 대학생들의 자취생활을 다룬 자전적 작품『습지생태보고서』의 주인공은 데이트 비용을 걱정하다가 “그냥 연애야. 죄 짓는 게 아니고… 남들 다 하는… 그냥 연애”라고 자책한다.

사실 이들 작품이 사회를 온전하게 그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환상을 방패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작품의 세계관을 차용하거나, 꿈과의 경계가 모호하고, 남루한 현실을 벗어나려는 욕망을 가상의 존재에 투영하기도 했다. 환상은 만화의 특징이자 주요한 표현기술로, 상상력을 확장하고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문제를 단순화하고 모색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동원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지 못할 이유야 없겠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규석은 어설픈 공존보다 분리를 선택한다. 이후의 작품들에서 환상을 제거하는데,『대한민국 원주민』이 그 분기점에 해당한다. 작가의 가족을 모델로 “삶의 방식을 손볼 겨를도 없이 허우적대야 했던 사람들”을 그려낸 이 작품은 통시적 접근을 시도한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를 탐색해서 원인을 찾는다. 이러한 역사적 검토를 통해 작가의 현실인식은 보다 견고해진다.『100℃』에서는 공시적 접근이 추가된다.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성취인 1987년 6월 항쟁의 발발과정을 따라가면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계층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러한 두 가지 접근방법이 종횡으로 결합되면서 현실 문제를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한편 만화의 재미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유머를 강화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환상처럼 상상력의 확장을 도모하지는 못하더라도, 유머는 긴장을 완화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더구나 인식이 견고해지면서 현실 문제가 부각되고, 그로 인한 긴장이 고조되었기 때문에, 유머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100℃』에서 6월 항쟁 직전에 정치상황 폭압은 고조되지만, 운동권 학생들은 만담을 나누면서 “에이 뭐, 독립투사들도 술 마실 땐 만담하고 그랬을 거야”, “그럼, 그럼, 민주화도 웃으면서 해야지” 등의 대사를 주고받는다. 이 장면에서 최규석이 유머를 사용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송곳』에서는 이마저 약화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그 조짐은 전작『울기엔 좀 애매한』에서 나타났다. 이 작품은 진로와 경제형편으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다루면서 묻는다. “인생 찌질한 게 무슨 자랑이라고 맨날 그렇게 웃고 떠든대?” 그에 대한 주인공의 답은 “울기엔 뭔가 애매하더라고.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고아가 된 것도 아니고……”이지만 그와 함께 “웃거나 울거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 화를 내는 것도 가능하지.”라는 새로운 방안이 제시된다. 비록 대상을 찾을 수 없다는 한계가 함께 언급되지만.

최규석,『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2010, 111쪽.

지금까지 살펴본 과정을 모두 거쳐『송곳』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환상도 존재하지 않고, 유머도 통용되기 어려운 ‘진짜 세계’가 펼쳐져 있다. 현실은 압도적이지만, 그 덕분에 피아의 구분은 확실해졌다. 적어도 이제는 화를 내면서 싸움을 벌일 대상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방적인 편 가르기는 아니다. 2부 12화에서 노동 문제 상담사 구고신은 말한다.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거”라고. 바로 이 지점에서『송곳』은 이전의 노동문학보다 한 걸음 전진한다. 애당초 명확한 구분은 불가능하다. 진영에 따라 선악이 정해지는 일 따위는 어린아이들의 전쟁놀이에서나 가능하다. 양쪽 모두 “비겁하고 구질구질하고 시시한 그냥 인간”들끼리 대립하는 것이다.

『송곳』은 전복을 시도하지 않는다. 다만 침묵을 강요당했던 소수자가 자기 목소리를 토해내는 과정을 그려낼 뿐이다. 결코 만만하지는 않다. 그러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다양성도 획득할 수 없다. 여기에서『송곳』의 이야기는 지금 웹툰이란 미디어가 나아가고 있는 길과 겹쳐진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저자 약력
崔洙雄 1974년 서울 출생. 스토리텔러, 스토리텔링 연구자.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저서는 『키워드로 읽는 어린이문화콘텐츠』, 『문학의 공간, 공간의 스토리텔링』, 『소설과 디지털콘텐츠의 창작방법』 등이 있음. rahula@dankook.ac.kr


#주석
소비자들의 선택이야 문화콘텐츠 모든 분야에서 적용되지만, 웹툰만큼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진 못한다. 영화에서는 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배급 및 마케팅 등이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몇몇 대형 배급사가 스크린을 독점해버리거나, 독립영화 상영 지원이 축소되면서 개봉 자체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문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가요에서도 대형 기획사의 마케팅 능력, 팬클럽의 조직 동원력 등이 성공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글쓴이 : 최수웅
작성일 : 2014/09/11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