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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유 권하는 사회
통권 : 37 / 년월 : 2012년 11,12월 / 조회수 : 2370

 타인의 고통에 대한 둔감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어떤 사람이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난처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를 목격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은 목격 이후에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아마 손을 내미는 대신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바쁘다는 이유로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어느 샌가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는 대신 매개를 통해 우회적으로 혹은 왜곡된 방식으로 소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기에, ‘힐링’(healing, 치유)이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는 것도 타인에 대한 둔감함으로부터 그리 먼 것은 아니다. 힐링음악, 힐링여행, 힐링도서 등이 불티나게 소비되고, 심지어 템플스테이(Temple stay)나 토크 콘서트에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은 모짝 저마다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욕망이 반영된 문화현상이다. 문제는 이때 우리가 ‘힐링’이라고 부르는 것이 실은 우리를 비끄러매고 있는 각종 고통의 무게를 보다 가중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힐링 권하는 사회

 신자유주의시대에 사람들은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자기-계발을 한다. 구직자도 취업자도 ‘스펙 쌓기’에 열중하고, 백만 원에서 천만 원씩 연봉이 올라가는 만큼 자신의 삶의 가치도 상승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제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불필요한 감정들을 제거해야 한다. 여기에서 불필요한 감정들이란, 가령 나와 타인이 입은 상처에 대한 극진한 ‘마음씀’(sorge), 혹은 그 지극한 감수성이다.

 ‘고속’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그 ‘속도’를 유지하자면, 내남없이 타인의 고통이나 낙오에 둔감해야 하며, 재빨리 나의 고통과 불안도 치유해야하기 때문이다. 근래에 쏟아지는 ‘힐링’ 상품들은 이러한 사회메커니즘 속에서 기획된 것이다.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설명을 해드리지. 자세히 들어요.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화증도 아니고, 하이칼라도 아니요,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이 조선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소? 팔자가 좋아서 조선에 태어났지, 딴 나라에 났더라면 술이나 얻어먹을 수 있나…….” 1)

 

 당시 조선이라는 일제의 식민사회가 ‘술’을 권했다면, 작금의 한국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식민사회는 무엇보다 ‘치유’를 권한다. 그런데 우리가 사회적인 문맥을 헤아리지 않고 단지 개인적인 차원, 혹은 심리적인 차원으로만 ‘술’과 ‘치유’의 위무(慰撫)를 소급해서 전용한다면, 우리의 구조적인 상처의 자리는 엄연한 채로 갈수록 더 깊어지거나 넓어지거나 두꺼워질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만 일시적인 취기나 마취 이후에 다시 찾아들 더 커져버린 고통에 직면하게 될 것인데, 바로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그토록 수많은 ‘치유상품’들이 연쇄적으로 번성하고, 소비되는 것이다.

 

“힐링이 필요해” 
 바야흐로 방송가에도 힐링 바람이 불었다. 지난해부터 방영된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이하 <힐링캠프>, SBS)가 대표적이다. 도심 속 방송스튜디오를 벗어나 녹음 속에서 모닥불을 켜고, 요리를 하며 초대 손님과 대화를 나누는 형식은 대중이 상상하는 ‘힐링’의 이미지와 닮아 있다. 많은 이들은 도심에서 받은 상처를 ‘자연에 대한 향수’에서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곳에 가면 없던 여유도 생길 것 같고, 소음과 공해와 빼곡하게 들어선 도심의 고층건물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또 다른 이유는 개인의 역사를 돌아보며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치, 즉 ‘고백할 수 있는 장치’에 대한 부러움, 혹은 그 그리움이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유명인들이 방송에 출현해서 자신의 과거나 심경을 고백하고 아픔을 발설하는 것이 일종의 ‘이미지 전략’이라는 것 정도는 쉽게 간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는 그들의 고백과 눈물에 감정을 이입하고, 자신의 말할 수 없는/말해질 수 없는 서사를 투사시켜 대리만족 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대리만족은 유명인들의 ‘성공신화’에 대한 동경과 동시에 이루어진다.

 지난 2010년부터 ‘전국고민자랑’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한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이하 <안녕하세요>, KBS)는 시청자들이 직접 자신의 고민(사연)을 들고 와 소개하고, 방청객들의 공감지수를 통해 1승에서 5승까지 ‘생존’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방송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말 못할 고민까지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소통 부재로 인한 사람들 사이의 벽을 허물어보고자” 2)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초반 시청률은 미진했으나, 회를 거듭할수록 이처럼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인정받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우리사회가 ‘소통이 부재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은 그동안 주변에 말하지 못했던 고민들을 방송에 나와 ‘자랑’으로 유쾌하게 승화시키고, 방청객들의 공감을 통해 잠시나마 타인과 소통했다는 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방송에 소개된 고민들은 한국사회가 지닌 구조적인 문제나 사회적 편견 혹은 가정 내 불평등한 젠더권력관계를 반영하고 있음에도 그저 ‘개인’의 고민으로만 치부되고 만다. 일례로 이국적인 외모 때문에 이주노동자로 오인 받고 차별 받았던 남성의 고민, 남편이 원하는 46kg 몸무게를 만들기 위해 식생활과 일상을 통제받는 아내, 그리고 15첩 밥상은 기본이며 한 번 먹고 남은 음식은 쓰레기통에 버리는 남편 때문에 고민인 아내의 사연 등등.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사연들이 흡사 ‘깃털’ 같이 가볍게 다루어지지만, 그 실상은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사회문제들과 긴밀하게 얽혀있다. <안녕하세요>는 ‘예능’이라는 프로그램의 형식을 알리바이 삼아 당최 ‘구조적인 모순’에는 별무관심인 한계를 스스로 변명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방식은 이미 한국사회의 전형적인 ‘치유 메커니즘’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다시, 상처의 기원으로

 타인의 고통에 대한 둔감함은 곧 공감능력의 상실에서 나온다.3) 모두가 경쟁자인 사회에서 공감은 그동안 은폐해야 할 덕목이었으며, 심지어 그것의 부재를 밑절미 삼아 경쟁사회가 재생산된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의 개인들은 ‘창(窓)이 없는 단자’(라이프니츠)처럼 단지 ‘개인’의 상처를 ‘심리’적으로 힐링한다.

 그리고는 정작 상처의 기원인 부조리한 사회를 재생산하기 위한 일꾼으로 다시 소환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힐링’을 통한 치유과정은 억압의 본질을 치유하기보다 표층에서 그것을 더 크게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우리가 치유를 도심이 아닌 자연에서 상상하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직면하지 못하고 외면하게 만든다. 근대의 병원이 병을 생산해내듯이, 힐링이 고통에 대한 ‘둔감함’이라는 증상을 생산해낸다.

 최근 ‘우유주사’(프로포폴, Propofol) 남용 사건이 연일 화제다. 괴로움을 잊기 위해 반복적으로 ‘우유주사’를 투약했다는 증언들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점은 마치 이 사건들이 ‘힐링’시대의 청사진과도 같다는 점이다. 만약 당신이 ‘스트레스’(억압)에 대한 치유를 원한다면, ‘상처가 돋아난 자리’로 되돌아가 그 ‘고통의 현장’을 살피고 애도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고통을 일시적으로 잠재우기보다 외려 상처를 직접 ‘치료’(solution, 해결)하거나 ‘치유’(dissolution, 해소)해야 한다. 상처가 관계에서 돋은 것이라면, 그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고, 사회의 구조에서 돋은 것이라면 그 부조리한 구조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영 나와 타인의 고통에 대해 ‘둔감’한 채로 이 ‘멋진 신세계’에서 다만 ‘무감’하게 ‘무심’한 세월을 보내게 될 지도 모른다.




#저자 약력
트레이스 36siljang@hanmail.net, chijru@naver.com

#주석
‘트레이스’(trace)는 ‘흔적’(n), 혹은 ‘거슬러 올라가다’(v)라는 어휘의 뜻을 빌려, 이른바 ‘풍경’을 넘어 ‘기원’을 톺거나 '신화'를 비각에 두고 '역사'에 버텨서는 태도를 비평의 밑절미로 삼은 문화연구모임이다.

1) 현진건, 「술 권하는 사회」, 『운수좋은 날』, 문학과지성사, 2008, p.73.
2) 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공식홈페이지, http://www.kbs.co.kr/2tv/enter/hello
3) 악셀 호네트 저, 강병호 역, 『물화(인정 이론적 탐구)』, 나남, 2006. 참고
글쓴이 : 트레이스
작성일 : 201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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