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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가요제>에 더 이상 ‘대학’은 없다
통권 : 37 / 년월 : 2012년 11,12월 / 조회수 : 2268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무한궤도, 1988년 대학가요제 대상곡 <그대에게>

 

 대학 축제의 계절이 다가오면 변함없이 울려 퍼지는 노래이자 강렬하게 시작하는 전주만으로도 모두를 흥분하게 하는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가사다. 이 노래로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무한궤도의 멤버 신해철은 가수로 데뷔를 했고, 1990년대 가요계에 굵직하게 이름을 남겼다. 어디 그뿐인가. <나 어떡해>의 샌드페블즈나, <꿈속에서>를 부른 전람회의 노래들은 아직도 우리 곁에서 울려 퍼진다. 그리고 이들 노래의 공통점은 모두 <대학가요제>에서 첫 선을 보인 노래라는 점이다.

 이처럼 한때, <대학가요제>는 뮤지션들의 등용문이자 가수가 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 중 하나였다. <대학가요제>는 음악을 좋아하는 고교생들이 반드시 대학에 가야만 하는 이유 중 하나였고, 요즘처럼 체계화 된 매니지먼트 회사가 없던 시대에 바로 가수가 될 수 있는 길이었다.

 하지만 2012년 현재, 아무도 <대학가요제>를 주목하지 않는다. 더 이상 <대학가요제> 우승이 가수 데뷔나 스타덤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에는 흥망성쇠가 있는 법이라지만, 요즘처럼 연예인 혹은 가수가 선망하는 직업이 된 때에 유독 <대학가요제>의 몰락은 기이해 보이기도 한다.

 혹자는 ‘고액의 상금을 내건 오디션 프로그램의 범람’을 이유로 든다. 이유를 찾자면 최근 몇 년 사이 우후죽순 생겨난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향도 물론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이 생겨나기 이전에 이미 <대학가요제>의 몰락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다른 이유가 있을 법도 하다.

 무엇보다 <대학가요제> 자체가 원래부터 갖고 있던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학가요제>는 말 그대로 ‘대학’가요제다. 그 시절, 대학생은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트렌드세터였다. 그들이 좋아하거나 혹은 선망하는 것들은 곧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었다. 고교생들은 대학생들을 따라하고 싶어 했고, 대학생 언니·오빠·형·누나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들에게는 ‘대학생’이 곧 되고 싶은 ‘워너비’였고, 그들이 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은 배우고 싶은 것들이었다.

 기성세대의 진부함 대신 신선함으로 무장했으면서도 ‘어른’으로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가진 그들. 그것이 그 시절의 대학생들이었다. 대학을 나오지 못한 대다수의 기성세대는 그들이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인정해 줬고, 어린 세대들에게 곧 다가가게 될 ‘대학생’이라는 존재는 어른이 시작되는 입문과정 같은 것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대학가요제>는 참가 조건에 ‘대학생’이라는 (당시에는) 높아 보이는 기준을 내세웠다. 이는 곧 사회가 인정하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었고, 본선 무대는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이들이 펼치는 화려한 경연장이었다. 대학생들은 <대학가요제>가 보여주는 그들만의 자유로운 정서에 열광했고,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대중문화의 중심이 됐다. 사회적 엘리트 위치가 부여하는 권위와 더불어 그들이 만들어 내는 ‘음악’은 자연스럽게 주류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이 모든 공식은 무효가 됐다. 더 이상 대학생이 이 시대의 대중문화 트렌드를 주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누구도 ‘대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선망하지 않게 됐으며, 가수가 되고 싶으면 대형 기획사에 찾아가는 것이 빠르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제는 기본적인 재능만 갖추고 있으면, 연예 기획사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서 대중이 기꺼이 지갑을 열 만한 ‘상품’으로 만들어 낸다. 음악이 어떤 사회나 집단이 갖고 있는 공통된 ‘정서’의 표출이 아니라 잘 팔리는 ‘상품’이 된 시대에서 <대학가요제>는 더 이상 ‘멋있는 대학생’들이 보여주는 문화가 아니게 된 것이다.

 대중음악 시장의 타깃 연령이 낮아지고, 더 이상 대학생들이 대중문화를 주도하지 않게 된 건 더 이상 ‘대학 문화’라는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대학생들은 이제 어떠한 정치나 사회 트렌드도, 문화 트렌드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소비’할 뿐이며, 그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길로 접어들고 있다.

 ‘88만원 세대’라 불리며 물론 경제적 어려움과 치열해 지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이들에게 더 이상 창조를 해낼 수 있는 자유로움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급격히 늘어난 대학생 수는 그들이 이 사회의 ‘엘리트 집단’이라는 의식을 거세시켰고, 그들은 이제 성인으로서 무엇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성인의 시작점에서 소비하는 것부터 배우고 있다. 10대부터 시장의 타깃이 된 이들은 20대가 되어 최소한의 경제력을 갖출 수 있게 되고, 경제적 빈부의 차를 몸소 체감하면서 시장의 객체로 자본주의의 손쉬운 타깃이 되는 것이다.

 이제 ‘대학생’이라는 단어는 그야말로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됐다. 사회에서 최소한의 대접을 받기 위해서 다녀야 하는 학력의 과정일 뿐, 대학생은 그들만의 문화도 의식도 가질 수 없게 됐다. 점점 더 공고해지는 계급차와 그로 인해 오는 경제적 압박은 더 이상 그들이 문화적으로 풍요로울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그들의 운신을 더욱 좁힌다. 1980년대나 1990년대, 그리고 2012년이 된 지금까지도 ‘사랑 노래’가 <대학가요제>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달라진 것이 없음에도 불구, 현재의 대학생들은 이미 사회적으로 쓰인 굴레에 속에서 ‘의식 없는 것들’로 치부된다. 그러고 이미 패배감에 빠진 이들은 그것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게 됐다.

 이처럼 대학생들이 이 나라의 대중문화 트렌드를 만들어낼 수 없고, 나아가 그들만의 문화를 창조하는 것에 실패함에 따라 <대학가요제> 또한 순차적으로 몰락의 길을 겪었다. 여기에 물리적으로 가해진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의 물량 공세는 그나마 <대학가요제>가 제공할 수 있었던 프로 가수로 데뷔할 수 있는 길마저 닫아버렸다.

 그러면서 <대학가요제>는 점점 더 아마추어들의 추억용 대회로 몰락하고 있다. 그건 프로그램 자체가 가진 문제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 대학생들이 갖고 있는 ‘그들만의 정서’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가요제>에서 가장 핵심이 되었던 ‘대학’이 사라지고 가요가 더 이상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지 못하는 지금, ‘대학가요제’가 몰락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대학 문화가 사라진 자리의 <대학가요제>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오디션 프로그램의 범람’이니 ‘상금 액수’니 ‘노래 잘 부르는 참가자들’이니 하는 표면적인 문제를 논할 때는 아니다. <대학가요제>가 상징하고 있었던 대학생들만의 생각, 문화, 정서를 이제는 <대학가요제>가 다시 찾아내야 할 때다. <대학가요제>가 살아나기 위해선, 요즘 그들이 겪고 있는 좌절과 생각 그리고 원하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결국 ‘가요제’가 아니라 ‘대학’을 되찾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2012년 <대학가요제>의 대상을 받은 신문수의 <넥타이>는 약간의 희망을 볼 수 있는 곡이었다. 적어도 이 노래에는 노래를 만들려던 이의 생각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정서가 묻어 있었다. 아직 파급력은 약하지만, 의미 있는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다.

 상품이 아닌 노래, 정서와 이야기가 있는 노래를 찾아낼 수 있는 건 그 어떤 ‘오디션 프로그램’도 할 수 없는 <대학가요제>만이 해 낼 수 있는 일이다. ‘대학’이 더 이상 엘리트나 워너비를 상징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이 시대에 살아있고 곧 사회의 주축이 될 이들이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진짜 ‘욕망’을 이제는 <대학가요제>가 깊이 고민하고 찾아봐야 할 때다.




#저자 약력
趙秀彬 1985년 대구생. 대중문화평론가, 2009년 제2회 플랫폼 미디어비평상 당선. 최근 글로 최근 글로 「인생의 황혼기에서 새로운 욕망의 길을 묻다」, 「당신은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들으'시나요?」 등. josuebin@daum.net
글쓴이 : 조수빈
작성일 : 201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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