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옛날에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 늘 그래 왔다면 오래된 미래인 내세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몸의 고달픔을 벗고 방향 없이 비행하는 영혼들에게 추억들이란 얼마나……
그들은 세상을 떠난 천재들이 우주에서 떨어뜨린 듯한 노래와 이야기들을 사랑해 왔고, 그래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머나먼 과거에도 매일 매일이 있었다. 때론 지리멸렬, 무의미, 소모적이기까지 한 나날들. 선선한 바람에 인 먼지가 한동안 사람들 눈에 티끌이 되어 버린 맹목의 시기들도 있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과거는 그리운 곳곳이 부드럽게 도드라져, 너와 나의 자취가 세월의 퇴적층에 고이 감추어져 있다거나 이미 소멸해 버렸을지라도 별빛처럼 소중하다는 인식을 불러온다. 몸속에 사는 영혼을 위한 수사법이 턱없이 빈곤한 시대에는 더욱이. 그러니 옛날은 다 좋다. 열망하는 대로 좋아 보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다시 말했다. 안다, 그것은 공동의 무차별한 시간을 통과한 후 기억이 그린 독특한 무늬 덕분이라는 걸. 과거란 모두 남지도,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기에 우리는 그곳에서만이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향수하는 태도들이 개인의 취미에서 삶의 보편적 재미를 추구하는 영역으로 상승했다. 여전히 아주 새것을 향하고 있으면서도, 거꾸로 걸으며 우리는 멀어지는 거리만큼 제법 오래된 것들에게 작별의 찬사를 보낸다. 영원할 수는 없지만 영원으로부터 귀환한 모습으로 한편 익숙하기도 한 낯선 소식들이 서로에게 말을 건다. 어느 사이 무엇인가 잊힐 뻔 했노라고 그렇기에 이것은 특별히 더 아름답노라고.

 지난 5월의 어느 비 내리는 저녁, 최백호라는 예술 하는 노신사는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 위에서 그의 소리를 듣길 고대하는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한창때인 뮤지션들과 선과 면으로, 빛과 공간으로, 실과 종이로 만난다. 1994년의 16집, 이미 사십대 중반이었던 그는 어떤 중년에게 점멸하는 거리 그러나 다시 계절처럼 살아나는 젊음 혹은 ‘낭만에 대하여’ 노래했고, 그것은 충분히 담백해서 사무치게 쓸쓸한 노랫가락이었다. 그는 성인음악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런데 2012년, 경력에서 전무후무한 음악스타일로 그가 정규음반을 냈다. 인터뷰어의 수첩들에는 “음악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기록되었다. 자기 색깔을 선명하게 나타내기 시작한 아티스트들과 그는 협연했다. 트랙마다 집시기타리스트 박주원이나 재즈보컬리스트 말로 등의 후배 뮤지션들이 농염하게 연주했으며, 최백호는 자신의 감성과 언어가 통하는 새로운 장르들을 포옹하며 오래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탱고^tango, 집시 스윙^{gypsy swing}… 젊은 작곡가가 마련한 풍경에 최백호의 트로트가 겹침으로써 새로운 애수가 살아났다. 그 해 여름 EBS <다큐프라임-음악은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는가>에서도 그를 보았다(이 시리즈의 3부에는 우리네 ‘나이 든’ 음악가들의 귀한 증언들이 담겨 있다). 음악을 해 온 이야기를 하는 그는 배낭여행자다. 그 자신의 습관들을 한 짐 내려놓고 월드뮤직의 정조를 띤 인생찬가―낯선 질서의 한 중간으로 수줍고 용감하게 녹아들었다. 아코디언뮤지션 심성락의 은발^銀髮같은 연주를 가까이에 두고 그가 노래하는 장면, 그새 누군가는 좀 더 젊어지고 있었으리라.

 너와 나의 공유된 기억과 일치하지 않는 추억의 교차, 그러니까 나이 듦이란 뭘까? 누군가가 새로이 질문을 던진다. 비유처럼 황혼이 우리에게 깃들까. 다른 누군가는 떠올린다. 얼룩진 하늘에 등 댄 굴뚝연기로 날아드는 저물녘 생명들의 관심처럼, 내내 고프고 그리운 건 아닐까. 어쨌거나 여과되어 간다. 하루가, 달이, 잔상이. 재료를 머금고 진하고 풍부하게, 은은하고 은밀하게 한 방울씩 고이겠지. 일상사 권태에는 거름종이에 남은 찌꺼기와 식은 물 한 잔의 분위기가 감돈다.

 그들이 이문세가 1980년대에 부른 노래들을 들을 때면 기적과 그리움이 닮아 갔다. 각자가 꼽는 명곡은 달랐지만 경험하지 못한 과거조차 그들 입술에 볕에 물든 가로수처럼 어른거렸다. 그러니까 젊음(‘젊은이’가 아니다)의 노래들은 원석인데 그 알갱이를 우리는 시간을 층층이, 겹겹이 늘이거나 쌓을 때에 사용한다. 그것은 둘 이상 함께 걸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된다. 가능성과 혼란들을 여과해, 끊임없이 밀려드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다 뿌린다.

 산업에서 어떤 음악들의 짜임새는 이국의 장르에서 기본 소스를 차용하기만 하면 그런 ‘스타일’의 곡 하나가 자연히 생산된다고 믿는 듯하다. 거기에서 반주는 사물이며 나이가 없다. 새것이거나 낡았다. 그러나 우리는 나이 들면 들수록 젊어지고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도 출몰하는 나선형의 마법을 대중문화에서 찾고 있다. 시간에 대한 감수성―즉 연주가 필요하다. 이문세의 미니앨범 《Re. Leemoonsae》(2012)를 들어보자.

 총 여덟 곡은 가수가 있는 버전과 악기만 있는 버전으로 반씩 채워져 있는데, 비교적 최근곡인 <알 수 없는 인생>을 빼면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 같은 오랜 노래들이다. 아마도 노래와 반주라는 기준으로 그 트랙들을 나누어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흥얼거렸을까 싶은 그 곡들이 보싸^bassa와 탱고의 리듬을 제 것처럼 타고 흘러나올 때 이 명곡들이 품은 멜로디는 어찌나 섬세한지. 이 곡이 이런 노래일 수도 있었구나, 하고 나면 이 곡이 이런 음악이었구나, 싶은 인스트루멘탈^instrumental들이다. 노래가 가사를 뿌리고 간 후에 연주에다 가사를, 청자 스스로 마음으로 그려 넣고 적어 내린다. 듣고, 따라 부르고, 책을 읽을 때처럼 각자의 추억에 새로 형태를 주는 것이다.

 연주가 아름다우면 청자에게는 도입, 본론, 끝의 구분보다는 모든 것이 중간-중간-중간, 순간순간이 조명 받는 한 중간이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결국 숱한 연주는 옅음과 짙음 사이를 해석하는 일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시작되는 참여자들의 상호 이어쓰기이다.

 근간에 이문세 음악은 자신의 히트곡에 문을 내고 나와 그 곡의 피부를 무르익은 손길로 매만지는 작업 같다. 인기와 경력으로 정상에 이른 가수가, 이 곡에는 또 다른 오리지널리티가 존재한다는 믿음으로 새 것에 걸맞은 창법까지 구사하며 재등장, 또 재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그의 콘서트에 관객 오만 명이 나타났다는데, 그들의 일상은 몇 개의 문을 더 발견했으리라. 그들의 향수는 바깥을 갖게 됐으리라. 인생의 노래를 다시 부르지^remake 않는다면 우리는 아는 노래에 취해 고성 방가할 것이다.

 의미 있는 대상을 어느 각도에서든 아름다운 조각물로 변화시키려는 평생의 작업들처럼 창작자의 디스코그래피^discography에 어렴풋이 비친 섬광으로 젊은 대상을 창조하는 작업들도 그 자유로움의 유래가 깊다. 1986년에 첫 발간됐던 『일하는 예술가들』에서 저자 강석경이 인터뷰한 가야금연주자 황병기는, 자신은 조선조 우리 음악의 틀을 벗고자 거꾸로 그 근원인 신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민족혼의 진동을 현대인의 잠―즉 이성의 틀 안에다 떨어뜨린 <미궁>의 충격과 <침향무>의 명상. 듣다보면 진리와 신비가 별개로 느껴지지 않는다.

 특유의 멜랑콜리에 역설적인 힘을 담은 뮤지션 이승열이 지난 5월 새 앨범을 발매했다. 1994년 데뷔해 막 중년이 된 그는 영화와 드라마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에도 종종 등장해 왔는데 그 목소리가 한 장면의 색채마저 바꾸어 놓는다. 팬들에게 이승열의 음악은 경쟁시장에 함부로 내보이고 싶지 않은 개인이라는 진정성―그러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매혹이다. 내밀하게 울리거나 발산되는 그 만의 블루지^bluesy한 음악. 서구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의 유연한 테두리를 그의 보컬이 더 구체적인 이야기의 불씨가 되어서 넘나든다.

 그의 발라드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앨범은 이물감을 줄 것이다. 흡사 이전 작들의 뒤집어진 안쪽 버전 같다. 멜로디는 가라앉고 보컬과 기타는 너울댄다. 베트남 전통악기인 단보우^{Dan Bau}처럼 낯선 음색과 선율도 밴드의 결합에 주요해서 오리엔탈적이기도 하지만, 표면적 장식이라기보다는 사운드를 파고드는 독특한 경로이다.

 자기구성 요소를 재배열한 또 하나의 총체성으로서 이 작업은 복합적이다. ‘뒤섞인 채 조화를 이루는 순간의 소리를 위해.’ 앨범 발매 보도 자료에 실린 어구 중 하나다. 악기끼리 넘치고 스며들도록 원 테이크^{one take} 라이브 현장녹음과 홈 레코딩^{Home recording} 방식으로 구성한 이 앨범을 이전작과 연관 지으면 어떤 지향을 들을 수 있을까. 청각의 세계에서는 더욱이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으므로 현재 시점의 앨범 《Ⅴ》는, 그 참여자들이 흡수하고 기억하고 연주해 왔던 경험들에 어른거리는 무의식적 공통이며 결집 실험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젊다고 말하는 것이 다른 쪽 출구에서는 묵은 것이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회귀를 통과해서 더 멀리까지 가고자 하는 의지를 혁신이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채 다 의식하기도 어렵게 공동의 생활은 늘 정신없이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정해진 법칙 없이 여과한다. 대중음악도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종류의 시간을 써 왔다. 그것은 또한 다른 예술문화장르가 그렇듯이 사회구성원의 몸-경험에 위로나 투지, 공감이나 일깨움이 된다. 사람들은 그런 현상에다 감각적 기억의 청진기를 대고―오늘을 소유하고 되찾기를, 서로 바라보기를 즐긴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의 히트송보다는 한 사람의 뮤지션을, 세월의 문맥을 돌아보게 만드는 삶의 연주들을 더 원한다. 그러니 먼 곳을 향한 그리움에는 끝없이 쉼 없이, 대신 천천히 다가갈 것. 그리고 이 모든 옛날을 연주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편견 없이 사랑에 빠져볼 것. 주변을 둘러보라, 또 다른 시간의 줄무늬를 그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