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의 제2막이 오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김대리 미술관 가는 날’과 서울국제아트페어의 ‘김과장 전시장 가는 날’. 2007년 미술시장의 유례없는 호황이 낳은 것은 바로 ‘김대리 마케팅’이었다. 극소수의 미술애호가에게만 국한되어 있었던 미술시장은 평범한 샐러리맨들의 지갑을 열도록 부추겼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아직도 김대리는 전시장을 찾고 있을까? 경기 탓을 해본다지만, 미술애호가로 탄탄하게 성장한 김대리였다면 적어도 무료 전시는 보러 오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도 경기를 타는 듯 보인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직수입 블록버스터 전시에만 김대리를 대신한 그의 아이들이 수행평가나 체험학습을 위해 방문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몇 년을 공들인 김대리 마케팅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이를 유지시켜 줄 어떠한 정책적인 해결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실 해결책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었다.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바로 ‘건축물 미술 장식 설치 제도’이다. 일명 ‘1%법’인데, 연면적 1만 제곱미터 이상 신·증축하는 건물에 건축 비용의 약 1%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미술작품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한 제도이다. 이 제도는 도시 경관과 국민의 예술 향유라는 공공의 이익, 즉 김대리를 위한 목적을 가진다. 아울러 이 제도가 1972년 우리나라 문화예술진흥법의 시작과 함께 제정되었다는 점이나, 1960년대에 퍼센트 법을 시행한 미국과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 이른 시기에 법령화되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그러나 1995년 대통령 공약으로 권장에서 의무화가 된 이후로도 제도와 관련한 부정은 계속되었고, 이에 대한 비판도 끊이질 않아 2011년 선택적 기금제로 개정되었다.

 개정된 기금제는 이전의 제도에서 의무적으로 작품을 설치해야 했던 조항을 변경하여, 작품 설치에 드는 돈을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로써 건축주들은 작품 설치 및 관리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직접 작품을 설치할 때보다 30%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각종 손비 처리 혜택까지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이 기금을 모아 필요한 공공장소에 미술작품을 설치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의해 조성되는 공공미술 작품은 태생적으로도 본래 지향하고자 했던 공익의 목적을 다지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이전까지 공공미술 작품은 건축주 개인의 취향에 의해 세워졌다 해도 크게 저해되지는 않았었다. 심의를 거친다한들 건축주의 돈으로, 그의 건물 앞에 작품이 세워지는데, 누가 나서서 이것이 ‘공공을 위한 미술’임을 재확인시켜줄 수 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그것의 미학적인 판단 또한 만만치 않았다. 물론 포스코 사옥 앞에 세워진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아마벨Amabel>을 두고 흉물이냐, 작품이냐 갑론을박하였던 1996년의 사건은 예외적인 케이스지만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 기금으로 세워지는 미술작품은 ‘공공의, 공공에 의한, 공공을 위한’ 작품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공공을 위한 작품은 어떤 것일까? 우리 사회는 어떠한 작품을 원하는가?

권위를 버리고, 공론을 담다.

 김대리가 미술로부터 멀어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미술작품과 그것이 몸담고 있는 미술제도가 내세운 권위주의도 한 몫을 한다. 기득권 미술에 대한 저항을 목적으로 한 모더니즘 미술운동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반 백 년도 채 지나기 전에 제도권에 흡수되었다. 무균실과 같은 ‘화이트 큐브’ 전시장 안에서 모더니즘 미술은 신화화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드레아 후이센(Andreas Huyssen)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도큐멘타> 7회전을 두고 당대 미술현장을 아래와 같이 비평하였다.

“만지지 마! 이건 예술이야!”
여기에서도 역시 만지면 안 되고, 사이로 통과하여도 안 된다는 예술의 낡은 개념이 존재했다. 사원 같은 미술관, 선지자 같은 예술가, 유물과 예배용품 같은 작품, 그 후광이 다시 살아났다. 갑자기 이 전시회에 덕분에, 예술에 주어진 황금 같은 권력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경비원은 오로지 이 도큐멘타의 주최자이며, 동시대 경향을 잘 알았던 루디 푸흐가 생각해 낸 “다양한 압력들과 사회적 굴곡들로부터 예술을 분리하기”를 수행했을 뿐이다.” ¹⁾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만지기 좋아하는 여섯 살 난 아들과 동행한 자리였기에 더더욱 후이센은 그 자리가 억압적으로 느껴졌을 법하다. 세련된 검은 유니폼의 스태프들이 잠재적 범죄자 보듯 감시하고 있는 미술관의 풍경을 떠올려 보면, 이들 부자뿐 아니라 김대리가 전시장에서 받았을 스트레스가 짐작이 간다. 물론 철통경비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것은 예술이 그동안 쌓아온 권력의 징표에 불과하다. 현대 예술의 권위주의와 우월의식은 앞 서 후이센이 지적한 대로 사회로부터, 대중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함으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현상에 비추어 볼 때, 독일의 부부 조각가 요한 게르츠(Jochen Gerz)와 에스터 샬레브 게르츠(Esther Shalev Gerz)가 제작한 <파시즘, 전쟁과 폭력에 대항하는 그리고 평화와 인권을 위한 기념비Monument Against Fascism, War and Violence>는 공공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이 작품은 보는 사람을 감동케 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공론을 담아냄으로 공공이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하였다. 겉면이 납으로 처리된 12미터 높이의 알루미늄 사각 기둥인 <반파시즘 기념비>는 1986년에 세워진 이후 1993년까지 8회에 걸쳐 1.5미터씩 땅 속으로 하강했다. 또한 이 거대한 크기의 사각 기둥에는 시민들이 낙서를 할 수 있도록 철필이 부착되었다. 게르츠 부부의 기념비는 인근 쇼핑몰로 향하는 시민들의 동선을 가로막는 위치에 세워졌는데, 이 거대 기둥에 의해 방해받은 시민들에게 작품은 억압, 폭력 그 자체였다. 제임스 영(James E. Young)은 게르츠 부부의 카운터 모뉴먼트(counter-moument)²⁾를 두고, “그것의 목적은 위로가 아닌, 도발이다. 온전하게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신성모독을 부추기기 위함이다.”라고 설명하였다.³⁾ 즉, 게르츠의 작품에 가해진 대중들의 낙서는 단지 금속 필기구를 부착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작품 그 자체가 도발로 읽혀졌기 때문이었다. 시민들의 낙서는 미술의 우상화에 저항하는 행위로, 이전의 전통적 예술 작품에는 감히 할 수 없었던 흠집 내기를 통해 작품에 참여하도록 만든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시민들의 낙서가 다양하고 방대한 의견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파시즘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히 동의하는 ‘착한’ 문구가 있는가 하면, “OO야 사랑해” 또는, 심지어 나치에 찬동하는 내용까지 새겨졌다. 이에 대해 마티아스 윈젠(Matthias Winzen)은 “이 기념물은 역사적인 파시즘을 반대하는 기념물일 뿐 아니라, 이 못지않게 중요하게는 현재의 서독 내 파시즘 경향의 기록이다.”라고 설명하였다.⁴⁾ 기둥에 남겨진 수많은 텍스트들은 긍정이건 부정이건 간에 시민들의 ‘공론장(public sphere)’이 되어 주었고, 시민들의 이야기를 표출시키는 공간이기도 했다.

실제, 곧 우리의 이야기

 그러나 단순히 대중의 이야기를 한 데 모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역시 독일에 설치된 공공미술 작품 <스톨퍼스타인Stolpersteine>을 보면, 예술이 단지 표현의 배설이라는 만족에서 더 나아가, 예를 들면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꿈꾸게 한다. 우리말로 ‘걸려 넘어지는 돌’ 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이 작품은 공공미술의 전통적 특성과 달리 아주 겸손한 형태인데, 크기가 손바닥만 한 금속판으로 바닥에 바짝 붙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작품에는 홀로코스트(Holocaust)^{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희생자들의 이름과 성별, 출생년도, 사망년도가 새겨졌고, 희생자들이 살았던 집 앞 도로에 설치되었다. <스톨퍼스타인>의 제목대로, 그것은 돌부리에 채인 것처럼 무심코 거리를 걷는 보행자들에게 느닷없이 나타나, 걸음을 멈추게 하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작품과 맞닥뜨린 시민들은 지금은 피자집, 서점, 약국으로 변한 그곳에 살았었던 그/그녀의 삶으로 초대된다. 여기에 살았던 유대인 소녀가 7세가 되던 해, 나치에 의해 한 줌의 재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노라면, 소름끼치는 두려움과 함께 생명에 대한 경외, 그리고 그들을 잊고 살았던 우리의 각박한 일상에 대한 반성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 파시즘에 대한 경각심, 내 삶에 대한 겸허한 감사, 분명 이미 알고 있던 것인데도 우리가 <스톨퍼스타인>을 마주하며 새삼 전율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작품을 통해 식상하고 막연한 개념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시각화되고, 손에 잡히는 것으로 구체화되며, 설치 장소를 통해 실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실화’가 주는 감동이 배가 되는 것처럼, 미술작품이 실제의 우리 삶, 이야기와 긴밀하게 관계될 때 작품의 생명력은 배가 된다. 함께 겪는 고민들이나 공유하고 있는 문화 또는 역사와 같이 살아있는 우리의 삶이 작품에 녹아들 때, 공공미술이 진짜 공공을 위한 작품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것이 리얼리즘이다. 후이센이 지적한 것처럼,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분리시키는’ 미술은 지지받지 못하는 권력을 소유한 것처럼 금방 허무해지고 만다. 김 대리의 반짝 관심은 끌지 모르나, 그의 가슴 속에 새겨지지는 않는다.

공공을 위하는 미학

 공공미술이 아름다운 풍경을 위해 쌓아온 업적마저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러나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기획된 공공미술 작품이라면 아름답기만 하다고 될 일이 아니다. 공공을 위한 목적 또한 강조되어야 한다. 미술의 공공재적인 가치를 알았던 헨리 무어(Henry moore, 1898~1986)는 “가난한 사람도 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다.”며 런던에 자신의 조각을 재료값만 받고 넘겨주었다.

 또한 최근 이슈가 되었던 염리동의 <범죄 예방 디자인 프로젝트>나, 인천시에서 기획한 연평도 희망의 씨앗 벽화사업 등은 공공미술에 대한 시대의 요구를 반증한다. 이제 미술은 오랫동안 고집해 온 ‘예술의 순수성’을 스스로 모순되게 하면서까지, 대중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예술은 오늘날과 같은 불가침의 성역으로 진입코자 처절한 노력을 했으나, 공공미술에 대한 내외적 요구를 볼 때 이제는 그 권력을 내려놓을 시기인 듯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바리케이트가 제거된다면 공공미술의 영역은 확장될 것이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기념물의 기획위원회에 작가, 비평가뿐 아니라, 정치가, 지역주민, 역사학자들까지 함께 한 것처럼, 다양한 학제 간 연합과 공공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방법론적인 노력이 궁극적으로는 “공공의, 공공에 의한, 공공을 위한”의 실천으로 귀결되어야 함은 무엇보다 분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