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선거철이 돌아왔다. 선거 관련 뉴스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누가 공천을 받았느니 못 받았느니,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데 흠이 있느니 없느니, 호감도가 높으니 낮으니 등 정작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과 공약이 대두되기보다는 포커스가 인물에만 집중되고 있어 아쉬움과 실망감이 크다. 물론 선거를 통해 결과적으로는 인물을 선출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보다도 그 인물이 어떤 정책과 철학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을 통해 국가와 지역 그리고 국민을 위해 어떤 정치를 펼 것인가를 제시하여야 국민은 그 인물을 믿고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2012년 3월 29일, 인천문화재단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지역문화정책 의제설정을 위한 대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는 지역문화의 공통의제를 발굴해 이슈화하기 위하여 전국의 문화행정, 정책, 활동가들이 인천에 모여 지역문화정책의 의제를 제시하고, 전국적 협력사항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 대토론회는 강광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의 인사말과 박인배 세종문화회관 사장의 기조발제를 시작으로, 모두 4개의 분과로 나누어 분과별 토론 이후 종합토론으로 진행되었다. 법·제도·재정의 1분과, 생활문화·거점공간의 2분과, 문화복지·문화예술교육의 3분과, 축제·콘텐츠의 4분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분과별로 5인의 참가자가 발제 및 토론을 진행했다. 기조발제와 분과별 토론 그리고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진행한 종합토론까지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대토론회는 오후 6시가 넘어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평일인데다가 꽤 긴 시간 진행되었던 토론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많은 사람들이 경청하며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이는 정부부처의 지역정책을 담당하는 사무관부터 각 지역의 문화정책 및 행정가는 물론 현장 활동가에 이르기까지 토론회에 참가한 다양한 인사들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점점 지역문화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이 고조되고 있음에 대한 반증은 물론이거니와 지역문화정책에 대한 부실함과 그로 인한 갈망 때문일 것이다.

 참관객들은 두 공간을 오가며 관심 있는 주제의 토론을 들을 수 있었으나 각각의 공간에서 다른 주제의 토의가 동시에 진행됨에 따라 하나의 주제를 선택해서 들어야만 하는 상황이 약간 아쉬웠다. 그런 이유로 필자는 1분과와 2분과의 분임토의를 참관하였다. 1분과에서는 앞서 말하였던 것처럼 법·제도·재정을 주제로 하여 발제와 토론이 진행되었고, 정희섭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을 좌장으로 하여, 김진엽 문화체육관광부 지역정책총괄 사무관, 손동혁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장,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 홍인기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등 다양한 영역의 인사가 패널로 참석하였다. 우선, 좌장을 맡은 정희섭 소장은 지역문화 관련 법령을 검토하는 의제를 제안하였고 크게 세 가지 지점들을 제시하였다. 첫 번째가 국회 문화체육관광통신위원회에 계류 중이었다가 폐기된 지역문화진흥법에 대한 재검토, 두 번째가 문화예술교육진흥법안 중 명시는 되어 있으나 유명무실한 조항들에 대한 점검과 그에 따르는 질문들, 세 번째는 국가-광역-기초에 이르는 행정체계 문제를 의제로 제시하였다. 특히나 지역문화진흥법은 도시문화, 도시재생 등과 같은 국가적 정책사업과 퍼블릭 아트, 커뮤니티 아트 등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예술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그 필요성이 절실하다 하겠다. 또한 문화정책을 구현하는 데 국가-광역-기초에 이르는 행정체계의 문제는 좀 더 큰 틀에서의 섬세한 밑그림 구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업다운의 운영체계가 아닌, 그리고 단순히 예산이 흘러 내려오는 방식으로써의 관계가 아닌 큰 정책적 로드맵에서 지역에 그 문화정책이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국가-광역-기초의 협력, 공생, 공존의 관계정립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발표자 중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정책을 총괄하는 김진엽 사무관은 그간의 지역문화정책이 대부분 토건주의적이고 하드웨어 중심의 정책이었다면 지금은 프로그램 개발과 인력사업 등의 소프트웨어 중심의 지역문화정책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최근의 성과들을 말하였다. 또한 지역문화정책을 이행해 가는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짚어내고, 해결해 나가야 할 정책과제를 제시하였다. 그는 지역문화정책의 최근의 성과들 중 지역문화재단과의 네트워크 구축을 하나로 들면서 중앙정부와 지역문화재단이 사업 파트너십을 맺어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정책적 상호 소통을 위한 공공의 통로라고 이야기하였다. 이는 앞서 이야기가 나왔던 국가-광역-기초의 관계와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이다. 이와 관련하여 분임토의 말미에 있었던 토론 시간에 어느 한 방청객의 지적이 있었다. 중앙정부와 지역문화재단의 원활한 파트너십에 대한 일례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지역의 문화예술교육 광역지원센터가 그러한 파트너십을 통해 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델인데, 과연 이 모델이 원활한 소통관계를 통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지를 지적했다. 즉 그래야만 한다는 행정담당자로서의 당위성을 염두에 둔 머릿속 그림일 뿐 실제의 현장에서는 그러한 그림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상향과 현장과의 간극을 좁혀 나가는 것이 지역문화정책을 구체화하고 실현하는 데 우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법·제도·재정 분과에서 눈길을 끌었던 발표는 “조세특례의 전략적 활용을 통한 문화예술분야 재원의 확대와 확보”라는 제안을 한 홍인기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의 발제였다. 보통은 정책을 이야기 할 때 어떤 내용의 정책인가만을 따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정책과 제도는 그것을 실행할 때 어떻게 마련된 재원에서 어떤 규모로 적용이 되는가를 같이 따져보아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경제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홍 교수의 설명은, 많은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한 당연시 하지만 쉽게 간과하고 있을 수 있는 지점을 지적하였다. 또 그는 조세특례제도를 이용한 기부금과 문화접대비의 증대를 위한 입법적 노력이 계속되고 있으나, 조세정책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하였다. 또한 세액공제와 소득공제 그리고 면세라는 조세 정책에 대한 이해부족은 관련 법안이 상정된 후에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외면당하고 폐기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에 지역의 문화정책 실현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조세정책 및 특례허용과 관련하여 전략적 접근을 통한 발의법안의 가결 가능성이 제고되어야 하며, 기존의 공익성 문화예술단체의 지정기부금을 통한 재원마련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이어서 진행된 2분과는 논아트 밭아트의 박찬국 디렉터를 좌장으로 하여, 윤성근 이상한나라의 헌책방 운영자, 이승택 도시문화공동체 쿠키 대표, 임승관 시민문화예술센터 대표, 전수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패널로 참석하여 생활문화·거점공간을 주제로 발제와 토론을 진행되었다. 좌장을 맡은 박찬국 디렉터는 문화와 예술은 제도와 비제도를 넘나들며 자율적 생성과 소멸이 이루어지는 생태계가 중요한데 대부분이 기금과 더불어 제도의 통제와 그 안에서만 움직이다보니 제도 밖의 영역에서 생성되는 문화생태계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없음을 지적하였다. 또한 이러한 문제는 제도화된 공간에서의 활동만 지원하게 되어 전위적 예술가들의 활동공간이 지나치게 협소한 영역으로 축소되고 시장유통구조에 예속되고 있음을 문제제기하였다. 무엇보다도 지역문화정책을 논함에 있어 생활문화·거점공간이라는 주제는 타 영역의 주제들보다도 지역, 일상, 사람의 관계성에서 최전방에 있는 영역이라 하겠다. 이러한 사례 중 한 곳이 서울에 소재한 이상한나라의 헌책방이라는 공간이다. 운영자인 윤성근 씨의 말에 따르면 이 헌책방은 동네 청소년들과 함께 소소한 생활문화를 공유하고 같이 배워가는 생활문화공간이자 거점 역할을 표방하고 있다고 한다. 윤성근 씨는 박원순 시장의 집무실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맡고 여러 매스컴에 노출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동네생활문화 거점인 이상한나라의 헌책방도 더욱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이와 같은 공간을 만들어 보겠다고 자문을 구하고 벤치마킹을 하러 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은 관청 혹은 단체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서도 그렇다고 한다. 그러한 편견은 오히려 실제적인 생활문화 거점공간을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한다. 지자체에서는 지원을 할 테니 어떤 사업을 해볼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는데, 이는 앞서 박찬국 디렉터가 지적한 경직된 지원제도, 보편성에만 얽매이는 발상이 창조적 활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동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지역의 생활문화와 문화공동체 그리고 거점공간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들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정책과 제도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지원하고 육성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지역문화정책과 제도는 성과만을 도출해 내기 위한 방식으로만 존재하는 듯, 획일적이고 일정한 행정적 틀 내에서만 사고하고 실행할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지역문화정책은 정책을 전개해 나가는 데 다양성을 확보하고 창조적이고 지속적인 지향성을 가질 수 있도록 좀 더 유연한 구조와 체계를 가져야 한다.

 인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지역문화정책 의제설정을 위한 토론회는 ‘인천’이라든지 ‘지역’에 국한 시킨 토론회가 아닌 지역문화정책 전반에 걸친 정책적 의제를 발굴하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패널들이 제안하였던 다양한 의제들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토론을 통해 다듬고 발굴의 차원까지 끌어올리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너무 부족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이 토론회 행사가 취지와는 다르게 일종의 행사를 위한 행사로만 그치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 시간에 쫓기 듯 하루에 다 마칠 것이 아니라 2~3일에 걸쳐서라도 좀 더 심도 있게 논의되었으면 어떠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인지 이 토론회는 한 단계 도약을 위한 스스로의 과제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토론회를 통해 제안된 다양한 의제들을 다시 한 번 심도 있게 점검을 해 보아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인천문화재단은 인천지역의 문화정책 의제설정을 위한 현장과의 소통과 진정성 있는 고민은 물론이고, 지원제도와 육성시스템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실천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지역정책과 제도 등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그 바탕에 기필코 ‘현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그것을 간과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정책은 “대체로 정책이 내세우는 의도는 아름답지만 그 의도라는 것이 우리 사회나 예술계의 구체적인 합의가 없는 텅빈 언어일 뿐”이고, “그 텅 빈 언어를 채우는 것은 예술현장”이다. ^{김소연 (전)weekly 예술경영 편집장의 “정책의 역할, 정책의 걸림돌” 의제 제안서 본문 인용} 시대와 현장이 변함에 따라 지역문화정책도 변화하여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고여 썩어가는 물처럼 변질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활력 없이 만성적인 피로감이 누적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인천문화재단이 지역문화정책 의제 발굴을 위해 공들여 마련한 이 토론회는 의제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 그 시발점으로 매우 유의미한 자리였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후속 조치 혹은 고민과 실천들이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인천문화재단이 인천지역의 정책적 의제 발굴과 실천, 현장과의 소통 과정과 담론의 수렴, 기금의 소모적 지원을 넘어서는 육성 차원까지의 지원정책, 민과 관 사이에서의 유기적인 협력 관계 구축,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창조적이고 유연성 있는 지원 등 수많은 것들을 자체적으로 혹은 현장과의 토론, 소통을 통해 재점검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어렵고 힘겨운 과정이 될 것이겠지만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인천이 건강한 지역성을 가진 활기 있는 문화도시로의 성장을 기대한다.